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애기븝미쟝이 되었다-91화 (91/172)

#91화.

지금 백연우가 보여 준 무위는 이전과 달랐다. 이전에는 분명 대단하기는 했어도 펜타곤 내에서 손가락에 꼽히는 정도의 힘은 아니었다. 간당간당하게 상위권이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 그렇기에 46위 생도를 상대로는 이길 수 있으리란 생각 자체를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너무나도 쉽게 예상을 깨 버렸다.

그저 일격. 단 일격으로 자기보다 상위 등수의 생도를 완전히 부숴 버렸다.

모두가 당황했다. 그것은 심판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기에 완벽하게 끝난 대련이었음에도 판정이 내려지지 않았다.

그사이 백연우는 쓰러진 생도에게 다가갔다. 이름이 곽민수였나? 기억 속에 자리 잡은 이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평판이 나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야, 이 개자식아. 어? 아직도 내가 쓰레기 같아?”

“호에에…….”

하지만 아무래도 백연우는 그에게 큰 유감이 있는 것 같았다. 해당 생도에게 다가간 백연우는 그의 팔을 짓밟았다. 으스러뜨리기라도 하려는 듯이 잘근잘근.

잔인한 광경에 저절로 고개가 돌아간다. 그때서야 심판이 선언을 내렸다.

“그만! 끝났어!”

하지만 백연우의 행위는 끝나지 않았다. 그가 쓰러진 생도에게 다시 한번 일격을 가하려던 찰나.

쐐액!

순간, 백연우를 노리고 검 하나가 날아든다. 백연우에게서 여전히 내뿜어지는 성광보다는 분명 밝지 않았으나, 오롯이 찬연하게 빛나는 백색의 검.

이안. 검을 던져 낸 녀석은 백연우를 보고 이를 바득바득 갈고 있었다.

“…….”

그 검을 피해 낸 백연우는, 땅바닥에 꽂힌 검을 본 뒤 이안 쪽을 다시금 바라봤다.

그 눈빛은 앞서 봤던 백연우의 이미지와는 완벽히 다른 것이었다. 선홍빛이 감도는 눈동자. 나는 그에서 알 수 없는 찝찝함과 두려움을 느꼈다.

“하와와와…….”

나는 내 머리를 연거푸 쥐어박았다.

아무래도, 백연우가 저렇게 된 게 나 때문인 것 같았다.

“적당히 했어야 하는 고애오…….”

*    *    *

가짜 교황, 녀석의 정체는 시기의 마왕이다. 물론 정확히 말하자면 마왕 그 자체는 아니고, 아바타라고 해야 할까. 만약에 진짜로 마왕이 현현한다면 그냥 그날로 세계 멸망이었다.

백연우는 그에게서 힘을 받았다. 본래 그 기질이 그래서일까. 굳이 백연우가 그 대상이 된 이유는 나도 알지 못하겠다. 원래 히어로 판타지에서는 이 시점에 가짜 교황이 나타나지도 않았으니까.

하지만 두 가지는 확실했다. 지금 백연우의 상태가 꽤나 심각하다는 것. 그리고 내가 그 상태로 만든 것 같단 것이었다.

백연우는 지금 완벽하게 그 가짜 성력에 잠식당한 상태였다. 대련 때 그가 보여 준 행동과 잠시간 보이던 악마화의 징조만 보더라도 알 수 있었다. 가짜이니만큼 그 성력이 고강해질수록, 반대로 사용자 본인은 점점 성정이 포악해지며 외양이 변모하게 된다.

아마 얼마 가지 않아 백연우는 이상함을 느낀 펜타곤 측에 의해 제재당할 것이다. 다만 나는 그걸 원하지 않았다. 그렇게 된다면 지금까지 해 온 모든 일들이 허사로 돌아가는 것이었으니까. 그러니 그 전에 내가 계획한 일들을 해내어야만 했다.

“이제는…… 알겠습니다.”

이안은 침잠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저번 대련 때 그는 누구보다도 분노했다. 만약 피해를 당한 당사자의 친족이 대련을 봤다고 해도, 이안보다는 덜 분노했을 터였다.

“그놈은 절대로 주신의 종이 아닙니다. 감히…… 어떻게 신의 이름을 사칭하며 그런 짓을…….”

성기사, 이안.

지금에서야 내가 장난스레 여러모로 놀리고는 하지만 후일 가서는 중앙 신전의 기사단장이 될 녀석.

