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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기븝미쟝이 되었다-76화 (76/172)

#76화.

테이블의 분위기는 좋았다. 다들 사기 도박이나 하는 놈들치고는 사근사근하니 인상도 좋았다. 물론, 사기꾼들이야 다들 일반인들보다 되레 신뢰가 가는 인상인 편이 좋겠지.

내심으로야 같잖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어차피 외부에서 보여지는 모습은 천진난만한 붉은 머리 소녀였다. 딱히 뭐 포커페이스랄 게 필요가 없는 것이다.

“호에에에, 스페이드쟝이애오.”

“그거 말하시면 안 되는데, 아하하.”

“호에? 그런 고애오?”

나는 부러 포커 룰 자체도 모르는 척을 했다. 그에 웃으며 처음부터 룰을 알려 주기 시작하는 사람들. 그들의 얼굴에 떠올라 있는 함박웃음을 보니 아무래도 호구 하나 제대로 잡았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꽤나 많은 돈을 환전해 왔던지라, 수북이 쌓여 있는 칩. 이들은 그를 보며 군침을 다셨다. 이 사람들 또한 마력이 느껴지니 아마도 일반인이 아닌 빌런일 것이었다. 다만 히어로 중에서도 별 볼 일 없는 사람이 있듯이, 이놈들도 마찬가지로 굉장히 낮은 수준.

아마도 그 수준으로 할 수 있는 일 중에는 이 정도 돈을 한 번에 만질 만한 일이 상당히 드물 것이었다.

그리고 이어 나는 딜러를 살펴봤다. 그 또한 마력이 느껴진다. 사실 당연한 것이, 이 카지노에서는 모든 딜러가 히어로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유령 히어로. 등록은 되어 있되 활동은 없는, 실상 빌런이면서 위장 신분으로 히어로 등록을 해 놓은 이들인 것이다.

카드를 나눠 주는 딜러. 나는 그의 눈을 잠시간 살펴봤다. 다른 이들과는 달리 이 사람에게는 꽤나 많은 마나가 느껴진다. 물론 그렇다고는 해도 중위권 히어로 정도. 라운지에서 기다리라고 했는데도 걱정된다면서 주변에서 지켜보고 있는, 일리아랑 나츠키 선에서도 처리가 가능한 수준이었다.

“왜, 그러시는 겁니까?”

그는 한국어로 내게 물어봤다. 의아하다는 듯한 그 어투에서 숨길 수 없는 약간의 긴장감이 새어 나온다. 이 사람, 카지노 딜러를 하기에는 영 적합치 못한 사람인 것 같다. 이렇게까지 자기 감정을 못 숨겨서야.

“아니에여 옵바야!”

새끼, 봐준다.

나는 활짝 웃으면서 내 패를 확인했다. 스페이드 7, 클로버 7, 하트 7, 다이아몬드 에이스. 나야말로 사기 도박이 아닌가 싶을 정도의 패다.

내가 그를 확인하고 헛웃음을 지음과 동시에,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의 표정이 모두 싸하게 굳는다. 자기들 패가 좋지 않아서일까? 내가 보기에는, 그게 아닌 것 같다.

“다이.”

“다이.”

처음부터 죽어 버리는 두 명.

그 이후에 죽지 않은 다른 두 사람 또한, 공교롭게도 내가 A,7 풀하우스를 완성하자마자 죽어 버린다.

이거, 아주 대놓고인데?

첫 판은 그래도 어느 정도 잃어 주면서 시작하는 게 맞지 않나, 싶었지만 내 모습이 그래도 될 만큼 멍청해 보인다는 것을 자각했다.

“하와와, 고마오요!”

그렇게 좋았던 패치고는 얼마 따지도 못한 판돈. 하지만 나는 웃음을 흘릴 수 있었다. 나는 기지개를 폈다.

“호에에에, 몸이 찌뿌드드한 고애오.”

