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화.
“아니, 거기 말고 이 씨바…….”
“미, 미안.”
나츠키의 윽박 비슷한 신경질에, 팀원 하나가 고개를 숙인다. 나츠키는 그 모습을 보더니 한숨을 내쉬었다.
방금 그가 하고 있었던 것은 던전의 출입문을 여는 작업. 일종의 수수께끼 같은 것을 해결해서 그 답을 찾으면 문이 열리는데, 실수로 답을 알면서도 패턴을 잘못 입력해서 실패 메시지가 뜨고 만 것이었다.
“미안…… 미안…….”
하지만, 나는 딱히 그를 책망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저기 저렇게 나츠키가 두 눈 시퍼렇게 뜬 채 갈구고 있으면, 나라도 똑같을 것이었다.
무슨 계기인지는 몰라도, 나츠키는 원작보다 성장 속도가 더 빨랐다.
본래 그녀는 장선우와 신하연보다 한 수 아래라고 평가받는다. 실제로도 그러했고. 그것은 펜타곤 입학 초기부터 졸업, 그리고 그 이후까지 지속되는 것인데…….
“니 머리 안에는 뇌가 들어 있기는 하냐? 아니면 눈에 뭔 문제 있어? 눈꺼풀을, 이걸 그냥 내가 잡아당겨 줘? 아, 답답해. 꺼져 봐!”
“……잘못했어.”
더 더러워진 성질머리에 비례해, 그녀의 실력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었다. 지금은 아예 신하연, 장선우와 2, 3, 4위를 서로 쟁탈하고 있었다.
만약에 내가 아니었다면 1, 2, 3위를 엎치락뒤치락했겠지. 아니, 그랬으면 J가 1위를 했으려나?
아무튼 나츠키의 이런 변화는 상당히 고무적인 것이었다. 앞으로 일어날 일들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주연 인물들이 더욱 성장해야 했으니까.
본래 스토리에서는 주연 인물들이 엄청나게 강하지 않아도 상관없었다. 결국엔 플레이어 캐릭터. 게임 시스템과 마우스 클릭질로 가볍게 성장하는 녀석이 모든 일을 해결해 줬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나는 그 플레이어 캐릭터가 하는 일을 대체해 줄 수가 없다. 지팡이가 완성되면 일시적으로 스펙은 앞설 수 있겠지만…… 2년, 3년 뒤면 또 이야기가 달라진다.
“아, 씩빨!”
욕 한 번 찰지다.
나츠키는 머리를 쥐어뜯으면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괴성을 질렀다.
당연히 원인은 그 던전의 출입문이었다. 남자 생도가 하는 짓이 답답하다고 자기가 나섰는데, 그와 똑같이 패턴을 입력하는 데 실수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에 입력을 실수하면 새로 퀴즈를 풀어야만 했다. 그리고 그것은 시간의 지연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이번 실습은 던전 클리어에 걸리는 시간을 측정하는, 일종의 타임 어택과 같은 형식.
만약에 퀴즈를 다시 풀어야 한다면, 1등은 고사하고 중위권도 되기 힘들었다.
그에 팀원들, 나와 나츠키를 포함한 6명의 생도들의 표정이 굳어진다. 현 전교 1, 2위가 함께하는 팀이라서, 가볍게 1위를 할 줄 알았는데. 의외의 변수가 나타난 것이었다.
“그러지 말고, 나츠키 씨. 제가 한번 해 보는 건 어떨까요? 헤헤…….”
연갈색 단발머리에, 동글동글한 얼굴을 한 여자가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이름이…… 이채연이었나? 현재 중상위권에 랭크된 궁수로 기억한다.
“네가 해 보던가. 대신에 이번에 실패하면 다 네 책임이다?”
“히익, 그럼 안 할래요.”
“……지금 장난치냐?”
눈을 동그랗게 뜨며, 살금살금 뒷걸음질을 치는 이채연. 나츠키는 눈을 홉뜨며 그녀를 노려봤다. 쟤가 저러니까, 진짜 뭔 미친년 같다.
험악해지는 분위기에,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 상황에서 별로 나서고 싶지 않은데…….
하지만, 나서지 않을 수도 없는 게 다들 나만 쳐다보고 있었다.
살려 주세요오.
이채연이 입술을 파들거리면서, 내게 구원 신호를 보내왔다. 뭔 내가 동물원 사육사도 아니고.
“나츠키 언냐야.”
“어, 엉?”
나는 둘 사이에 슬쩍 끼어들며, 그녀를 바라봤다. 나츠키는 눈에 띄게 당황하며, 안절부절못했다.
“그냥 븝미쟝이 해결하는 고애오! 그리구 안 되면 븝미쟝 탓인 고애오…….”
