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화. 무시무시한 몬스터애오…….
“호에에에, 이건 먼가여.”
뭐야, 이건.
나는 내 개인 메일에 와 있는 몇 개의 메일들을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다들 하나같이 ‘AV 대장간 점주님’을 대상으로 보낸 것이었는데, 어떻게 알았는지 내가 도매급으로 넘겨 버린 그 싸구려 검들을 재판매 해 달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븝미쟝 바보 아니거든여!”
이딴 거에 속을 것 같냐.
나는 곧바로 그놈들을 모두 스팸 처리하고 폰을 던져 버렸다.
이쪽 세계관에서는 꽤나 유명한 이야기였다. 초보 연금술사나 대장장이들에게 접근하여, 투자 명목으로 돈을 쥐여 준 뒤 마음대로 흔들거나 혹은 자기네들의 공장에 투입시키는…….
애초에 연금술사 자매들이 당할 뻔했던 사기 수법이 바로 그것이기도 했으니, 내가 이놈들의 속셈을 모를 리가 없다.
아무리 븝갈통이니 뭐니 해도 내가 그렇게까지 바보는 아니었다.
“후에에에…….”
나는 노곤한 신음을 흘리며 다시 자리에 누웠다.
내가 지금 있는 곳은 부산의 바닷가에 있는 호텔의 선베드존.
그저 휴식을 취하는 사람도, 나처럼 태닝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물론 나 같은 경우에는 태닝을 한다고 하기도 뭣한 게, 기껏 살을 태워 봤자 타지를 않는다.
그냥 기분만 내는 것뿐이지.
그 때문에 태닝한 것처럼 피부색을 바꾸려면 따로 커스터마이징 룸에서 바꾸는 수밖에 없었는데, 한 번 바꾸는 데에 1,000BP, 다시 원래대로 돌리는 데에 500BP가 필요했다.
안 그래도 적은 걸 피부색 하나 바꿔서 기분 전환이나 해 보자고 헛되이 쓸 수는 없는 일이었다.
“느에에엥…….”
자세를 바꾸자, 햇빛에 닿지 않았던 살갗이 비명을 지른다. 다만 나는 그 감각을 즐겼다. 뜨거운 햇살이 피부를 태우는 그 감각을…… 즐기…….
“너무 뜨거운 고애오!”
대략 10분 정도 지났을까.
나는 도저히 견디지 못하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실내로 도망쳤다. 피부가 후끈거려서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실제로 햇볕을 오래 쬔 곳은 마치 화상이라도 입은 양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물집이 안 잡힌 걸 다행으로 여겨야 할 정도로.
“아가야들!”
나는 곧바로 물의 정령을 소환해, 몸을 식혔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땅의 정령에게 치유를 부탁했다.
으음.
녀석은 조그맣게 소환된 게 오랜만이라 그런지,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치유를 시작했다. 고위 마법사의 리커버리나 사제의 힐보다는 못해도, 화상 정도는 가뿐히 치료가 가능했다.
심하게 부어오른 곳을 따라 감겨드는 나무뿌리.
그와 동시에 순식간에 통증이 사라지고, 피부가 원래대로 돌아간다.
“호에에에, 아가야는 피부가 너모 약해여…….”
햇빛이 엄청 강한 것도 아니었는데, 겨우 20분 만에 화상을 입을 줄은 생각도 못 했다.
살갗을 후후 불어 가며, 나는 곧바로 개인실로 향했다.
덜컥.
“후야아아…….”
역시, 그냥 호캉스는 냉방 되는 방 안에서나 박혀 있는 편이 나은가.
정체를 들키지 않으려 썼던 선글라스와, 모자를 집어 던지고 곧바로 침대에 뛰어들었다.
“윽!”
“호에에……?”
그때, 어디선가 들려오는 의문스러운 소리. 그건 분명 사람의 목소리와 같았다.
나는 당황하며 주변을 둘러봤지만, 어디에서도 기척이라고는 느껴지지 않았다. 잘못 들은 건가?
“아니며는 귀신인가여…….”
진짜 사람이건, 귀신이건 가만히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기에, 나는 다리를 부들부들 떨며 방 안을 뒤져 봤다. 하지만 정말 아무런 흔적도 발견할 수가 없었다.
애초에 내가 잠겨 있는 개인실에 마음대로 들어갈 수 있을 리가 없다. 이렇게 큰 규모의 호텔이라면 각성자들의 능력 또한 감안해서 보안에 신경을 쓰니까.