그와 동시에 내 몸에서 새어 나오는 마나. 그에 다른 사람들의 얼굴이 창백해진다. 나는 그 면면들을 보며 웃었다. 내가 바본 줄 아나.

이 테이블에는 미리 마법으로 처리해 놓은 장치가 있다. 딱 내 자리, 여기 앉은 사람의 패를 다른 이들이 볼 수 있게 처리해 놓은 것이다.

그렇기에 이들이 내 패를 알고 미리 죽을 수 있던 것이고, 하지만 나는 방금 마력을 내뿜어 테이블의 장치를 훼손시켰다. 아마 앞으로 이들은 내 카드를 볼 수 없겠지.

“아니, 아…….”

개중 한 명이 조용히 탄식을 흘린다. 그러고는 예의 그 박철구가 있는 방향을 쳐다본다. 다만 그는 속행하라는 지시를 내렸고, 지시를 받은 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에는 겨우 17살짜리 꼬마한테, 속임수를 쓰지 않는다고 해도 프로 겜블러인 이들이 지지 않을 것이라는 신뢰 비슷한 것이 담겨 있는 것이겠지.

미안하지만, 앞으로 너희는 이기는 게임을 할 수 없다. 내가 그렇게 만들 테니까.

*    *    *

“잘 놀았어요 옵바 언냐야들.”

자알, 놀다 갑니다.

마지막으로 능욕적인 대사를 날린 나는 테이블에서 빠져나왔다. 내 뒷모습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너무나도 따가웠다. 사실 그럴 만도 한 것이, 내가 저들의 판돈 중 거의 대부분을 다 따 갔기 때문이었다. 다만 그럼에도 일어서서 자리를 파하고 사라지는 나를 아무도 잡지 못했다. 그저 경악스러워할 뿐이었다.

포커는 투페어, 트리플, 스트레이트, 플러쉬 따위의 패로 승패가 결정 나는 게임이다. 풀하우스나 스티플, 포카드 같은 패는 웬만해서는 잘 들어오지 않는다는 뜻이다.

다만 나는 오늘 그런 높은 패들이 너무나도 연속적으로 들어왔다. 초심자의 행운이라고 하기에도 어불성설일 정도로. 아무리 겜블러니 뭐니 해도 이런 패를 정상적인 방법으로 이길 수는 없는 것이었다.

얼굴 표정을 읽는 것도 불가능했다. 포커페이스고 뭐고 나한테는 븝미 페이스가 있다. 하루 종일 머릿속이 꽃밭인 천진한 사람이나 지닐 법한 표정. 그를 항시 띠고 있었으니 내가 뭘 생각하는지 알 수가 없었을 것이었다.

그렇게, 저 사기 도박단은 되레 나한테 왕창 털리고 힘이 빠진 듯 축 늘어져 있었다.

그 광경을 멀리서나마 지켜보던 박철구는, 나를 알 수 없는 눈으로 바라봤다. 물론 그것은 표정 관리를 하는 것일 테고, 속은 부글부글 끓고 있겠지.

어차피 당신도 호구 몇 번 털어먹으면 금방 복구할 돈이잖아.

눈깔에 힘 좀 풀지?

물론 이런 생각과 달리 말은 사근하게 나왔다.

“재밌었어여, 언냐 옵바야들 다 좋은 사람인 거 가타여. 븝미쟝이 초보라서 조금 봐준 거 같아얌…….”

내 말에, 그는 잠시 혈압이 오른 듯 목에 힘줄을 불끈 돋웠다. 이거 깝죽거리다가 한 대 맞는 거 아니야? 그런 불안감이 올라왔지만 역시 프로답게 평온한 표정으로 돌아온다.

“……다행이네요. 칩은 현금으로 다시 환전하실 수 있으니까 바꿔 가시길.”

“갖다 준대여. 그래도 고마오요!”

