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화. 납븐 옵바야는 혼내 조요……
우우웅, 하는 기계 소리만이 들려오고 있는 이곳. 나는 지금, 한 커다란 수송기 안에 있었다. 그리고 곧 여기서 뛰어내리게 될 것이었다.
“호에에에…….”
잠시간 회의감에, 입에서 절로 한숨이 삐져나왔다.
시발, 이 멍청한 놈은 왜 이 중요한 사실을 까먹은 거지.
내가 이곳에 있는 이유는 다름 아닌 서바이벌 때문이었다. 게임상에서 자세히 묘사되지는 않았지만, 언급상 등장하는 서바이벌의 진행 중 초반부 진행.
각 반의 대표 10명이, 대형 수송기에서 낙하하여 서바이벌 지역 중 원하는 곳에 떨어지게 된다는 그 사실을, 나는 까맣게 잊고 있었다.
나는 답지 않게 고소 공포증을 가지고 있었다. 이 몸에 들어온 지금에서야, ‘호에에, 븝미쟝은 높은 곳이 무서운 고애오.’ 해도 이상하지 않으니, 오히려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겁먹지 말고, 뛰어내리면 됩니다. 아무 행동하지 않고, 그냥 낙하해도 자동으로 낙하산이 펼쳐질 겁니다.”
옆에서, 한 교관이 나를 어르고 달랜다. 새파랗게 질려서는, 부들거리고 있는 모습이 안쓰러웠는지.
하지만 이런 소리를 듣는다고 내 마음이 진정될 리가 없었다. 나는 여전히 몸을 떨며, 아찔하게 멀어 보이는 지상을 슬쩍 바라봤다.
“으에에에…… 호에엥…….”
진짜로 눈물이 찔끔거리고, 몸이 사시나무 떨 듯 마구 떨렸다. 이거, 도저히 자력으로는 못 뛰어내릴 것 같은데.
그렇게 우물거리고 있으니, 등짝에서 손길이 느껴졌다. 나는 순간 소스라치게 놀라며 뒤를 돌아봤지만, 그때는 이미 늦은 상황이었다.
“호에에에에에, 살려 주우느으은 고애오.”
나는 비명을 지르며, 그대로 지상을 향해 자유 낙하하기 시작했다. 면전에 세차게 불어오는 바람 때문에, 눈조차 제대로 뜨기 힘들었지만, 그럼에도 중간중간 보이는 아득하게 먼 지상의 풍경은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었다.
“흐겍…… 브, 븝미쟝…… 주거여…….”
나는,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 * *
서바이벌은 각 반별로 1명만이 출전할 수 있는 만큼, 해당 반에서 가장 강한 이들이 나왔다.
물론 예외도 있었다. 이를테면 장선우 같은 경우에는, 자신이 출전할 종목 3개를 이미 다른 것으로 골라 놓은지라, 출전하지 못했다. 그의 성정상 평소에 친한 이들을 만난다면, 냉정하게 공격할 자신이 없단 것이 그 이유이기도 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상위권 생도들은 모두 이에 출전했다. 일단 점수부터가 다른 종목의 2배는 족히 얻을 수 있었고, 기존에 서로 대련의 기회조차 없던 이들끼리 한번 실력을 겨뤄 볼 기회였으니까.
“아, 짜증 나게 왜 이렇게 더워.”
개중에는 나츠키 또한 있었다. 그녀는 전체 지역 중에 가장 더운 지형인 사막 지형을 걷고 있었는데, 마력으로 지열이 올라오는 걸 막고 있었으나 그럼에도 풍겨 오는 열기에 짜증을 냈다.
한동안 사막을 걷던 그녀는, 어디선가 느껴지는 기척 때문에 정신을 집중했다. 나츠키는 그 정체를 대략적으로 예측할 수 있었다.
“몇 등급짜리지.”
이곳 서바이벌에는 교관들의 통제하에 뿌려진 몬스터들이 있었다. 그렇기에, 나츠키는 그 정체가 몬스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실상은 달랐다. 그녀가 발견한 것은 몬스터가 아닌, 한 사람이었다.
“……뭐야?”
사막의 모래들은 제각기 바람에 따라 흩날리고는 했다. 파도처럼 너울거리며 움직이는 모래는 순간 언덕을 이뤘다가, 흩어지는 것을 반복했다. 작은 아이 정도라면 그대로 삼켜 버릴 수도 있을 정도로.
“하.”
그리고 나츠키는 그 가정이 실제로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을, 실제로 확인할 수 있었다. 희미하게 보였던 한 인영이, 모래에 삼켜지는 것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나츠키는 그것을 보고도 잠시 망설였다. 혹시 저게 펜타곤 측에서 미리 깔아 놓은 함정의 일종이면 어떻게 하지. 그녀의 반의 점수는 현재 3위. 1위를 하기 위해서는 이번 서바이벌에서 조기 탈락하는 일은 없어야만 했다.
