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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기븝미쟝이 되었다-68화 (68/172)

#68화. 환수 계약을 하는 고애오!

우욱.

정신을 차리자, 곧바로 욕지기가 몰려왔다.

나는 그대로 땅바닥을 짚은 채 구역질을 해 댔다.

“므웨에에엙…….”

물론 먹은 게 딱히 없는지라 내용물이 나오지는 않았다.

잠시 뒤, 어지럼증이 가신 나는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암갈색의 너른 대지와, 불규칙적으로 솟아 있는 이상한 지형들. 그것을 확인한 뒤 입에서 불확실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여기가……?”

여기가 정말 환계인가? 그 의문에 대한 답은 얼마 지나지 않아 나왔다. 아마도, 여기가 환계가 맞는 것 같다고. 얼마간 여러 가지 자료를 알아보며, 게임에서도 제대로 설명되지 않았던 그 환계에 대한 정보. 그중에서 이런 대목이 있었다.

환계는 여러 가지 세계에서 상상되어 만들어진 부산물 같은 것이라는 설명. 그렇기에 통일되지 않은 각각의 구역과 환수들이 있다는 것이었다.

예를 들면 삼족오라든가, 해태 같은 신수들도 이곳에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꾸준히 상상하여 만들어 낸 사념이 실재하게 되는. 환계는 그런 곳이었다.

그렇다면 주변의 그 통일되지 않은 풍경 또한 이해가 되었다.

우뚝 솟아 있는 현대식의 건물들. 철골 구조가 드러난 허름한 곳도 있었고, 멀끔한 곳도 있었다.

그와 대비되게 완전히 야생 그 자체인 밀림과, SF에서나 나올 법한 미래 건물 같은 것, 그리고 웬 거대한 신전 같은 건물도 드문드문 보였다.

정말 알 수 없는 곳이었다.

나는 한숨을 내쉬다가, 중요한 사실 하나를 떠올렸다.

“하와와, 븝미쟝…… 그런데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요……?”

애초에 환계로 들어오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환계와 연결된 마법진으로 환수와 계약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런데 아예 내가 이쪽으로 빨려 들어오고 만 것이었다.

이런 상황은 상상조차 하지 못한 일이었고, 당연히 대비책 따위가 마련되어 있을 리가 없었다.

나는 그 사실을 깨닫고, 땅에 떨어져 있던 지팡이부터 잡았다. 그리고 오기 전에 했던 것처럼 예의 주문을 영창했다.

“돌아가는 거에양!”

끝내 환계와 연결하는 마법을 모두 완성해 내었지만, 당연히 아무 반응도 일어나지 않았다. 애초에 이 마법 자체가 중간계에서 환계와 연락을 취하기 위한 통신 마법 비슷한 것이었으니…….

진짜 미치겠네.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긁자, 손이 뻣뻣하게 굳는다.

“븝미쟝 애기 두피 아야해여…….”

지랄을 하세요 씨팔.

“호에에, 일다는 돌아다니는 고애오…….”

잠시 뒤, 이대로 앉아 있어 봤자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걸 깨닫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당연히 위험한 짓일 수도 있었다. 환계에 대한 이야기는 일반적으로 퍼져 있지가 않았으니까.

갑자기 이상한 환수가 나타나서, 단매에 나를 때려죽인다고 해도 나는 저항할 방법이 없었다. 웬만하면 내 한몸 정도는 지킬 자신이 있었지만, 지금껏 세계관 내에 등장한 환수들은 죄다 한 자릿수 등급의 몬스터는 찜 쪄 먹고도 남을 정도로 강했다.

모두 그러라는 법은 없었지만 그래도 위험한 것은 사실이었다.

다만 현재로서 이것 외에 어떠한 방책도 없는 것 또한 마찬가지였고.

“호에에…….”

나는 그나마 친근감이 있는, 현대식 건물에 다가갔다. 그래도 뭔가 눈 여섯 개 달린 괴물 슬라임 같은 녀석은 나오지 않을 것 같았던지라.

고급 빌라 같은 비주얼의 그 건물.

나는 입구의 검은색 창살 앞에 우두커니 서게 될 수밖에 없었다.

아무래도 내부에서 열어 줘야 들어갈 수 있는 구조 같았는데, 그냥 날아서 들어갈까 생각도 해 봤지만 뭔가 수상했다.

“돌멩이 씨! 날아가는 고애오!”

창살 위로, 바닥에 떨어져 있는 돌멩이를 던져 봤다.

물론 완력으로 던져 봤자 한계가 명확했으니, 마나의 도움을 조금 받았다.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가던 돌멩이는, 무언가에 막힌 듯이 툭 소리를 내었다.

그리고.

콰드드드득!

“호에에에에!”

마치 프레스에 눌린 것처럼 우그러지더니, 가루가 되어 버렸다.

“브…… 븝미쟝…… 븝가루되기 싫은 고애오…….”

