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애기븝미쟝이 되었다-69화 (69/172)

#69화.

[그 녀석이 나타난 후에, 우리는 서로를 믿을 수 없게 되었다.]

[내 친우가 진짜인가? 혹은 도플갱어인가. 그런 의심을 그만둘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런 의심을 해 봤자 달라지는 건 없었다. 녀석은 진짜와 다를 바가 없었으니까.]

[아까까지만 해도 길드장의 모습을 하고 있던 녀석이 자신의 정체를 드러냈다. 그 녀석이 웃으며, 내 모습으로 변할 때. 나는 그만 정신을 잃어버렸다. 아마 이놈은 당분간 나로서 살아갈 것이다.](@서체 변경 끝)

도플갱어에 대한 히어로 판타지의 작중 내부 언급들.

그에는 완벽한 복제 능력과 더불어 악의적인 여러 행위들에 대한 내용이 담겨 있었다.

복사 대상을 죽이고 대신 그 모습으로 살아가는가 하면, 한 대상의 모습으로 변해 악행을 저질러 죄과를 뒤집어씌우기도 한다.

어느 쪽이건 인간들에게는 최악의 재앙 중 하나였음이었다. 그 본신의 힘만으로도 충분히 강하지만, 빌런들에게 대항해 하나로 뭉쳐야 할 이들이 서로를 의심하고 분열하게 되는 계기. 그것을 도플갱어가 만들어 낸 것이다.

“계약하자구요. 혹시…… 싫은 거예요?”

그런데 그런 도플갱어가, 지금 내게 시무룩한 표정으로 계약을 하지 않을 거냐고 물어보고 있었다.

물론 녀석은 상당히 온화한 어투로 말하고 있었지만, 방금 전에 죽이니 마니 하던 이야기 때문에 나는 식은땀을 흘릴 수밖엔 없었다.

“혹시 다른 환수들이랑 계약을 생각하고 있는 거면, 그 생각 접어도 될 거예요. 어차피…… 나랑 하게 될 테니까.”

내가 잠시 대답을 망설이자, 녀석이 음산한 미소를 띠우며 말한다.

나는 그 미소가 뜻하는 바가 무엇인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바보가 아니고서야, 아까 전의 말과 연결시켜 보면…… 당연히 나랑 계약하려고 하는 환수들을 죄다 죽이겠다는 소리겠지.

그게 단순히 협박이 아니라, 그럴 능력이 있는 녀석이라는 걸 알기에 등골이 오싹해진다.

또한 본래 원작에서 자행했던 온갖 짓거리들을 생각하면 설마 그러겠어?라는 의문조차 불식된다.

나는 그냥, 좀 괜찮은 환수 하나 계약하려고 했을 뿐인데.

어쩌다 상황이 이렇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애초에, 왜 얘가 환수인 건데?

“그런데 언냐야…… 왜 저랑 하려는 고애오……?”

나는 가까스로 마음을 다잡고, 도플갱어에게 물어봤다.

도대체 왜 나랑 계약을 하려고 하는 것인지.

결국에 동년배들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내가 강한 편이기는 하지만, 실제 세계관 내의 강자들과 비할 바는 못 되었다.

도플갱어보다 몇 단계는 아래 서열인 환수와도 계약을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인데, 이 녀석이 나한테 굳이 이렇게 매달리는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음…… 귀여워서?”

“호에에……?”

“라고 일리아라는 그 여자가 자주 말했던 것 같네요.”

도플갱어는 미혹적인 미소를 띠어 보였다. 어느새 또다시 다른 이의 모습으로 변해 있었는데, 이번에는 아카데미 내에서 그닥 친하지는 않아도 안면을 트고 있는 한 여생도의 모습이었다.

본래 안경을 쓰고 있어 그 인상이 수수해 보이던 여자애였는데, 도플갱어 같은 경우에는 안경을 벗은 모습이라 인상이 뚜렷하게 나타난다.

“당연히 그런 이유는 아니고, 그냥 조금 궁금하더라구요.”

“호에에에…… 머가여?”

“정체를 알고 있으니, 아마 아는 사실이겠지만…… 저는 어떤 모습이든 복제해서 변신할 수 있답니다. 만약에 대상이랑 직접 접촉을 하게 되면 겉모습 외의 다른 것들까지 복제할 수 있죠.”

당연히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실상 지금 도플갱어가 변한 일리아와 나츠키 그리고 저 생도 같은 경우에는, 내 기억을 통해 재구성된 모습인지라 실제와 차이가 어느 정도 있을 것이었다.

