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애기븝미쟝이 되었다-66화 (66/172)

#66화. 늑대 언냐야!

“다나, 이거 봐. 너 이번에 장기 자랑 때 부른 노래 팬카페에 벌써 올라왔어!”

“호에에에.”

일리아는 내게 폰을 보여 주며 말했다.

그거, 별로 알고 싶지 않았는데.

븜븜븜, 내게 약속해 줘, 븜븜븜.

플레이어에서 나오는 내 노래에, 소름이 오소소 돋는다. 도대체 뭔 정신으로 부른 건지 모르겠다. 거기에 더 소름 돋는 건 댓글들.

댓글(5291)

애기수현쟝: 응애, 나 애기수현. 이거 더 조.

김응식: 이게 노래지 ㅋㅋㅋㅋㅋ

NACHUKI: 노래는 부르지말자

┗아가한테 악플 ㄴ

┗븝미는 아가야…… 좋은말만 해 줘야 해…….

시나: 사랑해(@서체 변경 끝)

단체로 정신이 나가 버린 건지, 속이 메슥거리는 댓글들만 5000개가 넘게 달렸다. 근근히 악플 비슷한 것도 있었지만, 그건 운영진이 죄다 쳐내는지 금방금방 사라지고는 했다.

“봐봐, 반응 제일 좋은데. 겨우 인기상이라는 게 이해가 안 된다니까 나는? 그 이상한 연극은 최우수상 받았잖아.”

“그거는 언냐야…… 여기가 븝미쟝 팬카페라 그런 거구여…….”

심사 결과에 불공정성을 제기하는 그녀였지만, 그녀가 보고 있는 것은 내 팬카페. 당연히 내 반응이 제일 좋을 수밖에 없다. 실제로 현장 분위기는 잠시 쎄하게 변하기도 했었다. 이 입에서 나오는 노래는 대체로 음정 박자가 제멋대로니까. 그나마 동요가 나은 편이고.

헤벌쭉한 표정으로 내 영상을 돌려 보는 그녀. 나는 그저 고개를 저었다.

대신 그 일리아가 ‘이상한 연극’이라고 표현한, 역사 동아리의 영상을 틀었다.

“푸흐흐…… 나츠키 언냐야…….”

적절한 국뽕과 함께 권선징악의 메시지를 담고 있는 연극, 그곳에서 악역을 일임하고 있는 나츠키의 모습. 중간중간 하기 싫다는 티를 팍팍 내는 그녀의 모습에서, 웃음이 나오지 않을 수가 없었다.

*    *    *

[하연 언냐야: 뭐 해?]

[하연 언냐야: 왜 답장 안 해 줘?]

[하연 언냐야: 뭐 하냐고, 급한 일 있어? 혹시 무슨 일 생긴 거 아니야?]

“호에에에.”

계속해서 울리는 메시지에, 나는 불퉁한 표정으로 답장을 작성했다. 븝미쟝 괜찮은 거시애오! 하고.

한숨이 나온다. 신하연은 본래 이렇게 한 대상에 대해서 의존을 하게 되면, 과하게 집착하는 경향이 있었다. 당장에 내 옆에 일리아가 붙어 있기에, 그것이 조금 조절되는 면이 있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이 지경이다.

특성이 발현되지 않았더라도 감당하기 힘들었을 텐데, 거기에 내 특성까지 겹치니 증상이 더 심해진 것 같기도 하고.

본래 원작에서 일리아가 그녀를 구해 주었을 땐, 본래 가지고 있던 그 악감정 때문에 이 정도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지만, 결국에 시간이 지나며 신하연은 다시금 과거처럼 일리아에게 집착을 하게 된다.

일리아는 그에 대해서 귀찮아하면서도, 적절히 그녀를 조련했다.

문제는 나 같은 경우에는 그녀 같은 해결책을 쓸 수가 없다는 것이다.

조련은 개뿔이고, 당장 조금 경계를 늦췄다간 그냥 잡아먹힐 것 같은데.

이따금 나를 향해 보내오는 신하연의 눈빛을 보면, 몸이 오들오들 떨렸다.

“언냐야들 너모 무서운 고애오…….”

어떻게 주연 등장인물 대부분과 거리가 가까워지기는 했는데, 문제는 그 거리가 너무 가깝다는 것이었다. 나는 적당한 친구 내지는 동료 정도의 친밀감을 원했는데, 아무래도 요즘 내게 접근하는 그녀들의 태도를 보자면, 그럴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그나마 개중 일리아가 제일 정상적이라는 것에 절망할 수밖에 없었다. 동거녀에, 성추행을 밥 먹듯이 하는 일리아가…….

