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화.
그 격한 스킨십을 해 대던 엘프는, 한참 뒤에서야 내가 그녀가 아는 사람, 아니 엘프와는 다른 이라는 것을 눈치챈 모양이었다.
“그…… 아, 아니었구나.”
머쓱하다는 듯이, 나를 놓아주고는 손을 꼼지락거리고 있는 그녀에게, 나는 쐐기를 박 듯 후드를 넘겼다.
당연하지만 내 귀는 엘프들과 달리, 인간형이었고 그제야 그녀는 일말의 의문도 모두 사라진 모양이었다.
물론 그게 상황이 더 나아진 것은 아니었다. 내가 인간이라는 걸 안 뒤, 그녀는 경계하는 듯한 태도를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나마 내가 보기에 상당히 만만해 보이는 외형인지라, 그 정도가 심하진 않은 것 같았지만…….
“그런데…… 인간이 왜 여기에?”
그녀는, 아까와는 달리 조금의 거리를 두며, 내게 물었다. 그 모습이 마치 길고양이 같아서 피식, 웃음이 나왔다.
아무래도 그게 마음에 들지 않는 듯, 인상을 찌푸리는 엘프.
더 이상 시간을 끌어 봤자 좋을 게 없다 싶어, 나는 그녀에게 곧바로 본론을 꺼냈다.
“하와와, 븝미쟝. 엘프 옵바 언냐야들한테 중요한 거 들고 온 고애오…….”
“우리들한테 중요한 거?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야?”
“요새 세계수 마망이 아야 하지 않나여? 븝미쟝 알고 있는 거에얌!”
내 말에, 그녀의 얼굴이 순간 흙빛으로 변한다. 애초에 이 이야기는 엘프들 외에 다른 이들에게 새어 나가서는 안 되는 이야기였으니까.
엘프들에게 있어 ‘어머니’라고 칭해지는 세계수, 위그드라실.
그것이 존재함으로 인해 엘프들은 본래 그들이 살고 있던 세계에서도, 또한 이주한 이곳 지구에서도 안온하게 지낼 수 있는 것이었다.
무한에 가까운 마나와 생명력을 지니고 있는 위그드라실이 옹위하는 세력 내에서는, 웬만한 세력이 아니고서야 엘프들을 건드리지조차 못한다.
그것이 히어로 판타지의 설정.
당연하지만, 게임사에서 이러한 설정을 만들어 놓고 스토리에 써먹지 않을 이유가 전혀 없었다.
어느 날부터 급격히 저하되어 가는 위그드라실의 생명력. 그 때문에 엘프들이 골머리를 썩게 되고, 그 원인을 알아낸 ‘플레이어 일행’들이 이를 해결해 주기 위해 여러 가지 사건들을 벌인다…….
그것이 본래 메인 스토리에 있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나는 지금 그 메인 스토리를 약간 비틀어 버리려고 한다.
어차피 엘프들은 죄다 선악 구분을 할 것 없이, 무조건 선이라고 보면 되었다.
악한 마음을 먹거나, 그를 실행에 옮긴다면 곧바로 자신들의 어머니라고 불리는 그 위그드라실. 세계수에 의해서 저주가 걸려 며칠 내로 죽어 버리니까.
불쌍하다고 해야 할까, 그럼에도 아직 살아가는 그들이 대단하다고 해야 할까.
일반적인 사고방식으로는 ‘평범한 엘프’들의 도덕관념에 절반도 미치지 못했다.
……그러니까 나 같은 놈들이 엘프로 태어났다면, 이미 죽어 나자빠졌겠지.
“그걸…… 어떻…… 아니, 그게 아니라.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당장, 지금의 상황만 봐도. 눈앞의 엘프는 절대로 거짓말을 하지 못했다. 그냥 생리적으로 그들은 그런 행위에 대해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다. 비록 위그드라실에게 저주를 받지 않는 선에서라도. 이런 부류의 사람들만 있다면 진짜 세상에 법이 없어도 되지 않을까.
“언냐야, 안내해 주는 고애오!”
“아니, 잠깐만. 안내라니. 애초에 난.”
되지도 않는 근력으로, 나는 눈앞의 엘프를 잡아당겼다. 당연히 완력 면에서 비교가 되지 않을 터였지만, 그녀는 순순히 이쪽으로 끌려왔다.
엘프들이 대하기 쉬운 점이 바로 이것이었다. 일단 무언가 부탁이나 권유를 하면 거절할 줄을 몰랐다. 그 때문에 그들이 처음 지구로 이주했을 때 당면한 문제가 바로 이것이었다.
인간들의 사기 및 강도, 여러 가지 범죄 행각들! 그에 수많은 엘프들이 피해를 봤던 것이었다.
