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화.
백연우는 펜타곤에서 자신의 나약한 힘을 절감했다. 처음에 육체계 능력 중에서도 상위의 능력을 각성하고, 기초 스텟 또한 상위 1퍼센트 수준 판정이 나왔을 땐 현재 수많은 이들에게 추앙받는 히어로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생각은 입학시험 때부터 좌절되었다. 겨우겨우 시험을 통과하기는 했으나 최하위권으로 통과.
다른 생도들이 이른바 ‘괴물’이라고 부르는 20위권 위의 생도들은 물론이고, 처음에는 동류라고 생각했던 같은 하위권 생도들조차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성장해 갔지만 백연우는 여전히 그대로였다.
사실 그의 재능은 펜타곤에서 뛰어나지는 않더라도 특별히 뒤떨어지는 수준은 아니었다. 수없이 노력한다면 언젠간 상위권 생도들을 따라잡을 수도 있을 법한 자질.
하지만 백연우는 모든 일을 자신의 재능 부족으로만 여겼다.
그와 동시에 끓어오른 감정은 저열한 시기와 질투.
온갖 열패감으로 가득 찬 백연우는 시기의 마왕의 눈에 띄기에 적절한 상태가 되었다.
[당신, 고민이 많아 보이는군요?]
[그렇다면 제가 해결해 드릴 수 있겠군요. 신의 은총을 느끼게 해 드리겠습니다.]
[자, 여기로.]
신관의 복장을 한 남자. 백연우는 그저 홀린 채 그 남자의 말에 따랐고, 힘을 얻게 되었다. 모두가 부러워하는 순수한 힘. 그로 인해 기존 펜타곤에서 강자로 불리던 이들의 관심 또한 받게 만든 힘…… 하지만 그것으로도 부족했던 걸까.
“으윽…….”
백연우는 이마를 짚으며 몸을 일으켰다. 보건실의 침상 위. 하얀 시트와 이불을 보니 아까 전의 상황이 떠올랐다. 던전 안에서의 전투 상황이.
분명 힘을 발현하고 난 직후에는 그 암석 괴물을 밀어붙였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해서 완전히 전투 양상이 달라졌었다. 그로 인해 놈에게 빈사 상태가 될 때까지 두들겨 맞았다.
“하아…… 씨발.”
그 과정에서 자신을 바라보던 다른 생도들의 표정이 기억이 났다. 당황감과 동시에 느껴지는 것은 과거에 받았던 멸시의 시선과 비슷한 것.
정신을 잃기 직전 등장한 다나 크리스틴. 그녀를 향한 동경의 시선과는 완전히 반대되는 것이었다.
백연우는 잠시간 상실감에 젖어 앉아 있었다. 분명히 힘을 얻었다고는 해도 자신은 아직 상위권 생도들과 싸우면 지는 수준이었다. 결국에 그 간극은 다시 점차 벌어질 것이었고, 그렇게 되면 또 과거로 돌아가게 되는 것이었다. 오늘처럼.
우우우웅.
그때, 백연우의 마나 홀에 자리 잡은 마력 덩어리가 울렸다. 그것은 이전번에 자신을 ‘교황’이라고 칭하던 남자에게서 받은 힘. 그 원천이었다. 분명, 이걸 융해해 낸다면 더 강해질 수 있을 거라고 했나.
[다만 이전과는 많은 게 달라질 수도 있을 겁니다.]
백연우는 그의 경고를 떠올렸다. 하지만 지금 그에게 있어 그것은 경고로 들리지 않았다. 이전과 많은 게 달라진다면, 오히려 좋은 것이 아닌가. 백연우는 그와 동시에 마력을 융해시켰다.
그 과정은 너무나도 쉬웠다. 대략 1분여가 지나자 모든 것이 끝났다.
그리고 정신을 집중하느라 잠시 떨궜던 고개를 든 백연우.
“하아…….”
그의 눈은 이전과 달리 생기가 없었다.
* * *
조별 과제 결과, 나는 전체 7위였다. 그리고 일리아는 놀랍게도 전체 1위를 달성했다. 나름 조를 굉장히 알차게 잘 짠 것 같았다.
생각보다 저조한 우리 조와 반대로 뛰어났던 일리아조의 성적에 모두가 놀라워했다.
물론 나는 그에 크게 개의치 않았다. 어차피 시험 한 번으로 순위가 막 변동될 일도 없을뿐더러, 변동되더라도 별로 신경 쓰지 않으니까.
다만 걱정은 하나였다. 도대체 일리아가 무슨 소원을 빌지 모르겠다는 것.
내가 넌지시 물어보니 그녀는 음침한 미소를 흘리면서 말했다.
“미리 말해 주면 재미없지. 나중에 때 되면 말할 테니까 기다려.”
“호에에에…….”
도대체 무슨 소원을 빌려고 그러는 건지 모르겠는데, 아무튼 그거 하나만 바라보고 기어코 조장을 맡은 첫 과제 때 1위를 해 버리는 그녀의 집념에는 나도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조금 이상한 고애오…….”