“아, 아니. 그건 농담으로 한 말이고…….”
나츠키는 머리카락을 비비 꼬면서 말했다. 그녀는, 당황하거나 드물게도 양심의 가책 따위를 느낄 때 저런 행동을 한다.
원래 웬만해서는 볼 수 없는 광경이지만, 최근 들어 나는 꽤나 많이 본 모습이다. 도대체 무슨 이유인지, 감조차 잡을 수가 없지만. 요즘 나츠키는 나를 마주할 때마다 항시 이런 상태가 되었다.
“역시, 다나 양. 나츠키 잡는 데는…….”
뒤에서 한 생도의 목소리가 들려와서, 조금 황당해졌다.
나츠키가 무슨 벌레냐. 나는 뭐, 에프킬라고?
전자는 얼추 맞을 수도 있겠지만, 후자는 전혀 아니다.
아무튼 그렇게, 상황이 진정되고.
나는 패턴을 입력하는 출입문 앞에 섰다. 그리고 그것을 바라봤다.
“하와와…….”
이거, 왜 자꾸 실패했는지 알겠다. 일단 패턴을 입력하는 방법이 손가락으로 누른다던가 하는 것처럼, 물리력을 이용하는 게 아니라, 세밀한 마나 컨트롤을 요구하는 것이었다.
마나를 움직여서 특정 번호에 주입하는 행위를 반복해야만 했다.
앞선 남자 생도 같은 경우에는, 애초에 중하위권 생도였으니 이것이 미숙할 수가 있다. 그리고 나츠키 또한 마력 컨트롤에서는 그와 다를 바가 없었다. 그 무식한 스탯과 특성빨, 그리고 전투 감각으로 커버해서 그 단점이 느껴지지 않을 뿐.
다만 나는 다른 것은 몰라도, 이 마나 컨트롤 하나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우우웅.
한 차례, 패턴을 나타내는 구슬의 색이 파랗게 변한다. 그리고 이내, 다른 구슬의 색도 차례로 변해 간다.
그 속도가 앞서의 나츠키보다 훨씬 빨랐기에, 뒤에서 오오 하는 감탄이 터져 나왔다.
쿠구구궁!
닫혀 있던 출입문이 굉음을 내며 열리기 시작했다. 그에 팀원들 모두가 환호하면서도, 나츠키의 눈치를 살폈다.
본래라면, 그녀는 자신이 하지 못한 것을 다른 생도가 해냈다는 것에 대해서, 상당히 토라져 있을 것이었다. 실상 단순히 토라졌다는 말로는 표현 불가능한, 상상 이상의 진상 짓을 하지만…….
그러나 이번에는 달랐다. 그저 얼굴을 살짝 붉힌 나츠키는, 출입문 안으로 들어서며 말했다.
“가, 가자.”
그러고는 쪼르르, 사라지는 나츠키. 그 모습을 보던 생도들이 뒤에서 수군거리기 시작한다.
“역시…… 그 소문이…….”
“맞다니까, 아니. 애초에 그게 말이 안 되잖아.”
나는, 그 이야기들을 들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저들이 말하는 그 소문이란, 나츠키와 내가 연인 관계라는 이야기다. 그러니까…… 여, 여 커플이라고.
씨발,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나는 되레 일리아랑 그런 헛소문이 퍼지지 않을까, 걱정한 적은 있어도 나츠키랑 그런 소문이 퍼질 줄은 몰랐다.
최근 들어서 상태가 좀 이상한 거지, 원래 학기 초부터 나츠키와 나는 악연으로 점철된 사이였다.
그래, 니들 생각하고 싶은 대로 생각해라.
나는 체념하며, 출입문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어?”
“다나?”
의외의 광경을 볼 수 있었다.
* * *
출입문을 열고 들어온 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그 공간 자체였다.
역시 펜타곤이라고 할 만큼, 거대한 장소. 부지 크기 자체가 논란이 될 정도로 너른 땅을 쓰는 아카데미이니,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몰랐다.
본래 서로 대련을 할 때 쓰는 그 대련장, 그곳을 몇 배 정도 크기로 불려 놓은 것 같은 느낌의 공간이었다.
그 다음으로 눈에 들어온 것, 그것은 바로 일리아 조의 모습이었다.
그녀는 멍하니, 나와 나츠키, 그리고 다른 조원들의 모습을 쳐다보고 있었다. 여기서 만날 줄은 꿈에도 몰랐다는 듯이.
물론 나도 몰랐기에, 그저 멀뚱히 있을 수밖에는 없었다.
이게 대체 무슨 시츄에이션이지?
