소설리스트

애기븝미쟝이 되었다-45화 (45/172)

#45화. 세쌍둥이 언냐야들!

“우리 역사학 동아리는, 자랑스러운 한국의 역사와 전통을 다시금 되새기는 활동을 하는 동아리이며…….”

그 ‘자랑스러운 한국의 역사와 전통을 되새기는 활동’이 도대체 뭔데. 뭐길래 죄다 하나씩 왕 코스프레, 신하 코스프레, 노비 백정 코스프레를 하고 있는 건데.

듣기만 해도 수상한 그 설명에 반 생도들 전체가 다들 의심의 눈초리를 하고 있다.

아까 전, 점심시간 이후 휴식을 취하고 있을 때 봤던 그 이상한 왕 복장의 생도. 그와 그의 동료들이 지금 이렇게 자신들의 동아리에 대해 설명을 하고 있었다.

아무리 나름 펜타곤이, 은근히 규칙들에 대해서 많이 풀어 주는 면이 있다고 하더라도, 일단 교내에서 일과가 끝나기 전인 5시 이전까지는 무조건 생도복을 착용하고 있어야만 했다.

그런데 생도복에 붉은 칠을 해 놓고, 금박을 덕지덕지 붙여 놓은. 저런 복장을 한다는 것이 이해가 가질 않았는데…… 아무래도 저 동아리 때문에 허용을 해 준 모양이었다.

“저기…… 혹시 선배님?”

“음? 무슨 질문이라도 있나?”

“역사학 동아리에 들어가게 된다면…… 혹시 그 복장 같은 것들도 갖춰 입어야…… 하는 건가요? 그리고…… 지금 입으신 옷들에 특별한 의미가 있는지.”

“복장? 그럴 때도 있고 아닐 때도 있지만, 신입 부원이 싫다고 생각한다면 바꿀 수도 있겠지. 특별한 의미란 게 무슨 소리인지는 잘 모르겠고.”

한창 이야기를 하던 노비 복장의 2학년 생도가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질문을 한 우리 반 생도는 그저 ‘아…… 네.’ 하며 떨떠름한 표정으로 앉았다.

특별한 의미, 그게 뭔지 나는 아주 잘 알 것 같은데.

지금 당장 계속 설명하는 생도는 노비 복장이었고, 그보다 높은 신분의 복장을 입은 이들은 뒤에서 그저 구경하고 있었다. 심지어 신분대로 상석에 앉은 모습을 보니…… 무슨 기준인지는 몰라도 저기 동아리에 들어가면, 저런 식으로 되는 게 아닐까 싶었다.

그나저나 저 왕 복장을 한 저놈은 생긴 건 무슨 양아치처럼 생겨 가지고는, 아니 실제로도 꽤나 껄렁껄렁거리면서, 왕처럼 행동해 보겠다고 앉아 있는 모습이 상당히 언밸런스했다.

“질문, 더 없습니까?”

노비 복장의 생도가, 손을 들었으나 교실 안은 조용했다. 내가 얼마 전에 노래를 불렀을 때랑 비슷한 분위기였다. 시발.

“어, 없네요.”

뻘쭘하게, 머리를 긁적거리는 생도를, 날카롭게 째려보는 다른 역사학 동아리의, 2학년 3학년 생도들.

순간 소름이 돋았다, 진짜로 양반 내지는 귀족 같은 게 소위 천한 것을 쳐다보는 시선 같았다.

“하와와, 븝미쟝은 저런 이상한 옵바야들이랑은 안 놀 고애오…….”

괜히 잡혀가서, 하와와거리는 무수리가 될 수는 없었다.

내가 무슨 장금이도 아니고.

마찬가지로 일리아 또한 나와 같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아니, 비단 그녀뿐만이 아니라 반 전체가 그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다들 한 명의 지원자도 없이 모집이 끝나나 했는데.

“들어가고 싶네요.”

