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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기븝미쟝이 되었다-88화 (88/172)

#88화. 가짜 교황 옵바야애오…….

가짜 교황.

놈은 그 칭호 그대로 자신을 교황이라고 칭했지만, 실제로는 성력을 가지고 있지 않은 가짜였다. 녀석의 정체는 다름 아닌 마왕의 아바타.

7대 죄악 중 시기를 담당하고 있는 마왕, 이놈은 마력을 이용해 그걸 마치 성력인 것처럼 둔갑시킬 수 있었다. 그것은 고위 성직자와 성기사들 또한 속아 넘길 수 있는 수준이었기에 그의 등장 이후로 전 세계가 혼란에 빠졌었다.

그 첫 등장이 지금으로부터 대략 1년 뒤쯤. 그런데 벌써 놈의 영향을 받은 걸로 보이는 생도가 등장했다.

‘방학 기간 동안 은사님 덕분에 주신을 섬길 기회를 얻게 되었습니다.’

백연우라는 이름의 생도는, 전투 화면을 본 교관에 의해 불려 나가 한동안 취조 비슷한 것을 받았다. 하지만 위와 같이 답변했다.

교관 또한 납득이 가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으나, 그는 나처럼 가짜 교황의 존재를 알지 못한다. 일단 세례를 받기만 하면 비정상적인 강함을 가지게 해 주는 놈의 존재를.

또한, 정령 한 마리로 15등급 몬스터를 때려잡아 버린 나 때문에 그에게 관심이 훨씬 적게 가기도 했다. 백연우는 자신보다 되레 큰 관심을 받는 나를 보고, 이빨을 갈았다. 도대체 뭐 때문에 시기의 마왕이 이 녀석을 선택했는지 알 것 같았다.

“어…… 그래서 제 방에는 무슨 일로?”

“옵바야한테 무러볼 게 있었던 고애오…….”

진짜 성기사, 이안이 내 정신을 깨웠다. 이곳은 이안의 방. 절대 들여보내 주기 싫다면서 결사반대를 하던 이안은 반쯤 협박이 섞인 내 말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방 안으로 나를 들였다.

진성 오타쿠다.

아마도 애니 혹은 만화 캐릭터로 생각되는 일러스트가 그려진 족자봉들과 사진, 그리고 여러 굿즈들과 피규어가 지천이었다.

외부 물품 반입이 안 되지 않냐고 물어보니, 내부에서 구할 수 없는 물건인 데다가 수련이나 대련 물품도 아닌지라 허락해 줬다고 한다. 하기야 이것들을 보는 것 외에 어떤 용도로 쓰겠는가.

“호에에에, 반쯤 헐벗은 언냐야들이 가득…….”

“치우겠습니다!”

이안은 기겁을 하며 내 시선을 따라 족자봉들을 모두 말아 버렸다. 별로 상관없는데. 그 와중에도 소중하게 돌돌 마는 모습을 보니 그 증상이 어느 정도인지 알 만했다.

“그나저나 그 물어볼 거라면…….”

한참 난리를 치던 이안은 내게 질문을 던졌다. 그에는 빨리 물어볼 거나 물어보고, 제발 나가 달라는 바람이 가득 담겨 있었다.

“옵바야, 혹시 오늘 시험 때 저도 봤었나얌?”

“어…… 네. 그럼요. 안 봤을 리가…….”

이안은 그걸 말이라고 하냐는 듯이 어깨를 으쓱였다. 하기야 임펙트가 너무 커서 보지 않으려고 해도 안 볼 수가 없었을 것이다. 나중에 이야기를 들어 보니 교관을 포함한 그곳에 있던 인원 전원이 경악성을 질렀다고 한다.

“그러며는…… 저 말고 옆쪽에서 시험 치르던 옵바야 기억나나여?”

“백연우…… 걔 말하는 겁니까?”

“마자여!”

“봤죠…….”

이안은 백연우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자 눈빛을 바꿨다.

“중간에 옆 통로 보시는 것 같던데, 혹시 그놈이 성물 같은 걸 꺼내지 않던가요?”

그러고는 되레 내게 질문까지 해 온다. 이안 역시 나와 같은 의문을 지니고 있던 모양이었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그 또한 교관과 마찬가지로 가짜 교황의 정체를 모른다는 것.

“음…… 븝미쟝은 못 봤서여…….”

“그러면 진짜…… 후우.”

이안은 내 말에 한숨을 내쉬면서, 무언가 회의감을 느끼는 듯한 얼굴로 되뇌었다. 하기야 각성 이전부터 독실하게 믿어 온 자신의 신이, 각성 이후 겨우 한 달 정도밖에 믿지 않은 신도에게 더 강한 힘을 준다는 것에 배신감 비슷한 것도 느낄 것이었다.

