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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기븝미쟝이 되었다-85화 (85/172)

#85화.

다행스럽게도 갑자기 입금된 거액은, 다시 토해 내야 하는 돈이 아닌 모양이었다. 정령들이 만든 검. 그것이 고액에 거래된 것이었다.

그런데…….

도대체 왜?

하잘것없는 옵션만이 달려 있는 검들이, 그렇게 고액에 판매되었다는 게 이해가 되질 않았다.

그 의문 때문에 한참을 찾아 헤맨 결과, 나도 몰랐던 그 검의 숨겨진 효과를 알 수 있었다.

검 자체에 정령 마법이 내재되어 있어서 약간의 마력 사용으로도 수위의 정령 마법을 사용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몰랐던 고시애오…….”

나는 그 사실을 알 수 없었다. 애초에 히어로 커뮤니티 따위는 물론이고, 인터넷 뉴스 한 토막도 잘 보지 않았으니까.

원래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빙의하기 이전에는 방구석에서 할 짓이 없다 보니 하루 종일 그런 것들을 뒤적거리고 다녔다.

하지만 그런 커뮤니티나 기사의 주제, 이슈의 대상이 내가 되고 난 뒤, 잘 보지 않게 되었다.

악플들이 많이 달려서냐고? 물론 많이 달리기는 하지만 그런 이유는 아니었다. 되레 선플들이 문제였다.

이 사람들은 나를 소름 돋아 죽게 만들려는 건가.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오글거리는 글과 댓글들이 넘쳐 났다.

“호에에에, 진짜인가 바여…….”

나는 곧바로 정령들이 만들어 낸 검 한 자루를 들고 내 소유의 부지로 나섰다. 저번 사건 이후로 나름 관리를 한 터라,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은 곳.

마력을 불어 넣으면서 검을 휘두르자, 정령 마법이 나온다. 그 위력은 꽤나 강해서, 시전자의 수준에 따라서는 중위권 마법사들의 공격 마법이랑도 비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물론 나 같은 경우에는 필요가 없다. 커뮤니티 글들과 다르게, 검은 꽤나 많은 마나를 잡아먹었다.

그게 내 입장에서 부담될 정도는 아니지만, 하위권 히어로들이라면 대략 대여섯 번 정도 사용하는 것이 한계일 터다.

“마나씨!”

정확하게 동일한 양의 마나로, 마법을 사용했다. 조건을 완벽하게 같게 하기 위해서 영창 또한 생략한 채 술식을 완성시켰다.

무심하게 뿜어낸 화염구는 검에서 나온 것보다 대략 1.5배 정도가 더 컸다.

물론, 이것은 내가 마법사이고, 또한 개중에서도 실력이 뛰어난 편이기 때문에 발생한 일. 사람들의 말대로 이 검을 하위권 히어로들이 지닌다면 무력 수준이 최소 두 단계 이상은 올라갈 것이었다.

“호에에에…… 어떠케 댄 일일까여…….”

옵션으로 표시되지 않는 마법이 내재되어 있는 검. 이따금 일부 옵션이 공개되지 않는 아이템들이 있긴 했으나 그것들은 장인들이 만든 것이 아닌, 던전에서 나온, 소위 드롭템들이었다.

나는 정령들을 소환해 다시 대장간으로 향했다. 그리고 과정 하나하나를 수 시간 동안 지켜본 후,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났는지 알 수 있었다.

“아가야들 너모 열심히 만든 고애오…….”

정령이나 소환수는, 새삼스럽지만 이쪽 세계에 본래 실재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타 차원에 있는 본체를 이쪽에 ‘구현’하는 것이었다. 일종의 홀로그램 같은 느낌으로.

물론 완벽한 비유라고 보기는 힘든 것이, 마나를 통해 구현하는 만큼 소환되어 있는 동안은 실재하는 것과 차이점이 없다.

그리고 그 구현을 하기 위해서는 일종의 코어 같은 것이 우선적으로 만들어진다. 그것은 시전자의 마나로 유지되고, 그 때문에 시전자의 마나 공급이 끊기거나 큰 피해를 받아 코어가 훼손되면 역소환당하는 것이다.

눈앞의 정령들. 이 녀석들은 지금 대장간 일을 하는 데에 자신들의 코어를 사용하고 있었다. 내 마나를 뽑아다 쓰면서.

검 하나를 만드는 데에 걸리는 작업 시간은 대략 1시간 정도. 그 시간 동안 코어를 통해 흘러나온 녀석들의 힘이 검에 남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검에 코어의 일부를 때려 박는 방식. 그로 인해 자체적으로 검에서 정령 마법이 나가는 것이다.

