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화.
자유롭게 조를 짜며 활동을 하는 과제가 나오면, 항상 나는 조원을 선택하는 위치에 있다. 내가 지금 전교 1등인데 거기에 무슨 의문이 붙겠는가.
이번에 선택할 수 있는 조원은 총 3명. 원래대로라면 일리아와 J를 끼워 넣었겠지만…….
“아, 조장 하기 싫은데. 바꿔 주시면 안 되나요?”
“등수에 따라 자동 배정된 거다. 싫으면 숙소랑 포인트 다 반납하고 최하위권으로 바꾸든가.”
“어, 네! 그럴게요! 그래도 되는데.”
“……안 돼.”
“아니, 왜요! 된다면서요!”
일리아는 교관에게 땡깡을 부렸다. 나랑 같은 조를 하고 싶다는 이유에서였다. 교관은 포인트와 숙소로 협박을 했지만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일리아는 여전히 제 숙소를 내버려 두고 내 방에서 잤으며, 포인트라면 한 놈 잡아서 대련 신청을 한 다음에 빼앗아 오면 그만이라는 마인드였다. 이렇게 말하니까 뭔가 노상강도 같은데.
“아, 진짜 저한테 왜 그러시는 거예요. 지금까지 조장 이런 거 한 번도 안 했는데.”
“넌 원래 필기만 아니었으면 무조건 조장이었어, 이년아. 빨리 들어가.”
교관이 등을 한 대 치자, 그제야 일리아는 발길을 돌렸다. 그녀의 입에서 불평 섞인 말들이 흘러나오고 입이 삐죽 튀어나온다. 아무래도 어지간히 나랑 팀을 못 하는 게 불만이었던 모양이다.
“언냐야, 당연한 고애오…….”
물론 나는 일리아와 같이 팀을 하고 싶기는 했지만, 이는 당연한 일이었다. 일리아의 현재 등수는 순전히 ‘필기’ 때문에 14등. 실제 무력으로 따지면 나츠키와 엇비슷하고 신하연과 장선우보다는 약간 떨어진다. 더군다나 이번 과제는 실기 시험이었으니 교관들이 그녀와 나를 붙여 놓을 리가 없었다.
“괜히 그거 잡았나 봐. 그냥 좀 약한 척할 걸 그랬나.”
“너무 실망하지 마라여, 언냐야…….”
일리아는 시험 때 나와 같이 15등급 대형 몬스터를 선택했다. 그리고 화려한 몸놀림으로 순식간에 녀석을 도륙해 버렸다. 나조차도 순간 등골이 서늘해졌었다. 언제 이렇게 강해졌는지. 원작에서 그녀의 성장 속도보다 훨씬 더 빠른 것 같았다.
그렇게 한동안 투덜거리던 그녀는 우리 반과, 배정된 다른 반의 생도들에게 자신의 조에 들어올 생각이 없냐고 물어보러 자리를 떴다.
“하와와와와…….”
일리아에게 나는 경쟁의 대상이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꼭 한 번 이겨 보고 싶다고는 생각하는 것 같았다. 나름 미리 생각해 둔 조원들이 있는지 분주하게 움직였다.
“이번에 성적 더 좋은 사람이 이긴 쪽 소원 들어주기 하자!”
일리아가 나와 상대 팀이나 다른 조가 될 때마다 하는 소리였다. 물론 이번에도 했고.
지금까지 네 번 모두 내가 성적이 더 좋았기에, 나는 4개의 소원을 말할 수 있었다. 하지만 딱히 바라는 것도 없고 해서 그냥 흐지부지했었는데…….
“언냐야, 무서운 고애오…….”
이번에 일리아의 눈빛이 영 심상치가 않았다. 그녀가 이겨서 소원을 말하더라도 그게 나를 크게 곤란하게 할 만한 것은 아니리란 기대가 있었다. 그럼에도 조금은 불안했다. 나도 빨리 구해야지.
띠링.
그때, 휴대폰에 알림음이 울렸다. 나는 슬쩍 그를 확인했다. 그리고 한 가지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씹덕: 백연우랑 이번 시험 같이 하시겠네요?]
“호에에……?”
이번 합반 과제에서 함께하는 10반. 그곳이 백연우의 반이란 사실을.
* * *
나는 백연우, 이 녀석이 어떤 놈인지 잘 모른다. 애초에 조연도 아닌 엑스트라 캐릭터니까. 본편에서는 아예 등장하지 않거나, 나왔더라도 공기급의 비중으로 출연했을 것이다.
다만 지금 내가 느끼는 바로는 ‘재수 없다’. 그것이 백연우를 가장 잘 표현하는 단어인 것 같다.
“이렇게 팀 하는 건 처음이네. 그렇지?”
“호에에에…… 그런 고애오.”
언제 봤는데 친한 척이야, 씹놈이.