나는 곧바로 그를 지나쳐 나를 기다리고 있는 나츠키와 일리아에게 달려갔다. 그녀들은 게임 내용은 제대로 보지 못한 듯(사실 봤더라도 딱히 이해했을 것 같지는 않다)그에는 관심이 없었고, 그냥 내가 기분이 좋아 보이니 잘 풀렸겠거니 하는 것 같았다.

“잘됐나 보네. 많이 잃은 건 아니지?”

“오히려 땄거든여, 븝미쟝 대단하져?”

우쭐한 표정으로 말하는 나를 보며, 입가에 웃음을 띤 나츠키는 일리아를 타박했다.

“얘가 그래도 우리 아카데미 이론 1위인데. 이런 것도 못하겠냐?”

“내가 언제 못한데? 이런 건 머리 좋다고 다 되는 게 아니니까 그렇지.”

“머리 좋다고 다 되는 건 아니지만, 머리 안 좋은 년은 못하는 거지.”

“……왜 그 말 하면서 날 쳐다보는 건데?”

일리아는 불만이라는 듯이 말했지만, 나츠키는 모르쇠로 일관했다. 일리아는 그 태도에 더 열불이 난다는 듯 으르렁거렸다. 도대체 이 두 사람은 언제쯤 싸우지 않게 될까. 나는 고개를 저으며 출구 쪽을 향해 걸어갔다. 그에 방금까지 싸우던 둘은, 너 나 할 것 없이 내 뒤를 따라 달려왔다.

*    *    *

“……방을 도대체 왜 이렇게 잡아 놓은 건데?”

“다인실이 없는 걸 어떻게 해. 넌 혼자 쾌적하게 자면 좋잖아.”

“그건…… 그게…… 맞는 것도 같지만…… 아니기도 하거든!”

나츠키는 씩씩거리면서 일리아에게 빼액 소리를 질렀다. 일리아는 못 들어 주겠다는 듯 귀를 막으면서 혀를 내밀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의문스러워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이 상황의 발단은 예약된 숙소가 각각 1인실 하나와 2인실 하나로 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일리아가 그 사실을 이제야 말하자, 지금 나츠키가 짜증을 내고 있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게 무슨 상관이지?

내가 제일 의문인 것은 그거였다. 도대체 몇 명이 묵던 그게 무슨 상관인데. 나는 그에 의문을 느끼며 앞으로 슬쩍 나섰다.

“언냐야들…… 그러며는 븝미쟝이 혼자 잘게여…….”

최근에 어쩌다 보니, 일리아랑 같이 자고는 했지만 나는 역시나 혼자 자는 게 편하다. 둘이 자서 그런 건지는 모르겠는데 요즘 들어 아카데미 숙소에서 잠이 들면 영 몸이 뻐근했다. 집에서 자면 또 멀쩡한데.

그러니까 나는 그냥 혼자 자는 게 편하다. 다만 의문인 것은 일리아는 몰라도 나츠키는 혼자 자는 걸 선호할 줄 알았는데. 보통은 다른 사람이랑 부대끼는 걸 더 싫어하지 않나? 아무튼 다들 트윈 룸에서 자고 싶어 하니 그렇게 하면 될 일 아닌가…….

그렇게 생각했다.

“절대 안 돼!”

“그게 무슨 의미야?”

그와 동시에 일리아와 나츠키가 한목소리로 외쳤다. 시발, 그니까 왜 안 되는데.

그녀들은 한참 동안이나 그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눴고, 결국 첫째 날은 일리아가 둘째 날은 나츠키가 트윈 룸에서 자기로 결정이 났다.

……내 의견은 완벽히 묵살당한 채로.

*    *    *

“우으으으…….”

거대한 마시멜로 괴물이 나를 덮쳐 온다. 푹신하면서도 중압감이 느껴지는 그 감각에 나는 팔다리를 버둥거렸지만, 도망쳐지지 않는다. 이대로 가면, 정말 깔려서 압사당할 것 같은데. 다만 녀석은 온전히 내게 올라탔음에도 그 무게가 그리 무겁게 느껴지지 않았다. 왜 그런 거지? 잠시 의문을 가졌지만, 이어진 상황이 더 당황스러웠다.

