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화. 븝미메카애오!
BP, 그러니까 시스템 말로는 븝미포인트.
이건 그냥 내가 어떠한 행동을 취할 때마다 난수로 쌓이는 것 같았다. 비교적 세계관 내에서 큰 영향을 끼칠 때마다 많이 올라가는 것 같은데…….
그렇게 치면 정말로 쌓기 어려운 것이었다. 지금껏 내가 해 온 일들만 하더라도 이쪽에 상당한 영향을 끼친 것들이 많으니까.
고로 지금 내가 커스터마이징 룸에서 할 수 있는 건 그 문신 하나뿐이었다.
당연하지만 전혀 쓸모가 없는 것이어서, 나는 고개를 저었다.
음.
내가 한숨을 내쉬고 있자, 땅의 정령이 나를 물끄러미 쳐다본다. 몸집을 자체적으로 키운 녀석은 상당히 든든했다. 묵직한 모습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는, 마치 골렘과 같은 외형의 녀석을 보다 보면 절로 안심이 되었다.
“헤으응…… 땅아가는 이제 아가가 아니애오…….”
그를 보니, 예전에 게임 플레이때 연금술사가 골렘을 만들었던 것이 기억이 나서, 나는 이 녀석을 골렘처럼 활용해 보려고 했다.
하지만 그것이 비효율적이라는 것을 알아채었다. 골렘의 주 역할은 그 주인의 보호. 가끔은 탈것이 되기도 하고 방패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탈것도, 방패도 그다지 필요하지 않았다. 대공 능력이 뛰어나지 않은 이들을 상대할 때는 어차피 지팡이를 타고 날아다닐 것이었고, 땅의 정령 또한 일리아의 지식과 특성들을 전수받은지라, 전투요원의 역할을 하는 편이 더 어울렸다.
하지만 골렘, 나는 이 두 글자에 완전히 빠져 버렸다.
강철 내지는 여타 단단한 금속으로 이루어진 몸체를 부딪쳐 가며 우직하게 싸우는 그 모습.
유년시절 메카물에 대한 로망이 슬금슬금 살아나기 시작하는 느낌이었다.
애초에 이것은 내가 실제로 만들고자 한다면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만드는 고애오!”
그럼, 만들지 뭐.
잠시간 고민하던 나는 답을 내놨다. 어차피 그것들도 모두 내 자산이자 힘이 될 것이 아닌가.
절대 내가 실제로 걸어 다니는 메카닉 기체들을 보고 싶어서 그러는 것이 아니었다.
* * *
“다나아, 어쩐 일이야? 주말도 아닌데.”
“저 방학했자나여, 언냐야.”
“아, 그러네? 그럼 이제 아무 때나 볼 수 있는 건가? 저번 주 주말에 안 와서 영 섭섭했는데.”
잘 왔다면서 머리를 마구 쓰다듬는 강미연. 뭔가 이럴 때마다 강아지라도 된 듯한 기분이었다. 나는 바람정령을 불러, 흐트러진 머리를 정리했다.
“어, 정령?”
그때, 강미연이 의아한 목소리로 말했다. 상당히 놀란 듯한 모습이었는데, 그에 의문스러워하던 나는 내가 그녀 앞에서 정령을 부른 적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바로 알아보네여, 언냐야.”
“당연하지. 아…… 당연한 건 아닌가? 아무튼 보니까 바람 속성 정령 같은데 맞아?”
“바람아가야애오!”
강미연은 촐랑거리는 녀석을 손가락으로 슥슥 쓰다듬었다. 맨날 내가 그러려고 해도 몸을 피하던 녀석이, 신기하게도 얌전해진다.
이게 주인도 못 알아보고…….
“오랜만에 본다. 얘는 예전에 봤던 애보다는 훨씬 활기차네. 보기 좋아.”
“너무 활기차서 문제인 고애오…… 근데 언냐야는 어디서 본 적 있는 본 거시에얌?”
“있어.”
강미연은 순간 얼굴을 싹 굳혔다. 내 질문이 어딘가 아픈 구석을 찌르기라고 한 듯이. 하지만 그녀는 원래 모습으로 돌아와, 활짝 웃었다.
“자, 뭐 쓸데없는 얘기는 이쯤 하고. 오늘은 뭐 때문에 온 거야? 오늘도 가르쳐 줄까?”
강미연은 내 교육에 대해서 열의가 갈수록 더해져 가고 있었다. 요새 들어서는 진짜로 그냥 자기 제자가 될 생각이 없냐고 물어보기까지 했는데, 이미 그렇지 않냐고 하니 그도 그렇다며 웃음을 터뜨렸었다.
“오느른 물어보고 시픈 게 있는 고애오…….”
“물어볼 거? 그게 뭔데?”
