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화.
바깥의 상황은 아수라장이었다.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는 사람들과, 그들을 대피시키는 히어로들까지.
나는 던전 브레이크 혹은 필드에서 유실된 몬스터를 목격한 적이 없다. 그렇기에 이런 모습 또한 본 적이 없었다.
겁에 질려 도망가는 사람들의 면면이 눈에 들어온다. 나는 그들을 뒤로하고 곧바로 해변가로 날아갔다.
“우와아!”
신하연은 처음 타 보는 지팡이가 생소한지 소리를 질렀다. 실상 마법사들의 전유물이니 어쩔 수가 없나. 부유 마법이 이미 걸려 있다고는 해도, 실상 구동시키는 건 사용자의 몫이니 근접 계열 히어로들은 웬만해선 타 볼 일이 없는 물건이긴 했다.
그렇게 생각하니 뭔가 좀 우쭐해진다.
“저기, 저게 그 괴수 아니야?”
“호에에에, 맞는 거 가타여. 아닐 수가 없는 고애오…….”
그렇게 한동안 상공을 날아다니던 나와 신하연은, 시야에 들어오는 한 어룡을 찾아낼 수 있었다. 이미 몇몇 원거리 사수들이 포격을 가하고 있었는데, 녀석은 크게 아랑곳하지 않는 것 같았다.
쿠오오오오!
천지를 뒤흔들고, 거대한 쓰나미를 만들어 내는 녀석의 울음소리. 그에 수많은 방어 수단들이 발현되며 쓰나미를 막아 낸다.
아스라이 빛나는 방어막. 나는 그것에 약간의 마력을 덧칠해 주었다.
“어어?”
지상에 있던 마법사가 당황하는 소리가 들려와, 나는 공중에서 그에게 한쪽 눈을 찡긋거려 주었다. 타인이 이미 시전한 마법에, 마력을 덧칠한다는 건 굉장히 섬세한 조작이 필요한 것이었으니 그가 당황할 만도 했다.
국내에서도 이런 짓을 할 수 있는 마법사가 몇 안 되는 거로 아는데, 내가 그 몇 안 되는 마법사 중 하나란 것이다.
물론 그 수준은 ‘마법적 소양’에만 한정되어 있고, 전투력이라든가 이해의 측면에서는 한참 뒤떨어지지만.…….
“나, 내려 줘. 여기서는 못 싸울 거 같은데.”
“아라써여, 언냐야…… 잠깐만여…… 대따! 나와 주세요, 마나씨!”
“어, 잠깐만? 잠깐만? 아니, 이렇게 내려 주라는 말이이이이이.”
나는 마력을 이용해, 신하연을 지상으로 떨어트렸다. 물론 무작정 밀친 게 아니라, 레비테이션 마법을 동시 사용해서 안전하게 착지할 수 있도록. 하지만 그 속도가 꽤나 빨랐으므로, 또한 그런 뜻을 그녀가 알아챌 리가 없으므로. 신하연은 마치 배신이라도 당한 듯한 사람의 얼굴을 한 채 떨어져 내렸다.
물론 모래 바닥에 풀썩 내려앉고 난 뒤에는 그저 멍한 표정이었지만.
나는 그것을 보며 쿡쿡 웃었고, 이어 어룡을 향해 사용할 마법을 준비했다.
“어차피 쓸모없기는 하지만여…….”
사실 지금 어룡에게 무슨 타격을 주건 크게 상관이 없는 일이었다. 어차피 조금 있으면 등장할 ‘그 녀석’이 결국에 모든 상황을 정리해 버릴 테니.
하지만 기여도에 따라 후일 정부에서 어룡의 부산물을 히어로들에게 분배할 것이다. 그렇다면 미리 눈에 띄어 두는 편이 옳을 것이었다.
“하와와와와, 아가야들 다들 나오는 고애오.”
그들의 기여도를 따로 판별할 방법은 없다. 원래 내가 키보드와 마우스로 조작하던 게임이었다면, 가볍게 딜량표를 띄워서 확인하면 그만이었지만 이곳은 아니었다.
결국에는 더 강한 공격, 더 많은 데미지를 ‘준 것 같은’ 사람에게 기여도를 높게 책정할 것이었다.
“아갸야들, 요기요기 쏙쏙 드러가는 거에얌! 븝미쟝 도와주는 고애오…….”
내가 시전하는 것은 쿼드스펠. 지금으로서는 효율이 극히 떨어지는 것이긴 하지만, 화려하게 보이기에는 이것만 한 것이 없다. 실제로 지상의 히어로들이 다들 이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흐헤헤헤!
바람으로 만들어진 칼날에 바람정령이 깃든다. 녀석의 까불거리는 성질 탓인가. 공격성이 강하지 않은 풍계 마법도 이 녀석이 융합되었을 땐 다른 속성 못지않은 공격력을 얻게 된다. 칼날이 매섭게 휘몰아친다.
으음.
