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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기븝미쟝이 되었다-62화 (62/172)

#62화. 백팀 파이팅인 거시애얌!

월요일로 예정된 펜타곤에서의 운동회가 시작되기 전날, 신하연은 자신의 개인실에서 휴대폰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그를 통해 대화하는 것은 자신과 현재 교제하고 있는 남자 친구.

물론 그것은 외부로 보여지는 모습이었고, 실상 그 관계를 보자면 일방적으로 그쪽이, 신하연에게 마음이 있는 것에 불과했다.

그녀는 그에게 마음이 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고백은 받아들였다. 계속해서 수많은 이들로부터 받는 구애가 불편하다는 이유에서였다. 이른바 위장이었다.

“짜증 나게 구네.”

신하연과 그, 오현수는 겉으로 보기에는 굉장히 사이좋은 한 쌍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신하연이 대외적으로 이미지 관리를 할 때의 일. 다른 때에는 그야말로 완벽하게 수직적인 관계였다. 그동안 가면을 쓰면서 받은 스트레스를 모두 풀기라도 하려는 듯, 신하연은 그에게 굉장히 막 대했다.

처음에는 그런 상황에 굉장히 만족했던 그녀였지만, 점차 시간이 지날수록 오현수에 대해 꺼림직한 마음이 커져 갔다.

호구처럼 무슨 대접을 당하더라도, 그저 웃기만 하는 것은 이전과 다를바가 없었지만, 점점 집착증이 심해져 가고 있는 것이었다.

지금만 해도 쉴 새 없이 보내는 그 문자 메시지를 읽은 것에만 오랜 시간이 할애되었다. 일견 광기로도 보일 수 있는 수준의 집착. 가끔 보면 섬뜩할 때도 있었다.

“이쯤 쳐내야 하나…….”

겨우 두 달 남짓한 시간. 맺어졌다가 헤어지기에는 너무나도 짧은 시간이었지만, 신하연은 슬슬 정리를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뭐, 자기가 자초한 거고…… 난 모르겠다.”

일단 대외적으로 노출되는 부분까지만, 학생답게 풋풋한 연애를 하는 것처럼…… 보여 주고. 이후에 헤어지는 게 낫겠지.

신하연은 이미 거기까지 미리 생각을 해 뒀다. 결국에는 이 모든 일들이 대중에게 보이기 위한 이미지 메이킹의 일환이니까.

우우웅.

“어휴.”

그녀는 아직도 울려 대는 휴대폰을, 방구석에 집어 던졌다. 그러고는 침대에 벌렁 드러누웠다.

얼마 뒤에 있을 운동회 날, 다들 절치부심하거나, 재밌게 즐길 생각에 마음이 들떠 있는 모양이었지만, 되레 마음이 무거웠다.

여느 때처럼 가면을 쓰고, 다른 이들의 앞에 나선다.

그 누구에게도 미움받지 않을 것이다. 내가 버린 이들을 제외하면.

신하연은, 지금까지 살아온 방식. 이제는 신조라고까지 할 수 있을 만한 문구를 되뇌며, 잠시 눈을 감았다.

*    *    *

나는 저 멀리서 묘하게 초조한 모습으로 서성거리는 한 남자 생도를 보고 있었다. 오현수라고 했나. 현재 신하연과 교제 중인 녀석. 내 기억상으론 이 운동회가 끝나고, 꽤나 한참 뒤인 10월 달쯤에 사고를 치는 걸로 기억하는데…….

“모르갯는 고애오…….”

그 기억이 정확한지는 고사하고서라도, 애초에 모든 사건들이 원래 순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현 상황에서, 그에 의존하는 것이 더 웃긴 일일 터였다.

지금으로서는 경계 대상 중 가장 주의 깊게 지켜 봐야 할 놈이다. 별로 정이 안 가는 성격이긴 하지만, 신하연도 결국엔 후일 동료가 될 녀석이니까.

잠깐만…… 그런데 미래가 바뀐다면.

나는 생각을 이어 가다가, 잠시 우뚝 멈춰 설 수밖에는 없었다. 한 가지 의문이 들었던 터였다.

지금 모든 사건들이 원래의 순리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변모하고 있는 중인데…… 그렇다면 혹시 원래 아군이었던 이들이 적이 될 수도 있다는 건가?

그 가능성을 떠올려 내자, 순간 등골이 오싹했다. 가장 먼저 떠오른 게 빌런이 된 나츠키였기 때문이었다. 지금이야 그냥 성격만 지랄 맞은 거지, 진짜로 빌런이 되고 그 본성을 완벽하게 발현해 낸다면…… 거의 최종 보스급이 되지 않을까.

