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화.
빨리이.
“아, 아랏서여…….”
나는 정령들의 인도에 따라, 마을 바깥의 숲, 그러니까 필드가 있는 방향으로 따라갔다.
근데, 얘네 뭐 진짜 알고 이러는 건가?
하기야 퀘스트에도 정령을 도우라는 문구가 있었으니 얘네를 믿으면 되겠지. 그 생각은 과연 틀리지 않은 것이었다.
그렇게 녀석들을 따라간 결과, 세리아의 실루엣이 보이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저거는…… 호에에엥.”
그리고, 좀 더 깊이 들어가 모든 광경이 눈에 들어왔을 때, 처음의 그 비명 소리의 정체가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왜 이렇게 정령들이 가자고 호들갑을 떨어 대었는지 알 수 있었다.
세리아는 지금 필드에서 빠져나온 한 몬스터와 싸우는 중이었다. 그것은 거대한 몸집에 예의 흉포한 인상을 지니고 있는 오우거였다.
오우거, 지금 저 몸 색으로 봐서는 대략 12등급 정도 되어 보이는 녀석. 세리아는 혼자서 녀석과 비등비등하게 싸우고 있었다.
“흐아아아앙…….”
그리고 그 뒤에서, 울고 있는 꼬마 하나가 보였다. 반면에 오우거의 뒤로는, 아무래도 보지 않는 편이 좋을 것만 같은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아가야는 보면 안 대여!”
나는 순간적으로 눈을 감았다. 저걸 보면 또 정신을 잃을 게 분명했다. 보는 눈이야 세리아와 저 꼬마 엘프밖에 없지만, 최대한 내가 다른 모습으로 변할 수 있다는 사실은 숨기고 싶었다.
대신, 나는 세리아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녀는 엘프 중에서는 드물게도 육체 계열인지, 클로 비슷한 것을 착용한 채로 오우거와 주먹을 주고받고 있었다.
나는 그 뒤에서 마법을 영창하기 시작했다.
엘프가 나가 맞서 싸우고, 후방에서 인간이 보조한다라…… 참 보기 힘든 상황인데,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다.
“마나 씨…… 아앗, 잠깐만. 그러지 말아여!”
그렇게 마나 스폿을 띄우며, 마법을 영창하고 있던 나는, 순간 경악성을 뱉을 수밖에는 없었다.
내 마나 스폿에 정령이 뛰어든 것이었다. 마치 무슨, 밝게 빛나는 불 속에 스스로 몸을 던지는 불나방처럼 그대로 몸을 던졌다.
이게 대체 뭐 하는 짓이야?
그렇게 충격에 몸이 굳어 있기도 잠시, 나는 그에 따른 변화를 느끼고는 당황할 수밖엔 없었다.
“호에에에?”
내 마나 스폿이, 순간 더 강렬하게 빛을 발하고 있었다. 그것은 필시 마력 자체의 증가는 아니었다.
무식하게 마나만 때려 박는 것도, 어느 때를 기점으로는 그 양에 따라 위력이 늘어나지 않는 경우도 있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그렇기에 얼마 전부터 나는 일정량 이상의 마력은 마법 사용 시에 낭비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니까 지금 내 마법의 위력이 달라진 이유.
그 이유는 두 가지로 추측해 볼 수가 있을 것이다.
1. 내가 천재여서
2. 정령이, 마법의 위력을 증가시켜서.
당연하지만, 답은 2번이었다. 도대체 어떻게 정령이, 완전히 다른 성질인 마나 스폿. 그러니까 마법의 위력을 증가시킨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 덕에 굉장히 완성도 있는 마나 스폿이 만들어졌다.
나는 그것을 대강 조형해 내었다. 무슨 펜타곤에서처럼 여유롭게, 기술의 화려함을 따져 가며 마법을 사용할 만한 환경이 아니었으니까.
내가 만들어 낸 것은 단 한 자루의 거창. 하지만 그 기세가 만만치가 않은지라, 오우거조차 싸우다 말고 이쪽을 돌아본다.
“어디 가, 이 녀석아!”
하지만, 이미 늦은 상태였다. 세리아가 내 존재와, 내가 준비한 것을 눈치챘는지, 그때부터 계속 오우거를 물고 늘어졌다. 최대한 내가 마법을 맞추기 쉽도록.
당연하지만, 나는 그런 만들어진 기회조차 놓칠 정도로 둔하고, 멍청하지 않다. 완전히 비어 버린 등판을 향해 나는 거창을 날렸다.
콰드드득!
끔찍한 소리를 내며 파고드는 창. 그에 다시 한 번 빈틈이 생기고, 세리아는 곧바로 녀석에게 연격을 쑤셔 넣었다.
세리아의 주먹이 내뻗어진다. 이전에는 가벼운 몸으로 피하던 오우거가. 속절없이 명치 부근에 정타를 얻어맞는다. 그리고 이어지는 발차기. 그것 또한 정타. 아무래도 별로 좋지 않은, 뿌드득, 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아마도 오우거의 갈빗대가 나가는 소리가 아니었을까 싶다.
