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화.
“머리가 아야한 고애오…….”
나는, 가벼운 두통을 느끼면서 눈을 떴다. 그와 동시에 등에서 언젠가 느껴 본 적이 있는 감촉이 느껴졌다.
이건, 병상인가. 그것도 펜타곤 내에 있는 양호실의 병상인 모양이었다. 아무래도 던전에서의 사건이 마무리되고, 여기로 옮겨진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혹시 나츠키나 김찬호도 있냐. 그 생각에 주위를 둘러봤지만 다른 병상엔 아무도 없었다. 다만 나를 보고 부산을 떠는 이는 있었다.
“어머, 일어났구나?”
“븝미쟝 깨 버린 고시야요!”
그것은 바로 양호실 선생. 여느 때와 다름없는 모습으로 물건들을 정리하던 그녀는, 내가 깨어난 것을 확인하고는 내게 다가왔다. 그러고는 몸 상태에 이상이 없는지 이곳저곳 살펴보기 시작했다.
“헤으응…….”
“몸에 문제는 없는 것 같고…… 혹시 지금 불편한 곳 있어? 통증이 느껴진다거나.”
“븝미쟝, 건강한 고애오!”
물론 내 몸은 아무 이상이 없었고, 그녀는 안심이라는 듯이 내 등을 톡톡 두드렸다.
“됐네.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조금 더 쉬다가 가.”
“고마오요, 언냐야…….”
나는, 잠자코 누웠다. 머리가 아직도 띵하게 아파 오는 느낌이었던지라.
“상태창 씨 나와 주는 고애오.”
다나 크리스틴
나이: 17세
종족: 인간
능력치
힘: 5 민첩: 5 체력: 5 마력: 60
보유 특성: [애기븝미애오!(S)(숙련도 3레벨 0%)],[븝미쟝은 뭐든지 잘 먹고 잘 커요!(A)(숙련도 4레벨 88%)], [븝미쟝의 콘서트 와요!(A)(숙련도 1레벨 18%)]
조심스럽게 속삭이자 눈앞에 떠오르는 창. 나는 그 내용을 확인하고 헛숨을 들이켤 수밖에는 없었다.
비약적으로 상승한 마력 스탯, 그리고 2번째 항목 특성의 숙련도가 비정상적으로 높게 올라가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으니까.
물론 나는 그 이유를 알고 있었다. 직접 내가 행한 행동의 결과물이었으니.
빌런들에 의해 조종당하던 그 여생도, 그녀의 몸에는 분명 이질적인 사기를 띠는 마력이 심어져 있었다. 애초에 그를 매개로 조종할 수 있는 것이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것은 체내에서 그런 식으로 수신기 역할을 하다가 몸 전체에 독처럼 퍼져 대상을 죽여 버린다. 그랬기에 내가 그 여생도를 이미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한 것이고.
하지만, 아마 그 여생도는 지금쯤 살아 있을 것이었다. 그녀의 몸에 있던 사기. 그것을 내가 먹어 치웠으니까.
그녀뿐만 아니라, 이상하게도 나츠키의 몸 또한 이상한 기운이 잠재되어 있었는데, 나는 그 또한 해결해 낼 수 있었다.
그 방법은 바로 ‘븝미쟝은 뭐든지 잘 먹고 잘 커요!’라는 특성. 기존에 단지 영약 흡수율을 높이는 효과만 있는 B급 특성이었는데, A급으로 격상되며 이러한 일이 가능해진 것이었다.
물론 이 사실을 기존에는 모르고 있었다. 그러니 지금까지 영약에 대한 생각만 하고 있었던 것이고.
하지만 이렇게 특성의 유용함을 알아냈으니, 앞으로는 더 잘 쓸 수 있을 것이었다.
사용하는 과정에서 약간의 애로 사항이 있긴 하지만…….
나는 잠시간, 떠오르는 시스템 메시지 때문에 나츠키와 던전 안에서 스킨십을 했던 일을 떠올렸다. 의외로 습격의 주체였던 여생도 같은 경우에는 대놓고 잠식되어서인가, 그런 과정 없이도 치료가 가능했지만…… 나츠키는 불가했다.
그랬기에 나는 그녀와 상당히 오래 껴안고 있어야만 했다. 그리고 그러다 보니 그냥 그 상태로 잠들어 버린 것이었고.
설마, 사람들이 올 때까지 그러고 있었던 것일까. 나는 순간 엄습해 오는 불안감에 등골이 서늘했다.
“안 되는 고애오!”
당장에 생도들 사이에 이상한 소문이 퍼지는 건 그렇다 치더라도,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한 명의 인물이 굉장히 상심해하는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만약 진짜로 그렇다면…… 지금쯤 ‘다나는 아가가 아니야.’ 같은 헛소리를 하면서 상심에 빠져 있지 않을까.