아무래도, 나츠키한테는 조금 더 잘해 줘야 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물론 이런 생각 자체가 굉장히 발생할 확률이 드문 것이었지만…… 당장 J만 보더라도 의도치 않게 이쪽으로 포섭된 것이나 마찬가지인 상태가 되지 않았는가.

반대의 경우라고 해서 일어나지 않으리란 법은 없었다.

“야, 시작한다.”

“니가 왜 그렇게 설레발이야? 웃긴다. 어차피 니 얼굴 나와 봤자 3초고, 웬만해선 나오지도 않을 건데.”

“아, 좀. 알고 있으니까 닥쳐 봐. 그러는 너는 나오겠냐?”

앞자리에 앉은 생도들이 갑자기 수군거리기 시작한다, 나는 그와 동시에 고개를 들었다. 아, 드디어 시작하는구나.

반의 중앙에 위치한 커다란 스크린, 그를 통해서 현재 촬영이 진행 중인 예능 프로그램, 펜타곤의 티저가 흘러나오기 시작한다.

펜타곤 안에서, 펜타곤을 주제로 한 예능 프로그램을 보고 있다라…… 어떻게 보면 되게 웃긴 일이지만, 생도들은 한창 이런 것에 관심이 많을 나이다. 요새 영 자각하지 못하고 있긴 하지만, 나는 그럴 만한 세월은 한참 전에 지나갔다.

처음에 나오는 것은 전회 방송분. 무슨 동아리들 중에 요리 동아리를 중심으로 찍은 내용을 포함하고 있었다.

본래라면 별로 반응이 좋지 못했을 테지만, 의외로 저기에 장선우가 있는 것이 촬영의 이유였다. 상위권 생도들 중에 유일하게 촬영에 대해 협조적인 녀석이었으니까.

나, 나츠키, 신하연 등등은…… 영 협조적이지 않았고. 물론 나는 그쪽에서 반감을 가지지 않도록 최대한 완곡하게 거절하기는 했다. 나중에 진짜 명성도가 필요해지면, 그땐 부끄럽고 뭐고 출연을 해서 명성도를 올려야 할 테니까.

전회 방송분이 모두 끝나고, 이번 회의 오프닝이 시작되었다. 본래 편집 방송이었지만, 단 한 차례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운동회 날. 그 이전에 미리 만들어 놓은 짧은 영상이었다.

가장 먼저 얼굴을 비추는 것은 나.

지금껏 이전 회차에서 나왔던 내 모습들이 스쳐 지나간다. 그와 동시에 반 전체의 시선이 내게 쏠린다.

“하우으으…… 부끄러운 고애오…….”

나는 그대로 책상에 엎드렸다. 그러다가 다른 생도가 나오기 시작할 때 고개를 들었다.

그 다음으로 나온 건 장선우.

최상위 생도들 중에 유일한 청일점이고, 외모 또한 준수해서 많은 여성 팬들을 보유하고 있는 만큼, 그 분량 또한 많았다.

다음은 나츠키였다.

이거, 진짜 순위대로 가는 건가.

그녀의 영상은 별것이 없었다. 애초에 자기를 찍으려고만 하면 난리를 쳐 댔으니, 건질 만한 영상감이 있을 리가 만무했다.

“지워!”

다만, 그녀가 눈에 띄게 동요하는 부분이 있었는데, 과거 사건 사고 항목에서 보이는, 나츠키와 내가 함께 껴안고 자고 있는 부분.

거기서는 얼굴을 붉히면서 굉장히 동요했다. 물론,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방송국 옵바 언냐야들…… 븝미쟝한테 왜 그러는 고애오…….”

뽑을 게, 내 분량밖에는 없는 건가.

대표적인 생도 소개, 그리고 운동회에서의 활약이 기대되는 이들이 꼽히고 난 뒤에는, 제각기 시청자들이 응원하고 있는 생도들에 대한 인터뷰가 있었는데, 그의 반수 이상이 내 팬이라고 자처하는 이들이었다.

“언니가 격하게 사랑한다! 다나 파이팅!”

“헤으응…….”

그에, 나는 대부분이 남성 팬이지 않을까 생각하고, 소름이 돋아나기 전에 귀를 틀어막으려 했으나, 의외로 여성 팬들이 많이 있었다. 개중에는 딱, 현생에서의 내 이상형과 걸맞은 사람도 있었다.

그에, 흐뭇한 얼굴로 스크린을 바라보자, 옆에서 일리아가 뭐라고 중얼거리면서 내게 붙었다.

“다나는 아가야…… 내 거야…… 지켜 줄 거야…….”

“호에에에.”

*    *    *

“자, 그럼 지금부터 펜타곤 여름 운동회를 시작하겠습니다!”

파팡.

사회자로 나선, 교관의 선언과 함께 터지는 폭죽.

그와 동시에 여기저기서 환호가 터져 나온다. 다들 잔뜩 달아올라 있는 모습이었다.

