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애기븝미쟝이 되었다-81화 (81/172)

#81화. AV 대장간이애오!

김수혁에게서는 상당히 오랜 시간 동안 연락이 없었다. 심지어는 그 대장간도 라이카가 계속해서 지키고 있었는데, 그녀에게 물어본바, 김수혁이 꽤나 긴 시간 동안 어딘가로 떠났다고 했다.

“그게 어딘데여?”

“나도 몰라.”

어깨를 으쓱이는 라이카. 정작 자기 대장간을 지켜 달라고 부탁한 사람조차 어디로 갔는지 모른다니, 내가 어떻게 알아내겠는가.

애초에 장비 성능이 당장에 떨어지는 것도 아니었다. 지금 내가 입고 있는 것들만 하더라도, 그 디자인만 제외하면 나무랄 데가 없는 것들이었다.

“근데 왜 요즘 이렇게 막 찾아와? 수혁이 있을 때도 이랬나?”

“아니여? 그 옵바야는 좀…….”

“왜, 엄청 치근대디?”

“……조금 그런 거 가타여.”

라이카는 씩 웃으며 대강 그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그게 딱히 다른 감정이 있어서라기보다는 그냥 친구로서 그러는 거라고. 워낙에 사교성이라고는 없어서 가까이 지내는 사람도 없다 보니 사람이 고픈 것 같다는 이야기였다.

그러면 방어구는 왜 이따위로(물론 순화시켜서 표현되었다) 만들어 주냐는 질문을 하자, 라이카는 헛기침을 했다.

“내가 일 가르쳐 줄 때 이렇게 가르쳐 줬으니까? 아니, 뭐 그놈 취향도 있겠지만…….”

“언냐야가 범인이었던 고애오?”

“범인이라는 말까지는 좀 심하고, 아무튼 그렇긴 해. 저번에 말하지 않았었나?”

하기야, 지금껏 라이카의 작업 모습을 지켜보며 나온 것들이 대부분 그런 모양이기는 했다. 지금도 자기가 만든 방어구를 입고 있는 라이카의 모습은, 상당히 민망했다. 그나마 저번처럼 나체가 아닌 걸 다행으로 생각해야 하려나.

“진짜 더럽게 덥네. 어후.”

한참 동안 작업을 하는 그녀와, 그녀를 지켜보던 나는 기진맥진해졌다.

대장간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 그 때문에 살갗이 통째로 익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녀는 수건으로 땀을 훔치더니, 내게도 그것을 가져다 대었다.

“아, 안 대여, 언…… 으브븝!”

이미 땀으로 반쯤 축축해진 수건.

그것으로 내 몸을 벅벅 문질러 버리는 라이카의 행태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호에에에…….”

“안 더러워, 인마.”

몸이 온통 수건으로 문질러진 채, 망연히 앉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

온몸에서 그녀의 체취가 풍겨져 나왔다. 심히 불쾌한 냄새는 아니었지만, 진한 체취가 코끝을 마비시키는 것 같았다. 수인이라서 그런가.

“킁…….”

라이카는 수건에 코를 대고 한 차례 맡더니, 요상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는 내게 물었다.

“너, 무슨 사과주스 같은 거 먹었냐? 몸에 흘리기라도 했어? 킁킁.”

“아, 아닌데여…….”

“이게 땀 냄새가…… 킁. 아닌데. 킁킁…….”

털이 북슬북슬한 귀를 쫑긋거리며, 연신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는 라이카. 그 모습을 보니 절로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저, 저는 이만 갈게여!”

잠시 뒤 그녀가 요상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군침을 다실 때, 위기감을 느꼈다.

나는 곧바로 도망쳐 버렸다.

*    *    *

내가 아까운 방학 시간 동안 뻔질나게 대장간으로 찾아간 이유는 하나였다.

바로 링크 스킬 때문이었다.

그동안 나는 J와 일리아의 전투 특성을 바람이와 땅에게 배우게 했고, 물과 불에게도 적합하지 않은 상성이지만 둘 다 배우게 했다.

물론 전수시킨다고는 해도, 그 기억과 특성의 상한치는 분명히 원본의 열화판.

실제로 일리아의 특성과 기억을 수십 차례 전이시킨 땅이 보여 주는 모습은, 일리아의 완벽한 하위 호환 격의 모습이었다. 그러니까 학기 초의 일리아를 보는 것 같았다.

검술은 계속해서 단련해 왔지만, 그것과 각성해 버린 자신의 신체 간의 간극이 벌어져 있는 상태일 때.

지금의 일리아는 그렇지 않다. 2학기가 시작되면 아마도 금방 최상위권에 진입할 것이었다.

[당분간 못 만날 것 같아서 넘 슬프당 ㅠㅠㅠ]

이게, 얼마 전에 그녀가 보내온 문자였다.

여행 이후에도 틈만 나면 같이 이곳저곳을 쏘다니던 그녀였지만, 막상 개학할 시기가 다가올 무렵이 되자 곧바로 수련에 정진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땅아가는 아가애오…… 어쩔 수 없어여…….”