다만 성기사로서 그것이 신성모독이기에, 자신을 탓하고 있을 뿐이었다.

“제가 부족한 탓이겠지만, 오늘은 정말 많은 생각이 들게 하는 날입니다. 다나 씨도 그게 이상하다고 느끼고 저한테 오신 건가요?”

“마자여, 옵바야. 혹시 그게 진짜 신 옵바야 힘은 마잣나여……?”

“신…… 오빠…… 크흡. 아 죄송합니다.”

이안은 뜬금없이 그 대목에서 터진 듯 입술을 마구 씰룩거렸다. 하기야 지금까지 그런 호칭은 처음 들어 봤을 테니.

그나저나 이쪽 세계 신 성별이 남자는 맞나? 여성이면 언냐야라고 해야 되는 건가?

“제가 보기엔 성력은 맞습니다. 제 힘과 거의 같았어요. 약간 위화감이 들기도 하지만…… 그거야 쓰는 사람에 따라 다른 거고, 애초에 그쪽의 성력이 저보다 더 강했으니…… 트집 잡기도 뭣하군요.”

“호에에에.”

역시나, 이안 또한 그 성력을 가짜라고 눈치채지 못한 모양이었다. 그나마 약간의 위화감이나마 느꼈다는 부분에서, 이안이 얼마나 신실한 믿음을 가지고 있는지 느낄 수 있었다. 당시 세계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대주교 또한 가짜 교황의 성력을 진짜라고 생각했을 정도이니.

“이제 궁금증이 해결되셨나요? 아무래도 저도 좀 더 정진해야 할 것 같습니다. 오늘 그걸 보고 느꼈습니다.”

“여기…… 언냐야들만 조금 정리해도 되지 않을까여?”

“크흠, 그건 좀…….”

딴청을 피우는 이안을 보고 잠시 웃었다. 덕질은 포기 못 한다는 건가.

“옵바야, 혹시 그러며는 븝미쟝 부탁 하나만 드러주실 수 잇나여……?”

“네? 무슨 부탁을…….”

“그 연우 옵바야랑 조금 친하게 지내 주세여. 그리구…… 몇 가지 물어봐 주는 고애오.”

이안은 잠시 눈을 끔뻑거리면서 멍하니 있었다. 아무래도 내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그게 무슨 소린가요? 친하게 지내 달라……니.”

“그 옵바야한테 궁금한 게 꽤 많아서여.”

“어…… 죄송하지만, 저는 아무하고나 관계를 맺는 성격이 아니라서 안 될 것 같습니다.”

그는 꽤나 단호하게 거절했다. 이렇게까지 단칼에 쳐 내는 것에 대해 잠시 의아하기도 했으나,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주신께서 뜻이 있으시겠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그 녀석이 은총을 받았다는 것이 이해가 되질 않습니다. 평소 행실도 그럴뿐더러…….”

나는 워낙에 주연 인물들 외에는 관심이 없던지라 잘 몰랐지만, 아카데미 내에서 백연우는 꽤나 유명한 꼴통이라고 한다. 여러 비행을 하다가 징계를 먹은 것은 물론이요, 얼굴이 조금 반반했던지라 여생도 여럿과 동시에 사귀다가 발각이 된 적도 있다고 한다. 심지어는 3학년 생도와도 엮여 있어서 드물게 3학년들이 찾아와서 백연우에게 훈계를 했다고 한다.

찾아와서 하는 게 고작 훈계라니, 조금 어이가 없기도 했지만 1년만 있으면 졸업인데 굳이 문제를 일으키고 싶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제 신념을 저버리고 그런 놈과 엮이고 싶지는 않습니다. 죄송하지만…… 직접 물어보시는 게.”

단호한 그 말투에서, 평소에 내 앞에서 보여 주던 그 어리바리한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아무래도 내가 덕밍아웃이란 약점으로 협박을 해도, 들어주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럼…… 어떡하지? 분명 1학년 중에서 사제가 2명 더 있기는 했지만, 그들은 이안보다 실력도 떨어질뿐더러 나랑 친하지도 않았다.

어떻게든 마음을 돌려야 하는데…….

그때, 내 눈앞에 애니 캐릭터의 사진 하나가 들어왔다. 저게, 방 안에 제일 많이 걸려 있던 캐릭터였나? 자그마한 체구에 귀여운 얼굴이 인상적인 캐릭터였다.

잠깐만. 혹시…… 되려나?

“혹시, 옵바야. 저 언냐야 조와하나여?”

“크흠. 그, 렇죠?”

