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화.
엘프들의 마을 중앙에는 달리 다른 건물 없이 위그드라실, 그 하나만이 우뚝 솟아 있다. 본래 위그드라실의 가지를 옮겨 심은 것이라고는 하나, 그 크기는 무시할 만한 것이 되지 못했다.
마을 주변을 감싸고 있는 역장 때문에, 외부에서는 그 모습을 볼 수 없으나, 내부에서 보자면 그 거대한 크기 하나만으로도 압도되어 버린다.
그건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호에에에.”
나는 지금 장로 몇몇과 함께 그 아래에 서 있었다. 그들은 모두 무언가 기대하는 듯한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왜 저러는 거야. 한숨이 절로 나왔다.
그 대장로, 그 엘프의 말에 의하면 내가 사도란다. 직관적으로 말하자면 세계수에 의해 간택받은 일종의 전령.
“호에에에, 하지만 븝미쟝은 아무것도 모르는 걸여…….”
나는 그에 반박했다. 정작 당사자가 그 사실을 모르는데, 자기네들끼리 내가 사도니 뭐니 하는 게 말이 되는가?
“본래 사도로 정해진 자는 본인이 사도인 줄 모릅니다. 세계수 어머니께서 말한 사도의 조건은, 고난과 역경을 뚫고 공물을 가져와 바칠 자, 엘프가 아닌 타 종족인 자, 위기에 빠진 엘프들을 구원할 자…… 모로 봐도 세 가지 모두 해당되시는군요.”
응, 그래. 말이 된단다.
그 조건들이 직관적이면서도, 나한테 들어맞는 것들이라 뭐라 반박을 할 수가 없었다.
물론 그 공물, 만드라고라 같은 경우에는 구하는 데에 고난과 역경 따위는 없긴 했지만…….
그거 병에 집어넣는다고, 낑낑거린 30여 분의 시간도 고난과 역경이라면…… 얼추 맞을 수도 있을 테지만.
아무튼 그런 연유로 나는 위그드라실 앞에 섰다. 하지만, 여기서 더 뭘 어쩌라는 것인지.
뒤에서 기대하는 눈빛을 마구 뿜어내고 있는 장로들이 굉장히 부담스럽다. 그렇게, 그저 이산화탄소나 내뿜으며 서 있으니, 주변에 정령들이 모여들었다.
“정령 아가야드른…… 나중에 놀아 줄게여…… 븝미쟝 심란해여…….”
와서 볼과 옷깃을 막 잡아당기고, 귀찮게 하는 통에 손을 슥슥 휘저었다.
얘네도 멍청한 건가, 그런 내 행동을 놀아 주는 것으로 착각하고 더 활개를 치기 시작했다.
그래, 그냥 씹고 뜯고 당기고 맛보고…… 알아서 하렴.
내가 그렇게 녀석들에게 몸을 맡기고 있자, 뒤에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오오, 어찌 엘프도 아닌 한낱 인간이 저리 친화력이…….”
“역시, 사도가 맞았군요…….”
아무래도, 이거 때문에 오해만 더 깊어지는 것 같은데.
본래 스토리상에 사도라는 존재는 아예 등장하지 않는다. 플레이어 캐릭터와 주연 일행들은 그저 단순히 퀘스트를 받았을 뿐이었다.
그렇기에 원작에서는 이러한 장면이 나오지 않는다. 나는, 기본적으로 원작에 나오는 장면을 바탕으로 행동을 해 왔다. 그렇기에 이런 상황에서는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뭐, 진짜 신들린 것처럼 연기라도 해 볼까. 그렇지 않으면 놓아주질 않을 것 같은데.
여러 가지 생각이 난립하는 가운데, 정령들은 여전히 장난을 치고 있었다.
에잇 에잇
개중에 그, 내 마법에 스며들었던 제일 까불대던 정령. 녀석이 나를 세계수 방향으로 마구 잡아끌었다.
그런데 얘네 힘이, 조그마해도 나름 강한 편이어서, 순간적으로 상체가 확 쏠렸다.
“호에에에?”
그 바람에 나는 발을 헛디디며, 위그드라실 쪽으로 엎어졌다. 마치 그게 큰절이라도 하는 것 같은 포즈여서, 뒤에 옹기종기 모여 있던 장로들이 오오! 하며 탄성을 지른다.
쪽팔려서, 급하게 일어나는데, 눈앞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세계수 위그드라실(지구)와 접촉했습니다! 초회에 한하여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건 무슨 소리야, 원래 이런 시스템이 있었나?
아니, 그리고 접촉이라니. 나는 애초에 닿은 적이 없는…….
“하와와.”
나는 오른손에 느껴지는 무언가 불룩한 것을 조물거렸다. 길게 뻗어 있는 무언가, 나는 그것이 이어져 있는 방향을 따라 시선을 옮겼다.
