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애기븝미쟝이 되었다-63화 (63/172)

#63화. 하연 언냐야……

나는 목을 한 차례 가다듬고, 음량을 증폭시켰다. 그래 봤자 아직 하잘것없는 수준이기에, 생목으로 터져라 질러 대는 다른 응원단들과 겨우 비슷해진 크기겠지만…… 그거면 충분했다.

“하와와와…….”

다들 나 같은 건 신경도 안 쓰고 있는 모습. 나는 부디 앞으로도 계속 그런 태도를 보여 줬으면 했다. 어차피 내 목적은 버프를 주는 것, 하나였으니까.

이내, 입을 열었다.

“오, 필승 언냐야. 오, 필승 옵바야.”

과거에 만들어진 한국 축구 응원가, 02년의 그 열풍과 맞물리며 누구나 알 수 있게 된 그 응원가. 나는 그것을 불렀다.

“오, 필승 븝미쟝. 호 호엥 호엥 호엥호엥호엥!”

호엥호엥은 십.

내가 어떻게 부르건, 입에서 튀어나오는 건 제멋대로였다.

작금에서야 실상 포기하기는 했지만…… 저기 얼빠진 표정으로 이쪽을 바라보는 사람들을 보니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오 필승 븝미쟝’을 불렀습니다! 3분간 힘이 18% 상승합니다!

대상이 너무 많아 효율이 50% 감소합니다!

그동안, 혼자 방구석에서 수백 번을 불러 대며 오른 숙련도. 중간중간 일리아에게 들켜 굉장한 수모를(물론 일리아로서는 그냥 귀엽다고 한 행동들이었다)당해 가면서도, 올려놓은 그 숙련도 덕분에, 굉장히 양질의 버프를 줄 수 있었다.

이 정도면, 실상 성기사나 사제의 광역 버프와 비슷한 수준. 겨우 노래로 이런 효과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것을 안다면, 모두가 경악할 것이다.

아니, 이미 다들 경악하고 있나.

나는 곧 펼쳐질 심판의 신호에, 긴장하고 있던 줄다리기 멤버들을 바라봤다.

청팀이고 백팀이고 할 것 없이, 모두 내 쪽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다들 사기가 한층 저하된 모습이었다.

몇몇, 미친놈들을 제외하면.

“다나 너무 잘 부른다.”

예를 들면, 내 옆에 붙어 있는 일리아 같은…….

나는 고개를 저었다. 어쨌든, 뭐 이기면 그만이지. 설마, 이렇게까지 했는데 지겠나.

“자, 2라운드. 시작!”

그렇게, 다시금 시작된 줄다리기, 이전과 달리 팽팽하게 당겨지는 줄에, 나는 웃음을 띠었다.

“하와와와! 옵바 언냐야들 파이팅이애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웃음은 사라지고, 입만 댓 발 튀어나오게 되었다.

“……옵바 언냐야들 약골인 고애오.”

최종 스코어 3대0. 버프고 나발이고 격차가 애초에 너무 컸던 탓이었다.

명성도가 증가했습니다!

명성도가 증가했습니다!

명성도가 증가했습니다!

결국 얻은 것이라곤, 수없이 떠오르는 이 알림뿐이었다. 퀘스트는, 금방 깨겠네.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    *    *

초인들이, 축구와 농구를 하게 되면 어떻게 될까.

맨손으로 축구 골대도 우그러뜨리는 이능의 소유자들이, 아무 제한 없이 경기를 하게 된다면, 당연히 개판이 날 것이었다.

애초에 이 경기들은, 방송국을 통해 외부로 송출될 예정이니, 일반인들도 볼 수 있을 정도로 다운그레이드를 해야만 했다.

그렇기에 일전에도 본 적이 있는 그것을 사용했다. 나츠키의 몸에 착용했던 그 신체 능력을 지정한 대상자의 수준만큼 줄이는 무구. 생도들은 모두 일반인 중에서 운동 능력이 조금 뛰어난 수준인, 올스탯 13으로 신체 능력을 재조정했다.

그렇기에 구기 종목들에는, 모든 생도들이 참여할 수 있었다. 근접 계열 생도건, 사수건, 심지어 마법사들도 각성 이전에 공 좀 찼다, 혹은 던졌다 하면 참여가 가능했다.

물론, 나는 철저히 배제되었지만.

“호에에…… 븝미쟝도 축구나 농구 나가고 시펐던 고애오…….”

나는 그래도 공을 좀 다루는 편이었다. 그래서, 내심 기대를 많이 했다. 모두들 신체 능력이 하향된다면, 내게 기회가 있지 않을까.

