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화. 이게…… 행운인 건가얌?
“흐음…… 그러니까, 이게 그 의뢰자……분께서 전해 달라고 한 문서란 말이죠?”
“그런 고애오!”
강지연은 눈앞의 여자아이, 다나에게 종이를 보였다.
그것은 바로 다름 아닌 계약서. 그 ‘의뢰자’가 준비했다는 것이었는데, 그것을 보고 난 뒤 강지연은 한 가지를 확신할 수 있었다.
눈앞에 있는 이 여자애가, 의뢰자와 굉장히 가까운 관계라는 것을. 아니, 그것을 넘어서 애초에 이곳에 그녀를 대리인으로 보낸 일. 그것이 다분히 의도적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아마도 의뢰인이 바빠서 이곳에 오지 못했다는 것은 거짓말일 것이었다.
이후에도 의뢰인이 직접 올 일은, 웬만해서는 없을 것 같다는 것이 강지연의 직감이었다.
“혹시, 다나 씨. 그 의뢰인이라는 분이랑은…… 무슨 사이신지.”
“그거느은…… 미아내요 언냐야.”
혹시나, 정확히 무슨 관계인지 알면 정보를 알아낼 수 있을까 싶었는데, 다나는 그저 입을 다물었다. 쩝, 강지연은 입맛을 다시며 다시 한 번 계약서를 살폈다.
본문의 내용은 대부분, 일정한 수준의 금액과 약초를 지속적으로 공급한다는 것이었다. 그를 대가로 요구하는 것은 이곳 연금술의 집의 경영권과 수익의 일부.
그것은 분명 큰 권리였으나, 지원금과 약초의 수량이 충분히 그에 걸맞은 수준이었다. 아니, 지금 연금술의 집의 상황을 생각한다면 되레 후한 것이었다.
충분히 받아들일 만한 내용, 다만 걸리는 것이 한 가지 있었다.
그것은 바로, 맨 마지막에 적힌 내용이었다.
[14. 을은 ‘다나 크리스틴’에게 1주 1회 2시간 이상 연금술에 대해 강의해 준다.]
누군가에게 자신의 기술을 알려 준다. 그것은 보통 장인들이 상당히 꺼려 하는 부분이었다. 자신들의 비전 기술, 얼마간 스스로 연구한 끝에 알아낸 본인만의 방식. 그것을 알려 준다는 것은 직속 제자 정도 되지 않는 이상에야 불가한 일이었다.
물론 지연은 그것을 걱정한 것이 아니었다. 다만, 이 ‘의뢰자’가 무엇을 보고. 아직 완성된 물건도 제대로 보지 않은 채, 이러한 조건을 내걸었는지. 그것이 의문이었다.
실력이야 물론 누구한테도 뒤지지 않을 자신이 있지만…….
“호에?”
눈앞에서 이상한 소리를 내는 여자애. 다나 크리스틴을 바라보며, 강지연은 결정을 내렸다.
조건은 분명 나쁘지 않았다. 나는 지금 한 번도 보지 못한 사람에 대해 신뢰하는 게 아니라, 계약서를 신뢰하는 것이다.
지금의 상황이 궁핍해서가 아니라, 더 나은 연금(鍊金)에 대한 연구를 통해, 이상에 도달하기 위해…… 이 계약을 하는 것이다.
언뜻 자기변명으로 들릴 법한 이야기를 속으로 되뇌던 그녀는, 잠시 뒤에 입을 열었다.
“계약, 할게요.”
* * *
“헤헹…….”
나는 웃음을 흘렸다. 상당히, 만족스러웠기 때문이었다.
세쌍둥이, 강지연 강재연 강미연. 이들은 역시나…… 좋게 말하면 순수했고, 나쁘게 말하자면 세상 물정을 몰랐다.
오늘 한 계약 내용은 실상 생으로 사람 뒤통수를 후려치는 것이었다. 아니, 대놓고 정당하게 조건을 제시했으니 앞통수를 후려친 건가?
조건 자체가 나쁘다는 뜻이 아니었다. 나는 되레 굉장히 후한 조건을 제시했다. 지금부터 연금술의 집이 유명해지기 시작하더라도, 아마 내가 확실한 이득을 보기 시작하기 위해선 적어도 2년 정도는 걸리겠지.
그때까지 연금술의 집은 그냥 내 돈을 쪽쪽 빨아 갈 것이었다. 하지만, 그 2년이 지난 후에는 상황이 완전히 역전된다.
가장 말도 안 되는 것은 바로 계약 기간. 1차로 현재 내용을 유지한 채 7년, 이후 문제가 없을 시 3년마다 갱신하도록 되어 있다. 물론 그때마다 재계약을 해서, 내게 떨어지는 배당을 조정하도록 되어 있긴 하지만…… 아마 저 자매들은 그럴 생각이 없을 것이다.
왜냐면, 정말 바보 같도록 순수한 이들이니까. 특히 강지연 같은 경우에는 자기 딴엔 계산적인 척하면서 전혀 그렇지 못한 사람이었다.
나는 계약서를 품속에 집어넣었다.
