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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기븝미쟝이 되었다-78화 (78/172)

#78화.

새삼스럽지만 이 세계관 안에는 수많은 빌런들이 있다. 당장 내 주변에 있는 J만 해도 빌런이었다. 물론 나는 그녀는 경우가 조금 다르다고 생각하긴 하지만, 어쨌든 다른 사람들이 바라봤을 때 그 차이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그 규모가 큰 곳도 있고, 작은 곳도 있다. 물론 크다고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니었다. 그만큼 외부에 노출되기가 쉬우니까. 그래도 상관없을 만한 규모의 집단이라면 몰라도, 어중간하게 외부에 드러난 중소형 집단 같은 경우에는 금방 표적이 되어 사라지기 마련이었다.

“저기 납븐 아조시들이 잇는 고애오…….”

그리고 그 어중간한 놈들. 나는 지금 그놈들과 조우하게 되었다.

정령들에게 특성과 기억을 전수해 준 다음 날, 나는 내가 매입해 둔 부지 근처로 향했다. 훈련을 하기 위해서.

물론 이것을 위해 산 땅은 아니었다. 설마하니 그럴 리가 있나.

부동산은 굉장히 좋은 투자 수단이었다. 작품상 언급된 값이 오를 만한 부지 같은 경우에는, 약초를 경매장에 내다 판 돈으로 미리 사 두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개중 하나가 이번에 연금술사 자매들을 위해 매입한 건물. 당장 그녀들은 내가 연구비로 지급하고 있는 금액이 포션 판매금으로 얻는 수익금을 훌쩍 뛰어넘는 바람에 미안해하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그건 푼돈이었다.

그 건물은 딱 2년 정도만 지나도 값이 배로 뛸 것이었다. 모종의 사건 때문에 최고의 노른자위 땅에 세워진 건물이 되니까.

그런 식으로 매입한 부지 중 하나가 내가 이번에 향한 곳이었다.

나중에는 가치가 오를지라도, 현재는 쓸모가 없어 공터로써 버려두고 있는 땅. 놀려 두면 뭐하나 싶어 정령들의 수련 장소로나 쓰려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 와중에, 우연히 어떤 사람들이 돌아다니는 것을 목격한 것이었다.

이거 사유지 침범 아닌가 싶어 당황스러워하는데, 그것보다 더 놀라운 것은 녀석들이 빌런이라는 것이었다.

“호에에에, 혼내 줘야 하는 고애오…….”

내가 덮어놓고 빌런이라고 다 부숴 버려야 한다는 편협한 생각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개중에서 분명 히어로보다 더 평화주의적인 이들도 있었고, 그렇지는 않더라도 크게 위협이 되지 않는 곳들도 존재했다.

다만 놈들은 악질이었다.

“븝미쟝 거를 뺏어 가며는 안 되는 거시에얌…….”

또한 단죄해야 하는 이유 하나가 더 있었다. 어떻게 알았는지는 몰라도 녀석들은 이곳에 숨겨진 히든 피스를 알고 있다.

던전 형태로 되어 있는 공간, 그 속에 숨어 있는 성물. 그것은 현재로서도 물론 상당한 가치를 지닌 것이지만 긴 시간이 흘러 완연해진다면 내 지팡이와 동등하거나 그 이상급의 효력을 발휘할 수 있게 된다.

그런데 녀석들은 지금 그걸 가져가려고 하고 있었다. 당연히 안 될 말이었다. 내가 이 땅을 왜 샀는데?

손이 꽉 쥐어진다. 물론 이 두 주먹으로 할 수 있는 것이란 이런 감정 표현이 전부였다.

내가 저놈들을 이길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해서 나는 쉽사리 답변할 수 없었다. 저들은 그래도 생각보다 강했다.

일전에 엘프 마을에서 나오면서 마주친 잡배들, 그 정도 수준이라면 정말 좋았겠지만…… 저들은 그래도 3~4만 등대 히어로 수준의 실력은 갖추고 있었다. 개개인으로 따지자면 별것 아니지만 그래도 뭉치면 상대하기 까다롭다.

다만 다행스러운 것은 보는 눈이 없으니, 최후의 보루인 불사신선 폼까지도 사용이 가능하다는 것. 지금 내가 가진 변신 시간이 거의 2시간 30분 정도. 이번 일에 사용하기에는 차고도 넘치는 수준이었다.

“해 보는 거에양!”

잠시간의 생각, 그로써 앞으로의 상황에 대한 청사진을 모두 그릴 수 있었다.

나는 최대한 은밀하게 움직였다.

“헤응, 흐우…….”

입에서 제멋대로 흘러나오는 신음 소리를 틀어막으며.

