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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기븝미쟝이 되었다-74화 (74/172)

#74화.

응애.

나는 내 목덜미에서 비비적대고 있는, 작은 도마뱀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 녀석은 당연하지만 그 요정용이다. 원래보다 훨씬 작아진 손바닥 정도의 크기로 바뀐 걸 제외하면 원래와 똑같은 모습이었다.

마망!

이건 나한테 하는 소리다.

도대체 뭐 때문인진 모르겠는데, 날 이렇게 부른다. 엄마라고 불리니까 기분이 조금 묘했다. 반려동물과의 관계를 부모로서 지칭하는 경우가 많기는 했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엄마라…… 하기야 이 모습을 두고 아빠라고 부르라고 하기도 뭣하긴 하지만.

“푸흡.”

옆에 있던 J 또한 요정용의 말을 들은 모양이었다. 입을 막고 한 차례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는 그녀. 내가 흘깃 째려보자 얼굴 표정을 관리한다.

예정대로 마갑과 마창은 그녀에게, 그리고 거울과 마석은 내게 돌아갔다.

거기까지면 참 좋았을 텐데…… 나는 그에 더해 이 요정용과 구슬까지 함께 받았다.

구슬은 요정용의 말을 통역해 줌과 동시에, 녀석의 크기를 줄일 수도 있었다. 그 덕에 남들한테 들킬 위험은 많이 줄긴 했지만 골치가 아픈 건 마찬가지였다.

더 받으면 좋은 것 아닌가? 이렇게 물어보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가차 없이 그에게 욕을 해 줄 자신이 있었다. 지금 요정용은 정말 하등의 쓸모도 없다. 순전히 그냥 군식구 하나가 더 늘어난 것에 불과한 것이다.

……엘프들은 좋아하겠네.

요정용을 원래부터 신성시하던 그들이라면 상당히 좋아할 가능성이 컸다.

이 시점의 지구에서 요정용은 발견된 적이 없으니까.

“응애, 마망. 밥 조. 배고팡.”

끼잉거리면서 자기 의사를 확고히 표현하는 요정용.

배가 고프다는데, 나는 얘가 도대체 뭘 먹는지도 모른다. 그런 건 작중에서 묘사조차 되지 않았으니까. 엘프들에게 가 봐야 하는 건가.

“애기는 애기 못 키우는 고애오…….”

내 한몸 건사하기도 힘든데, 이 녀석까지 딸려 둘 생각을 하니 머리가 지끈거렸다.

어디다 맡길 데가 없을까. 그렇게 생각하며 J를 바라보니 그녀는 마침 딴청을 피우고 있는 와중이었다.

“마망…… 저 사람 무셔.”

그리고, 요정용 또한 J를 바라보더니 몸을 부르르 떨었다. 마치 두렵다는 듯이. 나는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내쉴 수밖엔 없었다. 결국에는 내가 다 감당해야 하는 것이다.

*    *    *

엘프들의 마을. 저번 방문 이후로, 이따금 연락이 왔다. 당연하지만 그들도 통신 기기와 같은 전자 장치를 사용하지 않는 것이 아니었다. 현대의 문물 중에서 자신들의 환경을 파괴시키지 않을 만한 것이라면, 소극적으로나마 사용을 했다.

사도니 뭐니 그들이 지칭을 해도, 나는 딱히 해 줄 것이 없었다. 내가 가장 자신 있는 것이라 해 봤자 마법 정도였는데, 사실 그쪽 장로들만 해도 외부로 나오면 3자리대 등수의 마법사 정도는 가볍게 씹어 먹을 만한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전체 인구수가 워낙 작아서 문제일 뿐이지.

그렇기에 찾아가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되레 내가 그들에게 도움을 요청해야 할 만한 상황이 왔다. 내 가슴팍에 낑낑거리며 매달려 있는 녀석. 요정용의 먹이에 관한 문제였다.

도대체 뭘 먹여야 하나? 그것을 물어보기 위해서였다.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과일, 그러나 녀석은 한 입 먹어 보더니 맛이 없다는 이유로 캑캑거리면서 뱉어 내었다.

고기 같은 경우에는 냄새만 맡아도 진저리를 쳤고, 우유를 주니 빼액하며 소리를 질렀다. 혹시나 해서 개 사료랑 고양이 사료를 디밀어 봤더니 갸르릉거리면서 내 손가락을 물어뜯었다. 워낙 조그마해서 아프지는 않았지만.

“밥 조!”

싯팔. 저놈의 밥 달라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혈압이 올라온다. 이게 여기저기서 떠들던 어머니들의 고충인가?

“응아아아아아!”

