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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기븝미쟝이 되었다-72화 (72/172)

#72화.

동굴 내에 있는 던전답게 내부는 상당히 싸늘했다. 코볼트들은 그 두꺼운 가죽 때문에 방한이 어느 정도 되는 듯, 아무렇지 않게 돌아다니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아니었다.

“에흐응!”

갑자기 추워진 공기 때문에 감기라도 걸리려는 듯 재채기가 나온다.

방음 마법을 미리 걸어 놓은지라 큰 소리는 퍼지지 않았지만 몇몇 코볼트가 이쪽을 쳐다본다. 물론 그렇다고 딱히 눈치챈 것 같지는 않았다.

“마나 씨, 따뜻하게 해 주는 고애오…….”

좀 더 버티다가는 진짜로 감기라도 걸릴 것 같아서 마력을 쓸 수밖에 없었다.

대기에 감도는 온기. 그 덕분에 상태가 상당히 호전되었다.

다른 히어로들은 애초에 감기 따위를 걸리지 않겠지만, 나 같은 경우에는 단순 감기로도 치명적일 것이다. 이쪽 세계 약들이 효과가 워낙 좋아서 괜찮을 수도 있겠지만, 또 몸이 약해서 독한 약은 쓰지도 못하니 한동안 앓아야 할 것이다.

여름 방학, 이 바쁜 시기에 며칠씩 그렇게 앓고 있는 것만 하더라도 손실이 꽤나 크다. 그러니 작은 병이라도 걸리지 않게 조심해야겠지.

물론 이런 걱정도 마력이 일정 수준 이상이 되면 사라질 것이다.

“시원하니 좋네.”

이런 나와 다르게 J는 태평했다. 그녀는 되레 더운데 잘되었다는 듯 상쾌한 얼굴이었다. 몸 튼튼해서 좋겠다.

“겨우 쟤네들이 끝이야? 코볼트?”

“아니에여 언냐야. 뒤에 무시무시한 것들이 많은 고애오…….”

“그래. 하기야 저것들이면 도와 달라고 하지도 않았겠지.”

마치 더러운 것이라도 보는 양, 경멸스러운 눈빛으로 코볼트를 바라보는 J. 그녀가 혐오하는 것은 오로지 추한 것. 그것은 단지 외견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랬다면 그녀가 한때 오우거에 꽂힐 일도 없었겠지.

그 강함이건, 현명함이건. 확실한 그 대상만의 특색. 그것을 J는 아름답다고 여겼다. 그런 면에서 코볼트는 어느 것 하나 특색이랄 것이 없었다.

“죽이는 맛도 없겠네.”

그녀는 입술을 할짝거렸다. 누군가 그녀를 본다면 피에 굶주린 마인이 아닐까 생각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나는 현재의 J는 그와 상당히 거리가 먼 인물이란 것을 안다.

비공식적인 이름으로 연구소, 공식적으로는 디 어쌔신이라고 불리는 그 집단. 그곳에 속한 이들은 대부분 살인의 경험이 있되 다른 빌런들처럼 쾌락주의적인 이유가 아니었다.

애초에 지금 J는 살인 경험 자체도 없다. 심지어 몬스터도 거의 죽여 보지 못한 상태였다.

그러니까 지금 그녀의 모습은 일종의 허세라고 봐도 될 것이었다. 나는 그녀가 조금 귀엽게 느껴졌다. 물론 실제로 살인을 하라고 하면 거리낌 없이 할 그녀지만서도, 실제로 해 본 것과 할 수 있는 것, 그 두 가지에는 큰 차이가 있었다.

나는 그녀의 등을 쿡 찔렀다. 그러자 마치 전류가 타고 흐르듯 몸이 부르르 떨렸다. 역시나 긴장하고 있었구나.

“뭐, 뭐 하는 거야!”

J는 드물게 당황한 듯이 내게 소리쳤다. 나는 히죽 웃으면서 놀리듯 말했다.

“언냐야가 좀 긴장한 거 가타서여.”

“뭘 긴장해? 누가? 띨빵아, 까불다가 가는 수가 있어.”

씩씩거리면서 자기변명을 하는 그녀. 그와 함께 반협박성의 멘트도 날렸지만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시스템상으로도 그녀의 호감도는 이미 거의 최대치 수준이었던 데다 그냥 내가 느끼기에도 J가 내게 해를 끼칠 것 같지는 않다.

내가 그렇게 움츠러들지 않자, J는 툴툴거리며 푸념을 늘어놨다.

“뭐만 하면 호에에에거리던 그 띨빵이는 어디로 가고, 에휴.”

J는 한동안 그렇게 불만이라는 듯 얼굴을 찌푸리다, 코볼트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마침 코볼트들이 완전히 이쪽의 정체를 알아채었기 때문이었다. 참 눈치도 빠르셔라.