하지만 13과 5. 그것은 조기 축구회 20대 청년과, 동네 슛돌이 7살 꼬마 정도의 격차였다.

도대체, 왜 신체 능력을 상승시켜서 고정시켜 주는 무구는 없는 건데.

생도들이 지금 착용한 것은 원래보다 신체 능력을 제한시켜 주는 효과만 있었지, 그보다 낮은데도 상승시켜 주는 효과는 없었다.

처음에는 모든 생도들에게 기회가 가야 하지 않냐, 하는 취지로 내 신체 능력에 맞추는 안건도 나왔다고 한다. 그건 내가 전체 1위 생도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기에 생긴 배려였다.

하지만 내 신체 능력을, 직접 겪어 본 생도들의 증언으로 인해, 그 안건은 기각되었다. 도저히 경기가 진행이 불가하다는 것이다.

“후보를 한 50명쯤 두면 되겠네요. 20분마다 전체 멤버를 갈아 치워야 할 거니까.”

이게 6반에서 축구 에이스라고 꼽히는 녀석의 감상이었다.

……괜히 구기 종목도 하고 싶다고 했다가, 조리돌림만 당해 버렸다.

내가 그렇게 침울한 표정으로, 공을 차고 있는 생도들을 바라보자, 일리아가 등을 토닥거렸다.

“다음에 또 기회가 있겠지. 괜찮아.”

“호에에…….”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기회가 있을 리가 있나. 애초에 내가 이 몸에 들어온 이상, 과거에 육체로 즐겼던 활동들은 모두 포기해야만 했다. 평생 5/5/5니까.

아니, 꼭 그렇지는 않다. 그러니까…….

변신 가능 시간 96분.

96분 동안만.

이건 내가 불사 신선으로 변신 가능한 총 시간이었다. 그동안, 별달리 위험한 일들이 없었기에 굳이 사용하지 않아도 되었다. 마지막 변신 이후로, 지금까지 계속 사용하지 않아 왔다.

물론 내가 이걸 이용해서, 축구 풀타임을 뛴다든가 하는 미친 짓은 하지 않을 것이다. 공 차는 게 아무리 좋아도, 내 목숨 지키는 데 쓸 수단을 땅바닥에 내던질 리가 있나.

그래도, 뭔가 조금 속이 쓰려서, 나는 관중석에서 슬쩍 벗어났다.

“다나, 어디 가?”

그에 일리아가 졸졸 쫓아왔으나, 나는 그냥 돌려보냈다. 아까 줄다리기 때문에 허탈하기도 했고, 아무튼 좀 혼자 있고 싶었다.

“그냥여…… 화장실 갈 고애오!”

“같이 갈…… 아니. 갔다 와.”

일리아는, 대충 내 표정을 보고는, 눈치를 채고 보내 주었다. 이래서 좋아한다.

나는 그대로 펜타곤 주변에 있는 산책로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꽤나 은밀한 장소인지라, 평소에는 커플들이 자주 밀회를 즐기고는 하는 곳이었다.

오늘은 아무래도 날이 날이니만큼 잘 없긴 했다. 나는 안도하며 길을 걸었다. 여기서 연놈들이 쪽쪽거리고 있는 꼴을 보면, 괜히 속에서 천불만 더 날 것 같았다. 나는 실상 평생 연애라고는 못 해 볼 텐데.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더 짜증이 났다. 나는 하늘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호에에에에!”

으아아아악, 하는 포효도 그저 이렇게 나왔다.

마음대로 소리도 못 지르는 인생, 더 우울해졌다.

바스락.

그 때, 어딘가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순간, 그곳을 바라보며 귀를 기울였다. 설마 이미 온 사람들이 있었던 건가.

숨을 죽이고, 걸음을 멈춘 채로 그 방향을 바라보니, 얼마 지나지 않아 한 남자가 그곳에서 뛰쳐나왔다.

“저거…….”

저건, 분명히 신하연과 연인 관계인 그 남자 생도. 오현수였다.

왜 저놈이 여기서 나오지, 그렇게 의문스러워하고 있는데, 수풀 속에서 날카롭게 소리를 지르며 나오는 여자를 보자, 납득이 되었다.

“야!”

당황과 부끄러움, 그리고 수치심. 그 모든 감정들이 점철된 얼굴을 하고 있는 신하연. 그녀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나를 발견하고, 최대한 그 감정을 숨기려고 했다. 하지만, 그녀로서도 이번에는 그럴 수 없었던 모양이었다.

“호엥.”

내 반대편의 출구를 향해, 빠르게 달려가는 신하연.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벌써, 문제가 생긴 건가.