빨리 집에 가서, 코팅이라도 해 둬야지.
이게 후일 내게 든든한 지원이 되어 줄, 두 번째 물건이었다.
그 첫 번째는, 김수혁이긴 한데.
얘는…… 좀 그렇고.
띠링!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내 폰에 알람이 울리고, 김수혁의 문자가 날아왔다.
나는 한 점의 기대도 없이 그 내용을 살펴봤다.
[일리아 씨의 방어구가 완성됐어요. 나중에 같이 수령하러 오세요 ^^]
“호에에.”
아닌가, 쓸모 있나?
나는 그와 동봉된 사진과 스펙을 바라보며 웃었다.
일리아한테 처음으로 내가 선물을 줄 수 있겠다 싶었다.
그렇게 신나서 메시지를 살피던 나는, 마지막에 적혀 있는 한 줄을 보고 우뚝. 멈춰 섰다.
[PS. 방어구 챡샷 잘 봤습니다! 감사합니다!]
“호에에에에…….”
이 씨벌 변태 새끼.
* * *
펜타곤의 넓은 부지에는 정말 많은 시설들이 있었다. 그것은 모두 생도들의 교육을 위해, 혹은 휴게를 위해 지어진 것. 혹자는 그것들이 너무 과한 것이 아닌가, 이야기했지만 그때마다 돌아오는 것은 한 가지 대답이었다.
‘그래서 이 새끼야, 그럼 니가 몬스터들이랑 싸울래?’
이건…… 일종의 가불기였다. 결국에 국민들이 위험에 처했을 때 나서는 건 히어로뿐이다! 하는 인식이 워낙 사람들 뇌리에 박혀 있는지라. 그리고 나름 히어로 강국이라는 것에 대한 자부심 또한 있어서 그런 식으로 실드를 치는 사람들이 많았다.
나는, 개인적으로 그렇게 실드를 치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솔직히 부지가 너무 넓은 건 사실이잖아. 그래서, 이렇게…… 내가 개고생을 하고 있는 거고.
“응헤응…… 헤에엥…….”
나는 지금 일리아와 함께 정해진 시험장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것만 해도 장난이 아니었다. 본관에서 던전까지, 무려 수 킬로미터가 떨어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이건 다른 생도들에게는 그리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이었다. 나를 제외한 다른 마법사 지망생들조차, 다들 기본 힘, 민, 체의 스탯이 20초반 정도는 되었으니까.
내가 그냥, 쓰레기인 것이다.
“다나, 힘들어? 힘들면 말해.”
“후에, 헤으응…… 아니애오 언냐야…… 븝미쟝 힘내는 고애오!”
하지만 나는 도와주겠다는 일리아의 제안을 거절했다.
물론 그게 합리적인 판단은 맞을 것이었다. 지금 훈련장으로 향하는 것은 평가 항목에 들어가지도 않았으니, 내 평가가 깎일 일도 없었다.
심지어 저번 평가에서, 내가 J를 타고 다닌 것은 훌륭한 전술적 판단이었다면서 심지어는 칭찬까지 받았다. 아무 문제 없는 행동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매번 이런 식으로 도움을 받으면, 나 자신이 성장할 리가 없었다. 매일매일 이 나약한 육신에 적응하며, 해이해지는 내 정신과…… 대갈통. 이걸 좀 뜯어고칠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븜븜븜~ 아주 작은 븝미쟝~!”
나는 노래를 부르며, 달려 나갔다. 일리아는 옆에서 피식, 하고 웃음을 터뜨렸지만, 나는 진지했다.
‘꼬마븜미쟝’을 불렀습니다! 1분간 체력이 10% 상승합니다!
최대한, 힘을 내려는 내 의지였다.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다 동원해서, 스탯을 끌어 올린다. 물론 노래로 오른다는 10퍼센트가, 내게 적용되면 0.5 스탯이지만…….
아까 전에는 심지어 포션도 한 모금 했다. 입이 작아서 1/20 정도 마신 것 같은데, 그것만 해도 십수만 원은 족히 될 것이었다.
탁탁탁탁.
나는 짧은 보폭으로 다다닥 소리를 내며 뛰었다.
보여 줘, 체력 0.5의 힘!
그렇게 대략 5분 정도를 달려갔다.
“그러게, 다나. 진작에 업히라니까.”
……그리고 결국에는 시체처럼 늘어져선 일리아의 등에 업혔다.
그렇게 교훈 하나를 얻었다. 똥고집 부리지 말고 해 준다고 할 때 말을 듣자는 것.
일리아의 등에 업히고 나니, 순식간에 시험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때가 수업 시작까지 3분 정도 남은 시점.
“웃챠.”
일리아는 나를 내려 주며 씨익 웃었다. 그러고는, 누군가를 찾기 시작했다.
갑자기 왜 저러나 했는데, 일리아가 찾던 사람이 누구인지를 확인하고는 어이가 없어졌다.
일리아가 찾았다는 듯이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사람.
그건 바로 J였는데, 아무래도 저번 시험 때 나를 뺏긴 것에 대한 앙금이 굉장히 컸던 모양이었다.
