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화.
곧 전투가 펼쳐질 시험장, 나는 그곳에서 한 사람에게 계속 잔소리를 해 댔다.
“나츠키 언냐야, 그러니까 븝미쟝이 했어야 됐다구여…….”
“……알았어.”
그 한 사람이란 바로 나츠키. 그녀가 뜬금없이 나서는 바람에, 원래 짰던 이상적인 계획이 모두 비틀렸다.
나츠키를 선두로 내세우고, 뒤이어 다른 생도 둘 정도를 붙여서, 상대 왕을 치게 한 다음, 비교적 수성에 특화된 다른 생도들과 함께, 나는 이곳에 피신해 있는다…….
그 단순하고도, 당연한 전략. 아니, 전략이라고 하기도 뭣한 그냥 단순한 인원 배치.
하지만 그것은 분명 필승 전략이었다. 애초에, 나를 지켜 주는 다른 생도가 없어도, 내게 인원이 네 명 이상 쏠리지 않는 이상에야, 나는 살아남을 자신이 있었다.
마법사가 원래 그렇지만, 특히나 나는 한정된 공간에서 미리 준비를 하고 싸울 때, 그 누구보다도 강해질 수 있었다. 그건 이 게임에서 ‘왕’의 역할에 가장 어울리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는 나츠키가 왕이 되면서 모두 쓸모없어진 말들이었다.
그에 따라, 꽤나 열이 받은 나는 계속해서 나츠키에게 쫑알대며, 그녀의 신경을 긁고 있었다.
“언냐야! 언냐야! 언냐야아아아!”
“알았다고 했잖아. 적당히 하…….”
나츠키는, 더 이상 참기 힘들다는 듯이 고개를 돌리며 나를 째려봤다.
하지만 얼마 가지 않아 곧바로 말을 멈추더니, 입을 앙다물고, 이상한 신음 소리를 내면서 고개를 돌렸다.
“흐으으으…… 아니야, 미안. 그래.”
저거, 진짜 이상하다니까. 뭐, 나한테 크게 잘못한 거라도 있나?
나는 한동안 그녀를 의심스러운 눈으로 쳐다보다가, 그냥 공격 조와 합류했다.
공격 조의 사람들은, 저마다 나를 걱정스럽다는 듯이 바라봤다. 그들의 불안은, 실상 당연한 것이기는 했다.
“공격 조에…… 나머지 전원이 가도 되겠어? 아무리 나츠키라고는 해도…….”
나츠키를 제외한 모두가, 공격 조에 포함되었으니까.
본래 이 시험에서 정석은, 3명이 공격, 3명이 수비를 하는 것이었다.
원작에서도 모두들 그렇게 인원 배분을 했다. 그게 가장 이상적인 형태라면서.
하지만 나는 극단적으로 공격 조에만 모든 인원을 쏟아부었다. 이들은 그에 의문을 갖고 있는 것이었다. 인원 편성을 내게 맡긴 게 맞는 행동인가, 의심하는 생도까지 있었다. 물론 그런 의문은 내 이론 성적(물론 운으로 얻은 성적이다) 때문에 모두 불식되었지만…….
“나츠키 언냐야니까 괜차나여.”
나는 그런 걱정들을, 모두 웃어넘길 수 있었다. 내가 전술과 전략에 대해서 거의 문외한이나 마찬가지라고는 해도, 한 가지 사실은 알고 있었다.
나츠키가, 오지게 세다는 사실. 그것 하나로, 이렇게 역할 배분이 꼬였음에도 승률이 8할은 넘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었다.
이들은 나츠키의 강함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고 있다. 시험 때마다 우수한 성적을 내고, 괴수를 쉽게 잡아내긴 해도, 자신들보다 강하다 정도만 인식하는 것이지 그 간극이 얼마나 벌어져 있는지는 눈치채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조금 냉정하게 말하면, 이 생도들은 수십 년씩 어딘가에서 단련만 하고 나와도, 나츠키를 평생 따라잡지 못한다. 그 정도의 차이가 있다. 최상위권 생도와, 중하위권 생도들 사이에는.
“븝미쟝은 여기가 더 걱정되는 걸여…….”
나는 한숨을 쉬며, 멤버들을 바라봤다. 저쪽 멤버들의 수준을 생각하면, 여기는 그냥…… 꼬꼬마 텔레토비라고 해야 할까.
마침 숫자도 나 빼고 네 명이네. 보x돌이, 뚜x, 나x…… 니네가 다 해 먹어라.
사실 그들을 탓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나츠키와 내가 이 조에 있었으니, 다른 멤버들의 실력이 떨어지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밸런스를 맞춰야 했으니까.
그러니, 몸값을 해야 한다.