결국 그냥 내가 예민한 건가 싶어서 침대에 눕던 찰나.
“여긴가여!”
순간 느껴지는 기척에 고개를 홱 돌리니, 눈에 한 사람이 들어온다.
“어…….”
마치 동상처럼 얼어붙은 채 나를 바라보는 사람.
그녀는 바로 신하연이었다. 전혀 예상치도 못한 정체였던지라 나도 똑같이 굳어 버리고 말았다.
해 봤자 J겠거니 했는데, 그랬으면 그냥 한 소리 하고 웃어넘기려고 했는데.
“언냐야……?”
왜 얘가 있는 거야.
그녀는 사람이 이렇게까지 되나 싶을 정도로 식은땀을 줄줄 흘렸다. 그렇게, 정적의 1분이 지나고.
“미안…… 미안…… 미안…… 죄송합니다…….”
그녀는 뭔가 빠진 사람처럼 내게 사과했다. 상태가 영 안 좋아 보여, 한 발 다가가려고 하자 그녀는 두 발자국 물러섰다.
“나는, 그냥 다른 애들이랑 놀러 간 줄 알고. 혼자 온 줄은 몰랐고. 그냥…….”
다른 사람들이랑 같이 왔으면 괜찮다는 건가. 나는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을 흘릴 수밖에는 없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신하연이 왜 이렇게 구는지 알 수 있었다.
일리아가 나를 호감의 대상으로 여긴 근본적인 이유는 귀여운 동생을 보는 것 같았기 때문.
J는 특별한 것에 대한 호기심과 소유욕이었고, 나츠키 같은 경우에는…… 잘 모르겠지만 그냥 미운정이라도 든 모양이었다.
신하연은 조금 특별하다.
얘는 누군가한테 정을 준다는 행위 자체를 하지 않는 부류다.
거의 모든 사람에게 가면을 쓰고 대하고, 심지어는 친족을 넘어 직계가족들까지도 여차하면 패로서 버릴 수 있는, 극한의 개인주의자였다.
그런 그녀가 과연 좋아하는 인물이 생기면 어떻게 될까.
커뮤니티 사이트에서는 꽤나 그런 주제가 많이 올라왔던 것 같다.
나는 그 결과를 지금 목도하고 있었다.
“도대체 어떻게 들어온 거애오? 언냐야…… 문도 잠겨 있었는데.”
“그…… 사실, 여기가 우리 부모님 거라서.”
“호에에에.”
아, 미친.
나는 그 신하연의 말을 듣자마자 뒷골이 당겨 오는 것을 느꼈다.
재계 10위권 안에 드는 거대 기업이자 국내 최상위 길드장의 막내딸, 그러니까 이런 상황이 발생할 수 있는 것이었다.
* * *
“미앙냉…….”
“언나야…… 안 어울려여…….”
신하연은 코맹맹이 소리를 내며 아양을 떨었다. 이따금 일리아가 장난식으로 내게 그러는 걸 본 모양이었는데, 정말 하나도 안 어울렸다.
물론 그 본모습을 모르는 사내자식들이 이런 모습을 본다면 살살 녹아내릴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나는 나름대로 가장 날카로운 태도로 말을 한 것인데도, 그녀는 약간 시무룩해진 정도로 그쳤다. 강경한 의사 표현, 특히 부정적인 것을 할 때 이 몸은 정말이지 쓸모가 없었다.
그녀는 맛있는 거라도 사 주겠다며 나를 호텔 레스토랑으로 끌고 갔다. 어차피 많이 먹지도 못하는데, 누구 놀리나 싶어 째려봤지만 아무래도 그 모습 또한 그다지 화난 것처럼 보이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만…… 그만여…….”
“그거 먹고 안 먹어? 더, 더. 옳지.”
레스토랑에 도착하자마자 메뉴를 잔뜩 시켜 댄 그녀는, 자기는 먹지도 않고 내게 마구 음식들을 디밀었다. 고급 호텔이니만큼 맛있기는 했지만 거의 식고문 수준이었다.
“배 빵빵인 고애오!”
“그거 먹어 놓고? 그러다가 쓰러져…….”
“안 쓰러지니까 그만 줘여, 언냐야!”
진심으로 걱정된다는 듯이 말하는 그녀를 바라보며, 나는 혹시 그녀가 소시오패스가 아닐지 생각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깨달았다. 아, 원래 소시오패스구나.
결국에는 음식의 반도(그것도 대부분 신하연이 먹긴 했다) 채 먹지 못한 채, 자리에서 일어서게 되었다.
