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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기븝미쟝이 되었다-67화 (67/172)

#67화.

“이상한 애네.”

라이카는 내 부탁에 옷을 입으며 말했다. 졸지에 옷 좀 입어 달라고 했다가 이상한 애가 되어 버렸다.

그런데 그 입는 옷조차도 심히…… 야했다.

김수혁이 라이카의 영향을 받은 건지, 아니면 라이카가 김수혁의 영향을 받은 건지 모르겠는데, 그 디자인이 평소에 김수혁이 내게 만들어 주던 옷과 상당히 유사했다.

거기에 비교적 밋밋한 내 몸에 비해서 그녀는 완숙한 몸매를 가지고 있었으니, 더 민망한 모습이었다.

“언냐야…… 헤으으응…….”

그녀가 입은 것은 블랙 슈트.

정장을 뜻하는 것이 아닌 라텍스 재질과 같은 질감의, 몸에 착 달라붙는 블랙 슈트였다.

그 슈트를 따라 완벽하게 드러나는 굴곡에 눈길이 갔다. 물론 금세 내 손이 눈을 가렸다. 야한 거 안 돼, 하면서.

다만 그녀는 정작 아무 신경도 쓰지 않았다.

그저 씨익 웃는 얼굴로 내게 말했다.

“귀엽다. 너 수혁이가 왜 확 넘어갔는지 알 것 같네.”

“호에에.”

그, 확 넘어오지 않았어도 됐는데. 원래라면 나는 김수혁과 적당한 협력자 수준의 관계를 유지했어야 했다. 원작에서처럼.

물론 그 정도의 관계였다면 위그드라실로 만든 지팡이라든가, 그런 물건을 내게 무상으로 만들어 주지 않았겠지만…….

“도대체 이런 걸 누구 주려나 하고 생각했는데, 너 정도면 충분한 것 같기도 해. 잠재력이 무슨. 용종(龍種)도 아니고 말이야.”

잠재력. 나는 그 단어에 순간 귀를 기울였다. 설마 이 여자도 김수혁과 같은 눈을 지니고 있는 건가.

김수혁은 본래 원작에서, 자신의 특별한 판별안으로 그 사람의 현재 능력과 성장 기대치를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를 통해 자신의 무구를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들을 선발했다. 일개 장인치고는 상당히 광오한 태도였지만, 그 실력으로서 입증을 하니 어쩔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검사를 받았다.

그것은 흔히 볼 수 없는 희귀한 특성. 그런데 말하는 거로 봐서는 라이카도 그와 같은 특성을 지니고 있는 모양이었다.

“생긴 것도 딱 내 취향인데, 눈 딱 감고 그냥 잡아먹어 버릴까…….”

“호에에에에에!”

누굴 잡아먹어, 미친.

도대체가 무슨 주변에 꼬이는 사람마다 정상이 없다.

내가 경기를 일으키며 몸을 부들대자, 라이카는 웃음을 빵 터뜨리며 내 팔을 쳤다.

“하하하하! 장난이야 장난…… 어?”

터억.

그 가벼운 터치, 하지만 그것은 라이카의 기준이었고, 나는 대략 수 미터 정도를 부웅 날아갔다.

과거였다면 그대로 벽이나 어디 처박혀서, 질질 눈물이나 흘렸겠지만 지금은 달랐다.

“마나 씨!”

순간 펼쳐 낸 것은 공중 부양, 레비테이션 마법. 그와 동시에 날아가던 내 육체가 정지하고, 공중에 살짝 뜬 상태가 되었다.

그대로 착지하며 두 발을 지면에 붙였다. 그와 동시에 뿌듯함이 올라왔다.

성장했구나, 나.

그리고 그런 감정은 외적으로 드러났다. 자동으로 벌려지는 두 팔, 마치 성공적인 공연이라도 마친 듯이 자랑스레 외쳤다.

“챠란!”

“푸하하하하!”

라이카는 그와 동시에 대차게 웃음을 터뜨렸다.

순간, 민망함이 온몸을 타고 올랐다. 당장에라도 외치고 싶었다. 이거 내가 한 거 아니라고.

*    *    *

라이카는 나에 대해서 굉장히 많은 질문을 했다. 나 또한 그녀에 대해 궁금한 것이 많았던지라, 같이 질문을 했지만 이쪽은 그렇게 많은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

라이카가 대답하기를 꺼려 해서? 아니, 전혀 그렇지 않았다. 되레 그녀는 내게 상당히 호감이 생긴 듯, 자기 이야기를 많이 해 주려고 했다.

하지만 문제는 이 답답한 어휘력. 자세한 질문을 하기에는 몸이 따라 주질 않았다. 단답형의 대답이 나올 1차원적인 질문만이 가능했기에, 내가 알고 싶은 이야기를 물어보기 위해서는 서너 번의 과정이 필요했다.