“옵바 언냐야들, 지금부터 븝미쟝이 설명해 주는 고애오…….”
나는, 공격 조에게 각자 내가 짠 작전을 설명해 주기 시작했다. 제발, 잘 알아듣고 그대로 실행해 줬으면 했다.
* * *
“다나랑 상대편 되니까, 이거도 조금 신선하네.”
“지금까지 상대편이 된 적 없어요?”
“한 번도. 같은 팀이 안 된 적이야 많지만, 애초에 이렇게 생도들끼리 경쟁하는 시험 자체가 많이 안 나왔잖아?”
“아하.”
퇴마사, 강연준과 일리아는 서로 대화를 나누며, 상대 진영으로 달렸다.
공격 조 두 명, 왕을 포함한 수비 조는 네 명.
언뜻 수비에 더 많은 힘을 할애한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강연준과 일리아는 그들의 조에서 가장 강한 두 명, 그렇기에 남아 있는 네 명의 생도가 분명 수적 우위 때문에 더 강하기야 하겠지만, 공격을 약하게 하고 수비를 강화했다는 말에는 분명 어폐가 있는 것이었다.
“저기 수비 조에 다나 양이 섞여 있으면 좀 그럴 것 같은데요.”
“뭐, 혹시나 그러면 내가 살살 꼬시면 되지. 미인계로다가.”
“……농담이죠?”
“당연히 농담이지.”
일리아는 씨익 웃으며, 강연준의 어깨를 쳤다.
강연준은 억, 소리를 내면서 벽에 튕겨 나갔다. 오버 액션이 아니라 진짜였다.
그가 황당함에 일리아를 쳐다보자, 일리아는 모른 척하며 입에 검지를 가져다 대었다.
“조용.”
“…….”
강연준은 불만이라는 듯 인상을 찌푸리면서도, 그녀의 지시에 따랐다.
실상 팀장이자, 랭킹이 가장 높은 것은 그였지만, 실제 가진 바 무력만 따지자면 일리아가 더 강하다는 것을 그도 인지하고 있었으니까.
“저기, 아무리 봐도 쟤 혼자지?”
“그러네요? 흠, 수비가 한 명도 없는 건가. 아무리 나츠키 씨라고 해도…… 선을 많이 넘은 것 같은데.”
상대 팀의 진영, 왕이 벗어나지 못하는 그 구역에, 나츠키가 혼자 서 있었다.
그것을 본 강연준은 그저 황당한 듯했다. 아무리 강하다고 하더라도 혼자 공격 조를 모두 상대할 수 있다고 생각한 건가?
“이거, 쉽게 이기겠…….”
“당장, 나가자. 이거 우리 팀이 위험해.”
“네?”
김이 빠진다는 듯이, 웃으며 중얼거리는 강연준과 달리, 일리아는 굉장히 심각한 표정이었다.
“저기는 공격 조가 5명이라는 거잖아. 거기에 다나도 껴 있는데. 잘못하면 우리가 져.”
수비 조가 한 명도 없다는 것은, 반대로 말하자면 나머지가 모두 공격 조라는 것. 거기에 다나까지 함께한다면, 패배할 가능성도 있었다.
강연준도, 그제야 조금 조급한 표정이 되었다. 그래도 설마 지겠냐, 하는 생각이 뇌리에 자리 잡고 있기는 했으나, 일리아가 다급해하자 덩달아 심경에 변화가 생긴 것이었다.
강연준과 일리아는 나츠키에게 달려갔다. 그에 나츠키는, 둘을 보자마자 환하게 웃음을 지었다.
“벌써 왔네.”
그것은 티 없이 맑은, 마치 어린아이 같은 천진함을 담고 있는 미소.
하지만, 그것은 점차 변화해 가며, 여전히 순수하지만 악의를 담뿍 내포한 악동 같은 표정이 되었다.
“빨리 그냥, 칼 맞고 편해지는 게 좋지 않을까? 둘 상대로 이길 생각을 하는 건 아니지?”
일리아는 도발성 멘트를 날렸다. 나츠키가 비교적 이런 것들에 쉽게 흥분하는 모습을 보여 왔기 때문에.
하지만 나츠키는 그저 웃어넘겼다. 이미 수도 없이 들어왔다는 듯, 그저 검을 뽑을 뿐이었다.
예전에는 잘만 넘어왔으면서. 덧없이 툴툴거리던 일리아 또한 검을 뽑았다.
이내, 두 신형이 얽혔다.
캉!
“으…….”
“풋.”
검이 맞대어지는 순간, 일리아는 확실한 간극. 나츠키와 자신 사이에 있는 벽 하나를 느낄 수 있었다.