그런 현재의 일리아와, 그녀를 복제해 낸 땅의 정령 사이에는 엄청난 간극이 있었다.

물론 스펙 자체가 땅의 정령이 워낙에 뛰어나다 보니, 그런 기술적인 문제가 크게 느껴지진 않았지만…… 그래도 명백히 부족한 건 부족한 거다.

바람, 불, 물 같은 경우에도 같았다.

특히 바람 같은 경우에는 상당히 좋은 암살자로서의 소양을 갖추게 되었지만, 그걸 J와 비교하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할 일이었다.

J는 현 아카데미 내에서, 여전히 교관들을 제외하고 내가 이기지 못하는 유일한 대상이었다.

그게, 딱 두 달 정도만 지나면 뒤집어질 것 같기는 하지만.

어쨌든 지금으로서는 그러했다.

링크는 대상의 능력을 열화된 수준으로 가져온다.

나는 그 개념을 깨달았다.

“땅아가……?”

하지만 그렇다고는 해도, 김수혁의 특성 같은 경우에는 선을 넘었다.

먼저 땅에게 그 특성을 전수시켰지만, 녀석은 내가 사비를 털어 잔뜩 사 온 재료들을 무참하게 망가뜨려 버렸다.

단조조차 하지 못하고 부숴 버렸다든가, 하는 그런 의미는 아니었다. 만들기는 제대로 만들었다. 그런데 그 성능이 정말 끔찍한 수준이었다는 것뿐이다.

그냥 평범한 철검. 거기에 달린 옵션은 예리함(E-).

필드에서 뛰어노는 고블린들이나 들고 있을 법한 것이었다.

으음.

그 검을 보며 좌절하는 내 등을, 땅이 툭툭 두드려 줬을 때의 그 심정.

그것은 말로 형용하기가 힘든 것이었다. 그래, 얘가 무슨 죄가 있겠나.

그래서 다른 녀석들한테도 특성을 전수시켜 봤다. 하지만 다들 물리력을 행사하기에는 그리 적합하지 못했다. 그나마 땅이 제일 나았다.

물론 다른 영역에서 도와줄 수는 있었다.

불과 바람이야 당연히 대장간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었고, 물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러니까 작업 보조로 물, 불, 바람. 메인으로 땅이 제작을 하는 형태가 갖춰졌다.

푸우우우! 헥헥! 나모태!

하루 종일 바람을 내뿜고 있던 녀석이, 비실거리면서 바닥으로 쓰러진다. 불 또한 노곤한 표정으로 몸을 비틀고 있다.

물 같은 경우에는 괜찮아 보였지만, 땅은 억지로 참고 있는 듯 계속해서 음, 하는 신음성을 흘리면서 손을 부들거리고 있었다.

“아가야들…… 이제 쉬어여…….”

나는 그 환장할 만한 판국을 보고, 힘없이 말할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 더 작업을 시킨다면 그게 주인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그냥 악덕 고용주 수준이지.

라이카의 작업을 몰래몰래 정령들에게 훔쳐보게 한 결과, 상당히 품질이 개선되기는 했다. 하지만 시중에 나온 검들보다 되레 좀 떨어지는 정도.

검 하나 만드는 데 드는 재료값이 60만 원이다. 마석을 포함해서 이것저것 합치면 그 정도 나온다.

그리고 지금 바닥에 쌓여 있는 검 10자루. 각각 성능 차이가 조금 나긴 했지만…… 이것들을 팔면 한 50만 원 정도 쳐주려나.

“호에에…….”

죄다 (E+)에서 (D-) 정도의 옵션이 붙어 있는 검들. 이런 건 그냥 필드에서 사냥하다가도 나올 법한 것들이었다.

다만 그렇다고 해서 수요가 없는 건 아니긴 했지만…… 어쨌든 그런 무기라도 드롭되는 필드는 상당히 높은 등급이었으니까.

어쩔 수 없이, 그냥 내다 팔아야겠지.

재료값이라도 어느 정도 회수하려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물론 돈이야 이 정도 손해를 감수하기에는 차고 넘쳤지만, 최근 들어 꽃밭 기준으로 질이 떨어지는 약초들만 풀다 보니, 시세가 대체로 내려갔다. 어쩔 수 없이 꽤나 희귀한 것들의 물량도 풀어야 할 판국이었다. 돈을 무한정 퍼다 주는 황금밭까지는 아니란 것이다, 그 꽃밭이.

나는 검들을 경매사이트에 죄다 올려 버렸다. 자루당 45만 원으로 책정해서 한꺼번에. 얼마 지나면 수수료 뗀 돈이 입금되겠지. 예상 시세보다 낮게 올렸으니, 금방 입질이 올 것이다.

*    *    *

일반 대중들의 시선에서, 히어로들은 빛나는 존재들이었다.

이따금 필드나 던전에서 튀어나오는 몬스터들을 잡아 주고, 시민들에게 해악을 끼치는 빌런들을 무찌르는, 찬경의 대상.