아직도 그녀에게 만져진 볼과, 엉덩이가 얼얼하다. 그녀는 귀여운 동생한테 하는 스킨십이라고 생각하겠지만…… 내 생각이 불순해서인지 그때마다 얼굴이 확확 달아올랐다.

시발, 그러고 보니 이제는 성희롱범한테 갈 차례네.

도대체 주변 인물들 상태가 왜 이런지 모르겠다. 분명 게임에서 볼 때는 정상적인 선남선녀들이었는데. 지금 보니 그냥 죄다 변태들이다.

우우웅.

전화가 울렸다. 설마 또 신하연이 메시지를 보낸 건가. 귀찮음이 확 올라왔다.

하지만 이 진동이 메시지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급하게 확인했다. 나한테 전화를 보낼 할 만한 사람은 굉장히 한정적이었으니까.

대장장이 옵바야

화면에 떠 있는 그 정체는, 김수혁이었다.

그 변태들 중 단연 제일이라고 할 수 있는 작자. 나는 전화를 받았다.

“븝하.”

― 다나 씨, 오고 계신가요?

“븝미쟝, 븜븜 달려가는 고애오! 지팡이 씨를 가지러 가는 고시애오…….”

나는 지금 김수혁을 만나러 가는 중이었다. 드디어, 그 위그드라실의 가지로 만든 지팡이가 완성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이었다. 실상 이 세계관에서 거의 최강의 지팡이라고 해도 문제가 없을 법한 물건이었으니까. 물론 이보다 성능이 좋은 물건들이 스토리 중후반 이후에 나오기야 할 테지만, 현 시점에서는 단연 1등이었다.

원래는 돼지 목에 진주 목걸이나 다름이 없었지만, 지금은 내 스펙도 많이 올라온 상태였다.

“호에에, 븝미쟝 돼지 아닌 고시애오. 날씬한 아가야애오…….”

비록 정령술 같은 잡기를 모두 끌어모았을 때의 기준이기는 하지만, 나는 4자리대 히어로들과도 공격력 하나만큼은 비벼 볼 만한 스펙을 가지게 되었다.

예전에, 빌런들의 장물 거래 때 함께 협력했던 그 히어로와 비교해도, 내가 더 우위를 가질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러니까, 이미 대형 길드의 신입 히어로 정도와는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는 것이다.

1학년 1학기가 끝나 가는 시점에서.

― ……그건 무슨 소린가요? 혹시 누가 살쪘다고 그러던가요?”

전화기 너머에서, 김수혁이 헛소리를 한다.

아니, 내가 먼저 헛소리를 해서 그거에 대답을 한 거구나.

“호에에, 아니애오. 븝미쟝 븝소리였던 고애오…….”

― 하하. 가끔 그렇게 알 수 없는 말 하는 것도 다나 씨 매력이죠. 살쪄도 예쁘실 거예요. 흐흐…….

김수혁의 입에 발린 소리, 제 딴에는 기분 좋으라고 한 소리겠지만…… 나는 되레 으, 하는 소리만 흘릴 뿐이었다.

뭐, 일리아라던가…… 일리아라던가…… 아무튼 다른 사람이 했으면 그냥 그런갑다 했겠지만, 김수혁이 말하니까 죄다 변태적인 말로 들렸다.

안 그래도 디자인 구상한다면서, 예전에 보내 준 그 마녀 코스튬 셀카도 잔뜩 받아 갔던지라, 더 그랬다. 도대체 마녀복을 어떻게 하면 야하게 만들 수 있는지, 그 창의력에 경탄했다.

― 흠흠, 아무튼 전화 드린 이유는, 그…… 오늘 아마 지팡이를 전달해 주는 사람이 제가 아닐 거라서. 혹시나 당황하지 마시라고 연락 드렸습니다.

“호에에, 그러며는 누구인 고애오?”

김수혁의 말에 의문이 들었다.

애초에 그는 그 흔한 친구 하나가 없다. 그 이유에 대해서 작중에서는 따로 서술되지 않았기에, 그냥 하루 종일 대장간에 틀어박혀 있는 게 일이니 그런가 보다 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이 변태적인 기질 때문이 아닐까 생각되기도 했다.

“옵바야 친구도 업잔아오…….”

― 이, 있습니다! 다나 씨, 저를 어떻게 생각하시는 건지 모르겠는데…….

김수혁은 황급하게 자기변명을 했다.

솔직히, 그가 친구가 있건 없건 그다지 관심이 없었기에 흘려들었다. 대신 그 ‘전달자’에 대한 이야기만 귀를 기울였다.