던전을 클리어하면 시험이 끝나는 줄로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자, 공교롭게도 두 팀이 동시에 모였군요! 잘되었습니다. 따로따로 설명해 줄 필요도 없고, 좋군요.]
그때, 어디선가 교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건 교관인가. 예의 그 생도들로부터, 영 민심이 좋지 않은 그 교관이었다.
[이번 시험을 던전 체험으로 알고 계셨을 여러분들을 위해, 간단히 설명을 하겠습니다. 이번 시험의 진짜 목표는 바로 ‘왕 잡기’입니다. 왕 피구 생각하면 편하겠죠.]
왕 잡기. 나는 그것을 듣고 나서 기억의 편린 하나를 떠올렸다. 맞다, 학기 중 시험에 그런 것도 있었지.
그것은 각각의 팀에서, ‘왕’ 1명씩을 차출한 뒤, 서로 그 왕을 리타이어 시키기 위해 싸우는 것이었다.
왕은 지정된 구역에서 나올 수 없으며, 팀원들은 그 왕을 상대편으로부터 보호하고, 동시에 상대편의 왕을 노린다.
[룰이야 뭐, 쉽습니다. 각자 빨리 왕이나 정해 주세요. 빨리 하고 빨리 끝내자고요. 시험 감독 끝나면 낮잠이나 자러 가야겠네요.]
……그게 지금 교관이 할 소린가. 아무튼, 여러모로 글러 먹은 놈이다.
“와, 장난치나? 저기 멤버 봐.”
“아니, 괜찮을 수도 있어. 저기 다나랑 나츠키 빼면 멤버 별로잖아.”
일리아 조는 불평을 내뱉으면서도, 각자 작전 회의에 들어갔다. 그들의 조는 대부분의 인원이 중상위권의 생도들로 구성되어 있다. 반면 우리 조는, 나츠키와 내가 있지만…… 나머지는 중위권에서 하위권 생도로 구성되어 있다. 아까 이채연 정도만 제외하고.
내가 보기에 딱히 밸런스가 무너지진 않은 것 같다. 일리아도 지금 필기 성적이 너무 나빠서 문제지, 실제 무력 자체는 벌써 20위권 수준으로 올라왔으니까.
그것을 제외하고도 저번에 같이 파티를 맺어 봤던, 현 17위 퇴마사 강연준도 저쪽에 속해 있었다.
저 둘이면, 나츠키 하나 정도는 막고도 남는다.
나는 대강 견적을 재기 시작했다. 이거, 내가 열심히 하지 않으면 질 수도 있겠는데.
“그, 저희 조는 왕을 누가 할까요?”
내가 그렇게 대강의 구도를 머릿속에 그리고 있을 때, 한 생도가 질문을 던졌다.
나는 솔직히 말해서 조금 어이가 없었다. 당연히 왕은 지정된 구역에서 움직일 수 없는 패널티가 있었기에, 내가 아니면 이채연이 해야 했다. 원거리 지원이 가능하도록.
하지만 이채연 같은 경우에는 일반적인 궁수라기보다는, 기동력 내지는 본인의 특성인 은신을 주로 사용하는 암살자 같은 느낌이 강했다.
고로, 왕은 내가 해야만 했다.
이 당연한 이야기를 굳이 내가 말해 줘야만 하는가.
븝갈통보다 못한 것들.
그렇게 내가 한심하다는 듯이, 입을 열려고 하던 때였다.
“당연히 내가 해야지.”
“호에에에?”
순간 앞으로 나서면서 당당하게 말하는 나츠키.
이게 무슨 개소리야. 나는 황당한 마음에 그녀의 얼굴을 바라봤다.
그 감정은 나만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닌 듯, 다들 똑같은 표정을 지었지만, 아까부터 계속 나츠키에게 갈궈지던 남자 생도는 고개를 미친 듯이 끄덕였다.
“하, 하시죠!”
저놈은, 글러 먹었다.
이미 반쯤 노예가 된 지 오래였다.
나츠키는 입꼬리를 슬쩍 올리면서, 좌중을 향해 말했다.
“불만 없지?”
아니, 있는데.
하지만 나를 제외한 다른 팀원들은 그저 꿀 먹은 벙어리였다.
또, 내가 나서야 하나.
“저기여, 언냐야…….”
나갈통이라고 불리고 싶지 않으면, 그냥 제발 닥치고 빠져 주면 안 될까.
입으로 내뱉는다면 분명 순화되어 나올 것이 분명한, 그 의견을 말하려던 찰나였다.
[각 조 팀원들의 합의에 따라, 3조의 왕은 리카르, 8조의 왕은 나츠키로 결정되었습니다.]
위에서 들려오는 건 교관의 목소리.
나는 그에 그저 입을 벌렸다.
아니, 나는 합의 안 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