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화. 언냐야들 모 하는 고애여?
나는 연금술의 집으로 한달음에 달려갔다. 혹시나 내가 이전에 말한 메카가 실현되었나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물론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는 바였지만, 역시나 아직 완성 단계는 아니란다.
“빨리 못 만들어서 미안해. 나름 열심히 해 보고 있는데…… 좀 오래 걸릴 것 같네.”
“호에에에, 아니애오! 언냐야, 그나저나 너무 피곤해 보이는 고애오…….”
“으음…… 그래? 요즘에 잠을 좀 못 자기는 했는데…….”
하품을 하는 그녀의 모습에서 피곤함이 잔뜩 묻어 나온다. 요새 작업을 하느라 잠잘 시간도 없었단다. 이래저래 정령들이고 이쪽이고, 갈아 넣는 것 같은 느낌인데.
하기야 이쪽이 낫나? 정령들은 무보수로 부려 먹는 거니까…… 그렇게 생각하니까 마음 한구석이 찔려 온다. 앞으로 좀 잘해 줘야겠는데.
“오늘 부른 이유는 이거야. 저번에 말한 적 있지? 마력 소모 줄여 주는 아티팩트. 지금 우리가 만들 수 있는 것 중에서는 제일 성능 좋은 거야, 이게.”
“호에에에, 벌써 된 고애오?”
그녀는 내게 펜던트 하나를 건네었다. 골렘 메카 이야기가 나오기 이전에, 나는 마력 소모를 줄여 주는 아티팩트를 부탁했다.
당연하지만 아티팩트는 대장장이가 우선적으로 만들고, 이후에 연금술사가 그에 마법 부여를 하는 것이었기에 김수혁에게 이쪽으로 물건을 전달해 달라고 부탁했다.
김수혁이 어딘가로 사라져서 지금까지 연락이 끊긴 상태였기에, 아무래도 시간이 좀 걸리겠다고 생각했는데 그새 보낸 모양이었다.
“언냐야, 이게 언제 온 고애오?”
“음…… 한 2주 전쯤? 급한 일 아니라고 해서, 부여는 사흘 만에 끝났는데 이래저래 정리할 것도 있고 해서 좀 오래 걸렸어. 미안.”
“아니에여! 너모 고마운 거시에얌…….”
2주 전이라…….
일단 그때까지는 별 탈 없던 게 확실하단 이야기인가.
“혹시 어디에서 왔는지는 아라여? 배송지라든가…….”
“배송지는 여기 근처였는데? 나도 그래서 이상하다 싶었어.”
내가 미리 말을 해 줬던지라, 그녀는 스틸하트에 김수혁의 대장간이 있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배송 출발 지점이 스틸하트 근처가 아닌, 이곳 연금술의 집 근처였다는 것이 이상했다고 한다.
직접 와서 배송시킨 건가? 굳이 그럴 이유가 없는데.
잠시간 머리를 굴리던 나는 결국 하나의 결론을 내놓을 수 있었다.
“왜 숨는 건가여……?”
김수혁이 굳이 자신이 있는 곳에서 배송을 시키지 않은 이유.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건 자기 위치를 드러내기 싫다는 뜻이었다. 그럼 도대체 누구한테 드러내기 싫다는 이야기지?
잠시 그에 대해 물어볼 대상을 떠올려 봤으나, 고개를 도리 저을 수밖에는 없었다. 김수혁의 인간관계란 게 너무나도 좁아서 해 봤자 라이카 정도인데…… 라이카는 정말로 김수혁이 어디 갔는지도 모르는 눈치였다.
“호에에에, 잘 모르겠는 고애오…….”
나는, 머릿속에서 생각을 지워 버렸다. 설마 별일이야 있겠나 싶었다. 하는 짓이 그래서 그렇지, 나름 김수혁도 스토리 끝까지 살아남는 메인 캐릭터 중 하나다. 결코 초반에 어디 가서 해코지당할 인물은 아니었다. 작중에서도 본인이 만든 장비로 무장한 김수혁은, 웬만한 히어로 하나 정도 몫은 할 수 있는 전투력을 가졌다고 언급한다.
“다나, 그나저나 기왕 온 김에 수업이라도 받고 갈래?”
“그럴 생각이었서여, 언냐야!”
강미연은 내게 연금술 수업을 받을 것을 권유했다. 그 표정에서 보이는 약간의 간절함을 보건대, 아무래도 지금 작업에서 조금 쉬고 싶은 모양이었다. 세 자매 중에서 제일 나랑 친하기도 하고 또한 가르치는 데에 소질이 있는 만큼 수업과 응대는 그녀의 몫이었다.