― 그, 조금 당황하실 수도 있는데. 그 친구가 인간이 아니라서 말입니다. 하지만 그 친구가 안 도와줬으면 아마 지팡이를 완성하지 못했을 거라…….

인간이 아니다. 그리고 그가 아니었으면 지팡이를 완성하지 못했을 거다. 그 이야기에서 나는 대강 떠오르는 이가 있었다.

라이칸스로프.

수인들 중에서도 야성이 강한 종족이지만, 드물게도 개중 전사의 기질을 타고나지 않고 장인이 된 이.

원래, 김수혁이랑 친분이 있었던 것으로 게임 내에서 언급이 나온다.

“호에에…….”

다만, 그것은 김수혁의 회상씬에서의 일.

―이름은…… 라이카예요. 그 녀석도 다나 씨한테 관심이 좀 많아 보였어서.

라이칸스로프 종족의 장인. 라이카.

그녀는 얼마 뒤 죽을 운명이다.

*    *    *

김수혁은 원래부터 상당히 외골수적인 기질을 가지고 있었다. 오직 단 하나. 대장장이라는 직업에 대한 열망을 가지고 제련에 또 제련…… 완벽한 ‘형(形)’에 대해서 집착을 하는 인물. 작중에서는 그렇게 묘사되었다.

그러니까 원래라면 내게 만들어 준 무기들. 그것은 극단적으로 그 외형의 미적 아름다움과 강도에만 온 신경을 쏟은 작품이었어야 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은 내게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다. 지금 그가 만들어 주는 장비들이 내 특성에 더 잘 맞고, 성능도 좋았다.

그에게 그런 변화의 계기를 가져다준 이. 그게 바로 라이카다…… 그런 이야기를 김수혁은 스토리 후반부에 한다. 많은 사람들이 그래서 그 라이카가 김수혁의 연인이 아니었나 이야기를 하곤 했다.

하지만 김수혁의 말을 들어 보면 딱히 그런 건 아닌 모양이었다. 정확히는 김수혁 쪽에서는 그런 생각이 조금은 있는 것 같은데, 라이카 쪽이 영 아닌 모양.

사실 애초에 수인들은 혈통주의가 굉장히 심한지라, 다른 종족과 피를 섞지 않으려고 한다. 라이카도 별종이라고는 하나 그런 면에서 예외는 아닌 것 같았다.

“기부니 이상한 고시애오…….”

아무튼 김수혁이 그렇게 대장장이로서 꽃필 수 있게 계기를 제공해 준 라이카. 그녀는 안타깝게도 김수혁이 세상에 제대로 모습을 드러내기 이전에 그대로 죽어 버린다. 이유는 빌런의 습격을 받아서라고 했다.

그 때문인지 지금 그녀에게 향하는 내 심정이, 뭔가 조금 오묘하다. 물론 펜타곤에 있는 생도들 중에도 스토리 후반부에 죽어 나간 이들이 꽤나 많겠지만, 그들의 이야기는 조명되지 않는지라, 딱히 볼 때마다 이상한 감정이 느껴진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빌런에 의해 죽을 운명인 이.

하지만 그 시점도, 누구에게 죽는 것인지도 모르는 탓에 내가 미래를 바꿀 방법은 없었다.

나는 얼마 뒤에 죽을 사람을 마주하고, 하하호호 웃으며 이야기를 나눌 만큼 대담하지가 못했다.

똑똑똑.

그래서, 작업실을 두드리는 손길마저 조심스러워진다.

잠시 김수혁이 모종의 이유 때문에 대장간을 비운 사이, 라이카가 이를 지키고 있다고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안에서 반응이 온다.

“뭐야, 벌써 온 건가.”

안에서 굉장히 여린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생각했던 늑대 수인 여성의 목소리와는 조금 달랐다. 선입견이겠지만, 조금 시니컬하고 털털한 목소리일 줄 알았는데.

문이 열리고, 모습을 보이는 라이카.

나는, 그녀를 보고 순간 화들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라, 라이카 언냐야?”

“그래, 내가 라이카야. 수혁이한테 얘기 듣고 온 거 맞지? 이름이…… 다나였나?”

씨익 웃으며 악수를 하기 위해 손을 내미는 그녀의 모습.

나는 그에 얼굴을 붉혔다.

“호에에, 왜 다 벗고 있는 고애오!”

그녀는 가볍게 태운 연갈색의 나신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다.

천 쪼가리 하나 없이.

“더워서.”

이내, 내 호들갑에 대한 대답이 돌아왔다. 허망하리만치 간단한 그 답변에, 나는 단지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흐느낄 수밖에 없었다.

“호에에에…….”

사실, 좀 보고 싶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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