“에이, 씹.”
하지만 나츠키는 해당 지점으로 걸어가, 모래를 파헤쳤다. 뭇 이들로부터 괴팍하다는 평가를 받는 그녀였지만, 어쨌든 근본적으로 그녀는 뼛속까지 히어로였다. 위험에 처한 타인을 보면, 반드시 구해야 한다는 것이 뇌리에 박혀 있는 종자들. 다만 그녀는 자의식이 너무 뛰어난 것이 문제였던 것뿐.
팍팍, 모래를 퍼내자, 사람이 모습을 드러낸다. 나츠키 자신도 자그만 신장 때문에 꽤나 놀림을 많이 받았지만, 그 이상으로 조그마한 아이. 본인의 입으로나 프로필상에는 키가 155라고 하지만, 실상 그보다 훨씬 작은 여자애.
“얘는, 왜 항상 나 가는 데만. 아, 진짜.”
나츠키는 짜증을 팍팍 내면서도, 다나를 모래 구덩이 속에서 끌어 올렸다. 물론 사태가 심각해지면 펜타곤 측에서 구해 주었겠지만, 그렇다고 질식사 직전까지 그냥 내버려 둘 수도 없는 노릇이었으니까.
뭐 때문인지 기절해서 미동도 없는 그녀를 보며, 나츠키는 잠시 고민했다. 팔목에 참가자 전원이 차고 있는 인식표. 그것을 뜯어내거나 일정 이상의 충격을 주면 자동으로 리타이어 처리가 된다.
당장 손목에서 덜렁거리고 있는 인식표. 나츠키는 그에 슬쩍 손을 가져갔다. 이것만 뜯어내면 일단 한 명은 아웃이었으니까.
“으음…….”
하지만 그때, 다나가 몸을 뒤척이며 나츠키의 팔에 손을 얹었다.
“왜, 왜 이래.”
꿈이라도 꾸는지, 팔을 조몰락거리며 미소를 짓는 다나. 나츠키는 그를 떨어뜨려 놓으려 했으나, 포기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 나중에 멀쩡할 때도 충분히 이기니까…….”
답지 않은 자기 합리화를 하며, 나츠키는 그대로 자리를 떠났다, 아니 떠나려고 했다.
후우웅.
그때, 불어오는 바람이, 다나의 몸 위로 모래를 쏟아 내기 이전까진.
그 모습을 본 나츠키는, 다시 한번 한숨을 쉬며, 다나의 근처로 가 그녀를 업었다.
* * *
기분 좋게 흔들리는 어딘가에서, 나는 잠을 자고 있었다. 사실, 아까 전에 지상 4000m에서 자유 낙하를 했던 그 기억도, 그저 악몽 중 하나가 아니었을까 생각될 정도로 달콤한 꿈을. 웬 몽실거리는 가래떡 하나를 조몰락댔던 게 기억에 남았다.
“호에에.”
물론 꿈이라는 것을 자각한 바, 그 시간은 길지 않았다. 나는 잠에서 깨어나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몸을 받치고 있던 무언가가 스르륵 풀어졌다.
풀썩.
나는 그대로 얘기치 못하게 땅바닥에 떨어졌으나, 지면이 푹신했던지라 아픔이 느껴지진 않았다. 다만 조금 당황한 채로 주변을 둘러봤다. 여기가, 어디지.
크흠.
그 때, 어디선가 머쓱한 헛기침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그 방향을 바라보고, 당황할 수밖에는 없었다.
“나츠키 언냐야?”
그쪽에는 얼굴을 붉히고 있는 나츠키가 있었다. 얘가 왜 여깄지. 잠시 생각하던 나는, 방금 전까지 내가 그녀의 등에 업혀 있었다는 사실을 자각했다.
아니, 근데 왜?
내가 처음으로 든 의문은 바로 그것이었다.
아무래도, 내가 공중에서 정신을 잃고 낙하한 이후, 지상으로 떨어진 나를 발견한 것이 그녀인 모양이었는데, 왜 굳이 나를 업고 이동하고 있었던 건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그냥 인식표를 뜯어내 가면 알아서 탈락되는 거였는데.
설마 룰을 이해하지 못한 건가?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나는 고개를 도리 저었다. 다른 것도 아니고 인식표를 뜯어내면 탈락이라는 문구를 이해하지 못할 리가 없었다.
일리아도 아니고, 나츠키는 그래도 머리가 좋은 편인데…….
아니, 이건 일리아한테 너무 실례인가. 그 본인조차 바보라고, 자조적으로 말하곤 했지만, 일리아도 그 정도는 아닐 것이었다. 아마도……?