한 생도가 이 동아리에 지원을 했다. 누구지? 하고 살펴보던 나는 목소리의 근원지를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나츠키……?”

도대체 왜 저딴 거에 지원을 하는 거지? 게임에서도 이런 에피소드가 존재했나, 생각해 봤는데 아니었다. 절대 이런 에피소드는 없었다.

하지만 그런 내 황당함과는 별개로, 그 예의 곤룡포를 입은 역사학 동아리의 조장은 굉장히 만족을 한 모양이었다.

짝짝짝!

박수를 연달아 몇 번 쳐 낸 그는 쩌렁쩌렁하게 웃으며 말했다.

“하하하하하! 환영하노라! 나의 백성이여!”

그 어설픈 사극 톤에, 나는 당장에라도 귀를 막고 싶어졌다. 이게 나를 보는 다른 생도들의 심정이 아닐까, 생각하니…… 아무래도 엑스트라고 조연이고 간에 좀 더 친절하게 대해 줘야겠다는 생각이 솟아났다.

*    *    *

나는 저번 음악 시간 때, 내가 얻은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아니, 해 봤자 그냥 명성도나 조금 올랐겠지 싶었다.

이번에 채워야 하는 명성도는 1만. 갑자기 생각이 들어 찾아보니, 저번에 5000을 채운 뒤로는 살짝 지지부진해서 5900 선에서 멈춰 있었다.

실상 900 정도가 올랐다는 뜻이었다. 그마저 알림창을 뒤져 보니 다 음악실에서 오른 거였었나. 확실히 조금 조용하게 생활을 하긴 했지.

……물론 진짜 조용하게 학교생활을 하는 놈들이 듣는다면 콧방귀를 뀌겠지만.

“이런 게 생길 줄은 몰랐던 고애오…….”

하지만 나는 명성도가 아닌, 분명히 다른 보상을 얻었다. 수시로 알림을 껐다 켰다 하는 게, 일상생활을 할 때면 모르겠는데, 어딘가에 집중을 해야 할 때 명성이 올랐습니다! 하는 문구가 계속 떠오르면 더럽게 거슬리기 때문이었다.

그거만 끌 수 있으면 좋겠는데, 그런 기능은 없었다. 인터페이스 구린 거 진짜 실화냐? 도대체 이딴 게임을 누가 좋다고 했던 건지 모르겠네.

흠흠.

아무튼, 그 때문에 나는 음악실에서 떠오른 메시지 하나를 보지 못했다.

그 메시지는 바로 내게 새로운 특성이 생겼다는 것이었다.

븝미쟝의 콘서트 와요!(A) - 븝미쟝이 노래를 부르며는 옵바야 언냐야 다들 하와와한 고애오!

그건 바로, 내 노래에 대해 특별한 추가 효과가 붙는다는 특성이었다.

그러니까 그 븜븜븜~ 이 지랄을 하면 아군에게 버프를 주거나, 적에게 디버프를 걸 수 있다는 뜻인데…… 자세한 수치나 그 종류가 나와 있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일단 A등급 특성이란 걸 봤을 때, 성능 자체는 오질나게 좋을 것이었다.

당장에 히어로 판타지에서도, A등급 광역 버프 스킬이 있으면, 웬만한 유저들은 딜러나 탱커에서 보조 딜러나 보조 탱커로 포지션을 바꿔 버렸다. 일단 반쪽짜리 버퍼라도 RPG 게임에서 버퍼는 무조건 귀족이었으니까.

하지만, 문제는 그놈의 노래였다. 그럼, 이제 사냥할 때마다 그 개 같은 짓을 해야 한다는 건가? 나 혼자 하는 거면 몰라도 여러 명이서 할 때 그런 짓을 했다가는 바로 돌바닥에 머리를 박고 스스로 죽어 버릴지도…….

[호에에, 아가야는 나쁜 상상 못 해오!]

……이젠 상상까지 지랄이야.