세계수의 뿌리, 그 끝부분.
아무래도 엎어지면서, 만지게 된 것 같다.
* * *
“언냐야…… 안 무거워여?”
“이 정도야. 뭘.”
세리아는 세계수 가지 몇 개가 들어 있는 자루를 들고 있었다.
엘프들 마을에서, 내가 그렇게 사도라고 난리를 치게 된 후, 그에 더해 몰랐던 히든 피스까지 발견하며 내가 사도라는 그들의 믿음은 확신이 되었다.
나는, 뭐 이제 아무려면 어떠냐는 생각이었다. 내가 사도가 아니다, 하는 사실은 딱히 영원히 들통날 것 같지도 않았다. 그들은 내게 예언이나 다른 축복 따위를 바라는 것이 아닌 것 같았으니까.
그렇다면 그 행세 좀 해 주지 뭐. 어차피 이제는 내가 그들에게 거의 받기만 하는 관계가 될 것이었으니.
“호에에, 븝미쟝은 사도인 고애오…….”
뭐, 다른 걸 다 제외하고서라도, 얻은 게 워낙 많다.
나는 당당히 떠올라 있는 메시지를 바라봤다.
(@색박스)위그드라실의 축복 - 모든 행위에 대해 긍정적인 효과가 나타납니다.
내가, 단지 그 세계수에 접촉하고 난 뒤에 받은 축복. 이건 원작에서도 나온 적이 없는 이른바 히든 피스다.
애초에 위그드라실에 손을 대는 것 자체가 본래는 불가능하다.
그 마을의 대장로조차 감히 불경하다며, 이를 거부할 정도였으니. 본래 위그드라실이 있던 그들의 고향. 그곳에 있던 성녀와, 위그드라실의 가지를 옮겨 심기 위해 운반하던 이들을 제외하고는 손을 댄 이가 없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축복의 내용 또한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상당히 애매모호한 내용, 하지만 나는 이를 기쁘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본래 히어로 판타지에서는 불성실한 텍스트가, 좋게 작용하는 경우가 많았으니까.
물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었으나 이건 무려 세계수가 내려 준 축복이다, 절대로 구릴 리가 없었다.
거기에 더해, 정령들과 계약까지 했고, 이렇게 세계수 가지까지 잔뜩 받아 왔다.
원래는 플레이어 일행들에게 가지 한 개씩을 줬던 것 같은데, 아직 세계수가 그리 상태가 나쁘지 않던 와중이라 그런가, 주기적으로 떨어뜨린다는 가지와 잎, 그리고 열매까지 나눠 주었다.
이건, 지금 당장에 사용하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것들이었다. 가지 같은 경우에는 이번에 한 개를 김수혁에게 맡기면 될 테고…… 열매랑 잎 같은 경우에는, 이에 걸맞은 다른 재료들이 준비되면 연금술의 집에 맡기면 될 것이었다.
어차피 영약 같은 경우에는 당장에 먹을 것도 널려 있다. 연금술의 집, 그 세 자매는 요즘 들어 밤낮없이 일하는지 생산량이 장난이 아니었다.
호에엥
“아가야, 따라 하지 말라고 했져?”
그때, 내 귓가에서 들려오는 소리. 그건 정령이 내는 소리였다.
나는 정령 계약에 대해 상당히 부정적인 입장이었지만, 이번에 얻은 세 개의 특성들. 그것을 보고 나니 안심이 되었다.
적어도 전력이 증강이 되었으면 되었지, 악영향은 없을 것이었다.
뜨르흐즈믈르그.
“…….”
다만, 불만인 것은 정령들이 너무 깐족거린다는 것. 당장에 역소환을 해 버리고 싶은데, 일단 특성 숙련도를 올려야 해서 꾹꾹 참고 있었다.
참아여.
예의 그, 처음부터 제일 까불까불거리던 정령의 도발에, 다른 정령 하나가 나를 진정시킨다.
내가 지금 계약한 정령 개체는 넷. 딱 4대 정령인 불, 땅, 물, 바람을 각각 하나씩 계약했다.
방금 전에 나를 달랜 녀석은 땅이었다. 그리고 지금도 엉덩이를 씰룩거리고 있는 저놈은 바람이었고.
그래, 나는 심호흡을 하며 분노를 참아 내었다. 저 조그만 놈한테 화를 내서 뭐 하겠나. 그렇게 땅의 정령을 쓰다듬어 주고 있는데.
“아야! 머 하는 고애오!”
바람이, 머리칼을 잡아당겼다. 분노가 치밀어 오른 나는 녀석을 잡아서, 머리를 꾹꾹 손가락으로 눌렀다.
살려저어.
녀석은 몸을 바둥거리면서 땅에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땅은 자업자득이라는 듯 그저 외면했다.