속마음과는 다르게 평소처럼 웃는 낯으로 백연우를 대한다.
나한테 이런 식으로 친한 척을 하는 생도들은 굉장히 드물었다. 이따금 있기는 했지만 그들의 경우에는 별로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되레 친하게 지내서 나쁠 만한 구석이 있는 이들도 아니었던지라, 같이 어울리곤 했다.
하지만 이놈은 아니지. 속내가 너무 뻔히 보인다.
“설마 나한테 먼저 팀 하자고 제안할 줄은 몰랐는데. 이번에 시험 본 거지? 맞지?”
“그랬던 고애오.”
“참 신기해. 원래는 멀게만 느껴지던 사람들이 나랑 가까워지고. 앞으로도 잘 지내자고.”
앞으로 잘 지낼 리가 있겠나.
아무래도 이안과 함께 지내면서, 좋은 평판을 지닌 이들의 옆에 붙어 있는 게 얼마나 달콤한 일인지 느낀 모양이었다. 그래서 이러는 거고.
미안하지만 나는 친하게 지낼 생각이 없다. 이번 조별 과제에서 이놈을 팀원으로 고른 이유는 단 하나였다. 힘의 진위 여부를 완벽하게 밝혀내기 위해.
[백연우, 얘 같이 지낼수록 점점 이상하네요. 정말로 이딴 놈한테 주신께서…….]
이안은 백연우와 함께 지내며 내게 지속적으로 이 녀석에 관련된 이야기를 했다. 아무래도 평소의 행실과 소문이 완벽히 일치하는 듯한 모양이었다. 아니, 이전보다 더 심해졌다고 한다. 원래 믿을 거라곤 반반한 얼굴밖에 없었는데, 성기사가 되었다는 것에 대한 후광과 올라간 등수 덕분에 더 콧대가 높아져선 날뛰고 있다는 모양.
어차피 얼마 뒤면 무위로 사라질 힘을, 그따위로 쓰고 있다는 것에 웃음밖에 나오지 않았다.
“얼굴에 뭐라도 묻었어? 왜 그렇게 쳐다봐.”
“아니애오.”
백연우는 음침한 미소를 띠었다. 아무래도 제 얼굴에 내가 혹한 모양이라고 생각한 것 같은데…… 시발 롬아, 그럴 리가 있냐.
당장에라도 명치에 지팡이를 꽂아 버리고 싶은 걸 참아 내었다. 다 감수하고 뽑은 거니까. 참는 게 옳았다.
“호에.”
나는 지팡이를 잡으려 뒤쪽으로 손을 휘적거렸다. 줘 패는 상상이라도 하면서 마음을 다스리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만져지는 것은 항상 부유하며 나를 따라다니던 지팡이가 아닌, 부드러운 감촉의 무언가였다.
“다, 다나…….”
곤란하다는 듯한 어조로 얼굴을 붉히는 여생도. 나는 당황하며 내 손이 닿은 곳을 바라봤다. 내 수준까지는 아니어도 꽤나 작은 그녀의 키. 그 때문에 조금 위로 휘적거리던 내 손이 닿은 곳은…….
“미, 미아내여.”
“아냐! 괜찮아! 그냥…… 음.”
싸해지는 분위기. 그녀의 옆에 있던 다른 남자 생도는 헛기침을 마구 내뱉으며 고개를 돌렸다.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백연우만 어리둥절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내가 바보지.
애초에 지팡이는 외부 물품이라 교내에 반입이 허가되지도 않았다. 그런데 그 사실을 까먹고 평소 습관대로 행동하다가.
“그…… 기분은…… 좋았어. 아니, 안 나빴어. 좋은 게 아니라…….”
당황하는 내 모습에 어떻게든 분위기를 풀려던 그녀의 노력. 하지만 그 때문에 더 이상해졌다. 결국, 목표한 대상에 도착할 때까지 우리는 입도 뻥긋하지 않았다.
* * *
“헤응…… 헤으응…….”
나는 숨을 급하게 들이쉬며 달렸다. 목표 지점에 거의 다 도착했을 때쯤, 그 앞에서 함정이 발현되었다. 나를 제외한 다른 조원들은 당연하다는 듯이 그를 회피했지만 나는 그러지 못했다. 분명 함정이라는 것을 인식했음에도 이 빌어먹을 몸은 그대로 함정에 빠져 버렸다.
결국 함정에 빠진 나를 제외하고, 조원들은 모두 따로 몬스터를 잡으러 갈 수밖에 없었다. 내가 빠져나오길 기다리는 것보다 그게 더 빨랐으니까. 급작스럽게 떨어진 구덩이 속에 있는 몬스터들을 모두 박살 내 버린 나는, 빨리 그들을 따라가려고 했으나 그럴 수가 없었다.
“왜 이렇게 만든 고애오!”