2학기에 들어서 나는 무기술 수업을 듣지 않는다. 1차 적성 분류가 모두 끝났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근접 계열 능력자인 일리아는 다른 반으로 갔고, 나는 혼자서 마법 수업을 듣기 위해 지정된 교실로 향했다.
“호에에에, 진짜 언냐 옵바야들이 많은 고애오…….”
그 지정된 교실이란, 2학년 생도들의 반이었다. 기초마법 1반. 마법을 부전공으로 택한 2학년 생도들과 주 전공이 마법인 1학년 생도들 간의 합동 수업이 이루어지는 곳이었다.
그런 만큼 내가 모르는 얼굴들이 많았다. 2, 3학년 생도들은 작중에서 잘 얼굴을 비치지도 않고, 비교적 그 자질이 떨어지는 이들이 많다고 대놓고 설명해 주니까.
물론 진흙탕 속에서도 한 떨기 꽃은 있었다.
“언냐야, 여기 앉아도 되는 고애오?”
나는 당당히 한 여생도의 옆으로 걸어가서 앉았다. 노트북을 꺼내 들고 무심하게 타자를 치고 있던 그녀는, 나를 한 번 슥 쳐다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마치 그러든가 말든가 관심도 없다는 듯한 태도였다.
거의 광대까지 내려온 다크서클에, 무표정한 이 2학년 생도의 이름은 이수정. 그리고 넷상에서 사용하는 닉네임은 크리스탈.
2학년과 접점이 없었기에 쉬이 만나지 못했지만, 실상 내가 가장 먼저 떠올린 펜타곤 생도들 중의 1명이었다.
이수정의 현재 나이는 17세. 실상 나이로만 따지면 1학년 생도들과 동갑이지만, 1년 일찍 각성한지라 현재 2학년이었다.
그녀는 펜타곤 내에서 그리 눈에 띄는 생도는 아니다. 그 등수 또한 150~200위 정도로 1학년보다 2학년의 수준이 떨어진다는 걸 생각하면 사실상 1학년 기준 최하위권 정도.
1년이라는 시간의 간극이 있음에도 나는 이수정과 싸우면 쉽게 이긴다. 그녀의 능력은 이런 전투가 아닌 다른 곳에 있었다.
“흑영문에 들어가 볼까얌…….”
쫑긋.
내게 관심조차 없다는 듯이 굴던 그녀가 일순간 반응한다.
흑영문. 현재 떠오르는 신예 다크넷 사이트로 이름을 알리고 있는 곳. 그리고 후일에는 다크넷 사이트들 중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곳으로 발돋움할 곳. 여러 가지 파생 사이트를 통해 정보, 의뢰, 물건 구매 및 판매, 단순한 오락거리 등등 여러 가지를 제공하는, 그 이름과는 비교적 거리가 먼 그곳의 주인이 바로 이수정이었다.
“어떻게 알아.”
이수정은 약간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내게 물어봤다. 하지만 나는 그게 그녀가 정말 화가 났다거나 신경이 거슬려서 나오는 어투가 아니라는 걸 알고 있다. 만성적인 수면 부족과 과로에 시달리는 그녀로서는 나름 나긋나긋하게 말한 것일 터였다.
“네? 머가여, 언냐야?”
“아까 흑영문이라고 했잖아. 어떻게 아냐니까?”
“호에에에, 븝미쟝은 그런 고 모르는 고애오.”
“…….”
그녀는 나를 이상하다는 듯이 쳐다봤다. 그러고는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듯이 꼼지락거리다가, 다시 키보드와 마우스에 손을 얹었다.
“아니면 됐어.”
그렇게 말하는 이수정의 표정이 조금 불퉁했다. 아무래도 좀 실망한 것 같은 모양이었다. 흑영문이 뜨고 있다고는 해도, 일부 사람들에게나 그런 거지 아직은 초기 단계인지라 별로 인지도가 높지 않았다.
타다다닥.
자판을 두들기는 그녀를 바라보며 나는 슬쩍 웃음을 지었다. 연금술사 자매들처럼 쉽게 넘어오진 않겠지만, 이수정 또한 내 계획에 있어 상당히 중요한 인물이었다. 조만간, 비슷한 방법으로 접근해야겠지…….
타다다다닥! 타다다닥!
마법 수업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이수정은 여전히 노트북만을 바라보며 타자를 마구 두들기고 있었다.
그에 얼마간 사람 좋은 표정으로 참고 있던 교관은 이수정의 자리로 찾아와 노트북을 집어 들었다.
“아, 아. 잠만요. 뭐하는 거예요! 으악! 악!”
“수업할 때는 수업을 들어요. 이수정 생도.”
“아, 나 거기 작업한 거 오늘! 아, 다 있다고요오오오…….”
나는 교관에게 매달리며 애원을 하는 그녀의 모습을 보며 생각을 바꿨다.
……어쩌면 연금술사 자매들보다 꼬이기 더 쉽지 않을까.
“우에에에에엥!”
“호에에에…… 언냐야, 울지 마는 고애오…….”