물론 외형이라거나 평소의 몸짓이나 말씨 같은 경우에는 거의 같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목격하지 못한 그들의 모습, 그리고 가진 바 특성 같은 경우에는 완벽하게 복제하지 못한다. 오로지 내 기억 속에 있는 내용들만 복제할 수 있는 것이다.

다만 이런 문제조차 녀석이 직접 대상에 접촉하면 모두 해결되는 것이었다.

그때는 정말 대상의 모든 것들을 빼앗아 올 수 있었다. 진짜와 다름이 없어지는 것이다.

“이래 봬도 꽤나 대단한 능력이라서, 수천 년 묵은 드래곤 정도를 제외하곤 다 복사가 가능해요. 그런데…….”

녀석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내 손을 잡아채었다.

순간 나는 앞으로 딸려 갈 수밖에 없었고, 도플갱어는 내 눈을 마주 보며 말했다.

“이상하단 말이에요. 왜 당신으로는 변할 수가 없는지.”

“호에에?”

나는 복제가 안 된다?

그 말에 나 또한 의문이 떠올랐다.

도플갱어의 말대로 녀석은 분명히 웬만한 대상은 다 완벽하게 복제가 가능했다.

하지만 별것도 아닌 내가 복제가 되지 않는다…… 그건 분명히 이상한 일이었다.

“흐음, 이상해요. 이상해.”

내 손을 조몰락거리며 중얼거리는 도플갱어.

다른 모습도 아니고, 여생도의 모습으로 그러고 앉아 있으니 기분이 요상해졌다.

녀석 스스로의 분위기 때문일지, 아니면 이 생도가 원래 그렇게 생긴 것인지.

묘하게 색기가 흐르는 모습이어서 더욱 그러했다.

“이제…… 놔주는 고애오.”

“오, 미안해요.”

녀석은 마치 고의가 아니었다는 듯, 내 손을 놓으며 싱긋 웃었다.

“그래서, 계약을 할 건가요?”

녀석은 이제 말해 줄 건 다 말해 주었다는 듯, 팔짱을 끼고 내게 물어봤다.

하지만 나는 그에 시원스러운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도플갱어가 복제가 안 되는 대상에게 의문을 가지고, 관심이 생겨 계약을 하려고 한다…….

어찌 보면 타당한 이유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의심이 들기도 했다. 단지 그뿐인가?

혹여 중간계로 넘어와서 원작처럼 깽판을 치려는 의도는 아닐까?

하지만 그렇다고 거절하기에는 당장 내 목숨이 위험할 것 같았다.

다른 환수들을 도륙 내겠다는 이야기를, 농담처럼 꺼내는 녀석 앞에서 미쳤다고 반항을 하겠는가.

잠깐의 정적, 그것이 끝난 뒤 나는 결정을 내렸다.

결국에는 이것밖에는 답이 없었으니까.

“계약해여.”

“오케이.”

후우웅!

도플갱어의 시원스러운 대답, 그와 동시에 순간 빛이 명멸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호에……?”

나는, 환계로 가기 전 있었던 방 안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너무 대충 아닌가여어…….”

뭐가 이렇게 간단해.

순간이나마 긴장했던 내가 바보스러워졌다.

*    *    *

도플갱어가 중간계로 넘어오자마자 난동을 피우지 않을까?

그 생각은 얼마 지나지 않아 사라졌다.

어차피 지금 내 수준으로는 도플갱어를 소환하는 것 자체가 불가했으니까.

애초에 환수가 주인보다 수십 배 이상 강한 것이 말이나 되는가? 적어도 내가 일선에서 뛸 수 있을 정도가 되기 이전까진, 환계로 직접 가지 않는다면 도플갱어를 볼 일이 없을 것이었다.

그게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조금 허탈해졌다.

결국에는 당장에 써먹을 수 있는 환수와는 계약하지 못한 것 아닌가?

“괜차나여. 븝미쟝은 혼자서도 잘 하는 고애오!”

두 주먹을 꽉 쥐고, 파이팅 자세로 외친다.

그와 동시에 길을 지나던 사람들이 수군거리며 나를 쳐다봤지만, 이미 이런 상황에는 이골이 나 있었던지라 딱히 부끄럽지도 않았다.

피할 수 없다면 즐겨야 하지 않겠는가. 나는 뻔뻔스레 주위를 둘러봤다.

“귀여워라.”

“나 저 언니 엄청 좋아하는데.”

그때 한 무리의 소녀들이 나를 보고 말하는 게 귓가에 들어왔다.

까르륵거리며 저들끼리 재잘거리는 이들, 그녀들의 나이는 많이 쳐줘야 중학생 정도.

“…….”

내 나이는커녕, 다나 크리스틴의 나이로도 동생들.