“안 되는 고애오.”

그러면 안 되는데.

신하연과 오현수 간의 트러블은, 일리아와 신하연의 불편한 관계를 어느 정도 풀어낼 사건이었다.

2학기에 있을 시험에서 일어나야만이 원래대로 흘러갈 텐데. 아니, 그렇지 않더라도 내가 대비할 시간 정도는 있어야 하는데. 아무래도 생각보다 훨씬 빨리 일어날 것 같다.

*    *    *

신하연은, 정신없이 도망쳤다. 당장에 너무 당황해서, 머리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하지만 어느 정도 거리가 멀어지고 난 뒤에는, 머리가 식고, 자신의 행동이 얼마나 추했는지 상기하게 되었다.

“하아…….”

그녀는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오현수, 그 새끼가 이렇게 나올 줄은 몰랐다.

“하필 여기로 나오라더라니…….”

실상 이별 통보나 같은 말을 하기 위해서 문자를 보냈는데, 오현수는 그에 격하게 반발하며, 광기로 눈을 번들거렸다. 그리고 수없이 부정적인 말들을 내뱉으며, 강제로 껴안으려고 했다.

그때 마침 다나 크리스틴이 나타난 바, 오현수는 그대로 도망쳤다.

하지만, 혹시나 그때 저 애가 나오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하, 진짜 골치 아프네.”

물론 오현수가 도 넘는 행동을 보이면, 선조치 후에 펜타곤 측에 통보를 하면 되었다.

어차피 그 정도 수준으로는 위해는커녕, 털끝 하나 건드릴 수 없으니까.

하지만 문제는 그 과정에서 나올 뜬소문들, 그것들이 얼마나 이미지에 치명적인 영향을 끼치는지, 신하연은 알고 있었다. 되레 자신이 그것들을 이용해 주변 인물들 중, 마음에 들지 않는 이들을 쳐낸 기억이 있으니까.

“아악! 진짜, 사람 보는 눈도 없어 가지곤.”

이렇게 된 데에는 분명 자신의 책임도 있었지만, 신하연은 그저 분개했다.

그러고는 머리를 굴렸다.

“어쩌지, 걔는.”

이 모든 광경을 지켜본 생도, 다나 크리스틴.

그녀의 입을 어떻게 막아야 하나. 그것을 생각하기 위해서.

*    *    *

“저기, 그…….”

“아라여 언냐야. 말 안 할게여.”

산책로에서의 사건이 있은 지 대략 2시간쯤 뒤, 신하연은 일리아가 사라진 틈을 타서 내게 말을 걸어왔다. 나는 그냥 고개를 끄덕여 줬다.

“……진짜지?”

“븝미쟝 입 무거운 고애오…… 아가손가락 꼭꼭 걸고 약속하는 고애오!”

그녀는, 영 애매하다는 얼굴로 잠시간 서 있다가, 한 마디 더 당부하고 운동회 동안만 재배정된 자신의 반을 향해서 걸어갔다.

나는 그 모습을 빤히 쳐다봤다. 쟤도, 참 피곤하게 산다 싶었다.

“하와와와…….”

단체 종목들이 모두 끝나고, 개별 종목들만 남은 시점이었다.

이미 마법 연구와 시약 제조 항목에서는, 내가 1위를 해 버렸다. 애초에 마법 쪽에서는 압도적인 재능과 실력을 가지고 있었고, 시약 제조 쪽에서는 실상 이미 탑급인 연금술사들의 지도를 받고 있는 나였다. 일반 생도가 이길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남은 것은 서바이벌. 나는 그 명단을 살펴봤다. 과연 그 명단에는 오현수, 신하연이 모두 포함되어 있었다. 오현수도 나름 상위권 생도이니만큼 포함되는 게 이상한 건 아니었지만, 문제는 원작에선 그가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는 것이다. 애초에 그가 반 대표로 나설 만큼의 실력까진 또 아니기도 하고.

“지금인 건가여…….”

아무래도, 녀석은 여기서 사고를 칠 것 같았다. 도대체 어디서 구했을지 모를 그 유물, 아마도 지금도 들고 있겠지. 그거, 원작에서는 어떻게 됐었더라. 장물이라고 국가에 환수되었었나?

이렇게 된 이상 수지타산이라도 맞게, 그걸 내가 가져야겠다 싶었다.

일리아랑 신하연이 근 시일 내에 화해할 만한 계기가 사라졌으니, 그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너무 이기적인 생각이 아닌가 했지만, 인생이야 원래 혼자 사는 거니까.

“븝미쟝은 개인주의애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