지팡이를 타는 것보다야 느리지만, 나는 부유 마법을 이용해서 일반인들이 뛰는 수준의 속도로 날 수 있었다. 마력 소모가 상당한 방법이었지만, 뛰다가 퍼지는 것보다야 나았기에 지금껏 그렇게 이동했다.
하지만 이번 시험장의 구조는 그럴 수 없게 만들어져 있었다. 내가 키가 워낙 작아서 그렇지, 일반 성인 남성이라면 그냥 서 있기만 해도 천장에 머리가 닿을 법한 좁고 낮은 통로. 이런 곳에서 부유 마법을 이용해 날아갈 수는 없었다.
그렇기에 나는 뛰었다. 전력으로 달렸다. 관제실에서 실시간으로 전달되는 정보에 의하면, 내가 함정에 빠진 지점으로부터 대상이 대략 5분 거리에 있다고 했으니까.
그 5분이, 내 기준의 5분이 아니라는 사실을 자각했어야만 했다.
대략 13분가량 몸에서 달큰한 냄새가 풀풀 풍겨져 나올 때까지 달렸다. 대상에 도착했을 때는 다리가 바들바들 떨려서 움직이기도 힘들 정도의 상태가 된 후였다.
“후에에에…….”
이미 조원들은 일을 진행하고 있었다. 대상은 마치 석회질의 암석과 같은 재질을 가지고 있는 몬스터. 이번 시험의 목표는 저 녀석의 코어를 부수는 것이었다.
코어는 녀석의 가슴팍 중앙에 떡하니 박혀 있었지만, 조원들은 쉽사리 그것을 파괴하지 못하고 있었다. 애초에 저 거석 괴물은 생도들이 몇 뭉쳤다고 쓰러뜨릴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목표도 코어만 파괴하는 것이었고.
물론 나 같은 경우에야 코어 파괴는 물론이고 쓰러뜨릴 수도 있겠지만…… 그 잣대를 일반 생도들에게 들이밀어서야 안 될 일이었다. 나는 조원들이 싸우는 모습을 몰래 관망했다. 줄줄 흘러내리는 땀을 훔치면서.
콰앙!
거석이 지면을 강타한다. 그에 예의 여생도가 꺄악, 소리를 내며 뒤로 물러선다. 소녀 감성이 짙게 묻어 나오는 모습이었지만, 그 순속이 우사인볼트보다 빠르다면 이야기가 달랐다.
뒤로 날아가듯 도망치는 동시에 시위를 당겨 화살을 연거푸 쏘아 댄다. 물론 거석 괴물의 몸체에 피해를 주지는 못할 만한 위력이었지만, 코어가 상하면 안 된다는 지식이 박혀 있는 녀석은 화살을 팔로 쳐 내었다. 그 틈을 타서 배틀엑스를 메고 있던 조원이 거석에게 달려든다.
콰악!
그 기세가 대단했음에도, 거석에게는 큰 피해를 주지 못했다. 하지만 이어 백연우가 공격을 가했을 때는 상황이 달랐다. 성광을 내뿜으며 달려든 녀석은 그저 몸으로 거석을 들이받았다. 원래라면 피를 토하며 날아갔어야 할 백연우였지만, 되레 놈을 벽으로 밀쳐 내는 것에 성공한다.
“빨리! 지금 공격해!”
백연우의 외침에 달려드는 이들. 다 같이 코어에 공세를 가하기 시작했다. 거석 괴물은 한 번 구석에 몰리자, 좀처럼 벗어나지 못했다.
“호에에에…… 잘못 봤는데여…….”
방금 백연우의 공격은 이전번의 시험 때보다 더 위화감이 없었다. 사용한 힘의 크기가 달라서일까. 내 눈으로는 이안과의 차이점을 구별할 수가 없었다.
이렇게 되면 굳이 저놈을 조에 끼운 의미가 없는데. 나는 몰래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옵바야, 조금 약해지는 고애오…….”
저주 계열 마법인 위더(wither), 나는 그것을 백연우에게 걸었다. 그리고 반대로 거석 괴물에게는 마력을 불어 넣어 그 힘을 배가시켰다.
“어, 어어?”
갑자기 역전되기 시작하는 형세. 괴물의 제1 타깃이 된 백연우는 그야말로 거석 괴물에게 개 맞듯이 맞기 시작했다. 그제야 녀석은 본인의 전심전력을 다했다.
“이제 됐서여.”
나는 백연우가 반쯤 피 떡이 되고 난 이후에, 백연우의 저주 마법과 거석에게 걸었던 버프를 해제했다. 절대 한번 엿 먹어 보라고 한 행동이 아니었다. 그저 확실하게 내 눈으로 보고 싶었을 뿐이었다. 저 힘이 진짜일지, 혹은 가짜일지.
“븝미쟝은 거짓말 가튼 거 못 하는 고애오, 아가야니까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