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화. 엘프 언냐야들!
“하하, 그게 말이지. 그때 내가 그렇게 격렬하게 응전하지 않았다면…….”
김찬호의 주위에 잔뜩 몰려 있는 생도들. 그는 지금 생도들에게 저번에 모의 던전 체험 실습 때 있었던 사고에 대해서 말하고 있었다.
이번 사고의 가장 큰 공훈은, 실상 나지만 나는 자의 반 타의 반 그 사실을 드러내지 않았다.
애초에 그녀의 몸에 있던 사기를 빨아들일 때, 내가 그녀의 몸에 남긴 마력의 흔적들. 상흔들까지 함께 빨아들였기 때문에, 사람들은 내가 무언가 했을 것이란 생각 자체를 하지 못했다.
그렇기에 그냥 김찬호와 나츠키가 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나츠키는 그때 사건에 대해서 입을 열지 않고 있고, 김찬호는 저렇게…… 떠벌리길 좋아하는 스타일인지라 그 전말이 밝혀질 일은 없을 것이었다.
“내가 어이, 정신 차려라, 하는 순간 딱!”
“호에에…….”
에휴.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김찬호는 계속해서 자신의 공로처럼 떠들어 대었다.
실상 보자면 그가 많은 부분에서 기여를 한 것은 맞았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그냥 땅바닥에 내팽개쳐지고, 끝내 기절해선 전투가 끝날 때까지 깨어나지 못했다.
물론 나는 그가 공로를 빼앗는다거나, 하는 일로 화가 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굉장히 다행이라고 여겼다.
이번 일을 꾸민 것은 아무래도 악사단. 저번에 인공 던전을 보고 흑사회의 짓이라고 예측했듯이, 이번에는 악사단 놈들이 즐겨 쓰는 그, 마나석에 사기를 부여한 마결정이라는 것을 사용한 흔적이 보였기에 알 수 있었다.
놈들에게 내 정체가 드러난다면…… 상당히 곤란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되면 놈들은 나를 표적으로 삼을 텐데, 실상 나는 기습, 암살 따위의 행위에 대한 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적어도 현역 히어로들 중에서 중위권 이상의 마법 실력을 갖추어야 어느 정도 대비란 게 되겠지.
“하와와, 저 옵바야 너무 걱정되는 고애오…….”
그러니까, 저기서 좋다고 껄껄거리면서 자기 무용담을 늘어놓는, 저 김찬호는 조만간 봉변을 당할 가능성이 높았다.
“하하하하하!”
그의 호탕한 웃음소리가 슬프게 들리는 것은. 아마 나뿐일 것이었다.
그래, 지금이라도 많이 웃어 둬라.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발길을 돌렸다.
* * *
스틸 하트. 나는 이따금 그곳에 들렀다. 당연하지만 그건 김수혁 때문이었다.
그는 지속적으로 내게 장비를 무상으로 제공해 주었다. 물론 그건 고마운 일이었다. 중간중간에 내게 부탁하는…… 그 장비 착용 사진에 대한 요구만 없었다면.
“하우우우…….”
그래도 요즘 들어서는 그냥 코스프레용 옷 정도구나, 싶은 느낌의 디자인의 장비들이라 상관은 없었지만…… 그게 익숙해져 간다는 것 자체가 좀 소름 끼쳤다.
아무튼, 그러는 와중에. 오늘은 김수혁이 조금 다른 이야기를 꺼내었다.
그의 부탁으로 온 스틸 하트 근처의 카페. 그는 최근에 돈을 좀 벌었다면서 내게 이것저것 뭔가를 잔뜩 시켜 줬다.
돈 번 거로 치면 내가 훨씬, 더 많이 벌었는데. 그래도 공짜로 사 준다니 그냥 얻어먹는 게 도리 아니겠는가.
“하와와와…… 케이크 씨가 입에서 녹는 거애오…… 녹아 버린 고시애오!”
내가 이 몸이 된 이후, 알아낸 것 하나.
분명 위장도 조그매서 뭘 먹든지 금방 배가 부르긴 하는데, 또한 얼마나 고칼로리 음식을 먹어 대던 몸에 아무런 변화가 오지 않았다.
예를 들어 살이 찐다거나 하는 일. 그런 게 전혀 없었다. 체중도 한 치의 오차 없이 그대로였다.
또한 입도 애들 입맛이 된 건지…… 그냥 무조건 단 게 좋았다. 최근에는 사탕, 초콜릿, 캐러멜, 젤리, 케이크 등등. 군것질거리로만 배를 채운 것 같았다. 이게 일반인이었으면 며칠 만에 당뇨 오기 딱 좋은 식단이었다.
그렇기에 지금 이곳, 카페 주인이 베이킹과 관련된 특성을 가지고 있는 곳에서 나오는 이 디저트들은 정신을 혼란스럽게 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김수혁이 그걸 알고 있는 건지 뭔지, 아무튼 나는 그렇게 한동안 그것들을 집어 먹는 것에 열중했다.