*    *    *

소규모 빌런 집단 베히모스. 그들은 지금 우연히 입수한 던전에 대한 정보를 듣고 한 부지에 도착한 상태였다.

그 인원은 거의 집단의 전원. 애초에 중하급 이상의 던전에 들어가는 것인지라 그럴 수밖에는 없었다.

“이거, 될까요? 형님. 잘 모르겠는데…….”

“그럼 손이나 빨고 있어? 닥치고 앞이나 봐.”

빌런들 또한 히어로와 마찬가지로 몬스터를 잡는다. 일부 강한 빌런들 같은 경우에는 그 목표가 마족 따위와 결탁하여 세력을 잡는 것이기에, 몬스터를 사냥하지 않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않았다.

결국에는 몬스터를 잡아 나온 부산물 내지는 아이템들, 그것을 팔거나 혹은 사용하여 스펙업을 함으로써 강해지는 것이었으니까. 히어로나 빌런이나 일반적인 생태는 별로 다름이 없었다. 다만 불법적인 일을 주로 하느냐 하지 않냐에서 갈릴 뿐.

베히모스 같은 경우에는 그 세력이 크지 않은 만큼, 거창한 난동을 부리지 않았다. 단지 몬스터를 사냥하는 것보다 사람을 사냥하는 게 리턴이 더 크다는 것을 깨닫고, 자신들이 이길 수 있는 무소속 저등급 히어로들을 골라 사냥하고는 했다.

다만 그것이 자주 발생하는 일은 아니었다. 해 봤자 두 달에 한 번 정도. 그것도 자신들과 비슷하거나 더 아래 급의 이들만 사냥했기에, n분의 1로 나누면 그다지 돈이 되는 일도 아니었다.

그들에게 이러한 행위는 그저 유흥에 불과했다.

평소에는 평범하게 다른 헌터들처럼 생활하다, 목표가 정해지면 뭉쳐서 인간 사냥을 다니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런 목적으로 모인 것은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운영비는 씨팔, 땅 파면 나오냐? 내가 저번에 그 연놈들 뒤 캐느라 돈이랑 시간 갈아 넣은 거 몰라?”

“니기미. 배당은 지가 제일 많이 가져가 놓고.”

“그거 얼마 된다고. 그럼 앞으로 니가 찾아올래?”

단체장의 이야기에 얼굴을 씰룩이던 여자가 입을 다문다. 당연하지만 사냥 대상을 찾는 데에도 시간과 돈이 많이 들어갔다. 최대한 죽이더라도 뒤탈이 없는 상대를 골라야만 했고, 또 그 흔적을 완벽하게 지워야만 들키지 않고 이 짓을 오래 할 수 있었으니까.

“뭐 나는 저번처럼 그 야들야들헌 놈들만 델고 오면 일없수. 하라면 해야제.”

“으, 징그러운 새끼. 형님. 나는 이놈 작업할 때는 좀 빼 주쇼.”

민머리의 사내가 입맛을 다시며 말하는 소리에, 한 남자가 질색을 했다. 민머리의 사내는 개중에서도 변태 남색가에 살인마로 유명한 빌런이었다. 이 멤버 중에 유일하게 외부에도 빌런으로서 알려진 사람이기도 했다.

“어차피 외부에 노출된 인원은 자주 작업 못 다녀. 저번에 한 번인가밖에 안 봤잖아?”

“그 한 번이 적당했어야 말이지. 우웩.”

“들어가기나 해, 잡담은 나중에 한다.”

한참을 떠들어 대며 욕설을 지껄이던 이들은, 포탈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리고 그들의 시야가 암전되었다.

후욱!

그와 동시에 켜지는 횃불. 무슨 원시시대에서나 쓸 법한 걸 사용하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마력으로 피워 낸 것이었다. 라이트 마법을 항시 사용해도 마력에 지장이 없는 수준의 마법사가 있지 않은 이상, 대부분의 이능력자들은 이것을 사용했다.

드러나는 던전의 내부. 그에 일행은 다 같이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다른 놈들 발길은 안 닿았구만.”

“아따. 최초 발견 던전은 우째 찾았대? 우리 오야붕 미쳐 부러.”

던전은 그 가치가 높다 보니 발견 즉시 공략당하거나, 혹은 난이도가 높을 경우 몇 번의 탐사 이후에 공략하는 경우가 많았다. 어느 쪽이건 대부분 길드 단위로 독점당하는지라 어중간한 히어로 혹은 빌런들은 평생 공략 한번 해 보지 못하는 경우도 빈번했다.

그렇기에 일행은 모두 자기네 단체장에게 감탄했다. 이런 능력도 있었냐며. 물론 그중 반수 이상은 빈정대는 어투였지만.

“닥치고 앞이나 봐.”

“얼, 그러니까 아주 공대장 같수? 킬킬…….”