만약에 무모하게 넘어가려고 했다면, 저 돌멩이의 모습이 내가 되지 않았을까. 식도를 타고 침이 꼴깍 넘어갔다.

그냥, 정상적으로 들어가자.

그렇게 마음먹은 나는 조심스럽게 벨을 눌렀다.

“계시는 거야요오오오…….”

그러고는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솔직히 저런 광경을 보고 누가 쪼그라들지 않겠는가. 절대 내가 겁이 많은 게 아니었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고, 응답이 들려오지 않자 나는 고개를 끄덕거리며 뒷걸음질을 쳤다.

“그, 그래여…… 여기는 아무도 없나 봐양…… 븝미쟝, 다른 곳으로 가는 고애오!”

아쉽게 됐어얌.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내뱉으며, 다른 건물로 뛰어가려던 그 때였다.

삐익.

“호에에에엑!”

창살에서 울리는 소리, 그와 동시에 입구를 단단하게 지키고 있던 그것들이 좌우로 갈라지며 대문을 터 주었다.

다만 나는 곧바로 그 안으로 들어가지 못했다. 아까 전에 봤던 광경이 너무 충격적인지라.

“호엥.”

그 때문에 쪼그려 앉아, 한 차례 돌을 던져 봤다.

다행히 이번에는 그대로 안쪽을 통과하는 돌멩이.

그제야 그 안으로 발을 내딛을 수 있었다.

“하와와와…….”

밖에서는 높은 담벼락 때문에 잘 보이지 않았는데, 내부에 여러 가지 나무들이 있었다. 그중에는 내가 익히 아는 과실들이 열린 것도 있었는데, 일반적인 사과나 배 따위가 아닌 먹으면 마력 증진에 효과가 있다거나 하는 것들이었다.

“탐나는 고애오…….”

나는 쓰읍, 한 차례 침을 삼켰다.

물론 비슷한 효과를 내는 약초들이 자라는 꽃밭을 언제든 갈 수 있지만, 엄연히 약초와 과실은 다른 것이었으니까.

하나 그냥 따 가?

악마의 유혹이 머릿속에서 맴을 돌고 있을 때, 출입문에서 음성이 들려왔다.

[그냥 들어오는 게 좋을 거예요.]

맑고 고운 여성의 목소리, 그와 대비되게 약간의 언짢음이 섞여 있는 그 목소리를 듣고 나는 황급히 대답했다.

“아, 알겟서여 언냐야…….”

겨우 저 과일 하나 딴 대가로, 내 목이 따이기는 싫었다.

최대한 빠른 속도로 빌라 내부에 들어갔다.

*    *    *

띵!

옛날 엘리베이터에서나 들었던 예의 그 소리.

그와 동시에 문이 열렸다. 덜커덩, 하는 소리가 영락없이 노후화가 진행된 엘리베이터 같다.

그를 나서자 한 개의 문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조금 특이한 구조다 싶었다. 보통은 한 층에 세대 두 개 이상이 들어가지 않나?

물론 그런 구조에 대한 의문을 가지는 건 굉장히 쓸데없는 짓이었다. 여기서 일반적인 방식으로 건축을 해서 이런 건물이 만들어졌을 리가 없었기에.

그나저나 또 문이 닫혀 있는데.

이번에는 벨도 없었다.

노크를 한다거나 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는데, 내부에서 누군가 문을 열고 나왔다.

덜컥.

“호에……?”

이내, 그 안에서 등장한 것은 내가 생각지도 못한 인물이었다.

“일리아…… 언냐야?”

일리아와 똑 닮은, 아니 현재 모습에 비하자면 그로부터 대략 5~6년이 지난 시점이라고 해야 할까.

아무튼 그렇게 생긴 이가 등장했던 것이다.

그녀는 내 당황에도 아랑곳 않고, 생긋 웃으며 안쪽을 가리켰다.

“들어와요.”

“고마오요…….”

나는 혼란스러운 머릿속을 겨우 진정시키고 안으로 향했다.

그곳은 역시나 현대식 건물 내부와 같은 생김새의 공간.

어디 앉을 곳 없나. 나는 곧바로 소파나 의자를 찾았다. 그 잠시 걸었는데도 다리에 아릿한 고통이 찾아왔기에. 그나마 스태프를 계속 땅바닥에 짚고 다녀서 견딜 수 있었다.

“후에에…….”

소파에 풀썩 내려앉자, 종아리에 찾아온 고통이 사라진다.

잠시 노곤한 표정으로 그렇게 소파의 감촉을 느끼고 있는데, 다시금 목소리가 들려왔다.

“피곤했나 봐요.”

나는 그에, 순간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건 일리아 목소리가 아닌데.

그리고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을 바라봤을 때, 나는 또 한 번 놀랄 수밖에는 없었다.

“나츠키 언냐야?”

“아, 이 사람 이름은 나츠키군요?”