* * *
펜타곤 체험 던전에서 일어난 사고. 그것은 전대미문의 사고였다. 이전에도 펜타곤 생도를 노린 빌런들의 수작질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이번처럼 정말 성공 직전까지 간 경우는 거의 없었다.
심지어 습격자가, 조종당하고 있던 실제 펜타곤의 생도라는 점에서 그 충격은 배가되었다. 도대체 언제 어디서 세뇌당했는지 그 경로조차 알 수 없었으니까.
당장 언론에도 대서특필되고, 펜타곤의 교장과 관계자 일동이 모두 해명과 사과를 해야 했으니, 사건의 심각성을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비록 사망자가 발생하지는 않았지만, 그것은 온전히 생도들의 힘, 정확히는 내가 이루어 낸 것이었으니…… 당장 경각심을 가질 필요가 있었다.
“하와와왕.”
나는 어쨌든 그 공로 덕분에 아카데미 측으로부터 따로 감사패까지 받았다. 물론 정말 하등의 쓸모도 없는 물건이었다. 이딴 걸 왜 주는지 모르겠다. 차라리 돈을 주든가 하면 고맙게 받을 텐데.
그 감사패는 지금 내 방의 한쪽 구석탱이에 처박혀 있다. 아마 점점 먼지나 쌓여 갈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감사패 그거. 나츠키도 받았었지.
솔직히 말하자면 그녀가 한 일은 하나도 없다. 되레 나한테 도움이나 받았을 뿐이지. 하지만 내가 여생도와 싸울 때 그녀의 카타나를 썼기 때문인지, 나츠키에게도 공이 일부 돌아갔다. 물론 전혀 억울하지 않았다. 아니, 당장에라도 그녀가 나보다 더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으면 했다.
이 펜타곤 1위라는 자리가 알게 모르게 굉장히 불편한 것이었으니까.
뭐만 하면 그 타이틀 때문에 관심이 쏠리는데, 그게 명성도 벌기에는 참 좋아도…… 솔직히 내가 마음만 먹으면 당장에 명성도를 올릴 방도야 많았기에 의미 있는 것은 아니었다.
아마 조만간 티 나지 않게 순위를 내릴 법한 방책이 생긴다면, 그대로 행하지 않을까 싶었다.
“후아아아…….”
아무래도 그게 신하연 아니면 장선우일 것 같은데…… 그 둘이 아니고서야 펜타곤 1위 자리를 꿰찰 인물이 아마 없을 것이었다. 아니, 나츠키도 있구나. 최근에 나한테 약한 모습만 자꾸 보여 줘서 까먹고 있었다.
나츠키, 나츠키 하니 갑자기 또 떠오르는 기억이 있다. 이번 일에 대해서, 솔직히 나는 감사까지는 아니라도 뭔가 한 마디라도 할 줄 알았는데, 그녀는 이번 일 이후 쭉 나를 피해 다니고 있었다.
마주칠 때마다 막 째려보고, 이빨을 드러내며, 은색 털을 가진 새끼 늑대 내지는 강아지처럼 굴던 그 태도도(물론 이건 굉장히 주관적인 시선이었고, 대부분의 생도들은 그 모습에 기겁을 했다)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다.
이제 그냥 투명 인간 취급을 하는 건가, 하고 생각하기에는 가끔씩 내 얼굴을 바라보는 나츠키의 얼굴이 굉장히 묘했다. 뭐라고 해야 할까, 마치 첫사랑에 빠진 사춘기 소녀의 모습이라고 해야 하나. 진짜 더럽게 안 어울리는 그런…….
[사용자 인식이 완료되었습니다.]
“호에에, 깜빡했던 고시애오!”
잠시간, 나츠키에 대한 생각을 하던 나는 들려오는 소리를 듣고 정신을 차렸다. 그것은 내 앞에 있는 커다란 캡슐에서 나는 소리였는데, 이게 가상 현실 훈련 기기라고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게 실상 내가 보자면 그냥 가상 현실을 통해 만들어 낸 격투 게임기에 지나지 않았다.
실제로 진지하게 사용하는 이들도 있었으나, 대부분의 생도들은 이걸 그저 게임기로 사용했다. 지금, 나 또한 마찬가지였고.
새삼스럽지만 나는 엄청난 겜돌이다. 아니 단지 그 정도로 표현하는 데에서 그칠 만한 그런 허접한 것이 아니었다.
거의 극강 수준의 게임 폐인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애초에 이용자 수가 넘쳐났던 히어로 판타지에서, 최상위 랭커진에 도달할 수 있는 사람들은 나 같은 놈들밖에는 없었다.