“헤으으응…….”

마시멜로의 몸에서 손이 뻗어져 나와 내 몸을 간질이고 있었다. 나는 그 감촉에 몸을 비틀며 웃었다. 야, 간지러워. 그만둬…….

“호에에에!”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눈을 떴다. 그리고 보이는 것은 낯선 천장…… 이 아니라 어제 잠들었던 호텔의 천장이었다. 그리고 자각했다. 꿈이었구나.

“어, 다나. 일어났어?”

그와 동시에 일리아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뭐가 그리 좋은지 웃고 있는 일리아의 얼굴이 윤기가 자르르 흐른다. 방금 세수하고 머리 감고 나와서 그런가? 아니, 그건 아니겠지.

생얼이 어쩌니 저쩌니 하는데 일리아는 되레 지금이 더 예뻤다.

“하와와와와…….”

나는 여전히 찌뿌드드한 몸을 이리저리 움직였다. 간밤에 악몽을 꿔서 그런가. 사실 악몽이라도 하기도 뭐한 게, 보통은 가위를 눌리거나 하면 귀신한테서 도망치는 꿈을 꾸는데 나 같은 경우에는 마시멜로였다.

요즘 하도 마시멜로를 먹어서 복수라도 하러 온 건가. 말도 안 되는 생각을 잠시간 하던 나는, 일리아의 젖은 머리칼을 보고 정령을 불렀다!

“아가야들, 좀 말려 주세여.”

그에 바람이와 불이 각각 나타난다. 녀석들이 손을 잡고 날아가 입김을 후, 불자 머리에 있던 물기가 순식간에 사라진다. 몇 번이나 본 광경임에도 일리아는 여전히 신기한 모양이었다.

“고마워.”

“멀여…… 그런데 언냐야, 언냐야는 악몽 가튼 거 안 꾼 고애오?”

“음…… 나는 안 꿨는데? 무슨 꿈이라도 꿨어?”

일리아는 그러면서 생수를 마셨다.

나만 불편했나 보네. 역시 이 약한 몸이 원인인 모양이었다.

“그게여…… 막 커다랗고 몽실한 마시멜로 괴물이 븝미쟝을 덮쳐서 여기저기 막 더듬고여…….”

“푸흡! 켁!”

“언냐야?”

그녀는 순간 사레라도 들린 듯, 물을 뿜어낸다. 그러고는 상당히 당황한 듯 여전히 캑캑거리면서도 눈을 뒤룩뒤룩 굴렸다.

“어, 음. 그랬구나. 그래.”

“언냐야……?”

저거, 뭔가 이상한데. 내가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그녀를 바라보자 그녀가 긴장한 표정으로 입을 다문다. 일리아는 자신의 감정을 영 숨기지 못하는 편이다. 지금도 얼굴에 당황감이 여실히 드러나는 것을 보자면…….

띠링!

그 때, 내 폰에서 알림이 울렸다. 그와 동시에 일리아가 한숨을 푹 내쉰다.

“휴우우…….”

진짜 이상한데. 나는 그녀를 의심스럽게 바라보다가, 전화로 시선을 돌렸다. 일단 문자부터 확인을 해야 했으니.

발신자는 J.

평소에 연락도 잘 하지 않던 그녀가(물론 그 대신 스토킹을 한다)아침 댓바람부터 웬 문자인가 싶어 내용을 곧바로 살펴봤다.

“……언냐야?”

두 줄의 문자. 그것을 모두 살펴본 나는 자리에서 곧바로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그 두 줄은 홍콩 어딘가의 주소. 나는 불길한 예감이 몸을 감싸는 것을 느꼈다. 아무래도 J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 같다는 직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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