이렇게 보자면, 진짜 세상에서 제일 악한 동물은 인간이 아닐까 싶었다.
물론, 내가 행하려는 것은 엘프들에게도 좋은 일이었기에, 그와 동일 선상에서 볼 수는 없는 것이었다.
“아, 안 되는데. 진짜. 이렇게…… 나 장로님한테 혼나는데…….”
처음에 나를 막 껴안고, 부비던 그 기세는 어디 가고.
초록 머리의 이 가련한 엘프는, 눈물을 글썽거리며 나를 안내할 뿐이었다.
* * *
이 초록 머리 엘프의 이름은 세리아라고 했다. 액면은 대략 20대 초반 수준으로 보이지만, 실제 나이는 서른 가까이가 되었다고 한다.
나는 그 사실에 놀랐다. 그녀의 나이가 너무 많아서가 아니라, 되레 너무 적어서. 실상 웬만한 엘프들은 30살 정도면 십 대 중반에서 후반 정도로 보인다는 설정을 익히 봐 와서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세리아는 말하자면…… 조금 노안인 축이었다. 내가 그 사실을 은연중에 말하자, 그녀는 그게 콤플렉스인지 과하게 부끄러워했다.
“나, 나도 알아! 나이 들어…… 보인다는 거…….”
부루퉁하게 툴툴거리는 세리아를 보며, 새삼 엘프라는 종족에 대한 호감이 솟아났다. 어떻게 이게 나이가 서른 살인 연상의 리액션이란 말인가.
나는 일부러 그 반응들이 재밌어서, 중간중간 계속 골려 주며 마을로 들어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의 안내에 따라 마을 안에 도착할 수 있었다. 입구에 새겨진 마법진 같은 것들이 있었는데, 척 보기에도 상당히 수준이 높아서, 몇 년 뒤쯤이 아니라면 저걸 어떻게 해제해야 할지 감도 잡히지 않을 것 같았다.
뭐, 애초에 오늘 이후로는 억지로 마을에 들어갈 일도 없겠지만.
되레 귀빈 대접을 받으면 받을 것이었다.
“호에에엥.”
나는 다른 엘프들의 시선을 피하기 위해 후드를 썼다. 어쨌든 귀만 보이지 않으면, 엘프로 착각할 만한 외모라는 것은 세리아가 증명했으니까.
그녀는 나를 자기 친구 중 하나로 착각했다고 한다. 적발에 녹안, 적당히 작은 키까지 딱 나랑 똑같이 생겼다나.
실제로 다른 엘프들은 내게 굳이 관심을 두지 않았다. 원래는 길거리를 지나다니면, 어디서건 시선이 자꾸 따라와서 부담스러웠는데…… 지금은 아니었다.
진짜로, 거짓말이 아니라 무슨 탑급 외모의 서양 영화배우들이 마을 천지에 걸어 다니고 있었다. 내가 이곳에서는 그리 특별한 외모가 아닌 것이었다.
이거, 진짜 오랜만에 느껴 보는 감각인데. 애초에 내가 살던 현대에서, 실제 내 모습은 상당히 평범하게 생겼었다. 이따금 봐 줄 만하다, 내지는 잘생겼다는 칭찬을 듣곤 했으나 그건 어디까지나 빈말 수준이었고.
아무튼 그때, 내 현대 시절의 감각을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그 자유로움은, 썩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그렇게 오랜만에 당당하게 길거리를 걷던 나와, 세리아는 한 건물에 도착할 수 있었다.
아니, 이걸 건물이라고 해야 할까. 보통 건물이라면 자재를 이용하여 건축한 것을 말하는데, 이건…… 그냥 나무였다.
나무 그 자체가 자신이 건물이 되고 싶다고 자처한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솟아오른 한 그루의 나무가 마치 집의 형태를 띠고 있었다.
세리아는 그 나무집에 다가가, 어딘가를 통통 하고 두드렸다.
저기가 뭐, 대문인가? 손잡이고 뭐고 달려 있는 게 없으니, 어디가 문인지 알 수가 없었다.
“장로님! 장로님!”
아무래도, 여기가 엘프 장로의 집 같았다.
세리아는 꽤나 한참 동안이나 문을 두드리고, 장로를 불렀으나 대답이 돌아오지 않았다.
혹시, 아직 자고 있는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이런 대낮까지 자고 있나? 엘프가 야행성도 아니고.
나는 그것이 의아했으나, 밖으로 나온 장로의 얼굴은 내 상상이 맞았다는 것을 증명해 주었다.
“어음…… 음…… 무슨 일이니?”
