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화. 정령 아가야들이랑 시험을 쳐여!
앞서 말했지만, 엘프들 같은 경우에는 과거부터 지금까지 상당히 많이, 비밀리에 노예로서 팔린다거나 하는 일들이 자행되어 왔다.
그건 같은 인간으로서 굉장히 쪽팔리는 일이었다. 이게 본래 게임 설정이기는 했지만, 꼭 이쪽 세계가 아니라 원래 세계였어도 똑같았을 것 같다.
어쨌건 사람들 본성이라는 게, 달라지진 않으니까.
“야, 저거 저년부터 잡아. 엘프는 어릴수록 많이 약해.”
저들끼리 수군거리는 예의 그 사람들.
청력 덕분에 저놈들이 하는 소리가 다 들린다.
아무래도 세리아와 함께 있어서 그런지, 나 또한 엘프로 착각하는 모양이었다.
후드를 벗을까, 생각도 해 봤지만 뭐 그래 봤자 의미는 없겠지. 엘프 잡아다가 팔아 치우는 놈들이 사람이라고 안 팔까. 만약 그렇다 해도 세리아를 버릴 수도 없고.
결국 결론은 하나였다. 앞으로 나선 세리아, 그녀의 뒤에서 나는 마법을 준비했다.
호에에엥
그러자, 바람이 내 마나 스폿에 저번처럼 깃들었다. 내가 정령과 계약하게 되며 배운 상위 특성 중 하나인, 정령 융합.
현재 이것이 가능한 것은 어째서인지 바람이 혼자뿐이었다.
왜 하필 바람인지. 나는 그것에 의문과 함께 실망감을 가질 수밖에는 없었다. 풍속성 마법은…… 기본적으로 쓰레기다.
혹시 바람에 맞아 죽는 사람을 본 적이 있는가? 거센 바람에 날아가서, 어디에 잘못 부딪혀서 죽는 경우. 그런 경우는 이따금 일어나긴 하지만, 바람 그 자체로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광경은 상상하기 쉽지가 않다.
그것은 마법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았다. 풍속성 마법은 어디까지나 다른 마법의 보조 내지는 기상 마법 따위에 이용되는 것이었다.
물론 바람이가 깃들었다고 해서 무조건 풍속성 마법을 사용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타 속성 마법을 사용해도 강화 자체는 되지만…… 아쉬운 건 어쩔 수 없었다.
세리아는 벌써 놈들과 검을 맞대고 있었다. 저쪽은 아무래도 그리 실력이 좋지는 못한 모양이었다.
인원은 총 6명. 하지만 그 개개인이 하위 히어로 수준에 지나지 않았다. 솔직히 펜타곤에서 웬만한 생도를 데려와도 저 정도는 되지 않을까 싶을 정도.
하지만 숫자가 깡패였다. 분명 세리아가 훨씬 실력이 뛰어나기는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차츰 밀리기 시작한다.
카가가강!
한 번에, 녀석들을 모두 떨쳐 낸 세리아는 검을 다시금 휘둘렀다. 그에서 비검기(飛劍氣)가 뿜어져 나왔다.
저건, 특성인가?
현재 세리아의 수준에서 진짜 비검기를 쓴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아무래도 특성으로 흉내 낸 모조품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합당할 터였다.
역시나 그녀의 비검기는 눈앞의 모든 것을 자르고, 멸절하는. 내가 아는 비검기와는 상당히 차이가 있었다.
“크아악!”
물론, 그것만 해도 충분했다. 몇몇 놈들은 그대로 저만치 밀려났고, 간신히 버텨 낸 놈들도 몸을 후들거리고 있었다.
“허억…… 허억…….”
하지만, 세리아도 영 상태가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이제, 내가 나서야 할 차례였다.
“아가야, 혼내 주세여!”
나는 바람이가 깃들어 있는 마법을, 실행했다. 그것은 그저 일시적인 강풍. 하지만 위력은 상상 이상이었다.
부우웅!
코끼리도 날릴 법한 물리력을 가진, 강력한 바람.
그에 놈들은 하늘로 치솟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땅으로 처박혔다. 아무래도 다들 골절상 이상은 입은 듯, 고통에 신음하며 그저 땅바닥을 뒹굴 뿐이었다.
이제, 다 정리된 건가. 그렇게 생각하며, 한숨을 쉴 때였다.
“사도님!”
순간, 세리아가 내게 외쳤다. 분명 사도님이라고 불리는 게 싫어서, 그냥 이름으로 불러 달라고 했는데. 몰론 그딴 걸 신경 쓸 만큼 여유 있는 상황이 아니었으니 일어난 일이었다.
“호에에엑?”
엎어져 있던 한 놈이, 갑자기 벌떡 일어서더니 내게 칼을 쥐고 달려왔다. 순간 나는 기겁하며 방어 관련 스펠을 떠올리고, 실행하려 했지만 이미 늦은 상황이었다.
저렇게 날이 선 칼에 맞는다면, 그대로 절명할 수도 있을 터였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나는 그저 비명을 질렀다.
“하와와와와!”