아무튼 나는 이 스킬에 대해, 그리 긍정적인 사고를 할 수가 없었다.

그렇기에 일단 웬만한 상황에서는 봉인해 두기로 했다.

내가 싫다고 내가. 그래도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이란 게 있는데.

아니, 존엄성은 이미 샤워실에까지 스토커가 졸졸 따라붙는 시점에서 글러 처먹은 소리인가. 나는 한숨을 쉬며 문밖에 있는 사람에게 말했다.

“J 언냐야…… 샤워는 혼자 하게 해 주는 고애오…….”

그러자, 이제 딱히 거칠 것도 없다는 듯이 그녀가 말했다.

“띨빵이 목욕하는 것 좀 훔쳐보면 안 돼?”

“안 되는 고애오! 호에에…… 아가야의 목욕을 훔쳐보다니오…… 나쁜 언냐야는 경찰 아조시가 잡아가는 거에얌!”

“경찰이 잡아갈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알았어. 그럼 띨빵이는 나중에 보자~”

그때까지, 불투명한 샤워실 유리창에다 얼굴을 바싹 대고 있던 J가 이내 사라졌다.

나는 한숨을 쉬며, 목욕을 재개했다. 무슨 샤워 하나도 마음 편히 못 하겠네.

목욕을 마치고 나온 나는 옷을 갈아입었다. 어차피 이제 숙소에서나 뒹굴고 있을 테니까 대강 커다란 라운드 티셔츠 하나 입고, 침대에 누워 버렸다.

“하와와와와…….”

뽀송한 매트리스에 꿉꿉한 몸을 비비적거리니, 이게 또 천국이 따로 없었다. 덜 마른 머리칼이 사르륵거리는 것도 이제는 꽤 익숙해졌다.

어차피 일리아가 오려면 좀 멀었나. 나는 폰을 켜고 오랜만에 인터넷이나 조금 뒤져 보려고 했다. 물론 내 이야기는 제외하고. 저번에 한 번 내 팬클럽(무려 회원 수가 3만 명에 육박한다) 회원들이 써 놓은 댓글을 보고 학을 뗀 적이 있어서.

그렇게, 이쪽 세계의 예능 편집본이나 설렁설렁 보고 있을 때였다.

띠링!

“호엥?”

순간 휴대폰의 알림이 울리더니, 메시지 하나가 도착했다.

일리아가 보낸 건가, 아니면 J?

원래라면 전자의 경우밖에 없었겠지만, 요즘 들어서는 부쩍 J 또한 메시지를 자주 보내는 편이었다.

물론 그 내용은 자기네 조직에 들어오라는 권유가 태반이었고.

그렇기에 오늘도, ‘우리 띨빵이♥~ 그래서 올래 안 올래?’ 혹은 ‘다나! 보충 끝나고 떡볶이 사 갈게. 같이 먹자.’ 하는 문자이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정작 오늘의 메시지는 그 둘 중 어느 것도 아니었다.

[의뢰하신 시약 전부가 제조 완료되었습니다.]

그것은, 예의 그 연금술의 집에서 날아온 문자였는데. 앞서 내가 맡긴 4개의 약 중 1개가 완료되었다는 문자가 날아온 것이, 당장 사흘 전의 그 음악 시간.

그런데 벌써 나머지 세 개가 완성되었다는 것이다. 이건 꽤나 놀라울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또한 문자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혹여 고객님께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현재 보유하고 계신 약초의 전량을 알려 주실 수 있겠습니까? 의뢰 제조가 아닌 매입을 하고 싶습니다.]

아무래도, 그들은 내가 따 온 약초가 꽤나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었다. 나는 흐뭇하게 미소를 지었다. 일이 좀 쉽게 풀리겠다 싶었다.

“흰 꽃 씨, 기다리는 거와요~”

아무래도, 이번에는 그 꽃밭에서 꽃을 한아름 더 따 가게 될지도 모르겠다.