“크르르륵!”

개성 없는 소리를 내며 달려드는 전사 코볼트들.

그 뒤로 석궁을 들고 있는 녀석들이 일제히 우리를 조준했다. 수준이 떨어지는 이들이라면 순식간에 벌집이 되겠지. 물론 나와 J는 그 범주 안에 속하지 않았다.

“마나 씨!”

내 외침과 함께 푸른 막이 주위를 감싼다. 이제는 범위도 강도도 이전보다 훨씬 널널해졌다. 코볼트들의 조악한 석궁 따위로 뚫을 수 있는 수준은 옛적에 벗어났다.

파바바박!

발사되는 화살들이 장막에 막혀 부러지거나, 혹은 힘을 잃고 땅으로 추락한다. 그에 당황하고 있는 전사 코볼트들은, J의 먹잇감이었다.

“더러워.”

침잠하게 한 마디를 내뱉은 그녀가 코볼트들을 도륙해 간다. 그 모습은 딱히 정신 건강에 좋을 것 같지 않아, 나는 고개를 돌렸다. 대신 멀리 있는 코볼트들을 향해 마법을 순차적으로 쏘아 내었다.

“마나 씨! 태워 주세여!”

정령 융합 따윈 사용할 필요도 없었다. 나는 딱 코볼트 머리통만 한 화염구를 순차적으로 녀석들에게 던져 내었다.

콰앙! 콰앙! 콰앙!

폭발음과 함께 하나씩 폭사해 버리는 코볼트들. 이쯤 되면 이것조차 과한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깔끔하게 형체를 잃고 숯덩이가 되어 버리는 코볼트들. 그 잔재 속에 보이는 푸른색 마석만이 그것들이 몬스터였다는 것을 알려 주었다. 저것들도 처분하면 꽤나 돈이 될 것이었다. 실상 이제는 돈에 연연하지 않아도 될 법했지만, 그래도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게 자본이었다.

“븝미쟝은 돈이 조은 고애오…… 세상에서 제일 부자 아가야애오!”

이어 J 쪽의 코볼트들도 모두 정리가 된 모양인지, 그녀가 내게로 다가왔다.

그녀는 이미 마석의 회수까지 모두 마친 듯, 내게 그 특유의 푸른색을 뿜어내는 마석을 보여 주었다.

“띨빵아, 여기 봐. 코볼트치고 마석이 좀 커.”

신기하다는 듯이 내게 불쑥 마석을 내미는 J. 하지만 나는 본능적으로 그것을 보지 않았다. 대신 고개를 홱 돌리며 외쳤다.

“무셔운 거 안 대여!”

나는 마력을 이용해, 그녀의 손과 몸 전체에 클린을 사용했다. 그리고 다시금 그녀를 쳐다봤다. 어느새 J의 몸과 마석에 달라붙어 있던 핏자국들이 모두 사라져 있었다.

시발, 자칫 또 제대로 봤으면 그대로 갈 뻔했다. 그러면 또 불사 신선 폼이 튀어나왔겠지. 아무리 J라고 해도 그건 좀 숨기고 싶었다. 그나마 내가 가지고 있는 최후의 보루 중 하나니까.

“하와와와.”

“뭐야? 왜 그래?”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내게, J는 조금 불쾌하다는 듯이 말했다. 다짜고짜 마력을 사용하는 건 아무리 해할 의도가 없었다고는 해도 예의가 아니었다. 그나마 그녀가 내게 호감을 강하게 가지고 있기에 그냥 받아들인 것이겠지.

“븝미쟝, 피 보며는 안 대는 거야요…… 너모너모 무서운 고애오…….”

“……저기 저놈들은 무슨 숯덩이로 만들어 놓고? 앞뒤가 안 맞잖아.”

“호에에, 븝미쟝은 원래 앞뒤가 안 맞는 고애오.”

나는 가슴을 쭉 펴고 내밀었다. J는 아까의 그 경멸하는 듯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더니, 한숨을 내쉬었다.

“띨빵이 갈수록 뻔뻔해져.”

니가 이 모습으로 살아 봐라, 뻔뻔해지지 않고 견딜 수가 있는가.

*    *    *

던전 공략은 순식간에 진행되었다. 코볼트 이후로 등장한 몬스터들도 나와 J가 협공을 하자 수 분 내로 처리할 수 있었다. 물론 그에는 내가 가지고 있는 지식도 도움이 되었다. 어디를 어떻게 공격해야 쓰러뜨릴 수 있는가. 공간 활용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것을 모두 J에게 알려 주었다.

“어떻게 이런 걸 다 아는 거야?”

그녀는 의문스럽다는 듯이 내게 물었다. 물론 게임에서 봤다 하고 말할 수는 없으니 납득할 만한 핑계를 대었다.