그 뒤로도 그녀는 왱알거리며 나를 쫓아다녔다.
물론 더럽게 불편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면전에다가 마법을 갈길 수도 없는 노릇이고. 말로 하면 되지 않냐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진심으로 그 머리통을 부숴 줄 자신이 있었다. 말로 한다고 신하연이 들어 먹을 부류였으면 내 방에 들어와서 숨어 있진 않았겠지.
“언냐야, 그나저나 방에서 뭐 한 고애오?”
“별거 아니야! 그냥 다른 사람 데려온 거 아닌가 조금 확인만 했지. 응, 그게 끝이야.”
물론 그것만 해도 비정상이긴 했지만, 겨우 그 정도만 했을 것 같지는 않은데. 눈을 가늘게 뜨고 그녀를 노려보자, 신하연은 딴청을 피웠다.
* * *
신하연은 내가 다른 사람을 방에 초대할 것 같다면서 내 방에서 자겠다고 주장했다. 당연하지만 나는 거절했다.
애초에 방에 왜 다른 사람을 초대해, 미친.
그 뒤로 위험하다는 둥 하는 핑계를 덧붙이는 그녀에게,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언냐야가 제일 위험한 고애오…….”
다른 사람들 같은 경우에는 신하연과 비슷한 짓을 하더라도 그다지 위험하다고 느끼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녀를 멋대로 풀어 뒀다가는 진짜로 무슨 일이라도 저지를 것 같아서 무서웠다.
“븝미쟝은 아가란 말이애오! 언냐야…… 이번에도 들어오면 언냐야 안 볼 거애오!”
씨익거리면서 그렇게 선언하자, 마치 비 맞은 개처럼 축 늘어지더니 사라졌다.
그렇게 순순히 사라질 줄 몰랐던지라 되레 내가 당황했다.
뭐, 어쨌든 일은 해결됐으니까. 좋은 게 좋은 거 아니겠나.
나는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해 문에 보안 마법을 걸어 두고, 잠을 잤다.
내가 이 호텔에 숙박한 이유, 그것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그저 이렇게 기다리는 수밖에는 없었으니까.
그렇게 밤이 깊어 가고, 자리에 누운 지 수 시간이 되던 즈음이었다.
“으음…… 언냐야…… 안 대여…….”
동공에 초점이 풀린 신하연 수십 명이 내게 달려드는 악몽을 꾸던 나는, 순간 어떤 소리 때문에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설마 마법이 발동한 건가? 귓가에 들려오는 시끄러운 소리에 문을 바라본 나는, 그것이 멀쩡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해안가에 5등급 괴수가 출현했습니다! 투숙객분들께서는 모두 절차에 따라 대피해 주시고…….]
“호에에에.”
나를 깨운 소리의 정체. 그것은 바로 내가 지금까지 기다리던 소식이었다. 부산 해안가에 갑자기 등장한 5등급 해양 괴수. 이를 위해 여기까지 내려와 호캉스를 빙자한 대기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가방으로 이동하는 고애오!”
나는 곧바로 커스터마이징 룸으로 이동했다.
반전되는 시야, 이어 옷장으로 뛰어간 나는 방어구를 챙겨 입었다.
“호에에에…….”
그건 비교적, 노출도가 심한 방어구였다.
평소라면 입지 않았을 것이지만 지금으로서는 성능이 가장 중요했다.
거기에다가 새벽 그리고 바닷가이니 괜찮겠지 하는 생각이 앞섰다. 낮에도 실패하긴 했지만 태닝까지 하지 않았던가.
그렇게 챙겨 입고 곧바로 밖으로 나서는데, 문 앞에 누군가가 서 있었다.
“같이 가자!”
“호에에에, 언냐야도 가는 고애오?”
물론 그건 신하연이었다. 그녀는 자신 없는 말투로 내게 말해 왔다.
“나만이 아니라 근처에 히어로들은 다 나갈 거야. 도움이 될진 모르겠지만…….”
그녀는 물론 강했다. 하지만 5등급 괴수와 맞서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거기다가 나처럼 마법사도 아닌, 근접 계열 헌터였다. 당연히 꺼려질 수밖에 없었다.
“괜찮아여, 언냐야.”
하지만 나는 확신했다. 이번 사건은 거의 공짜 이벤트나 마찬가지였으니까. 마침 근처에서 휴가를 지내고 있던 괴물 1명이, 이번 일을 해결할 것이었다.
그저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으면 그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