“이게 말이 대나여…….”

스토리는 물론이고, 별 미친놈들이 산재해 있는 멀티플레이에서도 이런 것을 발견해 낸 사람은 없었다. 애초에 정령들보고 대장간 일을 시키는 놈이 없기도 했겠지만…….

“돈줄이 하나 더 생긴 거애오…….”

그것을 깨닫자 저기 무더기로 쌓여 있는 검들이 골드바로 보이기 시작했다. 다들 품질도 개선된지라 자루당 수천만 원은 가볍게 나갈 검들. 경매장을 통하면 수수료만 떼먹으니, 이참에 제대로 대장간을 내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앗! 아가야는 이런 말 하면 안 되는 고애오…….”

음침하게 웃음을 흘리고 있는 나를, 정령들이 빤히 바라본다. 나는 얼굴 표정을 숨기며, 작업을 독려했다.

이러니까 정말, 악덕 공장주라도 된 기분이었다.

*    *    *

정령검. 상당히 드물게 존재하는 인간 정령사 중 하나가, 검에서 나오는 마법이 정령 마법이라는 것을 밝혀낸 이후 그런 이름이 붙었다.

나는 이것을 당장에 시장에 내놓으려고 했지만, 크나큰 문제점 하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크닐 난 고애오!”

검에 수명이 있었던 것이다.

코어는 일견 영구 지속처럼 보였지만, 내가 살펴본 결과, 수천 번 이상을 사용하면 코어가 파괴된다. 물론 그것은 속성마다 배정되어 있는 횟수였으므로, 전 속성을 하루하루 사냥 때마다 다섯 번씩 사용한다고 쳐도 2년은 거뜬하겠지만…….

아무튼 영구 지속과는 큰 차이가 있었다. 나는 먼저 익명으로 그 사실을 커뮤니티에 게재했다.

[AV 대장간에서 알려 드립니다.]

최근 판매되고 있는 ‘정령검’은 그 사용 횟수에 제한이 있습니다. 해당 검의 품질에 따라 대략 3,000회에서 7,000회까지 사용이 가능합니다.

고지 이전에 검을 구매하신 분들에 한하여 환불이 가능합니다. 감사합니다.(@서체 변경 끝)

[뭐여? 진짜?]

[관리자가 공지로 올려 준 거 보니 진짠가 본데.]

[횟수 제한이 싯팔 3,000번이면 무제한이지 ㅋㅋㅋㅋㅋ]

글을 올리자 잠시 논란이 점화되었지만, 사그라들었다. 애초에 구매자들부터가 환불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횟수 제한이 있건 말건 되레 제 가격보다 싸게 샀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으니까.

“다행인 거시에얌…….”

어느 정도 예상한 바이기는 했다. 그래도 일단 이렇게 미리 고지를 해 놔야 후일 탈이 없을 것이었으니 취한 행동이다.

이어 나는 곧바로 사이트를 차렸다. 오프라인에 대장간을 차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나는 이 대장간이 내 소유라는 것이 알려지는 걸 원치 않았다. 지금 하위권 히어로들 대부분이 검 하나 얻어 보겠다고 눈을 붉히고 있는 상황에서, 신상이 알려지면 죄다 내게 난리를 칠 것이 분명했으니까. 그럼 내가 죽어난다.

“븝미쟝은 힘든 일 못 하는 고애오…….”

정령들과 나는 그 거리가 멀어지면 안 된다. 그러니까 정령들이 검을 만들고 있는 시간 동안, 나도 그 옆에 계속 붙어서 작업을 도와주고 있어야 한다는 뜻이었다.

애초에 그냥 앉아만 있어도 피로가 쌓이는 몸인데, 십수 시간씩 그 후텁지근한 공기 속에서 보조를 한다는 게 얼마나 고역인지. 해 보지 않은 사람은 알 수 없을 것이다.

“븝미쟝 주거여어…….”

며칠만 더 했다가는 진짜로 쓰러질지도 모르겠다는 위기감 때문에, 나는 더 이상의 생산을 멈추었다.

지금 만들어진 검은 총 47자루. 나는 이걸 최소 6개월 동안 판매할 생각이었다. 그러니까 대략 한 달에 8자루 정도 팔면 적당하겠지.

강철순이라는, 딱 보기만 해도 대장장이 포스가 철철 흘러넘치는 가상의 신분을 만들었다. 별로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뒷세계 빌런들은 가짜 신분을 만드는 일도 하고 있었으니까.

