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화.
“으으…….”
신하연은, 눈앞에 쓰러져서 신음하고 있는 이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현재 펜타곤 8위에 랭크되어 있는 생도였다. 하지만 그녀는 평소 이 생도가 상당히 고평가되어 있다고 생각해 왔던 터라, 별로 놀라워하지도 않았다.
다만 그런 티를 내지는 않았다. 요즘 아무리 심기가 불편하다고 해도, 대외적으로 그녀는 ‘착한 신하연’이었다.
음습하게, 마음속 깊이 숨기고 있는 본심이 튀어나와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고통에 그저 드러누워 부들대고 있는 그에게, 신하연은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다가갔다.
“괜찮아요? 너무 과했던 것 같네요. 미안해요.”
“아, 아니에요. 제가 약해서 그런 거지…….”
머쓱하다는 듯이 애써 미소 짓는 남자에게, 신하연은 손을 뻗었다. 물론, 속내는 그저 비웃음이었다. 당연히 니가 약해서 이렇게 된 거지.
그렇게, 겉으로는 승자와 패자 간의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만들어지고 있는 때, 어디선가 기척이 느껴졌다.
신하연은 순간 주위를 둘러봤다. 너무나도 대놓고, 자신의 존재를 되레 알아봐 달라는 듯이 달려오는 바에야, 눈치채지 못하는 게 더 이상한 일이었다.
“……뭐야?”
그리고 그 정체가 드러났을 때, 신하연은 더욱 황당하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나타난 이는 오현수. 얼마 전에 그녀의 심기를 건드린 바로 그 당사자였다.
그를 바라보며 신하연이 떠올리는 생각은 단 하나였다. 쟤, 미친 건가? 아예 나 죽여 줍쇼 하는 것과 다름이 없는 모습이었으니까.
“오…….”
반면 오현수와 신하연, 그 둘이 대치하고 있는 모습을 본 랭킹 8위의 생도, 그는 묘한 얼굴로 그 광경을 바라봤다. 대외적으로 이들은 연인 사이였으니, 둘이 이렇게 마주치게 되면 어떻게 될지 내심 궁금했던 터였다.
신하연은 그 시선이, 굉장히 신경 쓰였다. 그랬기에 오현수에게 눈짓으로, 다른 곳으로 가자는 의사를 밝혔다. 오현수는, 짐짓 어깨를 으쓱거리더니 다른 곳으로 향했고, 신하연 또한 못마땅하다는 듯 고개를 저으면서도, 그를 따라갔다.
“어…… 근데, 나 왜…….”
그 모습을 아쉽다는 듯이 지켜보고 있던 남겨진 생도는, 의문을 표할 수밖에 없었다. 분명, 큰 상해를 입은 데다, 인식표까지 뜯어진 상황인데 펜타곤에서 아무런 조치도 들어오지 않았으므로. 하지만 당장에 할 수 있는 일이란 그저 이렇게 쓰러져 있는 것뿐이었으니, 당황스러울 수밖에는 없었다.
그렇게, 대략 몇 분간의 시간이 지난 뒤. 이제는 시험이 끝나기만을 기다리고 있던 그의 앞에, 누군가가 다시금 나타났다.
혹시, 다른 생도일까. 그렇다면 굳이 봉변을 당하지 않게, 이미 리타이어 된 상황이라는 사실을 알려야만 했다. 그렇게, 입을 열 준비를 하고 있던 순간.
“븝하.”
“……어?”
뜬금없이 들려오는 소리에, 기운이 쭉 빠지는 감각을 느껴야만 했다.
눈앞에 나타난 이의 정체 때문이었다.
“옵바야, 왜 그러고 있는 고애오?”
붉은 머리에 녹안을 가지고 있는 자그마한 소녀. 다나 크리스틴이 그 정체였다.
그녀는 쓰러져 있는 남자를 향해, 잠시 관심을 보이는 듯 그렇게 물어 왔다. 그에, 생도가 대답하려던 순간, 다나는 스스로 머리를 쥐어박으며 고개를 마구 흔들었다.
“아, 옵바야. 그것보다…… 하연 언냐야 어디로 갔는지 아라여?”
“신하연? 어…… 저쪽?”
생도는 방금 전, 오현수와 신하연이 사라진 방향을 가리켰다. 그러자 다나는 고개를 꾸벅 숙이고는, 사라졌다.
“고마운 거시에얌, 옵바야.”
오도도도.
생도들의 시선으로는, 거북이나 다름없는 속도로 뛰어가는 그녀.
그 뒷모습을 바라보던 생도는, 다시금 깨달았다.