물론 그로 인해 바뀌는 것은 없었고, 세리아가 도와주러 오기 이전에 녀석이 더 빨리 도달했다.
이대로 죽는 건가?
그렇게 생각하며, 허탈한 웃음을 짓고 있을 때.
푸욱!
“꺽……?”
예의 그 남자의 목이 왼쪽으로 휙, 꺾여 버리며 비현실적인 모습으로 쓰러졌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혹시 세리아가 한 일인가 싶어, 그녀를 쳐다봤지만 고개를 젓는다. 그녀 또한 모르는 일인 모양이었다.
“표창 씨?”
쓰러진 시체의 목덜미에는, 이상하게 생긴 문양의 표창이 꽂혀 있었다.
도대체 누가 표창을 쓴단 말인가. 암기를 이런 식으로 쓰는 사람이라면 해 봤자 J라든가…….
“하와와?”
순간 생각이 멎었다.
에이, 설마. J가 애초에 여기 있을 리가 없는데.
그렇게 애써 부정하던 나는, 표창에 새겨진 문양이 어디선가 본 것처럼 익숙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건, J가 속한 빌런 집단의 문양이었다.
“서, 설마여…… 그럴 리가…….”
혹시, 내가 몰랐던 것뿐이지 J는 지금까지 날 계속 쫓아다니고 있었던 게 아닐까? 그런 불안은, 반쯤 확신이 되었다.
띠링!
내 전화에 온 한 통의 메시지. 그건 J가 보낸 문자였다.
[띨빵아, 이렇게 재밌는 일 있으면 같이 불러 줘야지.]
“호에에에…….”
아무래도, 내 예상이 맞는 모양이었다.
* * *
“귀엽다니까.”
그 말과 동시에 은은한 미소가 새어 나왔다.
잠시간 나무 위에 올라서서, 세리아와 다나를 구경하던 J는, 그 자리에서 빠져나왔다.
그러고는 전속력으로 달려 도심에 도착했다. 원래는 암기도 수거해야 함이 옳은 것이었지만, 다나에게 주워 달라고 부탁을 한 뒤라 걱정이 없었다.
주변을 둘러보고, 혹시 모를 추격이 붙지 않은 것을 확인한 J는 전화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곧바로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엄마?”
그건 바로 빌런 집단, ‘연구소’의 수장. 속한 인원들 모두에게 엄마 혹은 어머니라는 호칭으로 불리는 여자였다.
“어, 일은 잘했어. 중간에 예상 못 한 일도 있었는데…… 어, 발각됐냐고? 그럴 리가 있나. 겨우 그딴 놈들 잡는데…….”
J는 평소와는 다르게 조금은 들뜬 모습으로, 전화를 했다. 그리고 얼마 뒤에, 그 전화가 끊기고 난 다음에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J는 근처의 벽에 기대어 머리를 식혔다.
“황당하네, 진짜. 세상 좁다.”
그러고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실소를 흘리며, 아까 전의 상황을 회상했다.
방금 전, 자신이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타 빌런 집단의 인원들을 죽이려 했을 때, 갑자기 나타난 이들.
엘프 정도까지는 분명 이해할 수 있었다. 애초에 의뢰를 받고 그 빌런들을 죽이려고 했을 때 들은 정보에 의하면, 놈들이 계속해서 엘프들의 마을 근처에 주둔하는 게, 엘프들을 유인해서 노예 시장에 팔아먹으려는 속셈이었으니.
하지만 엘프를 제외하고도 익숙한 얼굴 하나가 보였다. 그건 바로 다나 크리스틴.
그것을 본 J는 순간 당황했다. 왜, 쟤가 여기에 있는 거지.
물론 그렇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없었지만, 되레 일하기에는 훨씬 편했지만…… 지금 걱정이 되는 것은, 다나가 계속해서 자신에게 스토킹을 당했다고 착각하지는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물론, 종종 따라다니기는 했지만. 그것도 꽤나 자주, 빈번하게 그러긴 했지만…… 그래도 안 그럴 때도 있는데.
“아, 모르겠다. 그러면 어쩔 건데.”
띨빵이 주제에.
괜스레 불안감을 털어 내려, 입을 삐죽 내민 J는 조용히 폰으로 블랙마켓에 들어갔다.
그러고는 무언가를 마구 뒤졌다.
“이거면 되겠지. 아님 말고.”
이내, 손가락을 멈춘 J가 구매한 것은 다름 아닌 다나에게 줄 선물.
저번에도 선물을 받고 나서, 기분이 풀어지는 것을 봤으니, 이번에도 그러지 않을까. 생각한 결과였다.
“띨빵이가 진짜 이래저래 손이 많이 간다니까.”
나중에 우리 쪽에 들어오면, 후임 교육 명목으로 이자까지 쳐서 잔뜩 괴롭혀 줘야지.
J는 그렇게 생각하며, 양 볼에 발그레한 홍조를 띠었다.
벌써 귓전에 호에에엥, 하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 * *
“다나, 우리 1교시. 10분 남았는데?”
“호에에엥, 알갯서여!”