그녀는 눈을 반짝거렸다. 물어보고 싶은 거라니까 또 그런 쪽으로 생각한 건가. 아무튼 가르쳐 주는 데에 너무 열성적이었다. 연금술을 하지 않았더라면 강미연은 교사라도 하지 않았을까.
“언냐야, 혹시 골렘 만들 수 있어여? 엄청 크고 멋진 거로여.”
“골렘? 만들 수야 있지. 근데 아무래도 효용성이 좀 떨어지는 편이라서 안 만들 뿐이고. 만들고 싶어?”
나는 머리를 세차게 끄덕였다. 당연히 만들고 싶으니까 물어보는 거지.
그녀는 음, 하며 침음을 흘리더니 답을 내놓았다.
“재료만 있으면 만들 순 있어. 그런데 네가 생각하는 그런 게 나올지는 모르겠네. 단가는 적게 잡아도 7~8억 정도일 테고, 그렇게 만들어 봤자 20등급 몬스터 하나 정도 수준일 텐데.”
“호에에에.”
생각보다 너무 약한데?
나는 스토리에서 왜 골렘이 제작되지 않는지 그 이유를 알 것만 같았다.
멀티플레이에서 봤던 골렘들은 이미 연급술사로서 극성에 이른 이들이, 엄청난 재료템들을 갈아 넣어 만든 것이었다. 그런 만큼 실제로 보스 레이드 같은 것에서도 사용이 되었었고.
하지만 이쪽에서는 그런 실력을 가진 연금술사도, 1~25등급의 기존 몬스터 체계를 벗어난 몬스터들에게서 떨어지는 사기적인 재료템들도 없었다.
그러니 이 정도 성능에서 만족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돈이라면 쪼들리지는 않지만, 이런 곳에 낭비할 만큼 넘쳐 나지도 않았다.
포기해야 하나.
그렇게 생각하며 입을 삐쭉거리고 있던 와중, 나는 머릿속에서 한 가지 기억을 떠올릴 수 있었다. 내가 왜 이 생각을 못 했지?
“언냐야, 혹시 그럼 마갑은 만들 수 있어여?”
“마갑? 어…… 그쪽으로 가면 훨씬 쉽긴 하지.”
“그거를여, 골렘처럼 엄청엄청 크게 만드는 고애오!”
골렘처럼 엄청 크게 만든다, 그 말에서 강미연 또한 감이 잡힌 모양이었다.
“……뭘 원하는지는 알 것 같아.”
“될까여…… 언냐야?”
애초에 메카물에서 나오는 기체들은, 자율적으로 싸우는 것이 아니라 탑승자가 그 기체 안에 탑승하는 것이지 않은가.
그렇다면 그것처럼, 탑승까지는 아니더라도 착용자의 힘을 증폭해 주고 방어력을 올려 줄 수 있는 마갑을 만든다면?
실제로 이 발상을 떠올려 내서 마갑을 만들던 연금술사가, 내 게임 친구이기도 했다.
“음…… 그러니까 코어를 조금 조정해서 확산형이 아니라 내재하도록 만들고…… 그리고 겉 부분을 마력으로 처리를 한 다음에, 외갑과 내갑이 분리되도록…….”
강미연은 이미 자기만의 세계에 빠진 듯, 마구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가끔 나한테 연금술을 가르치며, 질답을 할 때 저런 모습을 보이고는 했다. 말괄량이 같은 모습이지만 그녀 또한 괴짜 연금술사 강씨 세 자매 중 하나였다.
“언니, 언니! 나와 봐!”
그녀는 다급하게 자신의 언니들을 부르며 안쪽으로 달려갔다.
아, 왜 이년아! 같은 강지연, 강재연 자매의 비명 소리가 들리기도 잠시.
“호에…….”
슬금슬금 가서, 그쪽을 빼꼼 살펴보니 다들 모여 앉아서는 정신 나간 사람들처럼 중얼거리고 있었다. 그 모습이 정말 매드 사이언티스트 같은 모습이어서, 나는 잠시간 멀찍이 떨어진 곳에 얌전히 앉아 있었다.
* * *
그녀들이 정신을 차린 건 대략 40여 분이 지난 이후였다. 그녀들은 부산스레 뭔가 정리를 하더니, 내 앞에 쪼르르 3명이 모여 앉았다.
“저…… 다나?”
말을 가장 먼저 꺼낸 건 첫째 강지연이었다. 원래 항상 존대를 하던 그녀는, 얼마 전부터 겨우 내게 말을 놨다. 새로 건물까지 이주를 시켜 준 직후에는 절대 그럴 수 없다면서 존대를 했으나, 내가 사 준 게 아니라 옵바야(실제로는 존재하지 않지만)가 사 준 것이라는 논리를 펼치자, 겨우 말을 놨다.