그 믿음의 크기는 본래 종교를 가지지 않았던 나로서는 가늠하기 힘든 것이었다. 하지만 어느 정도 이해는 되었다.

“옵바야, 그 뒤로는 안 만난 거져?”

“네, 안 만났습니다. 도저히…… 아무 짓도 하지 않을 자신이 없었습니다.”

대련이 끝난 이후, 이안은 가벼운 징계를 받았다. 징계라고는 해도 기록조차 남지 않는 수준에 포인트 일부를 앗아 가는 정도였던지라 본인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다만 백연우에게는 꽤나 큰 처벌이 내려졌다. 그 행위에 대한 고의성과 악의가 다분히 보였기 때문이다. 백연우는 3일간 정규 수업에 참여하지 못한 채 격리되었다.

“사실 지금 당장에라도 찾아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습니다만…… 그럴 수야 없겠죠.”

“옵바야가 참는 고애오…….”

여러 가지 의미로 이안은 참아야만 했다. 지금 당장에는 아마 이안이 찾아간다고 해도 백연우를 이길 수 없을 것이다. 조금 시간이 지나 육체가 붕괴되기 시작한다면 모를까.

만약 이길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 또한 안 될 일이긴 하지만.

“그나저나 도대체…… 그놈 정체가 뭔가요? 비록 제가 같은 주신의 종이 아니라고 확언하기는 했지만 그 힘만큼은 거의 완벽했습니다.”

이안은 찬란히 빛나던 그 성광을 떠올리는 듯했다.

나는 아주 간략하게 백연우에 대한 설명을 했다. 그 힘의 원천에 대해서도, 마왕의 이야기는 제외한 채 가짜 교황이라는 작자가 있단 정도만.

이안은 그에 꽤나 충격을 받은 모양이었다. 성력이라는 게 그렇게 비슷하게 따라 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은 둘째 치고서라도, 그 근본이 완전히 상극에 있다는 것에.

“그렇다면…… 지금 놈 말고도 더 있습니까?”

“호에에에…… 잘 모르겠는 고애오…….”

이건 사실이었다. 진짜로, 잘 모른다. 히어로 판타지 기준에서 알고 있던 지식을 여기에 대입시킬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애초에 지금 시점이라면 교황이 등장하지 않았어야 했단 말이다.

“그러니까 도와줘야 하는 고애오…….”

이번 일에는 이안의 도움이 전적으로 필요했다. 적어도 ‘진짜’ 성력에 대해서 알고 있고, 확실하게 교단에게 이번 일에 대해 이야기해 줄 사람이 필요했으니까. 교단 내에서 촉망받고 있는 이안의 이야기라면 아마 어느 정도 믿어 주지 않을까…….

“물론 도와 드리겠습니다. 아니, 도와 드린다는 표현도 옳지 못하겠군요. 결국 교단 측에서 나서야 하는 일이니 오히려 도와주시는 격이고…….”

“호에에에, 그러며는 븝미쟝…… 코스프레 안 해도 되는 건가여?”

“그건 안 됩니다!”

“…….”

혹시나, 분위기에 편승해 한번 넘어가려고 해 봤더니, 눈을 까뒤집고 발광하는 이안.

그 모습이 백연우의 행위를 봤을 때보다 더 분노한 것 같아 나는 잠시간 그의 신앙에 관해서 생각을 달리할 수밖에 없었다. 씹덕 새끼.

*    *    *

백연우는 몸에 들어찬 충만감에 기뻐했다. 이것이, 본래 상위권 생도들이 느끼고 있었던 힘인가.

이안이 자신에게 대련 중에 검을 던졌을 때도 백연우는 분노하기보단 되레 기뻐했다. 이안에게서 느껴지는 힘이 자신의 것보다 못했으니까.

하지만 근신 처분을 받은 이후, 백연우는 무언가 잘못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성격이 점점 자기도 모르게 포악해지고 있다든가, 충동적으로 주변의 물건을 파손시킨다거나 하는 사소한 문제들은 둘째로 치고서라도, 보다 심각한 일이 그에게 찾아왔다.

“이거…… 왜 이래?”

처음에는 팔이었다. 그리고 점차 시간이 지나며 눈에 잘 띄지 않는 신체 부분들이 점차 마치 시체의 몸처럼 변모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단지 변모할 뿐만 아니라 썩은 내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끝내 다른 이들도 눈치채기 시작할 때쯤, 펜타곤에서 지내는 평일이 지났다. 주말이 찾아왔다.