“존나게 멋지네. 나도 한번 해 보자. 닥치고 앞이나 봐!”

“푸하하하하!”

베히모스의 단체장, 그는 눈살을 찌푸렸다. 자신도 별반 다를 바야 없었지만 머리에 나사 하나씩이 빠진 이들을 데리고 던전에 들어온다는 게 얼마나 미친 짓인지 슬슬 깨닫고 있었다. 그나마 던전 내부에서 급습이 시작되거나 하는 일은 없어서 다행인가…….

쿠웅!

“으어, 씨벌, 뭐야?”

순간 지축을 울리는 소리가 들려오며, 한 차례 가볍게 땅이 진동했다. 그에 정신을 빼 놓고 있던 이들의 눈빛이 돌아온다. 예사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었다.

추정 평균 등급 13등급 몬스터가 나오는 던전. 인원들의 구성을 봤을 때 어렵지는 않을 것이었으나, 사망자가 나오지 않으리란 보장은 없었다.

그리고 그 사망자가 본인이 될 수도 있다.

그 자각이 모두들 생긴 것이었다.

“다들 집중하고, 몬스터가 나오면…….”

베히모스의 단체장은 되레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이 한 번의 진동으로 인해 다들 집중력을 되찾았기에.

하지만 튀어나온 그 ‘몬스터’를 보며 얼굴을 굳혔다.

“무기 들어!”

“으아아아악!”

악을 쓰는 단체장, 타인을 사냥하러 다녔으면서도 정작 자신이 사냥당하는 처지에 놓이자 발악하는 빌런들.

그들의 앞에 등장한 것은 머리의 뿔이 마치 관(crown)과 비슷하게 생겼다 하여, 카이저(Kaiser)라는 이름이 붙은 8등급 몬스터였다.

*    *    *

“호에에에, 언냐 옵바야들 불쌍한 고애오…….”

나는 멀리서, ‘베히모스’의 소속원들이 당하고 있는 것을 관망했다.

그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들이 자초한 결과였다. 제 능력 이상의 욕심을 부린 죄. 거기에 자신들이 지금까지 저지른 행동에 대한 죄까지. 그것들이 자신들에게 업보로 돌아오고 있는 것이었다.

물론 내가 행동을 취하지 않았다면 반 이상은 살아 나갔겠지만.

“헤엣.”

나는 걸터앉아 있던 던전 벽면의 구조물에서 뛰어내렸다. 물론 지면에 뛰어내렸다간, 그대로 작살이 날 것이었으므로 지팡이로 갈아탔다.

애초에 이 던전은 저 구성으로는 깰 수 없는 곳이었다. 만약에 그랬다면 안쪽의 유물이 완전히 각성하는 것을 기다리지 않고 지금 당장 빼내 왔을 것이다.

던전 안에서 마력을 흡수해서 각성시키는 방법도 있었지만, 내가 직접 마력을 주입하거나 마석을 이용해서 각성하는 방법도 있었다.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은 나도 깨지 못하는 던전이었기 때문이다. J는 물론이고 일리아나 나츠키 등등 내가 아는 이들을 모두 그러모아도 깰 수 없다. 저기서 날뛰고 있는 몬스터, 카이저가 여기선 대장급도 아니었다.

보스가 아마 5등급 몬스터였나?

실상 외부 필드에서 발견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개체가 3등급인 데다가, 그마저도 7등급 이상은 개체가 매우 적었다. 일반적인 시선에서 이 던전은 중하급 따위가 아니라 상급 이상으로 분류되어야 옳았다. 대형 길드나 한번 도전해 볼 법한 그런 곳으로.

하지만 일단 초입은 중하급 던전 수준이었으니, 이들이 대강 눈치채고 빨리 던전을 탈출했다면 목숨은 보전할 수 있었을 것이다. 지금 저 카이저가 등장한 것은 순전히 나 때문이었다.

“아가야, 수고한 고애오…….”

나는 묵직하게 음, 하고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 땅을 쓰다듬어 준 뒤 역소환시켰다.

방금 전의 진동은 땅이 만들어 낸 것이었다. 그로 인해 자극을 받은 카이저가 깨어나 베히모스의 빌런들을 공격하는 것이었고.

들려오던 비명 소리도 숫자가 적어지기 시작했다.

즉흥적인 작전이었지만, 일이 이렇게 쉽게 풀리니 기분이 좋았다.

“납븐 옵바야들은 혼내 조야 해요…….”

살 가치도 없는 쓰레기들, 나는 녀석들을 인간으로 보지 않았다.

던전 내에 울려 퍼지는 단말마를 뒤로한 채, 나는 빗자루를 타고 비밀 포탈을 통해 그대로 빠져나갔다.

히든 퀘스트 달성!

“호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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