기초마법 1반의 첫날은 눈물바다였다. 노트북을 뺏겨 울부짖는 이수정, 그리고 그런 이수정의 모습을 보며 갑자기 눈물샘이 터져서 제멋대로 훌쩍이기 시작하는 나까지.
“쟤는 뭔데……?”
2학년 생도들은, 이수정의 그런 모습은 익숙한 듯 개의치 않았다. 다만 내가 더 의문인 모양이었다.
나도 의문이다, 이 연놈들아.
* * *
펜타곤 내에서 대련은 꽤나 자주 벌어진다. 고학년이 되고 나면 당장에 대련으로 순위가 뒤바뀌는 것이 길드 스카우트에 큰 영향을 주기에 민감하기도 했다.
오늘만 해도 개학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시점에 몇 번이나 대련이 펼쳐졌다. 수준이 떨어진다고는 해도, 어쨌건 각성한 지 1년 혹은 2년이 더 빠른 이들이다 보니 1학년 대련보다 볼 것이 많았으면 많았지 적지는 않았다.
수업 시간이 모두 끝나고, 일과 시간에 펼쳐지는 대련. 몇몇 이들은 각자 수련을 하러 가기도 했지만, 당장 수업만 하더라도 굉장히 피곤했기에 대부분의 생도들은 대련이 펼쳐지면 다들 대련장 관중석으로 달려와 이를 관람했다.
그건 일리아와 나츠키, 그리고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와작와작와작.
와작와작와작.
“아, 십팔, 적당히 처먹어.”
“왜 짜증이야. 뭐 얼마나 소리 난다고. 다들 소리 지르고 난리인데 그게 들리는 게 더 신기하다. 그리고 나 얼마 먹지도 않았어. 아직 배고프단 말야.”
“그럼 녹여 먹어!”
“되게 예민하네. 안 줘서 삐진 거야? 먹을래?”
“아니거든!”
일리아가 먹고 있던 팝콘을 내밀자 나츠키는 잠시 혹하는 듯하더니, 질색을 했다. 나는 그녀에게 손을 펼쳤다.
“그럼 븝미쟝 주는 고애오.”
“아, 다나 너도 배고프겠구나.”
일리아는 내 손에 팝콘을 얹어 주었다. 손도 작아서 몇 알 얹어지지도 않았지만, 그만해도 입을 가득 채우기엔 충분했다.
와작, 와작.
와작와작와작.
“아, 쌍으로 지랄을 하세요.”
엇박으로 팝콘을 씹어 대니 나츠키가 부들부들 떤다. 그 모습이 웃겨서 나는 더 소리 내어 씹었다.
허니솔트였나. 혀끝에 감도는 짭쪼름하고 달콤한 맛에 기분이 좋아진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전율 비슷한 것이 흐른다. 당장 지금 보고 있는 대련이 별로 재미가 없었던지라, 먹는 데 더 열중했던 것 같다.
“승자는 프랭크입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대련의 결과가 정해진다. 2학년 39위 마법사와 113위 궁수 간의 경기였는데, 의외로 113위 쪽이 이기면서 여기저기서 탄식이 흘러나온다. 아무래도 마법사한테 포인트를 건 사람들이겠지. 바보 아니야. 자기가 걸어 놓고 왜 대련하던 사람한테…….
“아, 왜 지냐고! 멍청아!”
……아무래도 내 옆에도 바보가 있었던 모양이다. 나츠키는 당장에라도 진 마법사를 씹어 먹기라도 할 것 같은 태도였다. 예민하다 싶더니, 그런 거였나. 얘는 그냥 매주 받는 포인트만 해도 차고 넘칠 텐데 굳이 왜 이런 걸 하는지 모르겠다.
그러고 보니 이 포인트 도박사이트도 지금 책임자로 있는 사람이 이수정이었나. 만들기야 윗기수에서 만들었지만 보완을 한 것은 그녀였던 걸로 기억한다. 승률 예측기 같은 프로그램도 만들었던 것 같은데…… 나중에 그거 알아내서 나츠키한테 귀띔이라도 해 줄까. 제법 많이 잃는 것 같던데…….
“자, 오늘의 마지막 대련입니다 1학년 생도 둘의 싸움이군요.”
그렇게 생각을 하는 사이, 다음 순번이 불린다.
“헤으으응…….”
나는 하품을 했다. 오늘 상위권 생도들은 대련이 없었던 것 같은데. 그렇다면 보나 마나 졸전일 게 분명했다. 그러면 그냥, 이쯤에서 일어날까. 그렇게 생각하던 때였다.
“89위 백연우, 그리고 46위 곽민수의 대결입니다!”
“호에에?”
도대체, 무슨 배짱으로?
나는 단상 위에 올라오는 백연우를 보고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저러다가 들키면 뒷감당을 어쩌려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거기다가, 46위면 이기기도 힘들 텐데…….
하지만 잠시 뒤, 그런 내 예상은 완벽히 깨졌다.
콰드드득!
단 한 번의 일격으로, 개박살이 나는 46위의 근접계 생도.
그와 함께 대련장 전역으로 퍼지는 성광을 보며 이마를 짚었다.
“호에에에…… 븝된 고애오…….”
이거, 제대로 좆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