당장에라도 구슬을 비활성화해 버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으나, 그러면 이 녀석이 원래 덩치로 돌아오게 된다. 그러니까 이 녀석을 눈에 띄지 않게 하려면 계속 구슬을 활성화시키고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그러니까 빨리 엘프 마을로 이동해야만 했다. 이 징징거림을 그만 듣기 위해서라도.

실제로 이 녀석을 데리고 있는 사흘 동안, 나는 몸무게가 1키로그램 이상 줄었다. 하도 밤중에 잠을 못 자서. 그 도중에 약속을 잡고 만난 일리아는, 나를 보더니 한눈에 안색이 안 좋아 보인다면서 걱정을 했다. 그 덕분에 조금이나마 기분이 나아지긴 했는데, 또 집에 놔두고 온 이 녀석 때문에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누지도 못했다.

“도착한 고애오…….”

스트레스가 잔뜩 올라온 상태로, 나는 엘프 마을에 도착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요정용의 축소화도 풀었다.

쿠웅!

순식간에 몸뚱이가 불어난 녀석은, 개운하다는 듯이 기지개를 펴더니 날개를 파닥거렸다. 아직 날지도 못하는 녀석이.

“아가야, 들어가는 고애오.”

녀석은 구슬 없이도 어느 정도 내 말을 알아듣는 모양이었다. 그래도 지능이 뛰어난 종족이라는 말은 들은 적이 있다. 태어난 지 얼마 안 돼서 저런 거지, 성체가 되면 되레 인간들보다 훨씬 머리가 좋다고 한다.

끄앙!

기분 좋은 울음과 함께 발걸음을 움직이는 녀석. 평소보다 영 밝아 보이는 것이 위그드라실의 영향이라도 받는 모양이었다. 하기야 녀석이 원래 사는 곳은 이런 숲속이니까. 정령들이 가득하고 마나가 충만한 이런 숲.

마을 초입을 넘어서자, 얼마 지나지 않아 장로들과 함께 세리아가 나타났다. 그녀는 요정용이고 나발이고 내가 제일 반가운 모양이었다.

“사도님!”

아무래도 다른 장로들과 함께 있는지라, 이름을 직접 부르지는 못했지만 어투만 들어도 다른 엘프들과는 차이가 느껴졌다. 나는 그녀에게 마주 달려갔다.

“언냐야!”

그녀와 내가 그렇게 오랜만에 만나 회포를 푸는 사이, 장로들은 나보다는 요정용에게 더 관심이 있는지 다들 탄식을 흘리고 있었다.

“어허, 정말로…….”

“도대체 어떻게 이곳에? 역시 사도님께서는 비범한 분이시구려, 허허. 그렇지 않소?”

“……이번에는 정말로 마을 내에서도 의심하는 목소리가 사라지겠구만. 직접 엘프들의 신수까지 데려오신 분을 누가 의심할 수가 있겠소.”

장로들은 오랜만에 본 요정용에, 고향에서의 기억이 떠오른 듯 저마다 향수에 잠긴 표정이었다. 그러더니 다들 요정용에게 달려들었다. 그러고는 내가 모르는 언어로 서로 소통을 하기 시작하는 모습이었다.

큐우웅!

요정용은 자신이 아는 언어를 사용하는 이들을 보면서, 반가움보다는 되레 당황스러움을 느끼는 모양이었다. 뭣보다 하루 종일 징징대긴 했어도 녀석은 나한테 굉장한 애착을 보였는데, 정작 나는 멀리 떨어져 있으니 불안한 듯이 발을 동동 굴렀다.

그러나 나는 녀석에게 돌아가지 않았다. 대신 세리아에게 착 달라붙어 있을 뿐이었다.

“븝미쟝은 아가야애오…… 마망이 아니라구여!”

“……? 그게 무슨 소리…….”

세리아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나를 바라봤다. 나는 대답하지 않고, 웃으면서 마을 방향을 가리켰다.

“조기 옵바 언냐야드른 바쁜 거가트니까…… 안으로 들어갈래여?”

“옵바 언냐야…… 장로님들 말하는 거야? 푸흐흐…….”

내 호칭이 웃긴지, 세리아는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고는 내 손을 잡아끌었다. 아무래도 그녀 또한 여기에 뻘쭘하게 서 있는 게 별로 좋지는 않았던 모양이었다.

“그래, 장로님들은 어차피 들어오실 테니까. 들어가서 기다리고 있자.”

“조아여!”

꾸에엥.

장로들의 손길에 울음소리를 내고 있는 요정용을 뒤로한 채, 세리아와 나는 마을 안에서 기다렸다. 한동안 고통받던 녀석이 장로들과 함께 따라 들어온 것은 대략 1시간여가 지난 후였다.