남 가르치는 게 아무리 힘들다고 해도, 며칠 밤낮을 새우며 골렘 코어나 뚱땅거리고 있는 것보다 힘들겠나. 그녀의 마음이 어느 정도 이해가 갔다.
“진짜? 그럼 빨리 교보재 가지고 올게. 잠깐만 기다리고 있어 봐.”
쌩하고 달려가는 강미연의 발놀림이 가볍다. 나는 웃음을 흘리며 손을 흔들어 주었다.
“다녀오는 거시에얌.”
* * *
일리아는 본인의 집, 그러니까 메이슨가의 수련실에서 마력을 훈련하는 중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약점을 잘 알고 있었다. 수없이 단련한 육체의 움직임, 그리고 검술에 대한 이해에 비해서 신체 스펙이 비교적 부족하다는 것이 그녀의 약점이었다.
그녀가 현재 이기고 싶어 하는 대상인 장선우, 신하연, 나츠키. 그들 모두 태생 마나가 자신보다 뛰어났다.
그에 그녀는 불평을 터뜨리기도 했다. 이건 너무 불공평한 게 아니냐면서. 하지만 그런 불평은 집어삼킬 수밖에 없었다. 자신보다 못한 육체와 자질을 가지고 각성한 이들도 널려 있었으니까.
일리아는 결국 자신이 가장 잘하는 것을 하기로 했다. 그것은 노력. 수천수만 번을 좌절하고 패배해도 다시 일어선다. 마모되고 또 마모되어도 결국 살아남는다면 더 단단해질 뿐. 일리아는 마력 수련 또한 그런 개념으로 접근했다.
“후우우…….”
마력이 머물고 있는 홀의 크기를 확장시킨다. 억지로 잡아당기고 밀어내어 크기를 늘린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고통과 상처를 동반했음에도 일리아는 멈추지 않았다. 노력과 경쟁심. 그것들이 그녀를 가장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는 단어였다.
주륵.
입가에서 선혈이 흘러내린다. 보통 다른 이들이라면 기겁해서 멈출 법도 하건만, 일리아는 별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였다. 지금까지 수많은 시도를 해 오며 동시에 많이 겪어 본 일이었다. 제대로 된 각혈도 열댓 번은 해 본 듯했다.
하지만 더 이어 나가는 것은 역시나 무리였던 듯, 일리아는 운기를 멈췄다.
“흐아아아…….”
입 안에서 침과 함께 섞여 드는 찝찔한 철분의 맛에 그녀는 인상을 찌푸렸다. 피는 색도 빨간 게 왜 이렇게 맛이 없는 걸까. 비슷한 색 음료 같은 맛이 나면 좋을 텐데. 토마토 맛 주스라든가. 누구는 땀도 과일 향에 맛이 나던데, 피도 그럴 수 있는 거 아니야?
“크흠.”
그녀는 방학이 시작되기 이전 다나와 함께 방을 쓰면서, 간밤에 했던 행동들을 떠올렸다. 땀은 좀 그렇긴 했지. 그녀는 과거의 기억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러고 보니 방학 동안 조금 자랐으려나. 긴 시간 동안 보지 못한 만큼 그리워졌다.
연락이라도 해 볼까 싶어 전화기를 꺼내는 순간, 수련실에 누군가가 들어왔다.
“야, 얘는 맨날 올 때마다 여깄어.”
“여기 있으면 안 돼?”
“안 되는 건…… 아니지만. 이년은 지가 초대해 놓고, 씹년이.”
“말 좀 예쁘게 해. 다나 그런 거 되게 싫어하는데.”
“……싫어하건 말건.”
그러면서도 욕설을 멈추는 나츠키의 모습에, 일리아는 입가에 웃음을 띠었다. 영 솔직하지가 못하다니까. 그러면서도 자기감정은 다 나타내는 게 나름 귀여웠다.
“그래도 부르면 바로바로 오네. 고마워.”
“너 좋으라고 오는 거 아니거든? 나 좋으라고 오는 거야, 이년……아.”
“그래, 너 좋으라고도 맞고.”
일리아는 나츠키를 이따금 이렇게 불렀다. 그 이유는 대련을 위해서였다. 방학 기간 동안 매일같이 마력 단련만 했던 터라, 실전 감각이 무뎌질 것을 걱정한 일리아는 처음엔 길드 사람과 대련을 하다 요새 들어서는 나츠키와 대련을 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체급이 비슷한 상대와 대련하는 편이 감각을 살리기에 좋았다.
“재수 없어.”
“누가 그런 소리 많이 했었지.”
“신하연 말하는 거야? 도대체 니들 뭔 짓거리를 했던 거야? 걔도 너랑 관련해선 한 마디도 안 하던데.”
“그러게. 무슨 일을 했던 걸까.”