“하와와, 배부른 고시애오.”
물론, 애초에 양 자체가 작다 보니. 조각 케이크 2개에, 쿠키 하나 집어 먹었는데 배가 터질 것 같은 감각이 들었다. 나는 아쉬운 마음에 아직 많이 남아 있는 디저트들을 바라봤고, 김수혁은 손도 안 댄 그것들을 바라보며 내게 물었다.
“포장해 달라고 할까요?”
“호에에, 당연한 고애오!”
집에 가서 혼자 먹어야지.
김수혁은 고개를 끄덕이고 나서, 그것들을 포장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리고, 그 다음이 되어서야 본론을 꺼냈다.
“저, 다나 씨? 그…… 이번에 만들어 드리기로 한 지팡이 말입니다.”
“호에에, 혹시 벌써 완성된 건가얌?”
김수혁은, 이번에 내 요청에 따라 지팡이 하나를 만들어 주기로 했다.
지금 내 가장 큰 단점은 바로 신체 능력. 일전에 그 신체 능력이 더 이상 향상될 수 없음을 깨닫고는, 나는 좌절했다.
방어력 같은 부분이야, 상시 마나 실드나 혹은 아티펙트를 둘둘 두르고 다닌다면 어느 정도 보완이 되겠지만, 기동력이라는 측면에서…… 나는 그냥 답이 없었다.
이전에 실습 때는 업혀 다닌다거나 하는 식으로 그 단점을 보완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시발, 뭔 던전이고 필드고 들어갈 때마다 사람들 등에 업혀 다닐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그건 내 인간으로서의 존엄성 문제도 달려 있는 것이었다.
헤이스트 따위의 마법을 걸어 봤자, 민첩이 5에서 6으로 증가한 수준의 속도밖에는 내지 못하는 절망적인 육체!
결국에는 나는 도구의 힘을 빌리는 수밖에는 없었다.
나까지는 아니어도 마법사들은 다들 신체 능력이 떨어진다. 그렇기에 자신들의 신체 능력을 보완하기 위해 지팡이나 빗자루 따위를 타고 다니고는 한다.
그런 날아다니는 지팡이나 빗자루는 상당히 고가였는데,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기본적으로 ‘연금’과 ‘제련’에 관련된 특성 2개 이상이 있어야만 제작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재료도 상당히 고가에 희귀한 것들이었으니…… 나는 김수혁이 그걸 제작해 준다고 할 때, 예의 그 사진 요청도 흔쾌히 받아들였다.
심지어 김수혁. 대장장이 주제에 제련과 연금은 물론이고, 부여나 재봉과 같은 수많은 제작 특성을 죄다 보유한 희대의 먼치킨 장인. 그가 만들어 주는 지팡이는 기본 수억은 물론이고 수십억은 될 것이었다.
거 사진 좀 찍어 주고 말지, 그러면 돈이 얼마나 굳는데.
점점 마인드가 썩어 가는 느낌이기는 했지만, 뭐 어쩌겠는가. 애초에 이 세계에 떨어진 순간부터 정상적인 마인드를 가진 사람이 되리란 기대는 저 버린 지 오래였다!
“아니, 그게 아니라 말입니다…….”
하지만 그런 내 행복한 상상과는 달리, 일이 조금 꼬여 버린 모양이었다. 그는 대략 난감한 표정으로 뒷머리를 긁적거렸다.
“그…… 사실은, 문제가 조금 있습니다.”
“그게 먼데여?”
“최근에 지팡이에 쓸 만한 목재들이 물량이 풀리지가 않아서 말입니다. 양이 많지는 않더라도 계속 있었는데, 하필 지금 딱 이 시기에 없어 가지고…… 작업을 착수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호에에?”
나는, 그의 말에 의문을 표했다. 당장 내가 약초를 주기적으로 판매하고 있는 경매장만 보더라도 그런 관련 목재들이 계속해서 올라오곤 하는데.
김수혁은 그런 내 의문을 눈치챈 듯, 몇 마디 말을 덧붙였다.
“제가 만들려고 마음먹은 지팡이는 웬만한 품질로는 제작할 수 없어서 말입니다. 적어도 벼락 맞은 드라이어드라든가, 위그드라실의 가지 정도는 되어야…….”
“호에……?”
나는 김수혁의 입에서 나온 재료들을 듣고는, 정신이 멍해졌다. 아니 시발 이 양반은 아직 게임 기준 스토리 초반인데, 도대체 얼마나 밸런스를 붕괴시키려는 거야.
이것들은 스토리 기준으로는 종결템에 들어가는 재료, 유저들과의 멀티플레이에 가서도 중렙 때는 최상위 아이템이며, 고렙이 되더라도 양민 기준에서는 없어서 못 쓰는 아이템에나 들어가는 재료였다.