펜타곤의 운동회. 그저 행사라고도 볼 수 있지만, 일단 각 길드 스카우터들이나 대중들이 지켜보는 것이었기에. 생도들의 의지가 타오를 수밖에 없었다.

“야, 근데 이거 백팀이 너무 불리한 거 아니냐? 이거 순위 고려해서 나눈 건 알겠는데, 힘 쓰는 거 아예 못 나가는 사람도 있는데…….”

어디선가, 한 생도가 하는 말이 귀에 들어온다.

힘 쓰는 거 아예 못 나가는 사람이라…….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날 얘기하는 거겠지. 제기랄.

운동회에서 처음의 몇 개 경기는, 청백전으로 이루어지고, 진짜 중요한 몇몇 경기는 반 대항으로 치러진다.

그런데 그 처음의 몇 개 경기라는 것에 배당된 점수가 꽤나 높은지라, 청백전에서 열세였던 반들이 개별 반 대항전에서 높은 순위를 기대하기가 힘들었다.

이상적인 것은 청백전의 5대5 구도, 이후에 10개 반끼리 서로 경쟁하여 순위를 가리는 것이었다.

“줄다리기, 진짜 이건 완전 근력 스탯 싸움 아니야? 저기 근육 돼지들 오지게 많은데.”

그런데, 그 이상적인 구도가 첫 번째 단계부터 삐걱거리는 느낌이었다. 아군 백팀에도 물론 완력이 강한 생도들이 많이 있었지만, 청팀은 그 비주얼부터가 압도적이었다.

“호에에에, 징그러운 고애오…….”

스테로이드 따위와는 그 효능을 비교할 수 없는, 마나를 통해 키운 근육들.

보자마자 압도되는 그 우람한 근육을 가진 이들이 청팀 쪽에 나란히 섰다.

……내가 헬스장에서 봤던 놈들이 다 저기에 서 있는 것 같은데. 이거 도대체 밸런스를 어떻게 짠 거야?

“하와와와…….”

청팀 쪽을 보다가, 백팀을 바라보니 무슨 소인들을 보는 기분이었다. 물론 이쪽 세계에서 외형으로 강함을 판단한다는 것 자체가 사실 어이없는 일이기는 하지만…….

실제로도 궁수들까지 닥닥 긁어모은 이쪽에 비해, 저쪽은 죄다 근접 계열 히어로뿐이었다.

“아니, 그러니까 날 왜 응원 단장을 시키냐고. 내가 저기 나가야 하잖아!”

일리아는 분통을 터뜨렸다. 각 팀의 응원 단장들이 필수적으로 응원해야 하는 경기. 그중 하나가 바로 이 줄다리기였다.

응원봉을 들고, 바라봐야만 하는 상황이, 어이가 없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어떡하겠는가. 결국엔 그녀가 나를 장기 자랑에 추천한 업보였다. 나는 그녀의 옷자락을 잡아당기며, 말했다.

“언냐야, 괜차나여어. 백팀 옵바 언냐야들이 이겨 줄 고애오! 응원해서 도와주는 고애오!”

뭐 이제 와서 어떡하겠어. 그냥 응원이나 하자고.

본래 내 어투대로 하면, 그저 힘이 빠질 만한 말이지만, 이 몸으로 말하면 달랐다.

“그래, 응원이라도 열심히 하자.”

일리아는 자리에서 일어서며 응원봉을 집어 들고 흔들었다.

“백팀 파이티이잉!”

“백팀 파이팅!”

그녀의 목소리에, 주변에 있던 이들이 함께 동조하며 응원을 시작한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줄다리기가 시작되었다.

일단, 첫 경기는 그냥 보고 있어야지. 하는 내 생각과 동시에, 믿을 수 없는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부웅.

순식간에, 청팀 쪽으로 쭉 끌려가는 백팀 생도들.

삐이익, 하는 소리와 함께 5판 3선승인 줄다리기의 첫 번째 승기를 청팀이 가져갔다.

“……이게 뭐야.”

옆에서, 일리아 다음으로 열심히 응원을 하던 생도가 얼이 빠진 듯이 중얼거렸다. 나도 동감이었다. 이딴 게 줄다리기냐?

“하와와와…….”

나는 한숨을 쉬었다. 웬만하면 나서고 싶지 않았는데, 아무래도 돌아가는 꼴을 보니 나서야만 할 것 같았다.

나도 나름 승부욕이라는 게 있는 사람이라서, 기왕이면 우리 반이 1등을 했으면 좋겠거든. 나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앞으로 나섰다.

‘븝미쟝의 콘서트 와요!’ 특성이 활성화되었습니다!

그리고, 응원을 시작했다.

이것은 판도를 바꿀 수 있는 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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