눈을 비비적대며 중얼거리는 장로. 그는 대략 40대 중반 정도로 보이는 남성이었는데, 엘프 기준을 생각하자면…… 대충 80살~90살 정도 먹지 않았을까 싶었다.
대부분 장로들이 100살 전후인 것을 생각하면, 상당히 젊은 것이었다.
작중 플레이어 일행과 가장 많이 만난 장로 또한 100살 남짓이라고 했나.
장로는 비몽사몽한 얼굴로 세리아에게 자초지종을 물었고, 세리아는 그의 귀에다 대고 무언가 속닥속닥거리기 시작했다.
물론 그 소리가 대략적으로 내 귀에 들리기는 했다. 하지만 여느 때처럼 선명하게 들을 수는 없었다.
애초에 엘프들도 청력이 좋은 만큼, 귓속말을 하는 데에 그리 크게 말할 필요가 없었으니까. 물론 듣지 않아도 되는 이야기기는 했다. 세리아가 전달하는 내용은 지금까지 나를 만난 경위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내가 그녀에게 말한 이야기의 재전달일 테니.
“흐으음…… 저 아이가? 그나저나 인간이라고?”
“네, 저도 처음에 보고 동족인 줄 알았는데, 인간이더라고요.”
“일단, 저 아이의 이야기를 들어 보는 게 좋겠구나. 안으로 안내해 주련?”
장로는, 그렇게 말하고 나서 본인의 나무집으로 다시 들어갔다. 세리아는 내게 다가오더니, 앞서처럼 나를 이끌었다.
“호에?”
하지만, 무의식적으로 흥분을 했는지, 그녀가 나를 잡아끄는 속도가 너무 빨랐다. 물론 그게 엄청나게 빠른 속도도 아니었고, 원래 리드할 때 그 정도 속도로 움직이는 게 맞기는 했지만, 나는 그 급작스러움에 혼자 당황해서 발을 헛디뎠다.
이내, 지면에 그대로 얼굴을 박으려던 순간.
우웅.
나무집 안에서 마력이 사출되더니, 나는 공중에 낮게 뜰 수 있었다.
이건 분명 플라이 이전에 배우는 마법인 레비테이트. 기본적으로 내가, 이번 일을 하게 된 원흉인 그놈의 지팡이와 빗자루에 필수적으로 각인되는 마법이었다.
그것은 분명히 만만한 마법은 아니어서, 이렇게 무영창으로 펼칠 수 있는 게 아닌데…… 나는 새삼 이들이 나보다 훨씬 뛰어난 강자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물론, 그래 봤자 엘프라 별로 긴장은 안 되었지만…….
“고마운 고애오 옵바야!”
프훕.
내 말에 나무집 안에서 누군가 웃음을 터뜨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역시 엘프고 깐프고, 이 말투는 상당히 신선한 모양이었다.
* * *
세계수, 위그드라실이 생명력이 떨어지는 이유. 그것은 간단했다.
마을에 들어오면서부터 보이기 시작한 거대한 나무, 그것은 위그드라실이었으나, 위그드라실이 아니기도 했다.
정확히 그녀의 어머니 세계수, 위그드라실은 엘프들의 고향에 있는 것이었다. 엄연히 이곳의 나무는 위그드라실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과연 그 정체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위그드라실의 가지였다. 수많은 가지들 중, 특별히 굵은 가지 하나. 그것을 지구에 옮겨 심은 것이 바로 이곳의 세계수였다.
하지만 그 비교적 작은 가지조차, 겨우 지구의 적은 생명력과 마나로는 삶을 부지하기가 점점 어려워진 것이었다.
그렇기에 최근 들어 점점 시들어 가기 시작한 것이었고.
“그렇지마는, 짜쟌! 븝미쟝이 치료제를 들고 왔스니까! 걱정 마라여!”
앞선 이야기들, 분명 엘프들 이외에는 아는 사람이 없을 그 이야기를, 내가 알고 있다는 것에 놀란 표정을 짓던 장로는, 내가 가져온 한 개의 병을 꺼내자 아예 입을 쩍 벌렸다.
“치료제…… 치료제라면…… 이게 그…….”
“애기만드라고라쟝이애오!”
만드라고라. 사람의 형태를 닮았다고 전해지는 식물.
엘프들의 고향에서는 흔히 발견할 수 있는 식물이었으나, 지구에서는 사실상 멸종되어 채집하는 것 자체가 거의 불가능한 그것.
나는 그 만드라고라 두 뿌리를, 지금 병에 담아 왔다.
응애애! 응애애!
병 속에서, 만드라고라의 울음소리가 울려 퍼지고, 장로의 표정이 경탄으로 바뀌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