“하지만, 아무래도 그런 것들은 길드들에서 독점하고 있거나 물량이 아예 없으니, 한 단계 눈을 낮추기는 했는데…… 그런 재료들마저 시장에 나와 있지가 않더군요.”
“호에에, 그런가여…….”
나는 그제야 김수혁의 고민을 눈치챌 수가 있었다. 그러니까, 결국에 그 목재가 없어서 문제라는 거구만.
목재…… 목재라. 나는 잠시간 머리를 굴렸다.
그리고, 기억 속에서 한 가지 방책을 떠올릴 수 있었다.
“걱정 마라여! 옵바야, 제가 가져올게여!”
“네? 어……어떻게……?”
“사 오면 되는 고애오!”
김수혁은 황당하다는 듯이 입을 벌렸다. 그러고는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 안절부절못하더니 입을 열었다.
“하지만, 그 다나 씨. 앞서 제가 말했듯이 품질이 떨어지는 목재는 안 됩니다. 특히 지금 시장에 많이 풀린 주강목이라든가, 그런 쓰레기 같은 것들로 만든 걸 다나 씨한테 드릴 수는 없어요. 차라리 조금 기다리시는 게…….”
“걱정 마라여, 옵바야.”
나는 가슴팍을 탕탕 두드렸다. 물론, 실제로는 탕탕보다는 톡톡 내지는 툭툭 같은 의성어가 어울리는 행위였다.
“븝미쟝만 믿는 고애오!”
내 그 선언과 함께, 카페 내의 시선이 모두 내게 몰렸다.
아무래도 내 목소리에 이쪽을 바라봤다가, 나를 알아본 모양이었다.
“뭐야?”
“어, 쟤…… 그 펜타곤 거기, 생도 아니야?”
“나 그 프로그램에서 봤어! 와, 실제로도 똑같네.”
순간, 굉장히 수치스러워졌으나 떠오르는 알림.
명성도가 증가했습니다!
“하와와와…….”
그 덕분에, 그나마 자괴감이 조금 덜어졌다.
* * *
히어로 판타지 세계관에는 인간이 아닌 다른 종족들도 있었다. 물론 그 수가 많지는 않았지만, 그들은 나름대로 세계관 내에서 중요한 역할들을 맡고 있었다.
그 중요한 역할이라는 게, 히어로들에게 이로운 방향인지 아니면 빌런들에게 이로운 방향인지는 생각해 봐야 하는 것이었지만…….
그 이종족들 중에는 흔히 익숙하게 알려진 엘프나 드워프 같은 종족은 물론이오, 여러 수인 종족들과 심지어는 귀신들까지 있었다.
그들은 각각 이종족들을 허용하는 나라에서, 자신들의 작은 마을 같은 것들을 꾸리고 살았는데, 그것은 한국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나는, 그 이종족 마을 중에 하나인 엘프들이 사는 숲에 도착했다.
그 도처에 필드가 깔려 있는데다, 기본적으로 그들이 비교적 타 종족에 대해 배타적인 이들이다보니 사람들은 이곳에 오지 않았다.
그 정신 빠진 인간들 몇몇이, 판타지에서 본 것처럼 엘프들을 잡아다가 노예처럼 기르려는 시도를 했고, 그것이 실제로 성공하지 않았다면 이렇게까지 되지는 않았을 텐데.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하와와, 나쁜 사람들이 너모 마는 고애오…….”
물론 나는 그딴 계획 따위는 없었고, 또한 엘프들에게 호의를 살 만한 비책까지 미리 알고 있었으니, 이곳에 출입하는 것에 대해서 그리 부담감을 가지지 않았다.
그렇게, 슬슬 마을 입구가 보이기 시작할 때 즈음이었다.
나는 드디어 도달했다는 기쁨에 주위에 대한 경계를 하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급작스러운 습격이 있었다.
“호에엥?”
갑자기 어디선가 튀어나온 녹색 머리칼의 엘프. 나는 당황하며 순간 대응하려 했으나, 이 쓰레기 같은 몸으로는 불가능했다.
그녀는 내게 달려들더니, 내 몸을 으스러지듯 꽉 껴안았다.
“오랜만이야!”
“호에……?”
나는 버둥거리며, 그녀의 품 안을 탈출하려다가 의문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도대체, 어디서 봤는데 오랜만이래.
“아리엘, 바깥 구경은 재밌었어?”
아리엘? 시발, 그건 누군데.
나는 속으로 욕을 내뱉으며 몸을 버둥거리다가, 하나의 가능성을 추론할 수 있었다.
나는 지금 후드로 얼굴을 제외한 머리 전부를 가린 상태였는데, 혹시 그 때문에…… 그녀가 나를 자기가 아는 어떤 엘프로 오인한 게 아닐까 싶었던 것이다.
“호에에, 언냐야. 저는 으응…… 풀어…… 흐읏…….”
하지만, 나는 해명할 틈도 없이 한동안 그렇게 붙잡혀 있어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