그냥 게임 자체에 인생이 잡아먹힌 불쌍한 인간들.
지금의 내 상황으로 보자면, 앞선 문구가 더 이상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만약에 랭커인데 게임 폐인이 아니라면, 그건 두 가지 경우로 나뉘었다.
한 번에 수억씩 가볍게 질러 버리는 초헤비 과금 유저거나, 혹은 운영자가 만들어 낸 슈퍼 계정이거나. 물론 후자 같은 경우에는 웬만한 망겜이 아닌 이상에야 일어나지 않을 법한 일이겠지만…….
아무튼 나는 이곳에 오고 나서, 단 한 번도 게임을 하지 못했다. 그럴 만한 여유가 없기도 했지만, 근본적인 이유는 따로 있었다.
“시스템 씨 진짜 너무한 거에얌…….”
내가 옛날에 학교에 다닐 때, 컴퓨터실만 가면 항상 짜증을 냈던 그 청소년 보호 프로그램. 그와 같은 것이 내 폰과 컴에 깔려 있었기 때문이었다.
[븝미쟝은 아가야니까 아가야 보호 프로그램 쓰는 고애오!]
이런 시발, 말도 안 되는 개 같은 문구가, 게임이나 한 판 할려치면 계속 떠오르는 통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무슨 말도 검열해, 생각도 검열해. 게임 한 판 하겠다는 것까지 이렇게 검열을 해 대니 짜증이 슬슬 올라오던 무렵이었다.
그런 여러 가지 이유로 게임은 글렀다 싶었는데, 웬걸. 이 기기는 제재 대상이 아닌 모양이었다. 일단 명목상으로는 훈련용이라 그런 건가.
나는 그 사실을 알자마자 바로 이곳으로 달려올 수밖에 없었다. 게이머의 영혼이 그렇게 나를 끌어당기고 있었으니까.
아무튼 나는 지금 굉장히 오랜만에 ‘게임’을 즐기려 하는 것이었다. 지금은 모든 수업이 끝난 직후인 바로 4시 10분. 이럴 때마저 잠시 여유를 주지 않으면 진짜 과로사로 절명해 버릴지도 몰랐다.
안 그래도 요즘에 이것저것 건드리고 있는지라, 이 쓰레기 같은 체력이 바닥을 보이고 있으니까.
혹자는 그렇다면 게임도 마찬가지로 체력을 소모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말할 수도 있었다. 그에 나는 예전에 히어로 판타지에서 컨셉질을 하던 때 했던 채팅을 인용할 수 있었다.
[호에에에, 애기라면서 언제 쉬냐구여? 븝미쟝, 옵바야들이랑 게임을 하는 게 휴식이람니다…… 자러 가는 게 더 힘든 고시애오]
게임에 체력이 소모된다는 개념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 오로지 게임 속 캐릭터의 피로도가 자신들의 피로도인 부류. 나는 본래 그에 속한 사람이었다.
나는 피식 웃으면서 기기 속으로 들어갔고 눈앞에 수많은 초상화 아이콘들이 떠올랐다.
“호에에, 옵바 언냐야들이 가득인 고애오!”
나는 그것들을 하나씩 살펴봤다. 그 그림들은 지금까지 나온 히어로들의 기술들을 사용하는 일종의 가상 캐릭터로, 정말 격투 대전 게임처럼 그들을 셀렉하여, 내가 그들의 몸으로 싸우는 것이었다.
나는 대강 각각 캐릭터들의 설명을 읽어 봤다. 그리고 곧바로 한 캐릭터를 고를 수 있었다.
“이 언냐야 너무 예쁜 고애오!”
내가 고른 캐릭터는, 미리 알아본 결과 그리 평가가 좋지 않은 분류에 속해 있었던 캐릭터. 하지만 상당히 그 외형이 예뻤다. 나는 그것 하나만으로 이 캐릭터를 골랐다.
모든 게임에서 내가 주캐를 정하는 이유는 그 외형이 마음에 들어서였고, 이번에도 그것이 달라지지 않았다. 그만한 자신감도 있었고.
자, 손 좀 풀어 볼까. 내가 방금 들어왔을 때까지만 해도, 이 가상 현실 방 안에는 사람이 없었다. 그렇기에 곧바로 온라인 매칭을 시작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것을 누르기 이전에 무언가 알림 소리가 울려 멈췄다.
띠링!
[은빛갈기늑대님이 접속하셨습니다!]
“음?”
누군가 근처에서 접속했다는 메시지. 물론 근처라고 하면 무조건 펜타곤 안이었다. 누가 접속한 거지? 나는 기쁜 마음에 그 닉네임을 살폈으나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나츠키 언냐야?”
은빛갈기늑대, 이건 분명히 작중 나츠키의 닉네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