……더 잘해 줘야겠다 싶었다.
시험장에는 나와 일리아보다 한참 늦게 출발한 사람들도 이미 도착해 있었다. 내가 시간을 다 잡아먹은 탓이었다.
그렇게 생도들이 모두 모인 것이 확인되었을 때, 교관이 단상 위로 올라왔다.
그리고 동시에 그를 바라보는 생도들의 표정이 완전히 썩어 문드러진 양파처럼 변하기 시작했다.
“자, 반갑습니다. 여러분. 펜타곤에서의 생활은 괜찮죠? 아마 괜찮으리라 믿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뭐, 여러분이 어쩔 겁니까? 그렇지 않더라도 그렇다고 대답해야죠.”
굉장히, 사람 열받게 만드는 말투. 그와 반대되는 젠틀해 보이는 제스처와 톤. 그리고…… 얼굴.
그건 바로 입학 시험 때도 봤던 건이라는 교관이었다.
첫 번째 주, 그리고 2주 차까지 그는 아무 수업도 맡지 않았다. 그에, 일부의 여생도들이 굉장히 아쉬워했다.
하지만 막상 그가 수업을 하기 시작하자, 그 일부의 생도들마저 생각을 바꾸었다.
나도 지금까지 1번 들어 봤는데, 꽤나 고생을 했다.
그가 가르치는 수업은 마력 적응. 히어로라면 그 계열과 특성이 어찌 되었든, 마력을 다루는 방법에 대해서 배워야만 했다.
앞선 무기술이나 마법과 같은 과목에서는 각자 마나 스폿, 혹은 신체 강화에 대한 방법을 배웠다면 마력 적응 수업에서는 그를 통틀어 마력 자체에 대한 이해를 늘리는 방법에 대해 배웠다.
나 같은 경우에는 굉장히, 엄청난 우등생이었다.
애초에 그쪽 재능으로는 나를 따라올 만한 생도가 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 또한 몇 번 갈굼을 당했다. 강도가 다른 이들에 비하면 애교 수준이기는 했지만, 그 정도 갈굼조차도 이 몸은 오들오들 떨게 만들 수 있었다.
다른 생도들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정신적 육체적인 갈굼을 당했던 터였다.
물론 그에 비례하여 실력이 쭉쭉 늘기는 했지만, 다들 굉장한 반감을 가지고 있던 터였다.
순식간에 가라앉는 분위기. 하지만 건 교관은 개의치 않는다는 듯이, 아니 오히려 좋다는 듯이 함박웃음을 띠었다. 역시 세계관 대표 또라이 중 하나.
“다들 긍정하는 것 같군요. 자, 그럼 인사는 여기까지 하고. 이번 던전 체험의 조를 한 번 짜 보도록 하죠. 이번에는 합동 수업이니 기존에 보지 못하던 생도들과도 합을 맞출 기회가 있을 거예요.”
오늘 수업은, 우리 3반과 7반과의 합동 수업이었다.
내용은 던전 탐사. 이전에 했던 필드 사냥 체험과는 분명히 차이가 있었다.
“자, 그럼 지금부터 조원을 부르겠습니다.”
나는 부디, 근접 계열. 그것도 탱커가 많이 걸리길 빌었다. 예를 들자면 성기사 내지는 방패전사 같은 이들.
연금술의 집에서 얻은 시약들. 그것들을 모두 마시고, 현재 몸에 흡수하는 과정에서 마력이 또 추가로 상승했다. 거기에 지금까지 익힌 실전 마법들도 많았으니, 일단 공격력 하나는 보장해 줄 수가 있었다.
내게 필요한 것은 주문을 영창하기까지의 시간, 그리고 혹시 모를 습격을 막아 줄 사람이었다.
“자 그리고 4조, 다나 크리스틴.”
내 이름이 호명되었다.
나는 떨리는 마음으로 뒤이어 호명되는 사람들의 이름을 기다렸다.
“김찬호…….”
오, 김찬호. 7반의 김찬호면 분명 검방전사였나. 굉장히 나쁘지 않다.
나는 그렇게 쾌재를 불렀으나, 그다음으로 호명되는 이름에, 그저 얼빠진 소리를 낼 수밖에 없었다.
“타나카 나츠키.”
“호에에에에……?”
아니, 무슨 나츠키랑 나를 붙여 놔. 조를 왜 이따위로 짠 거야?
나는 황당한 심정으로 단상 위를 쳐다봤다. 혹시 잘못 호명한 게 아닐까.
하지만 건은 이미 5조의 목록을 부르고 있었다.
그 때, 내 눈앞에 떠오르는 시스템 창.
특성이 발동되었습니다! 엄청난 행운이 찾아온 것이애오! 하와와!
내가 가지고 있는 행운에 관한 세부 특성, 큰 행운이 찾아올 때만 ‘발동’되었다고 명시되는 그 특성의 메시지였다.
나는 그게 어이가 없었다.
이게 뭐가 행운인데. 다 찍어도 필기 만점 받을 때는 나오지도 않더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