*    *    *

크에에.

요정용은 임시로 마련된 거대한 정자 위에 엎드려 있었다. 그 머리 위에는 정말 엘프들이 만들었음직한 꽃 화관까지 얹혀져 있었다. 딱히 신수니 뭐니 해도 엄청난 대접은 아닌 것 같았다.

그러나 녀석은 꽤나 만족한 듯 보였다. 던전 바깥으로 나온 이후, 처음으로 자기 입에 맞는 먹이를 먹었기 때문인가.

“그런 거 먹는 주른 몰랐내여…….”

애초에 나는 눈치를 챘어야 했다. 던전 내부에서 녀석이 어떻게 살아갈 수 있었는가. 녀석이 살고 있는 곳은 너른 초원이었다. 중간 중간에 작은 과실나무나 꽃들이 있는.

당연히 그것들 중에 녀석의 먹이가 있을 것이 분명했는데, 그냥 단순 리스폰되는 다른 몬스터들처럼 아예 던전 내에서는 공복을 느끼지 않는 줄로만 알고 있었다.

녀석의 먹이는 과일이 맞았다. 다만, 오염이 되지 않은 장소에서 마나를 먹고 자란 과실만이 해당되었다.

나는 시중에 나와 있는 화학 약품 범벅이 된 과일을 주었고, 그에 따라 녀석이 뱉어 낸 거였다. 그럼 싯팔 ‘깨끗한 거로 조’ 같은 말이라도 하던가, 꼴받게.

“도대체 어디서 찾아오신 겁니까?”

한동안 그 모습을 불만스레 쳐다보고 있던 내게, 옆에 있던 장로가 물어 왔다. 이미 지구에서는 찾아볼 수 없던 요정용을 도대체 어디서 데려왔냐는 질문. 그에 나는 솔직히 대답할까 하다가 농담을 던졌다.

“어머니 나무가 점지해 준 고애오…… 거기로 갔더니 용 아가가 있던 고시애오!”

“오오…… 신탁을…….”

“세상에, 세계수께서 몇 년 만에 내리신 신탁인지.”

그에 다들 감탄을 하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제 와서 농담으로 한 말이라기에는 주변 분위기가 너무 진지했다.

그런데 그들 입장으로서도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게, 요 몇 년간 위그드라실이 쇠약해진 이후, 신탁이 내려오지 않았단다. 그것 때문에 걱정하고 있는 상황이었고.

아니 이러면 내가 이상해지잖아. 심지어 눈물까지 흘리며 기뻐하고 있는 한 장로를 보며, 나는 가슴 한구석이 쿡쿡 쑤셔 왔다.

……그나마 좋은 말이니 다행인가.

“저번에 주신 만드라고라도 잘 자생하고 있고…… 감사를 어떻게 표해야 할지…….”

“아니에얌! 븝미쟝도 고마웠던 고애오…….”

사실 내가 그들에게 해 준 것은 별것 없었다. 그냥 만드라고라 몇 뿌리를 뽑아다 준 것이 전부였다. 요정용을 데리고 온 것은 되레 내가 도움을 요청한 것이었고.

하지만 그들은 내 모든 행동을 전체 종족이 평생에 걸쳐 갚아야 할 은혜라며 띄워 주었다. 되레 내가 민망할 정도로.

잘하면 짬 처리가 되겠다 싶어 녀석을 이곳에 맡기고, 필요할 때만 찾아가겠다는 이기적인 소리를 지껄여도 이들은 그저 내게 거듭 감사했다. 모 게임의 키우미집처럼 이용하겠다는 소리였는데…….

“사도님, 그런데 혹시 이름은 미리 정하신 것이 있는지요? 사도님께서 붙이신 이름이 있다면 그렇게 부르는 것이 맞을 것 같습니다.”

한동안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대화를 나누던 장로는 내게 물었다. 그와 동시에 사람들의 눈길이 내게 쏠렸다. 다들 기대하는 듯한 눈빛으로 눈망울을 반짝거리고 있었다.

조금 부담스러운데.

그냥 없다고 대답하려던 나는, 머릿속에서 한 가지 이름이 떠올려 내었다.

그래, 이것만큼 저 녀석한테 어울리는 이름은 없겠지.

“둘리…… 둘리에얌!”

“둘리라…….”

다들 그 익숙하면서도 생소한 울림에 의문스러워했지만, 나는 녀석의 심술궂은(어디까지나 내 기준으로)얼굴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야말로 완벽한 작명이었다.

“용 아가는 나쁜 아가애오…….”

처신 잘하라고.

호래자식 되기 싫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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