나는 이런 무예에는 관심이 없는지라, 정확히 그 움직임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굉장히 빠르고 간결하다는 사실 하나만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웬만한 주연 등장인물들의 수준에 뒤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도. 세리아 또한 상당한 강자인 것이다.
그렇게 일방적인 구타의 연속, 오우거는 그럼에도 죽지 않고 버티고 있었지만, 그 놀라운 생명력도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저렇게 맞는데 버티는 것만 해도 징했다.
쿵!
긴 시간이 지나지 않아, 결국 그 거구의 오우거가 끝끝내 쓰러졌을 때. 눈앞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엘프 언냐야들을 도와주는 고애오!를 클리어하셨습니다!
성공 보상이 주어집니다!
이번에 발생한 돌발 퀘스트. 그걸 무사히 성공했다는 것…… 인데.
그다지 기쁘지가 않은 것은 왜일까.
“괜찮은 거…… 맞겠져?”
원래라면 지금 이 상황에서 기뻐해야 하겠지만, 정령사라는 클래스에 대한 선입견이 그를 가로막았다. 물론 방금, 그 알 수 없는 기현상. 정령 한 마리가 자신의 몸을 바쳐, 마법의 위력을 높이던 광경에서 희망을 볼 수 있기는 했다.
그게 만약에 ‘상위 특성 3개’에 들어가 있는 거라면 참 좋을 텐데 말이지. 만약에 그렇지 않다면 이번에 내가 정령들과 계약을 맺게 되는 것은 상당히 큰 실수였다.
마법도 쓰고, 정령술도 쓴다고 그 두 가지 모두 100퍼센트의 힘을 내서 200퍼센트의 힘이 되는 것이 아니었으니까.
되레 각각 7할 8할 정도의 힘밖에는 발휘하지 못한다. 그래서 듀얼 클래스라는 게 히어로 판타지 내에서도 상당히 드물었다.
“하와와와…….”
한숨이 절로 나왔다. 강제 계약을 당한다고 생각하니, 무슨 진짜로 노예 계약이라도 당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꺄르르륵.
귓가에 앵앵거리며 날아다니는 정령들의 소리가 괜스레 귀에 거슬렸다. 나는 녀석들을 살펴봤다. 그러다가, 아까 내 마나 스폿에 무슨 전기 파리채가 닿은 거처럼, 부르르 떨며 사라지던. 죽은 줄 알았던 정령이 멀쩡한 것을 볼 수 있었다. 비슷해 보여도 조금씩 특징이 달랐기에 알 수 있었다.
뭐야, 그럼 그거로 죽은 게 아니었던 건가. 나는 순간 마음이 조금 편안해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계속 마음 한구석이 불편하더라니, 이거 때문이었구나.
나는 녀석에게 애증의 감정을 듬뿍 담아, 손가락으로 어루만졌다.
흐히히!
이놈은, 다만 다른 놈들과 같이 낄낄거릴 뿐이었다.
* * *
정령들과의 계약. 나는 그것을 잠시 뒤로 미루기로 했다.
일단 지금 당장 수습이 먼저였으니까. 나는 먼저 세리아에게 내 상황에 대해서 설명을 간략하게 했다.
“세리아 언냐야, 저…… 옵바 언냐야들 도와주고시픈대여…… 븝미쟝 아가야라서 피 보면 안 되는 고애오…….”
“피를 보면 안 돼? 그건…… 그냥 클린 마법 쓰면 되잖아.”
“하와와…… 그랬던 고애오!”
세리아의 대답에, 순간 나는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것처럼 띵한 감각을 느꼈다.
시발, 그러고 보니까 나 클린도 배웠었지?
피를 보면 기절한다는 그 크나큰 패널티 때문에, 나는 굳이 청소 외에는 큰 의미가 없는 마법인 클린까지 따로 배웠다.
그런데 막상 지금 이렇게 사용할 때가 오니, 까먹어 버리는 것이…… 진짜 머리가 어떻게 된 것 같았다.
진짜로, 처음에는 장난삼아 말하던 그 븝갈통이란 게, 이쯤 되면 진짜가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진심으로 요즘 들어 심하게 멍청해지고 있는 기분이었다.
……에휴.
나는 한숨을 쉬면서도, 최대한 빨리 환자들이 있는 곳으로 쪼르르 달려갔다. 그리고 먼저 클린 마법을 사용했다.
“마나 씨, 깨끗하게 해 주는 고애오!”
나는 그 혈액이 낭자한 곳에 마법을 사용하며, 눈을 최대한 돌리지 않으려 노력했다. 사라지는 혈액들. 나는 그제야 상황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었다.