그러한 시선들이 최근에는 상품화가 되기까지 해서, 선남선녀에 강하기까지 한 상위권 히어로들 같은 경우에는 연예인들보다 훨씬 인기가 좋기까지 했다. 물론 그들은 개인 일정이 바쁜지라, 방송 따위에 자주 출연하지는 못했지만 그러한 점까지 되레 대중들의 호감을 샀다.

히어로, 그러니까 각성자는 혈통을 탄다.

부모가 각성자라면, 그 자식도 각성자일 가능성이 매우 컸다.

유명 히어로들의 아들딸들은 대대로 대부분 히어로다. 또한 그들은 그 부모와 같이 개중에서도 강한 특성을 타고난다…….

반대로 혈통을 타고나지 못한 이들.

부모 중 어느 한쪽도 각성자가 아님에도 각성한 이들.

개중 몇몇은 놀랍게도 강한 특성을 지니고 있는 경우가 있었지만, 대부분은 쩌리 수준에 지나지 않았다. 중위권 이상의 히어로들의 뒤에 처져 있는 하위권 히어로들. 그들이 바로 여기에 속하는 부류였다.

그 하위권 히어로 중 1명인 남자.

그는 어느 날 경매장에 올라온 한 철검을 봤다.

“45만 원……? 싸긴 한데…….”

그는 얼마 전 25등급대 필드에서 사냥을 하다가 무기를 잃었다.

쿼드테일. 이름은 거창하지만, 실상 꼬리 4개 달린 이리에 지나지 않는 녀석에게 당했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목숨은 보전할 수 있었으나, 그날 그는 치료비로 일주일간 번 돈을 모두 사용해야만 했다.

그가 한 달 동안 벌 수 있는 수익은 대략 700만 원 정도. 물론 적다고 할 수 없는 수입이었지만, 치료비 내지는 포션, 장비 수리비 따위로 까먹는 돈이 달에 300을 넘어갔다. 목숨을 걸고 하는 일치고는 부족하다 느낄 수준이었다.

그나마 계속해서 정진한다면, 언젠가 더 높은 필드에서 사냥을 할 수 있지 않을까. 그 기대감으로 버티는 것이었다. 이제 와서 일반인들처럼 정상적인 직업을 가지고 일할 자신이 없기도 했다.

“사야겠지.”

그는 경매장에 올라온 철검을 구매했다. 출처도 AV 대장간이라는 야릇한 이름의 3류 대장간에서 나온 물건. 물론 품질보증을 받았으니, 사용할 수 있는 수준이겠지만 그래도 영 찝찝한 물건.

다만 그는 어쩔 수 없이 그를 구매했다.

이번 달에는 생활비가 없었다. 아껴서 살아야만 했다. 그것이 비록 목숨을 보전해 줄 장비일지라도.

사실 수백만 원이 넘어가는 검이 아니라면, 철검은 거기서 거기기도 했고.

그렇게 그는 자기 위로를 하며 검을 샀다. 그리고 필드로 들어갔다.

“후우우…….”

저번에 큰 부상을 입었던 경험 때문인지, 몸이 떨렸다. 원래는 무난히 잘 잡던 고블린들도 두렵게만 느껴졌다.

하지만 어찌어찌 잡아 나갈 수는 있었다.

‘뭐지?’

그것은 그의 본능적인 위기 극복 능력 따위가 아니었다. 이전보다 못한 수준의 공격임에도 고블린이 툭툭 쓰러졌던 것이다. 그는 그에 의아함을 느꼈다.

상태창을 살펴봐도, 자신은 성장하지 않았다. 그런데 왜?

크허허엉!

그때, 어디선가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익숙한 울음소리. 그건 쿼드테일의 것이었다.

남자는 얼어붙었다. 당장 그 트라우마가 지워지지 않은 상태에서 마주치기엔, 너무나 벅찬 상대였다. 물론 몬스터가 그런 사정을 봐줄 리는 없었다.

다다다닥!

지면을 박차고 뛰어오는 쿼드테일. 남자는 당황하며 허공에 검을 휘둘렀다.

‘좆됐다, 씨발.’

부지불식간에 벌어진 어이없는 실수.

하지만 반전이 일어났다.

화르르륵!

일순 검에서 솟구치는 불길!

그에 쿼드테일은 갯과 동물 특유의 소리를 내며, 뒤로 물러섰다.

깨갱!

그에, 당황한 남자는 잠시간 멍하니 서 있더니 곧바로 앞으로 짓쳐 나갔다.

어떻게 된 일인지는 몰라도 이 기회를 땅에 버릴 순 없는 일이었다.

30분 뒤, 혈투의 승자는 남자가 되었다.

하지만 그는 온전히 그를 기뻐할 수 없었다.

“이거…… 뭐야?”

그가 손에 들고 있는, 45만 원짜리 싸구려 철검. 자루에 작게 ‘AV(애기븝미)’라고 각인되어 있는 이 철검이 불과 얼음들을 내뿜고, 적을 날려 보내고 짓누르며 자신의 생명을 구해 주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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