일리아의 목소리에 나는 곧장 뛰어나갔다. 어제 있었던 실습 때문에 피곤했던지, 그만 늦잠을 자고 말았다.
“바람 아가야, 말려 주는 고애오.”
시른뎅.
다급하게 나왔던지라, 머리도 제대로 안 말린 채 기숙사에서 뛰쳐나왔다.
그 때문에 자꾸 머리칼이 얼굴을 마구 치고, 물방울이 마구 튀는지라 바람이에게 잠시 부탁했다.
하지만 녀석은 엉덩이를 실룩거리면서 약을 올리기만 했다. 나는 한숨을 내쉬며 다른 정령을 불렀다.
“불 아가야…… 대신 해 주세여.”
그것은 비교적, 말수가 적은. 정확히 말하면 아직 말을 할 정도로 지능이 발전하지 않은 상태인 불의 정령이었다.
어째선지 바람이는 지금에 이르러선 어느 정도 대화가 가능할 정도까지 성장을 했는데, 다른 정령들은 영 발전 속도가 더뎠다.
물론 그렇다고 내 말을 못 알아듣는 건 아니어서, 불의 정령은 온기로 내 머리를 금세 말려 주었다. 나는 고맙다고,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고는 역소환시켰다.
시러어어.
물론 바람이도 마찬가지였고, 녀석은 떼를 쓰는 어린애처럼 칭얼거리더니, 역소환되었다.
“되게 귀엽다, 얘네.”
“……언냐야가 직접 겪어 보면 다를걸여.”
일리아는 그 모습을 보며 눈에 꿀이 뚝뚝 떨어졌다. 그녀는 내 정령들에 대해서 굉장한 호의를 가지고 있었다. 물론 이유는 단지 귀여워서.
만약에 일리아가 친화력이 어느 정도 있어서, 녀석들의 음성까지 들을 수 있었다면…… 적어도 바람이는 아웃이었겠지만 안타깝게도 그녀는 친화력이 거의 없었다.
그렇기에 일리아는, 내가 처음 정령을 보여 준 날 이후로 계속 시도 때도 없이 소환해 달라고 졸라 대었다. 처음에는 까불대고 날아다니던 바람이 좋다고 하더니, 요즘엔 신비한 매력이 있다면서 불에게 빠진 모양이었다.
그렇게 정령들의 귀여움에 대해서 장황한 연설을 늘어놓는 일리아와 함께, 나는 1교시를 듣기 위해 달렸다.
저번, 그러니까 엘프들의 마을에 다녀온 이후. 나는 최대한 조용히 펜타곤의 생활에만 집중했다.
김수혁이 말한, 지팡이가 나오기까지의 기간인 3달. 그동안 최대한 몸을 사리기로 한 것이었다.
하필이면 저번에 세리아와 함께 마주친 놈들도, 후일 밝혀진 바, 빌런 집단이었다.
물론 녀석들이 속한 집단 자체가 강한 곳이 아니고, 또한 하위 떨거지 조직원 몇 명 때문에 추적을 할 가능성도 낮았지만…… 조금만 기다리면 내 전력이 급격하게 상승할 텐데 마음이 급할 필요가 없었다.
그렇기에 펜타곤에서의 생활, 그리고 성적에만 집중하며 두 달이라는 시간이 금세 지나갔다. 이제는, 거의 완연한 여름이 되었다.
“후에, 후에엥…….”
물론 그건 내게 별로 좋은 일이 아니었다. 원래도 좋지 않은 체력이, 더위 때문에 더 부각되곤 했으니까.
나는 숨을 헐떡이며 1교시 수업 장소에 도착했다.
역시나 다른 생도들은 대부분 모여 있었고, 몇몇 이들은 내게 알은체를 했다.
“오늘도 늦네, 다나.”
“1위면 그래도 좀 성실해야 하는 거 아니야?”
킥킥대며 농담을 건네는 이들. 물론 장난스럽게 하는 말이지만, 순간 짜증이 치밀어 오른다. 이 시발 놈들이.
“호에에에, 그러게여어.”
물론, 내심은 절대로 나올 리가 없다.
언제쯤 시원하게 욕 한 번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렇게, 잠시간 생도들과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중간에 누군가가 내 옷깃을 슬쩍 잡아당기는 느낌이 났다.
“호엥?”
그쪽을 쳐다보자, J가 서 있었다.
그녀는 교관 눈치를 슬쩍 보더니, 내 손에 무언가를 쥐여 줬다. 그러고는 순간 곁에서 사라졌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그저 황당해할 수밖에는 없었다.
저번에, 엘프 마을 아래서 만난 이후로, J는 종종 이렇게 내게 이상한 선물 같은 것들을 주고 가곤 했다. 도대체 왜 그러는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
나는 그녀가 주고 간 선물을 확인했다.
남들과는 다른 미학적 관점을 가진 이가 만들었을 것이 분명한, 너덜너덜한 살점이 표현된 해골 문양의 목걸이였다.
선물도 완전 제 마음대로다.
원래, 선물은 상대방 마음에 드는 걸 주는 거 아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