히어로가 빌런들에게 돈을 맡기고 신분을 위조하는 것에 잠시 양심의 가책이 느껴지기도 했지만, 이게 제일 나은 방법이었다.

1억 5천.

큰돈이 나가기는 했지만, 해 봤자 검 한 자루 팔면 들어오는 금액이다. 앞으로도 계속 유용하게 써먹을 신분이었으니 아깝지 않았다.

그 강철순의 이름 앞으로 세워진 AV 대장간. 당연하지만 애기븝미의 약자다, 하는 설명은 달지 않은 만큼 사람들은 ‘철순이 형님 최애 품번이?’ 따위의 말들로 놀려 대었다.

하지만 그런 조롱보다 더 큰 목소리는 검을 절실히 원하는 히어로들의 구애였다. 하루에도 수백 통의 메일이 ‘강철순’에게 쏟아졌다. 나는 그것들을 하나하나 보고 있었다.

[어머니의 병원비가 부족합니다. 그런데 제 능력이 부족하여…….]

“호에에, 너모 불쌍한 고애오…….”

뻔하디뻔한 사정들인지라, 원래 나 같으면 그냥 무표정으로 읽고 넘겼을 테지만 지금의 나는 그렇지 못했다.

하나하나 볼 때마다 눈물이 줄줄 흘러내려서 옷을 적셨다.

“그런데에…… 어머니가 왜 2년 전에 아팠다가 5년 전에 아팠다가 하는 고애오……?”

나는 얼굴 표정을 차게 식혔다.

얘도 구라야?

“납븐 옵바야들이애오!”

132번째 메일을 치우며 소리쳤다. 이놈들도 죄다 뭐 어디에 빙의하기라도 했나? 뻔히 보이는 거짓 사연들로 점철된 내용이 절반 이상이었다.

결국 나는 그 메일들을 읽는 걸 포기했다. 사실 생각해 보면 여기 메일 보낸 사람들만 절박하겠는가.

“그냥 운에 맡기는 고애오.”

나는 결국 추첨 방식으로 구매자를 선정하기로 했다. 현재 객관적인 검들의 가치는 경매가보다 되레 높았다. 나는 그렇게 사람들의 의견과 내 생각을 추가한 가격을 내놓았다.

그리고 구매를 원한다면 사이트를 통해 응모하도록 했다.

[와, 초기에 산 놈들이 개꿀 빤 거였네.]

[너무 비싼 거 아님? ㅋㅋ 저 가격이면 옵션 좋은 무기들 천지에 널렸는데.]

┗이래 놓고 경쟁자 줄이려는 거 다 알고 있음.

여러 논란이 많았음에도, 첫날. 구매 응모자가 14만 명이 넘었다. 히어로들만 응모한 게 아니라 리셀을 하려는 일반인들까지 몽땅 몰렸기 때문이다.

당연하지만 나는 그딴 꼴을 볼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첫날 응모를 죄다 취소했다.

그리고 그다음으로 히어로 등록증을 가지고 있는 이들만 응모할 수 있도록 방식을 바꿨다.

3일간 총 10,900명으로 대폭 축소된 인원.

8명이 추첨되고, 사람들의 희비가 엇갈렸다.

“후와와와와…….”

추첨이 끝나는 날, 나는 머리가 개운해진다는 게 어떤 느낌인지 정확히 알 수 있었다. 진짜 앓는 이 하나 뺀 듯한 기분이었다.

이제 다음 달 추첨일까지는 여기에 힘을 빼지 않아도 되었다.

“아가야들 수고햇서여…….”

나는 정령들을 모두 소환시켜 하나하나 잡아다 부둥켜안았다.

물, 불, 땅은 모두 웃음을 헤실거리면서 그를 받아들였지만, 바람이는 여전히 약간 토라진 듯한 모습이었다.

납빠! 납빠!

베, 하며 혀를 내미는 녀석의 모습에서, 저번에 볼기짝 몇 대 때린 것에 대한 분이 풀리지 않았다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도대체 누굴 처닮아서 저렇게 뒤끝이 긴지 알 수가 없었다.

우웅.

저놈을 어떻게 말을 잘 듣게 해 줄까. 매가 약이라고, 한 번 더 때려?

그렇게 생각하던 때 한 통의 전화가 걸려 왔다. 또 신하연인가 싶어 씹으려던 나는, 떠오른 이름을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호에에에, 설마 벌써 댄 건가여…….”

[미연 언냐야]

강미연, 연금술사 세 자매 중 막내의 이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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