*    *    *

“언니 언니, 어때. 더 팔겠대? 이거 약초 품질이 너무 좋아. 당장에 그냥 체력 포션 이거만 해도 기존보다 효과가 3~4할은 더 나오고. 저기, 저 힘스탯 상승하는 단약. 저거는 부작용도 없어졌어. 내다 팔면 짭짤할걸? 이번에 받은 의뢰비가 적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들…….”

“가만히 있어 봐. 신경 사나워 죽겠어 정말.”

“그래, 좀 가만히 있어.”

“……재연이 너도. 그냥 좀 조용히 해 봐.”

휴대폰만 바라보고 있는 한 여자의 어깨 위로, 두 명의 다른 여성이 얼굴을 디밀었다. 혹자가 그 광경을 보면 순간 조금 기괴하게 느낄 수도 있을 법했다.

그 세 명의 얼굴이 모두 똑같았으니까. 약간의, 스타일에서의 차이를 제외하면 누가 봐도 모두 같은 사람이었다.

“왜 나한테 그래. 맨날 저렇게 시끄럽게 하는 건 미연이잖아.”

“맞아! 조금 먼저 나왔다고 아주 그냥 그거로 언니인 척~ 하면서 유세야 유세는.”

“……입 다물라고 했다.”

“입드므르그흐뜨~”

개중 가장 성숙해 보이며, 실제로도 이 세쌍둥이의 맏언니인 강지연은 한숨을 내쉬었다. 도대체 이년들은 언제쯤 철이 들까. 도대체 감이 잡히지 않는 일이었다.

시골 구석……까지는 아니더라도, 허구한 날 몬스터가 뛰쳐나오고 필드에서 몬스터들이 삐져나와 비선호 지역으로 꼽히는 동네. 그곳 중에서도 월세가 가장 싼 자그마한 건물의 3층에 위치한 연금술의 집.

몇몇 이들에게는 꽤나 소문이 좋다는 인식이 박혀 있었지만, 아직은 곤궁함을 면치 못하고 있는. 이곳의 연금술사는, 모두 세 명.

그 세 명 모두가 일란성 쌍둥이였다.

“드므르그…… 읍읍!”

“눈치가 좀 있어라.”

자꾸, 강지연을 살살 긁고 있던 막내. 강미연의 입을 둘째인 강재연이 막았다. 그녀의 언니의 모습이 영 심상치 않았기에.

저기서 막타 치면, 내가 다 뒤집어쓴다. 그렇게 생각한 강재연은 뒤로 슬쩍 빠졌다. 차라리 막내가 혼나는 게 나았다. 쟤, 오늘 큰일 나겠네. 그녀는 미리 막내에게 애도를 표했다.

하지만 강지연의 핸드폰에 온 하나의 문자. 그것 때문에 그럴 일은 사라졌다.

“야, 대박.”

순간 문자를 받은, 강지연의 얼굴이 밝아졌다. 그에 뒤로 빠졌던 둘째도, 막내도 다시 옹기종기 모여선 문자를 살펴봤다.

[매입을 하고 싶으시다…… 네, 좋네요. 제가 직접 한 번 찾아뵙도록 하죠. 약초는 지금 수량보다 수십 배는 더 있습니다.]

그 내용은, 상당히 쾌재를 부르게 하는 것이었다. 그에 둘째와 막내 또한 같은 반응을 보였다.

“대박 대박, 언니. 수십 배래.”

“말하는 거 보니까 돈도 많은 것 같던데.”

갑자기 찾아온 이 행운에, 그녀들은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키다리 아저씨, 그녀들의 머릿속에 떠오른 이 문자의 주인공의 이미지였다.

그 이미지는 대략 그로부터 이틀 후까지만 이어졌다.

진짜 그 ‘키다리 아저씨’가 찾아오기 전까지만.

“븝하!”

……그 이미지랑은 상당히 먼 존재였다는 걸, 알기 전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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