“우리가 방금 생각을 해 봤거든. 내가 동생한테 들은 대로면, 지금 생각하고 있는 게 골렘 정도 크기의 마갑, 맞지? 착용자가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게 하는 거로.”
“마자여!”
척 하면 척이다. 이야기를 들을수록 그녀들이 그린 이미지와 내가 생각했던 것과의 교집합이 점점 커진다.
“다른 곳에서도 이런 걸 만들려고 한 시도가 없었던 건 아닌데, 문제가 몇 가지 있어서 안 됐었거든. 그런데 생각해 보니까 지금 우리가 연구하고 있던 게 딱 이거랑 연관이 되던 거란 말이야?”
우연히 그녀들이 하고 있던 연금술 연구. 그것이 지금 마갑을 만드는 데에 가장 큰 난제를 해결할 수 있는 열쇠라고 한다.
“그래서 잘만 하면 될 것도 같아. 그런데…… 이거 만들려고 하면 돈이 좀 들거든.”
그녀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아무래도 자기보다 훨씬 어린, 외양으로는 중학생 정도 되어 보이는 내게 돈 얘기를 꺼낸다는 게 부끄러운 모양이었다.
나는 피식 웃었다. 정말 지나치게 순수한 사람들이었다. 자기들한테 이런 지원들이 들어오면, 조금 오만해질 법도 하지 않은가.
“옵바야한테 말해 볼게여!”
나는 곧바로 전화기를 들어, 어딘가로 연락을 하는 척했다. 잠시 일어서서 건물 구석으로 향하자, 내 뒷모습을 따라 강씨 자매들의 시선이 쪼르르 따라오는 것이 느껴졌다.
“아 씨, 어떡하지? 지금까지 연구비로 준 돈도 많은데…… 막 쓴다고 뭐라 하는 거 아니야?”
“아니, 근데 그거 다 연구비로만 나간 거 맞잖아. 우리가 뭐 밥이라도 한 끼 그거로 사 먹었어?”
“말도 마. 그냥, 이 언니 입에 거품 물면서 연구비는 손 못 댄다고. 짜장면 말고 짬뽕 시킨다고 하니까 눈 까뒤집고 막 그냥.”
“푸흐흐.”
뒤에서 저들끼리 속삭이는 소리를 들으며 나는 웃음을 터뜨렸다. 분명히 그냥 본인들이 자유롭게 써도 된다고 하면서 준 돈인데. 솔직히 그거로 엄청난 사치만 하지 않는다면, 그냥 개인적으로 써도 나는 상관이 없었다.
하지만 매달 지급한 그 연구비를, 정말 순전히 연구에만 사용한 모양이었다.
이해도 갔지만, 그래도 짬뽕은 좀 심한 것 아닌가.
먹는 거로 그러는 게 사람 제일 섭섭한데.
짬뽕을 시켜도 됐다, 그냥 짜장면 먹으라는 게 뭐가 나쁘냐 하는 두 파벌로 나뉘어 담론을 벌이고 있는 그녀들을 잠시 지켜봤다. 애초에 내가 여기까지 걸어와서 하는 일이라곤 전화하는 척이 전부였으니까.
그녀들은 가상의 인물이 자신들에게 돈을 주고 있고, 내가 그 인물에게 소중한 사람이라는 정도로 이해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실상은 내가 그 모든 자금의 출처이며, 지금껏 문자를 통해 대화를 나눈 이 또한 나였다.
내가 누구에게 허락을 받는단 말인가?
결국엔 내 통장에서 내 돈이 나가는 일인데.
나는 단번에 20억가량을 이체했다. 실상 제작에 들어갈 때는 돈이 더 필요하겠지만, 그 전까지 연구를 하는 데에야 차고 넘치겠지.
일부러 한꺼번에 큰 금액을 준 이유는…… 그냥 짬뽕 좀 사 먹으라는 뜻이었다.
“흡.”
내가 다시 그녀들에게 걸어가자, 다들 입을 꾹 다물었다.
강지연은 긴장이 되는지, 딸꾹질까지 했다. 그 정도는 아니어도 다른 두 동생들 또한 떨리는 건 마찬가지인 모양이었다.
“허락받고 온 고애오.”
“주, 주신대?”
“네! 20억인가, 이체했으니까 아마 시간 좀 지나면 입금될 거래여!”
“20……억?”
뜨악한 표정으로 입을 벌리는 그녀에게, 나는 한마디 말을 덧붙였다.
“꼭 연구비로 다 안 써도 되니까, 밥 좀 잘 챙겨 먹으래여. 옵바야가.”
그 말에, 강재연이 자기 언니의 얼굴을 째려본다. 내 말이 맞지 않냐는 듯이. 아무래도 짬뽕을 못 먹은 한이 꽤 컸던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