“……벌써 친해졌네.”
그렇게 녀석들과 옥신각신하며 걷고 있는 광경을, 가만히 지켜보던 세리아가 한마디를 내뱉었다.
그녀의 얼굴에는 무언가 부러움, 내지는 안타까움과 같은 것이 떠올라 있었다. 아까도 그러더니, 무언가 문제라도 있나.
“언냐야, 왜 그러는 고애오? 문제라도 있어여?”
“음, 아니야. 그냥…… 조금 부러워서. 나는 태생적으로 친화력이 없거든.”
“친화력이여?”
나는 그 친화력이라는 개념 자체를 딱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런 고로, 어리둥절한 표정을 띠어 보이자, 그녀는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걔, 나한테 가까이 가져다 볼래?”
“바람이여? 그래여! 언냐야한테 가.”
나는 바람의 정령을, 세리아에게 가까이 가져갔다. 그러자 녀석은 점점 표정이 험악해지더니, 바동거리며 소리쳤다.
시러어어!
그것이 거세지더니, 녀석은 내 손가락을 꾹꾹 깨물기까지 했다. 물론 모기가 무는 것보다 감각이 약했기에 무시했다. 힘은 나름 좋더니, 치악력은 약한 모양이다.
“바람 아가, 왜 그러는 고애오.”
나는 이런 녀석의 반응에 당황했다. 마을에서 나오기 전, 녀석은 다른 엘프들의 근처를 어지러이 날아다니고는 했다. 그런 걸로 봐서는 딱히 자기 계약자가 아니더라도 상관이 없는 것 같았는데…….
그러고 보니 그때도 세리아의 곁에는 가지 않았었나. 그녀는 머쓱하게 웃더니,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친화력이라는 게, 이런 거야. 정령들은 친화력이 없으면 그 주변에도 가려고 하지 않아. 얘처럼, 이렇게 반응하지.”
“호에에, 하지만…….”
내 기억상으로는, 그녀의 주변에도 정령이 한두 마리 정도 있었던 것 같은데. 그 의문을 말하자 세리아는 피식 웃었다.
“걔네는 특히 어린애들이라, 내 존재 자체도 인식을 못 하는 거야. 그냥…… 사물로 생각하는 거지. 친화력이 아예 없으니까.”
그거, 뭔가 되게 슬퍼지는데. 투명 인간 취급을 넘어서 사물 취급이라니.
내가 알기로는 엘프들은 대부분 정령술을 사용할 줄 안다, 적어도 게임에서는 그렇지 못한 엘프를 단 한 번도 언급하거나 등장시키지 않았다.
세리아는 물론 상당히 강자 축에 속했다. 객관적으로 중위권 히어로 정도, 혹은 그보다 살짝 못 미치는 수준이었다.
본래 60살은 넘어야 그 가진바 힘의 절정기가 된다는 엘프이니, 그녀는 나름 어린 나이에 굉장히 강한 힘을 보유한 것이었다.
그건 아마 마을 내에서도 상당히 드문 일일 텐데, 마을 내에서 그녀의 취급은, 뭔가 묘하게 좋지가 못했다.
그게 굉장히 이상했는데 지금 대강 그 이유가 그려진다.
그 인간이나, 엘프나 자기랑 다른 이들에 대한 따돌림은 항상 실재하는 모양이었다.
무언가 위로를 해 주고 싶은데, 뭐 말해 봤자 ‘힘내여 언냐야!’ 같은 소리만 나올 것 같아서 그냥 그만두었다.
그래서 그냥, 슬쩍 등만 토닥여 주며 길을 걸었다.
그렇게, 어느새 마을 외곽을 지나, 가장자리의 필드에 도달했을 무렵이었다.
드디어, 다시 원래 있을 곳으로 돌아가는구나 싶어 무언가 감회가 새로웠다. 단지 몇 시간 남짓 있었을 뿐인데 너무 많은 일이 일어나서.
“거기, 잠깐 멈춰 보지.”
“호에에?”
어디선가 들려오는 목소리. 이건 또 무슨 시츄인지, 황당한 마음에 그쪽을 바라보는데, 웬 이상한 놈들이 튀어나왔다.
무서어.
본능적으로, 정령들이 내 품속으로 파고들었다. 딱 봐도 악한 쪽에 속하는 인물들이었으니, 그를 느끼고 겁을 먹은 모양이었다.
“하와와.”
시발, 축복까지 받아도 이래?
진짜, 일이 참 더럽게 엮인다 싶었다.
“언냐……야?”
나는 세리아에게 전투 준비를 부탁하려 했으나, 그녀는 이미 서늘한 표정으로 칼을 뽑아 들고 있었다. 그러고는 중얼거렸다.
“감히 사도님께, 불경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