“아, 시발.”
또, 혼자 남게 되었다는 사실을.
* * *
아까 전, 상처를 입고 쓰러져 있던 생도를 보고 확신했다. 오현수, 이 미친놈이 뭔가 수를 쓴 모양이었다. 아마도 지금 펜타곤은 이곳 내부 상황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음이 분명했다. 그걸 어떻게 했느냐, 하는 의문은 가질 필요가 없다. 일전에도 말했듯이, 펜타곤은 의외로 무능하니까.
아니, 단지 무능이라고 표현하는 것도 어폐가 있을 것이었다.
J처럼 빌런의 신분임에도 펜타곤 내에 자리 잡고 있는 이들이 몇몇 있으니, 내부의 분란은 그들이 조종하는 경우가 상당수 있었다.
그 정체는 작중에서도 발각된 적이 없으니, 나로서도 뭔가 조치를 할 수는 없는 일이지만…… 어쨌건 이번의 일도 그들이 개입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호에, 호에에…….”
본래 신하연은 시험 중에 이와 같은 일을 겪게 되고, 근처에서 이상한 기척을 느낀 일리아에게 구해진다. 하지만, 지금은 그녀가 없다.
그렇기에 내가 지금 숨을 헐떡이면서, 달려가고 있는 것이었다. 혹시 모를 최악의 사태에 대비해서.
아무리 정떨어지는 모습이라고는 해도, 신하연은 어쨌건 나중에 도움이 되어야 하는 이였으니까.
“나무 씨들, 너모 많은 거 아닌가여어……?”
안 그래도, 산길이라 달리기가 힘든데, 나무들까지 내 시야를 가렸다. 진짜, 죽을 맛이었다.
그럼에도 기감이 신하연과 오현수가 어디에 있는지, 명확하게 나타내고 있었기에 정확한 위치로 달려갈 수는 있었다.
“븜븜븜.”
그렇게 계속해서 노래를 불러 대며 달려간 결과, 그들이 있는 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미 상황이 많이 진행되었는지, 빌런들 특유의 마기를 흘리는 오현수와, 잔뜩 흐트러진 신하연이 눈에 들어왔다.
아무래도 상황에 집중해 있는지라, 내가 나타난 것도 눈치를 채지 못하는 모양이었는데, 당연히 내게는 잘된 일이었다.
“마나 씨…….”
작게 읊조리자, 마나 포트가 만들어진다. 이미, 그 활용 능력에만 국한하면 웬만한 현역 히어로들은 명함도 내밀지 못할 만큼 성장해 있었다. 내가, 몸이 약해서 그렇지 화력만 따지자면 당장 10등급대 몬스터들 파티의 메인 딜러 수준은 될 터였다.
시험 때는 손을 봐줘야만 했기에, 그 위력을 조정했지만……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었다. 그냥 뒤지든가 말든가.
오현수는 이미 마기에 완전 잠식당한 상태였다. 경로는 몰라도, 이미 빌런들과 계약한 상태겠지.
빌런들, 개중에서도 제일 악질인 놈들이 마족들과 계약한 놈들이었다.
저놈은 지금 그들과 다를 바가 없는 놈이었다. 원래도, 거의 반쯤 초주검이 된 채로 잡혀 들어가서, 감옥에서 썩을 녀석.
“아가야, 힘을 보태 주는 고애오…….”
내 부름에, 바람이가 뛰쳐나온다. 그러고는 살랑거리며 마나 포트에 깃든다.
내가 지금 떠올리는 이미지는 겁화. 그에 바람이 깃들자, 더 거세게 타오른다.
“하와와와와!”
내 외침에, 그제야 존재를 알아챈 듯 허겁지겁 몸을 피하는 오현수.
물론, 이미 늦은 상태였다. 마기를 품고 나발이고, 무방비한 상태에서 이걸 막거나 피해 낼 놈은 생도 수준엔 없었다. J…… 를 제외하면. 그쪽은 워낙 규격 외니까.
“끄어어어억!”
추하게, 꺽꺽거리며 그대로 바닥에서 뒹구는 녀석. 아무래도 죽지는 않을 것 같았다. 아니, 곧 펜타곤에서 호송이 오지 않는다면 죽으려나?
“너, 너…….”
신하연은 내 쪽을 가리키며,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동공을 떨었다. 방금 전까지 자기가 애먹고 있던 상대를 가볍게 척살해 버린 것에 대해서, 자존심도 많이 상했을 터였다. 그런 그녀에게 내가 해 줄 수 있는 말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납븐 옵바야 때찌해 준 고애오 언냐야…….”