“븝미쟝 원래 똑똑한 고애오…… 맨날 1등 하는 고애오!”

“……잘났다.”

J 또한 이론 점수가 평균 이상은 되었지만, 몬스터들 특성 하나하나를 죄다 꿰고 있지는 않았다. 그녀가 원작에서 펜타곤 1위를 계속해서 차지했던 것도 그 압도적인 무력 때문이었지 이론 때문은 아니었다. 이번에 1위를 차지하지 않은 이유 또한 열심히 해 봤자 이론 점수에서 나한테 밀려서 1위를 못 할 것 같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1위가 아니면 의미가 없다나. 참 그녀다운 사고였다.

“다행이네여…….”

순조로운 공략에 다나는 안심하면서도 동시에 의문을 떠올렸다.

애초에 단일 객체가 등장하도록 설계되어 있던 던전인가. 장선우가 공략을 진행할 때도 같은 방식이었지만, 내부의 몬스터들이 거의 다 밖으로 뛰쳐나가서 그런 건 줄 알았다. 덕분에 생각했던 난이도보다 훨씬 쉽게 클리어가 가능했다.

하기야 단일 객체로 등장하지 않는 던전이라면 입장 요건이 최대 3명이 아니라 10명 정도는 되었겠지.

“뭐가 이렇게 많아?”

물론 내 생각보다 쉽고 빠르다는 것이지 정말로 짧은 시간은 아니었다. 장장 4시간여에 걸친 연속된 전투에 J가 드디어 폭발했다. 나는 호에에, 하는 소리를 내며 그녀의 옷을 잡아당겼다.

“거의 끝낫서여 언냐야!”

“아까도, 거의 한 시간 전에도 그 소리 했잖아! 띨빵아, 너 시간 개념이 없어?”

분노를 표하는 그녀의 모습에 나는 그저 머쓱하게 웃을 수밖에는 없었다. 그거야 당연히 힘이나 조금 돋워 주려고 거짓말을 한 거지.

“이번에는 진짜예여!”

“……으휴.”

J는 영 신뢰를 잃은 듯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진짜였다. 방금 전 나온 거대 박쥐 몬스터, 그것이 장선우의 공략 때 던전 보스 등장 직전 나왔던 몬스터였으니까.

실제로 얼마 지나지 않아, 동굴의 직선 통로의 끝에 커다란 문이 등장했다. 보스 룸으로 향하는 문이겠지.

“맞져?”

“……띨빵이 얄미워.”

내 의기양양한 모습이 짜증 난다는 듯 얼굴을 찌푸리는 J. 그러면서도 보스 룸의 입구를 밀고 들어간다.

“하와와와.”

“뭐야? 식발 갑자기 이건.”

J가 당황한 듯이 욕을 내뱉는다. 보스 룸의 안에 펼쳐진 풍경 때문이었다. 드넓게 펼쳐진 초원. 그에 살랑거리는 바람이 불어오며 풀 내음이 퍼진다.

그리고 그 초원 위에 누워 있는 커다란 용. 물론 그것은 드래곤이 아니었다. 애초에 형태부터가 달랐다.

“요정용?”

J의 입에서 정답이 나온다. 요정용. 페어리드래곤.

지금까지 세계관 내에서 이 던전 외에는 이종족들의 입으로서만 그 정체가 알려져 왔던 몬스터. 그것이 눈앞에 나타나 있었다.

요정들의 날개처럼 반투명하고 반짝거리는 날개와 미형의 머리와 몸통. 여러 가지 색으로 바뀌며 반짝거리는 그 모습이 신비롭게 보였다.

“저거 잡아야 돼?”

J가 나를 돌아보며 말한다. 다시 말하지만, 그녀는 추한 것을 극도로 싫어하고 아름다운 것을 좋아한다. 그런 면에서 일리아랑도 비슷한 면이 있었다. 물론 그쪽이 훨씬 더 중증이고 이쪽은 그 ‘아름다움’의 기준이 일반적이지 않긴 하지만.

다만 요정용의 경우에는 그녀의 미학적 기준으로도 굉장히 아름답게 보인 모양이었다. 그렇기에 아쉬운 모양이었다. 저걸 그냥 잡아 버리기에는.

“아니여.”

“어?”

하지만 막상 내 입에서 예상과는 다른 말이 나오자, 당황한 모양이었다. 나는 더 말할 필요 없이 요정용의 뒤를 가리켰다.

“저거 뒤에, 쟤를 죽이면 대여.”

실제 전투력도 얼마 되지 않는, 새끼 요정용이 보스일 리가 없지 않은가.

요정용의 뒤로 그르륵거리는 소리를 내고 있는 검은색 형체. 그것이 이번의 목표였다.

“용 아가는 아가애오…… 아가는 지켜 줘야 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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