처음에 내가 이 광경이 참극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이들 대부분이 죽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 보니 되레 숨을 거둔 것으로 보이는 사람이 훨씬 적었다. 다행인 일이었다. 나는 그들에게 가볍게 힐을 난사했다.
“마나 씨, 치료해 주는 고애오! 이번엔 이 언냐야애오! 이 옵바야는 목을 치료해 주는 고시애오…….”
내가 그렇게, 힐을 난사해 대서 어느 정도 상태가 호전되면, 세리아가 마을까지 그들을 업고 달려가길 수차례 반복했다.
그렇게 분업이 이루어지며, 상당한 시간이 흘렀다. 슬슬 내 체력도 점점 바닥을 보이던 시점이었다. 마법을 사용하는 것도 체력을 소모시키는 일이었으니까.
그렇게, 상태가 호전될 여지가 있는 사람. 그러니까 숨을 거둔 사람을 제외한 모두가 마을로 옮겨졌을 때, 마을에서 나온 사람들이 도착했다.
“아…… 아아…… 켈리안! 어째서…….”
“나가지 말라고, 그렇게 말했는데…….”
그들은, 세리아가 소식을 알려 준 사람들. 그러니까, 지금 피해를 입은 이들의 가족들이었다. 제각기 자신들의 가족을 찾으며, 얼굴을 확인하고, 비탄 섞인 울음을 흘렸다.
“호에에에…….”
그 숙연해져 가는 분위기에 눈물이 절로 흘러나왔다. 이건, 이 몸 때문이었다.
물론 슬픈 광경이기는 했지만, 비교적 눈물샘이 말라 있는 나에 비해서 이 몸은 너무나 울보였다.
다행히 세리아가 내 꼬라지를 봤는지 나를 그 무리에서 건져 내 주었다. 그러고는 눈물을 슥슥 닦아 준 뒤, 다시금 마을로 안내했다.
“…….”
그녀는 상당히 심경이 복잡해 보였는데, 나는 대강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내가 겉모습만 애 같은 거지, 실제로는 세리아와 비슷한 나이였으니까. 그녀가 은연중에 내게 보이던 태도에 대해 눈치채지 못할 리가 없었다.
잠시간의 침묵, 그리고 그녀가 입을 열었다.
“고마워, 이걸……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애초에 여기 온 것부터가 우리들한테 좋은 일을 해 주겠다고 온 건데…… 이래저래 도움만 더 받네.”
그녀는 아무래도 상당히 심란한 모양이었다. 세리아는 내 페이스에 휘말린 데다, 또한 장로의 부탁까지 겹쳐 내게 최대한 친절히 대해 주려고 노력했지만…… 그건 분명히 그 엘프들의 천성에 따른 것이었다.
그녀는 아까까지만 해도 약간의 거리감을 내게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방금 전의 일로서 완전히 그 거리감이 사라진 듯한 느낌이었다.
온전히 자신들을 위해, 선의로 행동해 준다고 느낀 것일까. 실상 알고 보자면 죄다 떡고물을 바라고 한 행동들인데. 나는 조금 머쓱해졌다.
물론, 그 긍정적인 오해를 굳이 바로잡아 줄 양심은 내게 없었다. 다만 나는 이 잠시간의 어색한 순간을 온전히 느낄 뿐이었다.
그렇게, 세리아와 내가 마을에 도달했을 때. 그 어귀에서 누군가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나야 그냥, 엘프들이 누가 누군지 모르니 그런갑다, 하고 있었지만. 세리아는 크게 당황한 듯이 곧바로 고개를 숙였다.
“대, 대장로님.”
“아, 세리아. 과하게 예를 차릴 필요 없어. 그대를 만나러 온 게 아니니.”
아, 저 사람이 대장로인가. 엘프들의 마을, 이곳에서 각각 한 지역의 촌장과 같은 역할을 맡고 있는 장로들. 그 장로들 중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이가 대장로…… 였나.
실상 이 마을의 지도자와 같은 위치에 있는 인물이라는 것이다. 다만, 그것이 영 와닿지가 않는 게, 외모가 아무리 많이 쳐줘도 30대 중반이니…… 내가 원래 몸이었다면 형님 했을 얼굴이었다.
세리아의 예를, 가볍게 받아넘긴 그 대장로는, 내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 눈빛이 예사롭지가 않은지라, 나는 무의식적으로 움츠러들었다. 설마, 이제 와서 뭐 인간은 마을에 들어올 수 없다느니 같은 소리를 하는 건 아니겠지. 혹시나 그 만드라고라가 효과가 없었던 건가?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그러나, 이어진 그의 행동.
털썩.
“호에……?”
그는 내 앞에 한쪽 무릎을 꿇었다.
그러고는 고개를 숙인 채 쩌렁쩌렁하게, 외쳤다.
“사도님을 뵙습니다!”
아니, 아저씨. 왜 이러세요.
망연한 얼굴로 쳐다보는 세리아에게, 나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어 보였다.
“브, 븝미쟝…… 아모고또 몰라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