역시나 과묵한 땅은 말없이 바위에 들어가 몸을 웅크린다. 그 모습을 보니 분명 마나로 띄우고 있는 바위임에도, 무게감이 살갗으로 직접 느껴지는 듯했다.
후에에…… 싫은데…….
불의 정령은 녀석답지 않게 제일 소심하다. 융합을 할 때마다 자기가 누군가를 다치게 한다는 게 싫다고 내게 저번에 말을 한 적이 있었다. 언제 한번 독대하고 이야기를 나눠 봐야 할 것 같은데…… 그래도 말은 잘 듣는다. 녀석 또한 화염구에 융합된다.
어어…… 저도요?
물은 물끄러미 어룡을 바라보며 말했다. 딱 봐도 수 속성 개체로 보이는 녀석인데, 의미가 있겠냐는 듯이.
“……그러네여.”
네가 나보다 낫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녀석을 지상으로 보냈다. 녀석이라면 쓰나미를 막는 데에 꽤나 도움이 될 테니까.
수 속성 마법을 캔슬하고, 그 자리에 다시 자리 잡은 것은 그저 무속성의 마법. 마력을 덩어리째로 뭉쳐 낸 무식한 포환이었다.
“날아가는 고애오!”
일순, 어룡을 향해 날아가는 4개의 마법. 그것은 정확히 어룡의 머리에 적중했다.
누구도 뚫지 못했던 녀석의 살갗을 바람이 베어 내고, 불꽃으로 된 덩어리가 턱을 쳐올렸으며, 뒤따라온 바위와 마탄이 연달아 내부를 진탕했다.
쿠오오오오!
물론 그것을 맞고도 기가 팔팔하게 살아 있었으나, 정신이 번쩍 든 듯이 몸을 마구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안전만 확보되어 있다면 내 화력은 절대 무시할 것이 되지 못한다.
한 차례. 두 차례.
이전보다 더 강해진 쓰나미가 해변가를 향해 밀려온다. 다만 지상의 히어로들 또한 만만하지 않았다. 특히 이곳처럼 바닷가와 가까운 곳에 위치한 곳에 자리 잡은 이들은, 해상 필드도 자주 누비는 만큼 수계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많았다.
수차례의 간접적인 공격이 모두 무위로 돌아가자, 드디어 완전히 눈깔이 돌아 버린 듯 해변을 향해 돌진해 오는 어룡. 나는 마음속으로 숫자를 셌다.
녀석이 나올 때가 됐으니까.
셋, 둘, 하나!
“나와 주는 고애오!”
마치 소환수를 부르기라도 하듯 외쳤다.
하지만 그에 어떠한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다.
잠깐만. 이 새끼 왜 안 와.
“씨발, 저 새끼 정신 나갔잖아! 동공이 흐려!”
“이 거리에서 동공이 보인다고?”
“머리 크기만 존나게 큰데 안 보이겠냐? 저거 안 보이면 사수 접어야지…… 씻팔,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지원 불러, 지원!”
“근접계 히어로분들 나와 주세요! 지상으로 올라가지 못하게 막아야 합니다!”
지상은 아수라장이었다. 그동안 손만 빨고 있던 근접 계열 히어로들은, 막상 자기 차례가 되자 울상을 지었다. 저 어룡을 상대로 방진을 짜고 상대해 봤자, 몸통에 한 번 치이기라도 하면 그대로 중상 내지는 사망이었으니까.
어룡과의 거리가 수 미터 이내로까지 좁아졌을 때, 사수들이 일제 포격을 가했다. 나 또한 정령 융합은 몇십 분간 사용할 수 없었으나, 내가 알고 있는 한 최대한 강한 스펠들을 쏟아부었다.
콰가가가각!
꾸에에에엑!
끔찍한 소리를 내며 몸을 뒤트는 녀석. 당연하지만 멀리 있는 대상을 공격할 때보다, 가까이 있는 대상을 공격할 때 위력이 더 강했다. 지금껏 맞은 장거리 포격만큼의 데미지를 한 번에 입은 어룡. 그에 피투성이가 된 채 고개를 부들거렸다. 물론 나는 곧바로 호에에, 하며 고개를 돌렸다. 여기서 기절했다간 대형 사고였다.
“지금이다!”
“뭐해, 씨팔! 존나 패!”
진심 어린 욕설들이 쏟아지며, 이어 근접 계열 히어로들의 맹공이 이어진다. 신하연은 개중에서도 눈에 확 들어왔다. 가녀린 체형의 미소녀가, 거대한 워해머로 연격을 가하는 모습은 역시나 비현실적인 광경이었으니까.
잡나? 설마? 그 녀석도 오지 않았는데?
나는 희망 섞인 눈으로 그 모습을 바라봤다.
하지만.
뻐억!
근접계 히어로 하나가, 정확히 이런 소리를 내며 날아가 해변가 모래에 박혔다.
게거품을 물고 몸을 바들바들 떠는 게, 상태가 영 좋지 않아 보였다.
뒤이어 다른 이들 또한 하나씩, 처음 사람만큼은 아니어도, 상당한 타격을 받고 날아가 처박혔다. 저게 말이 되나? 아무리 5등급이라지만?