“그러며는 옵바야가 븝미쟝 부탁 드러주며는…… 저 언냐야 코스프레 해 줄게여!”

“네!”

이 발상은 김수혁 덕분에 떠올린 것이었다. 그렇다면 혹시, 이안도 똑같은 방법으로 꼬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말했다.

“안 되는 고애오?”

“그래도 그건 안…… 됩니다!”

‘안’과 ‘됩니다’ 사이의 간격이 굉장히 멀었다.

나는 이미 반쯤 넘어왔음을 알고, 확실하게 밀어붙였다.

“저 옷으로여!”

“됩니다!”

사진 하나를 집어내며 말하자, 이안은 결국 수락했고 나는 기뻐했다.

‘씨발.’

물론 그 이후 숙소로 돌아가는 길, 나는 욕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갑자기 태우지도 않던 연초가 마려워지는 한때였다.

*    *    *

이안은 내 부탁대로 백연우와 잘 붙어 다녔다. 백연우는 처음에는 그에 부담스러워하면서도, 교내에 널리 퍼진 이안에 대한 좋은 평판에 힘입어 자신 또한 이미지가 좋아진다는 것을 느꼈는지 이안과 함께 다니는 것을 과시했다. 자신 또한 진짜 성기사가 된 기분이 드는 것이겠지.

“바보 옵뱌야애오…….”

이름부터가 가짜 교황이었다. 물론 백연우는 진짜라고 믿고 있겠지만, 그 스스로도 약간의 의문은 지니고 있을 것이었다. 도대체 왜 내가 신의 선택을 받았는가. 그런 찰나에 진짜 성기사가 자신과 친하게 지내려 하니, 합리화를 쉽게 할 수 있었겠지.

“다나 요즘 인터넷 되게 자주 본다. 예전에는 별로 보기 싫다고 하더니.”

“하와와, 재밌는 게 많은 고애오…….”

“그렇지? 거봐. 은근히 아날로그적인 면이 있어서 놀랐어, 나는. 무슨 30대 아저씨도 아니고…….”

“케윽! 쿨럭! 헤으으응…….”

30대 아저씨…… 30…… 거의 되기 직전이기는 했지.

급작스럽게 내 본질을 꿰뚫는 일리아의 말에 마시고 있던 물을 뿜으며 사레가 들렸다.

일리아는 괜찮냐며 등을 두드렸지만, 그에 따라 자괴감이 스멀스멀 기어 올라왔다. 분명 다른 설득 수단도 있었을 텐데, 무슨 코스프레를 해 주겠다고…….

“괜찮아? 진짜. 다나 넌 몸이 너무 약해서 탈이야.”

“븝미쟝 마니 강해진 고애오…….”

“제발 좀 강해졌으면 좋겠어…….”

“호에에에에…….”

오늘따라 일리아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뼈를 때린다. BP를 모아 제일 먼저 하려고 했던 신체 강화 시술. 그 가격이 20,000BP였는데, 지금 내가 모은 게 13,000이었다. 아직 7,000이나 더 필요한데, 저번 시험 때 오른 게 1,000이 조금 넘는 수준. 그러니까 그 정도 임펙트를 사람들한테 일곱 번은 더 보여 줘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때까지는 신체 스텟 555……로 살아야만 했다.

“언냐야, 자꾸 그러며는 대련 신청 할 고애오!”

“미안, 미안. 화 풀어. 진짜 하면 내가 널 어떻게 때리겠어…….”

“우읍…… 음…… 얌냠.”

일리아는 겉면이 금박으로 된 초콜릿을 까서 입에 넣어 줬다. 달달한 거 먹고 화나 좀 풀라는 것 같은데, 그 뻔히 보이는 행동에도 혀에 달콤함이 느껴지니 진짜로 마음이 진정된다. 진짜 어린애 달래는 것도 아니고.

“하우으으…….”

나는 보던 화면을 뒤적거렸다. 일리아는 내가 인터넷 서핑이라도 하고 있는 줄 알고 있었지만, 실상은 달랐다. 월 수백만 원을 들여 구독할 수 있는 뒷세계 소식지. 공개적으로는 알려지지 않은 세계 각국의 사정에 대한 이야기를 보도하는 ‘시크릿 미디어’들 중 하나를 보고 있었다.

(@서체 변경)[교황을 자처하는 히어로가 등장하다.]

나는 그 페이지의 끝부분에서, 작게 서면으로 나와 있는 기사를 접할 수 있었다. 거기에 나와 있는 히어로의 신상.

스페인의 루카스라…….

나는 그 가짜 신상에 대해 적어 두었다. 당장은 어찌할 수 없지만, 조만간 처리해야 할 존재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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