그러면서 몸을 배배 꼬는 나를 바라보며, 신하연은 허탈하다는 듯이, 그대로 쓰러졌다.
* * *
“아, 진짜 어이가 없어서.”
신하연은, 짜증 난다는 듯이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그러고는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넌 화도 안 나?”
“호에에에, 머가여?”
“……말을 말자. 대화하려고 한 내가 바보지.”
그녀는, 내 성의 없는 대답에 속이 타는 듯 가슴을 두드렸다.
신하연이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것은, 펜타곤 대응 팀의 태도 때문이었다.
당장에 그녀는 오현수에게 심한 일을 당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실제로 내가 나타난 그 시점이 조금만 늦었다면, 이미 당했을 수도 있었고.
하지만 펜타곤 측에서는 이를 묻고 넘어가자며 사정을 했다. 지금 이렇게 생중계까지 하는 판에야, 오현수에 대한 처분이야 강력하게 내리더라도 그냥 좋게 좋게 넘어가는 게 낫지 않겠느냐…… 하는 것이었다.
당연히 신하연 입장에서는 빡이 돌 만한 소리였다. 다만, 그동안 쌓아 올린 그 이미지. 그게 뭐라고 그녀는 그 제안을 수락했다.
“다 똑같아. 개 같은 놈들.”
물론 그렇다고 괜찮을 리는 없었기에, 그녀는 한참 동안이나 내 옆에서 히스테리를 부려 대었다. 그렇게 짜증을 팍팍 내던 신하연은, 금세 침울해져선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는데에…….”
나는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며, 한숨을 내쉴 수밖에는 없었다. 이미 상당히 중증이다. 신하연은 실제로 정신 병력이 있었다. 피해망상과 조울증. 남들에게 언제나 웃으며, 친절한 모습으로 자기를 포장하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녀의 이런 모습을 아는 이들은 굉장히 피곤해한다. 자신의 감정을, 다른 이들에게 소모하며 스트레스를 해소하곤 하니까. 일리아도 그 때문에 과거에 굉장히 속을 썩였던 것이고.
솔직히 말하자면, 안쓰럽기도 한데. 당장은 일리아 쪽 입장에 이입이 더 되어 있으니, 못마땅한 마음이 더 앞섰다.
그래서, 툭 까놓고, 한 마디 해 주려 입을 열었다.
“언냐야는 개인주의인 고애오.”
“……? 무슨 소리야.”
“인성 문제 있어양?”
“인성? 문제 있지. 그것도 많이 있지.”
신하연은, 쿨하게 수긍했다.
아니, 되레 그에 한 술을 더 떴다.
“솔직한 심정으로, 지금 세상 사람들 다 죽었으면 좋겠거든. 아, 몇 명은 빼고…… 아무튼 그렇게 다 죽이고 싶어.”
음산한 표정으로, 그렇게 읊조리는 신하연을 보며, 나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주연 등장인물들과 빌런 사이의 차이점이란 무엇일까? 나츠키나 이쪽이나…….
그렇게, 한동안 저주 섞인 말을 내뱉던 그녀는, 갑자기 얼굴색을 바꾸며 환하게 웃기 시작했다. 이쯤 되면 진짜로 소름이 끼치는데.
“오늘, 너무 고마웠어. 나, 솔직히 너 별로 안 좋아했거든. 예전 일도 있고, 하와와, 이러고 다니는 게 좀 꼬라지가 보기 싫더라고.”
“호에에에…… 너무하는 고애오…….”
시발, 나라고 하고 싶어서 하고 다니는 줄 아나.
얘는 일단 기본적으로 다른 사람의 감정에 공감을 할 줄 모른다.
“그런데 오늘…… 그렇게 달려와서 도와주고. 내가 이딴 소리나 해 대도 옆에 있어 주고…… 사실 너도 나 좋아하는 거지? 그렇지? 그렇다고 말해.”
신하연은, 몸을 부들부들 떨며 나를 바라봤다. 그러고는 숨을, 한 차례 들이켜고는 내 면전에 지근거리로 자신의 얼굴을 들이밀었다.
눈이 완전히 돌아가 버렸는데. 갑작스러운 상황 변화에, 나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원래 이상한 거야 알고 있는데, 이건 좀 정도를 넘은 것 같은데.
대상, ‘J’의 호감도가 일정 수치를 넘어, 다른 대상에게 특성이 적용됩니다.
대상 ‘신하연’에게 특성이 적용되었습니다!
그와 동시에, 눈앞에 떠오르는 문자.
그 때문에 나는, 한숨을 내쉴 수밖엔 없었다.
왜, 하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