백연우는 곧바로 자신에게 힘을 준, ‘교황’이라는 이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작은 건물. 빛조차 잘 들어오지 않는 어두운 그곳에 오롯이 성광을 내뿜는 남자가 앉아 있는 그곳으로.

“아아, 주신의 진정한 첫 번째 종께서 이곳에는 무슨 일로.”

교황은 백연우를 항상 이렇게 불렀다. 주신의 진정한 첫 번째 종.

백연우는 항상 그 말에 대해 의아함과 동시에 알 수 없는 자부심 비슷한 것을 느꼈었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는 그렇지 않았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설명을 해 줘야겠는데.”

백연우는 이를 갈면서 흉측하게 변해 버린 자신의 팔을 들어 보였다. 백연우가 바보냐, 아니냐 묻는다면 여러모로 전자에 속하는 인물이었으나, 자신의 몸에 생긴 이상이 어떤 이유 때문에 일어나는 것인지 정도는 알 수 있었다.

남자는 그에 눈을 빛내며 입꼬리를 올렸다.

“호오…… 벌써…… 기뻐하셔도 될 것 같군요. 주신의 진정한 종이 되고 있으시군요!”

“개지랄을 하고 앉아 있네. 주신의 종은 무슨. 이게 사람 몸으로 보여? 이 개자식아.”

“허허…… 말씀이 거칠군요…….”

남자는 백연우를 향해 손을 들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백연우는 몸의 통제권을 너무나도 쉽게 잃어버렸다.

“어……?”

백연우의 입 사이로 얼빠진 소리가 흘러나왔다. 제멋대로 움직이는 몸. 그는 자리에서 곧바로 무릎을 꿇게 되었다.

“찬경하십시오.”

남자의 말과 동시에 백연우의 손이 올라간다.

“힘을 받아들이십시오.”

이어 몸의 일부에 생겼던 이상한 흔적이, 몸 전체로 퍼져 나간다.

“그리고…….”

“하와와와와!”

“하와와……?”

남자는 잠시간, 자신의 입에서 나온 소리. 방금 전에 귓전에 들려온 소리가 무엇인지 되뇌었다.

하지만 그 뜻을 생각해 내기 전에, 자그마한 붉은 머리칼의 여자애가 나타났다.

“븝하! 애기븝미쟝이애오!”

*    *    *

나는 백연우의 뒤를 이안과 함께 밟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셋이서 함께 밟은 것이었다. 이안과, 나와, 신하연.

“둘이 너무 붙어 있는데…….”

“시, 시정하겠습니다.”

“호에에에, 왜 그러는 고애오…….”

신하연은 원래 끌어들일 생각이 없었다. 애초에 이안을 끌어들인 것도 내가 가짜 교황을 이길 수 없기 때문이 아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가짜 교황 자체는 이길 수 없지만, 지금 이곳에 있는 교황은 본체가 아니었다. 본체는 스페인에 있고, 여기에 있는 건…… 분신 중 하나. 분신의 전투력은 히어로 판타지에서 언급되길 중위권 히어로들에게도 당하는 정도였으니 나 혼자서도 충분히 이겨 낼 수 있다.

이안을 끌어들인 이유는 교단에 교황의 존재를 알리기 위한 메신저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신하연은 그저, 제멋대로 끼어든 것이었다.

“둘이 뭐 해?”

신하연은 이안과 내가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몰래 듣고 있었던 모양이다.

도대체 어떻게 했는지는 나도 알 수가 없었다. 내 기감은 J도 한 번에 잡아낼 수 있을 정도로 뛰어나다. 신하연은 근접 계열 중에서도 완벽하게 육체 자체에 모든 능력이 몰려 있었다. 이런 은밀 행동에 유리한 능력 따위는 가지고 있지도 않았다.

그런데 어떻게 알았는지 제멋대로 끼어든 것이다.

그렇게, 혹을 하나 달고 오긴 했지만 어쨌든 큰 문제는 없을 것 같았다.

백연우는 우리를 눈치채지 못했고, 나는 그 안에서 교황으로 추정되는 이의 기감을 느낄 수 있었다.

일행은 그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성광을 내뿜고 있는 교황이 백연우를 손짓 하나로 움직이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나는, 곧바로 문을 박차고 들어갔다. 그리고 소리쳤다.

“하와와와와!”

……물론 거창한 내용은 아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