물론 그럼에도 그녀에 대해서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었다.

“나? 당연히 수인이지. 그러면 여기 뒤에 꼬리는 뭐, 어디에 꽂아 두기라도 했겠어?”

라이칸스로프가 맞냐는 질문에, 그녀는 자신의 꼬리를 보여 주었다.

살랑거리는 순백의 꼬리. 그녀는 엉덩이를 흔들며 꼬리로 내 얼굴을 슬쩍 간지럽혔다.

“호에에, 간지러운 고애오.”

“후후.”

김수혁과 어떻게 알게 되었냐는 질문에는, 굉장히 시니컬한 답변이 돌아왔다.

“걔가 나한테 찾아와서 야금술을 가르쳐 달라고 그랬거든. 그렇다고 내가 딱히 스승이라거나 그런 건 아니고…… 솔직히 내버려 뒀어도 알아서 잘했을 녀석이라.”

간단하게 표현하자면 사제 관계. 하지만 라이카는 그것을 부정했다. 실력이 서로 비슷한 둘이 사제 관계가 될 수 있을 리가 있냐는 이유에서였다.

“나는 그냥 그 편협한 사고방식이나 좀 바꿔 줬을 뿐이야. 애가 너무 매사에 진지하고, 선비 기질이 있어 가지고. 지금은 나랑 취향을 공유하는 사이지.”

흐흐, 하고 웃는 모습에서 김수혁이 변태가 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바로 이 사람 때문이구나. 내가 장비 하나 받을 때마다 착샷을 보내야만 하는 이유가.

대략 그런 질문들. 그것을 제외하고도 시시콜콜한 대화가 대략 30분 남짓 이어졌다. 생각보다 그 변태적인 기질만 아니라면, 이야기가 잘 통하는 사람이었다. 성격도 시원시원했고.

“야, 그나저나 아직 물건도 안 보여 줬네. 머릿속에 어떻게 한번 먹어 볼까 생각하느라 참.”

“호에?”

“아, 미안 속마음이 나와 버렸네. 쓰읍.”

침을 삼키며 미소를 띠는 라이카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저게 도대체 농담인지 진담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녀는 어딘가로 들어가 기다란 남색 케이스를 들고 왔다. 나는 그것이 단순한 케이스가 아님을 알아챌 수 있었다.

“청금석인가여…….”

“맞아. 가공한 거고.”

청금석(靑金石). 라틴어로는 라피스라줄리(lapis lazuli).

보석으로 여겨진 역사가 가장 길다고 하는 이 광물은, 히어로 판타지 세계관에서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었다.

그 이유는 바로 청금석이 특정한 가공을 거쳤을 때 마력을 차단하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자체적으로 마력을 내포한 아티펙트를 운반할 때, 청금석 케이스를 자주 사용하고는 했다. 혹여 그 안에서 흘러나온 마력이 다른 장치나, 아티펙트를 손상시킬 수도 있었으니.

그 케이스가 내 앞에 놓이자, 침이 저절로 꿀꺽 넘어간다. 이게 그 종결템인가. 강화만 충분히 붙어 준다면 멀티에서도 떨어지지 않는 스펙을 자랑할 그 녀석.

헤벌쭉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자, 라이카가 한 마디 했다.

“마법사는 마법사구나. 지팡이 생겼다고 그렇게 헤벌쭉해지는 거 보면.”

그러면서 케이스를 열고, 그 안을 보여 주었다.

안에는 굉장히 화려한 디자인의 지팡이가 있었다. 마치 두 마리의 용이 기둥을 타고 올라가듯, 나선형으로 생긴 지팡이의 기둥 부분과 그 끝에 달려 있는 커다란 초승달.

나는 그 아름다운 모습에 잠시 넋을 놓고 바라보고 있었다. 어쩐지, 위그드라실로 만드는 거라고는 해도 김수혁치고 시간이 오래 걸리더니.

“예쁘지? 나랑 수혁이랑 이거 만든다고 꽤 고생했어.”

뿌듯하다는 듯이 말하는 라이카.

아무래도 이건 김수혁과 라이카가 공동 작업을 한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김수혁이 믿을 만한 사람이랑 같이 작업을 한다고 했는데. 그게 바로 라이카였던 모양이다.

애초에 오늘 그가 나한테 전화를 할 때부터, 라이카가 아니었으면 지팡이를 완성하지 못했을 거라고 했으니 아마 맞겠지.

나는 부들거리며 손을 뻗었다.

이윽고, 손에 지팡이가 닿자 문자들이 가득 담긴 창이 눈앞에 떠올랐다.

위그드라실의 지팡이

―마력 증폭(S+)사용자의 마력을 그 능력에 따라 25%~200%까지 증폭시킵니다.