차라리 나이 먹은 아저씨가 그러면 그런갑다 하지, 저런 꼬맹이들이 말하니 한숨이 절로 나왔다. 부끄럽기보다는 현타가 왔다.

즐기기는 개뿔이.

나는 지팡이를 타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그와 동시에 지상에서 오오, 하는 소리와 함께 다들 카메라를 꺼내 드는 것이 보였다.

오늘내일, 커뮤니티 사이트에 내가 날아다니는 모습이 잔뜩 올라오려나.

“편한 고애오…….”

진작에 그냥 날아서 갈걸.

날아다니는 게 더 눈에 띌 것 같아서, 다리 아픈 걸 감수하고 걸어 다녔는데 때문에 되레 내상을 입었다.

이제는 사실 플라이는 사용하지 못해도 레비테이션 정도는 사용이 가능한지라, 느린 속도로 이동할 거라면 굳이 지팡이를 타고 다니지 않아도 상관이 없었다.

그놈의 이상한 법만 아니라면.

사람들이 있는 시내에서는 예외 사항을 제외하면 능력 사용 자체를 금지하는 법 때문에, 그런 행위를 할 수가 없었다.

거기에는 마법 물품 사용도 포함되어 있었는데, 이상하게 지팡이나 빗자루 같은 걸 타고 다니는 경우에는 제제 사항이 없었다.

지팡이 내지는 빗자루를 타고 다닐 수 있는 이들이 대부분 고위 마법사에 한정되어 있어서 그런가, 그 많은 마법 물품 중에 이것들만 금지가 되지 않았다.

물론 나한테는 좋은 일이었지만, 새삼 불합리하게 느껴지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후우우욱.

바람을 가르며 나는 기분은 굉장히 좋았다.

얼마 전의 그 개 같은 스카이다이빙 때문에, 고소 공포증도 어느 정도 해결이 된지라 별로 무섭지도 않았다. 사실 뭐 잘 풀려서 이렇게 된 거지, 지상으로 추락했을 때 나츠키가 구해 주지 않았다면 되레 트라우마가 생겼을 것이다. 펜타곤 개새끼들.

“거의 다 온 건가여…….”

나는 그렇게 목적지를 향해 수십 분을 날아갔다.

꽤나 빠른 속력으로 날아갔음에도 한참이 걸리는, 비교적 도시 외곽에 위치한 곳.

타탁!

나는 그 목적지에 착지했다.

지팡이는 알아서 다시금 내 주위에 뜬 채로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마치 강아지 같은 모습인지라 순전히 나무로 만든 막대기에 불과한 데도 귀여워 보였다.

“아구 자랫서여.”

잠시간 녀석을 쓰다듬어 준 나는, 주변을 살폈다.

오늘 내 목적지.

이곳은 펜타곤의 여름 방학 시즌에 일어나는 여러 개의 사고들 중 하나의 근원이 되는 곳이었다.

언뜻 아무것도 없어 보이는 변두리 시골 마을로 보이는 곳.

이따금 자연 발생되는 던전조차 굉장히 수준 낮은 몬스터들이 존재하는 곳이라, 사람들의 시선이 쏠리지 않는 한적한 곳.

하지만 이곳은 얼마 지나지 않아 끔찍한 사고가 나게 된다.

마을 외곽의 한구석, 사람의 발길도 거의 닿지 않아 온갖 초목들에 의해 숨겨진 한 동굴.

그 안에서 자연 발생한 던전 하나가, 6개월 이상 방치되어 던전 브레이크가 일어나게 된다.

여기까지는 굉장히 흔히 일어나는 일, 하지만 그 안에서 튀어나온 몬스터들이 12급~15급 수준의 꽤나 높은 등급의 몬스터라는 것이 문제였다.

그에 대부분의 마을 사람들이 죽거나 다치게 되는 사고가 발생한다.

“호에에, 안 되는 고애오…….”

그것을 막기 위해서 나는 이곳에 왔다.

물론 이것은 단지 순수한 선의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었다.

되레 계산적이라고 욕을 먹을 법한 행동이었다. 왜냐하면, 이곳의 사건은 원래 장선우가 엮인 것이었으니까.

솔직히 말해 나와 관계없는 불특정 다수의 생명보단, 장선우가 얻은 보상에 대한 관심이 더 쏠렸다.

그거, 내가 쓰면 더 잘 쓸 자신 있는데.

사실 장선우는 그거 없어도 강하잖아 하는 생각이 앞섰다.

“븝미쟝은 아모고또 모르는 고애오…….”

다만, 그냥 마을 사람들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보상 때문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치졸해 보이니까.

한 1, 2할 정도는 그 때문이기도 했으니 순전히 거짓된 생각은 아니었다.

그렇고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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