일리아는 나츠키의 말에 잠시간 생각을 했다. 정말로 무슨 일 때문에 이렇게 되어 버린 것일까. 과거에는 모든 것이 신하연의 삐뚤어진 생각과 성격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는 자신에게도 문제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카앙!
“으앗!”
그때, 생각에 빠져 있는 일리아를 향해 나츠키의 칼이 쇄도했다. 그에 겨우 반응하며 검을 막아 낸 일리아는 당황하며 엉덩방아를 찧었다.
“……뭐 해?”
“방심하면 안 되지. 내가 1승 챙긴 거다?”
“그런 게 어딨어? 무효지. 아니, 그런 식으로까지 이겨 먹고 싶어?”
일리아와 나츠키의 상대 전적은 현재 서로 6승 6패. 일리아가 처음에 3패를 내리 하고 난 뒤로, 점차 실력이 늘어난다 싶더니 이젠 되레 일리아가 조금 더 우세해졌다.
물론 그에 경각심을 느낀 나츠키 또한 연습을 거듭하여 그 이상 차이가 벌어지지는 않았지만, 최근 나츠키는 꽤나 자존심이 상해 있는 상태였다.
“응, 이기고 싶어. 나 7승, 너 6승.”
“……그래. 니가 7승 해라.”
일리아는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 나츠키는 진심으로 기뻐했다.
“오, 그럼 한 번 더?”
“이거 해 놓고 가려고 했어? 세 번은 더 해. 내가 길드 오빠 하나 불러 놨어. 신관인데, 하릴없이 놀고 계시더라고. 그래서 우리 다치면 치료나 좀 해 달라고 했지.”
“그럼 오늘 10승 채우고 가겠네.”
스트레칭을 하며 콧노래를 부르는 나츠키. 일리아는 그녀에게 순간 쇄도했다. 그에 나츠키는 방금 전의 일리아처럼 당황하며, 검을 놓쳤다.
“7대7. 두 번 남았다.”
“이익…….”
이를 꽉 깨문 나츠키가, 일어서며 공방을 펼쳤고, 검과 검이 오가는 싸움에 날카로운 금속성의 소리가 수련실을 가득 채웠다.
결국 그날 서로 피투성이가 되어 가며 싸운 두 사람은, 서로 8승 8패라는 전적을 끝으로 대련을 마무리했다.
* * *
일리아 본가의 저택.
일전에 몇 번 와 봤지만 영 적응이 안 되는 규모였다. 한국에서 그들 가문이 가지는 입지는 그리 크지 않지만, 그들 가문의 모국인 프랑스에서 메이슨이라는 이름은 절대적이었다. 프랑스 제일의 재벌 가문이라는 평가였으니까.
물론 그에서 떨어져 나와 한국에 정착한 일리아네 가족은 본가의 힘을 끌어오지는 못하는 처지지만, 그래도 돈 하나만큼은 남부럽지 않게 많았다. 부자는 망해도 삼대는 간다는 속담이 있듯이, 겨우 가문에서 자투리 하나 받아 나왔음에도 한국에서 중견 길드를 차려 잘 살아가고 있다.
나중에 일리아가 본가의 관심을 받게 된 이후에는 세력이 훨씬 더 불어서 대형 길드 반열에 오르게 되는데…… 이건 꽤 나중의 일이고.
“이거였져……?”
정문에 있는 버튼을 누르자, 알림음과 함께 집사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방문객이신가요?”
“호에에에, 언냐야가 불러서 온 고애오!”
“아, 친구분이시군요. 들어오시죠.”
내 목소리만 들어도 기억이 난다는 듯, 그는 정문을 열어 주었다. 그리고 집사가 직접 나와 일리아가 있는 곳을 가르쳐 주었다.
“아까 오신 친구분도 저기로 가셨습니다. 얼마 뒤에 개학이니 휴식을 취하시고 싶은 모양이더군요.”
“그런데…… 수련실에서여?”
휴식을 수련실에서 취한다는 말이 굉장히 이상하게 들렸으나 최근 들어 일리아는 그 안에서 모든 숙식을 해결하고 있다고 한다. 그 외의 시간에는 죄다 수련 수련 수련이라고. 역시나 세계관 최고의 노력가답다고 해야 할까…….
나는 수련실의 문을 열고 들어가,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일리아…… 언냐야?”
그리고 그와 동시에 바닥에 엎어져 있는 두 사람을 보게 되었다.
“호에에에?”
그건 일리아와 나츠키의 모습이었는데, 서로 옷이 반쯤 찢어진 상태로 맨살을 드러내고 있었다. 나는 당황하며 눈을 가렸다.
“어, 언냐야들 모 하는 고애오…….”
도대체, 뭔 짓을 했길래 이 상태인 건지 나로서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