반면 나츠키는 일리아가 자신보다 확실히 아래라는 것. 그것을 재확인했다.
그때부터는 양상이 완전히 달라졌다.
츠카악!
“흐읏.”
나츠키의 카타나가 휘둘러지고, 일리아는 그를 막아 내기에 급급했다. 왕이지만 몸을 사리지 않고 공격해 오는 것에, 일리아는 그저 휘둘릴 수밖에 없었다. 왕이 아니라도 일정량 이상 피해를 받으면, 그대로 리타이어 판정이 나게 되니, 몸을 사리지 않고 반격한다는 수도 없었다.
다만, 일리아는 혼자가 아니었다.
“제(制).”
촤르륵.
강연준이 품고 있던 부적이 하늘에 흩날려진다. 그것은 그의 특성 중 하나인 부적술. 그는 각종 부적을 만들고, 그를 통해 마법과 비슷하지만, 다른 술법을 펼쳐 낼 수 있었다.
부적들이 형(形)을 이루고, 그것이 나츠키의 주변에 다가가며, 그녀의 움직임을 제한하기 시작했다.
“아, 반칙이지.”
나츠키는 투덜거리면서, 전신 마력을 개방했다. 부적의 효과가 조금 줄긴 했으나, 어느새 그녀의 속도는 일리아와 비슷해진 상태였다.
거기에 강연준 또한, 자신의 무기를 들고 달려오고 있었다. 누가 봐도 나츠키가 압도적으로 불리한 상태.
하지만.
왜, 웃고 있는 거지?
일리아는 나츠키의 표정을 살피고는, 머릿속에 경종이 울리는 듯했다. 저건 적어도 궁지에 빠진 사람의 얼굴이 아니었다. 특히, 본인의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는 그 나츠키라면, 저런 반응일 리가 없었다.
그리고, 그 불길한 예감이 맞았다는 사실은, 뒤이은 나츠키의 말을 통해 알 수 있었다.
“물.”
“어……?”
강연준은, 뜬금없는 그녀의 말에 고개를 갸웃했지만, 일리아는 그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 수 있었다.
촤아악!
순간, 일리아와 강연준의 발밑으로 세차게 들어차는 물살.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지라, 자세가 비틀렸다.
나츠키는 그 빈틈을 놓치지 않고, 곧바로 강연준에게 쇄도하여 그의 가슴팍을 베어 내었다.
“아, 미친.”
연습용 검이기에, 상처가 크진 않았지만, 강연준은 탄식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이 정도 상처면 분명 리타이어였다.
[강연준, 리타이어.]
뒤이어 들려오는 소리, 강연준의 몸 주변이 빛무리가 휩싸이더니, 어딘가로 사라져 버렸다.
팔랑
제어하는 이가 사라지자, 그저 종이 쪼가리로 변해 버린 부적들. 그것이 바닥에 내려앉는 것을 바라보며, 일리아는 한숨을 내쉬었다.
“졌네.”
그것은, 패배했다는 것에 대한 실망감보다는, 되레 잘 되었다는 듯한 어투였다.
“그런데, 너한테는 안 질 거야.”
나츠키는, 그 말에 조소를 띠었다.
그리고 다시금 검이 얽혀 갔다.
그로부터 대략 10분 뒤.
[8조가 승리했습니다!]
결과가, 시험장 내에 울려 퍼졌다.
* * *
“그냥 마법이 파바박! 하더니 막 번쩍! 하고 저쪽 왕이 으그그극, 하고!”
예의 그 나츠키한테 반쯤 조련당한, 그 남자 생도가 하는 말이었다.
왜 저러는지 모르겠네. 나는 그 꼴이 좀 부끄러워서, 상당히 거리를 띄워 두고 걸었다.
시험은 가볍게 승리했다. 나츠키 쪽에 혹시 몰라 물의 정령까지 소환시켜 두고 왔으니, 질 리가 없다고 생각하긴 했다.
그나저나 일리아한테 조금 미안하다. 물론 시험이니만큼 봐주고 하는 수도 없었고, 그런다고 일리아 성격에 좋아할 것 같지도 않지만…… 뭔가 미안했다.
나중에 맛있는 거나 사 줘야지, 하면서 시험장의 출구를 향해 걸었다. 이제, 다시 기숙사로 복귀할 시간이었다.
[다나 크리스틴, 부정행위에 대한 검증이 필요하므로 잠시 소환하겠습니다.]
“호에에에에?”
그때, 머리 위에서 황당한 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부정행위 같은 소리? 나는 전혀 교칙에 걸릴 만한 행동을 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그런 변명 따위는 필요 없다는 듯, 내 몸 주위에 빛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아니, 잠깐만.
우웅!
이질적인 감각과 함께, 시야가 반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