히어로들의 눈에 다들 그늘이 드리운다. 다들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었다.
진짜 좆됐다고.
“좆됐네. 아, 진짜. 한 소리 듣겠네, 또.”
“호에에?”
그때, 내 귓전에 들려오는 목소리. 그것은 좋은 청력 때문에 들린 것이 아닌 실제로 내 근처에서 말했기에 들린 것이었다.
나는 당황하며 뒤를 돌아봤다. 내 지팡이의 뒤쪽. 그곳에는 대략 160cm 정도 되는 작달막한 남자가 서 있었다.
“뭘 쳐다봐.”
싸가지를 어디다가 처말아 먹은 건지 모를 남자가.
왜 이제 오는 거야, 이 새끼는?
내가 지금까지 계속 제발 오라고 고사를 지냈던 게 바로 이놈이었다.
“후우…….”
한 차례 한숨을 내쉰 녀석은 트레이드 마크인 마창을 꺼내 들었다.
그곳에 맺혀 드는 힘은 뇌전(雷電).
쿠르르릉!
천둥소리, 그리고 광휘.
그와 함께 어룡은 그대로 쓰러졌다. 너무나도 허무하게.
* * *
“내가 최근에 동향 이상하니까 생태조사 하라고 보냈더니, 정신 빠져 가지고, 이 새끼가! 처놀고 자빠졌어? 요즘에 뇌신 뇌신 하니까 니가 신이라도 된 거 같냐?”
“아, 미안하다고. 아무도 안 죽었으면 됐지.”
“말뽄새 보소. 이 씹놈이. 푸닥거리 한판 하자는 거지, 이 씨발 롬아?”
뇌신, 이동우.
현재 한국 6위 히어로인 그는, 이곳에 생태 조사를 나와 있는 상태였다.
경고 수준까지도 도달하지 않은 마력 지수였던지라, 해수욕 금지령도 내려지지 않은 이상 징후였지만 이동우가 속해 있는 길드에서는 이곳에 그를 파견했다. 혹시나 모를 사고에 대비하라고.
하지만 이동우는 순순히 조사나 할 만한 성격이 못 되었다. 애새끼 같은 외모와 작달막한 키와는 다르게, 녀석은 상당히 호색한이었다. 지금도 자기 신분을 이용해서 여자나 꼬시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고 잠이나 퍼질러 자다가, 지금에서야 일어난 거겠지.
그는 길드장에게 수십 분을 달달 볶였다. 간접적으로 듣고 있는 나도 정신이 나갈 것 같은데, 그 당사자는 오죽하겠는가.
반항하던 이동우는 결국 길드장에게 한 대 처맞고, 그대로 바닥에 대자로 뻗어 버렸다.
주변에서 그 광경을 바라보던 사람들의 얼굴에 경악이 떠오른다. 이동우가 매 맞고 산다더니, 맞는 이야기였구나, 하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히이익!”
그 길드장이 움직이자,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기겁하며 길을 텄다. 저걸 보고 겁을 안 먹을 수가 없지.
나 또한 마찬가지였던지라 슬금슬금 뒷걸음질을 쳤다. 그런데 그가 내 뒷걸음질 친 곳을 따라 걸어오기 시작했다.
“브……븝미쟝 아무 잘못도 안 했는데여…….”
옆에 있던 신하연은, 슬쩍 내 옆에서 멀어지기 시작했다.
이 시발 련이? 좋다고 붙어 다닐 땐 언제고?
“다나 크리스틴, 맞죠? 티비에서 봤거든요. 실물이 더 귀엽네.”
“하와와와, 븝미쟝 원래 귀여운 고애오…….”
길드장은 얼굴에 웃음을 만개하며 내게 말했다. 나는 식은땀을 흘리면서도, 활기차게 말했다. 그건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행동 보정이 있었으니까.
“다름이 아니라, 제가 여기 오면서 봤는데 다나 씨 모습이 너무 인상적이어서…… 명함 하나…….”
“하와와. 그런 거엿나여…….”
나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스카우트 때문이었구나.
그렇게 안심하며 그가 건넨 명함을 받아 들려고 할 때였다.
“잠깐…….”
순간, 그의 표정이 싹 굳는다. 그러고는 동공이 확장되며, 입술이 부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서큐버스?”
“호, 호에……?”
이건 무슨 개소리야.
나는 그가 갑자기 이러는 것에 잠시간 의아했으나, 그 이유를 알 수 있게 되었다.
세부 특성, ‘븝미쟝은 짱짱 쎈 언냐야 옵바야들이 조와해여!’가 대상자의 특성에 의해 차단되었습니다!
아, 미친. 이거 때문이었나? 분명 오해할 수도 있을 만하긴 한데…….
그래도 오해예요, 선생님.
서큐버스고 나발이고 그런 거 아닙니다.
“븝미쟝은 븝미쟝이에오…….”
장황한 변명은, 단 한마디로 대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