―이계 연결(S+)정령계, 환계, 영계, 마계, 천계, 신계와 연결된 좌표를 할당하고 있습니다.

―부유(S)공중에 뜰 수 있습니다.

―지(地)속성 증가(S)사용자의 지속성 친화력을 크게 상승시킵니다.

―풍(風)속성 증가(A+)사용자의 풍속성 친화력을 크게 상승시킵니다.

―수(水)속성 증가(A+)사용자의 수속성 친화력을 크게 상승시킵니다.

―화(火)속성증가(A)사용자의 화속성 친화력을 크게 상승시킵니다.

―마력 축적(A)사용자가 마력을 사용할 때마다 내부에 그에 7%에 해당되는 마력을 축적합니다. 사용자의 의지에 따라 사용 가능합니다.

―자유 의지(A)사용자가 소유권을 박탈당했을 때, 자유 의지에 따라 행동합니다.

그리고 나는 입을 쩍 벌릴 수밖에 없었다.

도대체 이 사람들, 뭘 만든 거야. 나는 그대로 라이카에게 달려가 안겼다.

“언냐야! 고마오요!”

그것은 물론 내 의지가 반영되지 않은 것.

라이카는 갑작스러운 포옹에 놀랄 법도 했건만, 군침을 삼켰다.

“쓰읍, 아. 진짜 먹으라고 막 갖다 주는데.”

그녀는 미치겠다는 듯이, 눈을 뒤룩뒤룩 굴렸다. 마치 대장간 입구에서 김수혁이 나타나진 않을지 살피며.

……다행히도 그날 먹히지는 않았다.

*    *    *

“호에에에, 나오는 고애오!”

나는, 내 방구석 한 편에 시약으로 마법진을 그려 놓은 채 계속해서 마법을 시전하는 중이었다. 그것은 바로 소환 마법.

피시시식.

하지만, 그것은 제대로 되지 않았다. 이번에도 그저 마석만을 소비한 채 연기만 나고 끝나 버리는 마법. 어떻게 지팡이빨로 될 줄 알았더니 역시나 쉽지가 않다.

“호에에, 좀 나중에 해야 하는 걸까여어…….”

내가 이 지팡이의 옵션을 처음 확인했을 때 가장 먼저 눈이 뒤집힌 것은, 바로 이계 연결이라는 항목에서였다.

마력 증폭이 적어도 A+ 이상은 뜨리라는 걸 확신하고 있었기에, S+라는 등급을 봤을 때 물론 놀라기는 했어도 납득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옵션에 대해서는 전혀 상상조차 하지 못한 것이었다.

아마도, 위그드라실이 세계수로서 전 차원에 존재하고 있기 때문일까.

모든 이계와 연결이 가능하다는 옵션이 붙어 버렸다.

내가 지금보다 수준이 더 많이 올라간다면, 도대체 어떤 짓거리들을 벌일 수 있을지 상상이 가지 않을 정도였다.

물론 지금에서야 연결할 수 있는 차원이 한정적이었다.

정령계, 환계, 영계 정도. 이 셋은 애초에 이쪽. 그러니까 히어로 판타지 설정상 중간계와 상당히 가까운 곳이었다.

실제로 정령 같은 경우에는 엘프 마을에서 그냥 흔하게 볼 수 있지 않던가.

귀신 같은 경우에는 심지어 필드에서 등장하기도 하고. 소울이터나 밴시 같은 놈들처럼.

그나마 가장 거리가 먼 것이 환계였는데, 고위 마법사가 되면 드물게 환수를 부리고 다니기도 했으니, 신계나 마, 천계와 비교할 바는 못 되었다.

아무튼, 그런고로 나는 지금 환수를 소환하기 위해 환계와 연결하기 위한 작업을 계속해서 시도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데, 그게 생각보다 잘 되지 않았다.

“븝미쟝 너모 약한 고시애오…….”

최근 들어 조금 자만했는데, 아직 나는 확실히 약하다. 마법적인 수준만 따지자면 네 자릿수 안에 든다고 깝죽댔는데, 그건 세계 랭킹도 아니고 고작 국내 랭킹이었다. 아직도 한참 먼 길이 남아 있었다.

나는, 다시금 마석을 각 자리에 배치하고 마력을 불어 넣었다.

이번에도 안 되면 당분간 환수는 포기해야겠다고 마음먹으며.

우우웅.

마법진에서 불이 들어왔다. 지금까지 열에 일곱은 이런 반응을 보였다. 물론, 그 모두 이 다음 단계에서 실패했지만.

“호에에?”

하지만, 이번에는 조금 다른 것 같았다.

그대로 유지되며, 더 밝게 명멸하는 마법진.

그리고 어딘가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과 함께, 잠시 필름이 끊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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