나츠키답지 않게 여유로운 표정과 말투를 사용하는 그녀.

그에 위화감이 분명하게 느껴지는 것이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그것만 아니라면 진짜 나츠키와 이 사람을 구별할 수 없었을 것이다.

아니, 사람일 리가 없지.

나는 그녀를 노려봤다. 일리아의 모습일 때는 딱히 뭐라고 말하기가 좀 그랬는데, 나츠키의 모습이 되니 뭔가 자신감이 샘솟았다.

“언냐야…… 도플갱어. 맞져?”

“오, 아는군요?”

그녀는 생긋, 웃음을 띠우며 다른 형체로 변해 갔다. 꾸물거리면서 인체가 재탄생되는 그 모습이 영 보기가 거북했다.

이어 바뀐 모습은 다시금 일리아의 모습.

아까 전의 그 성장한 모습이 아닌, 현재 일리아의 모습이었다.

그런데 이전과는 달리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완벽한 나신이었다.

“야한 거 안 대!”

그와 동시에 고개가 휙 돌아갔다. 같은 방에서 지내며 반쯤 벗은 모습이야 이따금 보긴 했는데, 저렇게 다 벗은 모습을 보니 얼굴에 열이 올랐다.

후후.

그런 내 모습을 보며 일리아, 아니 도플갱어가 웃음을 흘린다. 다행히 녀석은 옷을 입은 모습으로 변했다.

“재밌는 분이시네요.”

이번에는 일리아도 나츠키고 아닌, 아예 내가 모르는 모습으로 변한 녀석.

백발에 흑안,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짙은 갈색이 아닌 완전히 검은색의 동공을 가진 여자가 나를 응시했다.

도플갱어(Doppelgänger).

자신과 똑같은 환상을 보는 그 현상으로 알려져 있는 단어.

하지만 히어로 판타지 내에서의 도플갱어는 몬스터로 취급되고 있었다.

실상 따지자면 그것들은 대부분 슬라임이었다.

고등한 슬라임 같은 경우에는 다른 이들의 모습을 거의 완벽하게 복제해 낼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내가 지금 보고 있는 것은 ‘진짜’ 도플갱어였다.

슬라임들 같은 경우에는 외형을 복제해 내더라도, 그 외의 것들은 복제가 불가능했다.

목소리라든가, 마력 파장 같은 것들이 그 예시였다. 그런데 눈앞의 저 녀석은 그 모든 것을 똑같이 복제했다.

나는 그 때문에 처음부터 이 녀석을 경계했다. 상대의 기억 속에 있는 인물들까지 수월하게 복제해 낼 수 있으며, 다른 이를 복제하지 않고 그 자체로도 강력한 힘을 가진 존재.

도플갱어, 이 녀석은 게임 스토리 후반부 최악의 재앙 중 하나가 된다.

그런 녀석이 지금 내게 말을 걸고 있었다.

“갑자기 손님이 찾아와서 깜짝 놀랐지 뭐예요. 원래 제 저택에는 다른 환수들이 거의 찾아오지 않으니…… 그런데 심지어 환수도 아니고 인간이 찾아오게 될 줄은 몰랐군요.”

후일 여러 인간들의 모습으로 자신을 변장하여, 세계 각국을 혼란에 빠뜨리고 수많은 사람들을 학살하게 되는 녀석.

하지만 지금 보여지는 모습으로만 봐서는 전혀 그런 짓을 자행할 녀석 같지가 않았다.

만약에 내가 이 사실을 몰랐다면 전혀 경계하지 않았을 법한, 자연스러운 태도였다.

한동안, 녀석은 심심했었던지 여러 가지 말을 내게 마구 내뱉었다. 나는 그래여? 혹은 호에엥 따위의 감탄사를 내뱉으며, 대화를 이어 갔다.

그 순간에도 나는 당장 어떻게 도망가야 할지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리고 있었다. 제 발로 호랑이 굴에 기어 들어온 꼴이었으니.

하지만, 내 생각과는 다른 방향으로 상황이 흘러가고 있었다.

“여기 온 건, 계약하러 온 거죠?”

“호에에…… 그런 고애오.”

갑자기 계약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는 녀석.

대화를 하며 알게 된 사실인데, 본래 환수 계약 중에 더 고등한 방법이 직접 환계로 와서 계약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니까 내가 실수를 한 게 아니라는 뜻이었다.

“혹시 계약할 환수로 생각해 둔 녀석이라도?”

“어…… 없는데여…….”

당연히, 여기 와서 본 환수라고는 이 녀석밖에는 없으니까. 그에, 녀석이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이네요. 오늘 한 놈 죽일 뻔했는데.”

“주겨여……?

누굴, 죽여?

날 말하는 건 아니겠지?

그에 경계 태세를 취하는 내게, 도플갱어가 말했다.

“저랑 계약해요!”

“호에에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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