“아니, 난 그냥 그…… 우연히 봤다가. 정정당당하게 하려고. 그…… 간다! 나중에 만나면 안 봐줘.”
나츠키는 얼굴을 붉힌 채로, 나를 곁눈질로 흘끔거리며 말했다.
그 내용은 뒤죽박죽인 본인의 머릿속을 그대로 나타낸 듯한 것이었기에, 나는 헛웃음을 흘렸다.
“언냐야아아.”
내 부름에도, 뒤도 돌아보지 않고 쏜살같이 사라지는 나츠키. 쟤도 진짜 성격 이상하단 말이야. 도저히 파악 불가능한 쪽으론 J와 자웅을 겨뤘다.
나는 잠시간 그녀가 사라진 방향을 바라보다, 배급된 스마트워치를 살펴봤다. 현재 서바이벌의 남은 시간은 40분. 벌써 시작한 지 20분이나 지났다는 소리였다.
“호에에에, 좁아지는 고애오…….”
스마트워치에 떠 있는 지도. 그곳에 빨간 점으로서 내가 있는 위치가 표시되었다.
그 뒤로 좁혀 오는 원형의 선. 그것은 폐쇄되는 구역의 범위를 나타내는 것이었다. 원래 세계에서 한때 유행이었던 서바이벌 장르의 게임. 이번 서바이벌은 그와 상당한 유사점이 있었다.
다행히 이번 폐쇄 범위는 내가 있는 곳에 아슬아슬하게 걸쳐 있어서, 급하게 이동하지 않아도 되었다. 하지만 문제는 신하연 쪽이었다.
“……왜 이렇게 먼 고시애오?”
그쪽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오현수. 그놈이라면 눈깔이 한 번 돌았을 때, 생중계고 뭐고 사고를 쳐 버릴 가능성도 있었다. 아니면 외부의 관찰을 막을 방법을 미리 준비해 뒀거나. 사실 나만 해도 펜타곤에서의 중계를 막을 방법은 충분히 가지고 있었고.
그러고 보면 펜타곤도 더럽게 허술했다. 그게 좋게 봐야 자유방임이지, 이럴 때 보면 무능이랑 뭐가 다른가 싶었다.
나는,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신하연이 서바이벌 때 있었던 위치. 솔직히 말해서 정확히 생각나지는 않았지만, 머릿속에 하나의 대사가 기억이 났다.
[신하연: 이끼가 너무 많아서, 뛰다가 잘못하면 넘어지겠는데…….]
산지 지형에, 이끼가 잔뜩 나 있는 바위가 지천인 곳. 나는 지도를 통해 그를 확인하고, 달리기 시작했다.
“븜븜븜.”
최대한, 빨리 가기 위해 노래까지 부르며.
……물론 그럼에도 여전히 미약한 속도였다.
* * *
오현수, 그는 현재 대한민국에서 굴지의 기업을 세운 재계 17위 서열 그룹 총수의 손자였다.
재벌 그룹 총수들 중 3분지 2 이상이 히어로 출신인 지금, 항시 일반인인 자신의 기반을 통탄했던 회장이, 자신의 며느리를 상위권 히어로로 들인 덕분에, 핏줄의 힘으로 강력한 특성을 달고 태어난 행운아.
그 덕분에 그는 지금껏 살면서 자신이 원하던 일을 이루지 못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펜타곤에서는 그런 일들이 너무나 빈번하게 일어났다. 특히, 개중에서 가장 열이 오르는 것은, 한 여자가 자신을 농락한 일이었다.
마치 선심 쓰듯 자신의 고백을 받아 준 그녀, 그럼에도 오현수는 마냥 좋았다. 그 화려한 외모만큼이나, 성격도 시원시원하다고 알려져 뭇 남자 생도들의 우상이 되던 그녀. 그녀를 쟁취한 것이 결국 자신이라는 뿌듯함도 그에 한 몫을했다.
하지만 그것은 겉으로 보여지는 것이었고, 신하연의 내면은 그와는 정반대였다. 물론, 그는 자신도 마찬가지임을 오현수 또한 알고 있었다. 그것은 일종의 동족 혐오. 남들에게 가면을 쓰고 자신을 감추는 이들끼리의 증오였다.
그것을 깨닫고 난 뒤 오현수는 그저 신하연의 몸에 집착했다. 물론 신하연 또한 그를 눈치채었기에, 거리를 두고, 이별 통보를 하려 했다. 하지만 오현수는 그를 받아들일 생각이 없었다.
그는 미리 바깥에서 공수한, 통신기를 통해 신하연의 위치를 확인했다. 대략 3km 정도 남짓 떨어진 곳. 오현수는 음산한 미소를 흘리며, 그곳으로 달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