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화.
일리아는 방에서 카페를 관리하고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다나의 팬카페.
당장 본인 카페도 관리하지 않는 바에야 무슨 남의 팬카페를 관리하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일리아는 현재 카페의 부매니저였다.
“관리할 것도 별로 없네.”
그녀가 부매니저가 된 것은 카페 설립 후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카페의 매니저는 일리아가 가입했다는 것을 알자마자 곧바로 그녀에게 그 자리를 헌납했다.
프로그램 ‘펜타곤’에 비치는 다나의 모습 속에는 항상 일리아가 같이 있었으니, 둘이 친하다는 것에는 모두가 이견이 없었다.
거기에 일리아는 가끔씩 카페에 일상 샷을 공유해 주기도 했으니, 당연히 특별 취급을 받을 수밖에는 없었다.
다만 그녀는 카페 내에서 활동을 거의 하지 않고 관리를 주로 했다. 주객이 전도되어서야 안 되는 일이었으니까.
물론 이 사실은 다나에게는 비밀이었다. 왜 그러는지는 모르겠지만, 본인 팬카페 이야기만 나오면 닭살이 돋아 죽으려고 했으니까.
“jealousy라……. 희한한 닉네임이네.”
신규 가입자를 통과시켜 주는 것도 매니저의 일. 일리아는 개중 특이한 닉네임을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사실 다른 카페라면 그리 특이한 닉네임이 아닐 것이다. 영단어로 된 닉네임이야 넘쳐 나니까. 하지만 개중에서도 ‘시기’라…….
“뭐…… 이상한 닉네임은 아니니까.”
팬카페이니만큼, 닉네임은 븝미 어쩌구 혹은 다나 어쩌구로 끝을 맺는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가입 단계에서 거르는 닉네임은 대부분 선정적인 것들.
일리아는 당장에 가입 거부를 한 닉네임 명단을 살펴보며 얼굴을 찌푸렸다. 븝미 쪽쪽 어쩌고에…… 그 밑으로는 언급하고 싶지도 않았다.
“으…….”
그녀는 해당 닉네임들을 제외한 모든 신규 가입자를 허용해 주었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서 다나의 침대에 누웠다.
“흐으으읍…… 하…….”
침대 시트에 얼굴을 파묻고 있는 일리아.
누군가가 그녀를 본다면 과연 방금 가입을 거부한 닉네임을 가진 이들과, 일리아가 무엇이 다른가…… 심각하게 고민할 법한 광경이었다.
* * *
“호에에에에, 신 옵바야가 너모 마는 고애오.”
“크흡!”
눈앞에서 물을 마시고 있던 수녀가 내 말을 듣고 물을 뿜는다. 그럼 저건 성수인가?
“……그, 그런 호칭은 조금 자제해 주십시오.”
“알겠서여, 수녀 언냐야…….”
“언냐야……?”
입을 헤벌리는 수녀. 이안은 그 심정을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나는 그의 늑골을 팔꿈치로 후려쳤다. 그는 숨을 헛쉬며 쿨럭거렸다. 물론 그것은 오버액션이었다. 아무리 급소지만 내가 친다고 아프겠냐고.
“으어억…… 죽, 죽어요…….”
……아닌가? 생각해 보니 이안은 지금 성력을 죄다 소진하고 부상까지 입은 상태기는 했다. 물론 외상이야 교단 사제가 다 치료해 주긴 했지만, 그걸로 체력까지 회복되지는 않는다.
바닥을 뒹굴고 있는 이안을 애써 무시한 채, 나는 수녀에게 다가갔다.
“그러며는, 븝미쟝이 도와주면 대는 건가여?”
“네. 저희 교단 측에서 직접 드리는 부탁입니다. 물론 펜타곤에서 학업을 이어 나가시는 데 부담이 없도록 미리 협조 공문을 줄 생각이고요.”
교단에서 직접이라……. 나는 잠시간 고민을 했다.
히어로 판타지의 세계관에는 여러 신들이 있다. 하지만 인간들이 섬기는 신은 주신이라고 부르는 존재 하나뿐이다. 그 주신을 섬기는 교단이 바로 태양여명단. 바로 그곳에서 내게 부탁을 했다는 것이다.
“저희 교단 측에서는 다나 생도님은 2급 사제와 맞먹는 힘을 가지고 있다고 판단하였고, 이에 만약 받아들이신다면 견습 성기사 이안을 포함한 3인의 성기사와 1명의 사제를 파견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지금 태양여명단의 본회의에서, 가짜 교황은 1급 이단자로 판별되어 척살 명령이 떨어진 상태였다.
이단이라고 척살이라니, 너무 과격한 게 아니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1급 이단자는 그냥 범죄자 내지는 빌런이라고 생각하면 옳았다.
이안만 봐도 알 수 있지만 이쪽은 그리 과격한 종교가 아니었다. 만약 그랬으면 내가 방금 신 옵바야 어쩌고 했을 때 가만히 있었겠는가. 물론 내가 하고 싶어서 한 것도 아니다만.
“도와주신다면 명예 성녀직과 교단 측의 성물 하나를 제공하기로 했고요.”
“하와와, 언냐 옵바야들 시원한 고애오!”
명예 성녀직. 이건 내가 태양여명단을 믿지 않더라도 그들의 일원으로 인정해 주겠다는 것이다.
이게 얼마나 큰 것인가 하면, 현재 이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보자면 대형 마탑의 탑주 내지는 세계 유수 길드의 길드 마스터 정도. 그중에서도 태양여명단과 인연이 깊은 이들뿐이었다.
그런데 이를 한 번에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그만큼 교단 측에서도 이 사안을 중차대하게 바라보고 있다는 뜻이겠지
그들이 내게 부탁한 것은 가짜 교황의 행선지와 정체를 알아내 달라는 것이었다. 이안의 증언에 따라 나는 가짜 교황의 아바타를 처음으로 알아낸 이가 되었다. 그 덕분에 이렇게 의뢰를 받게 된 것이고.
“그런데…… 븝미쟝 자신 없는 고애오…….”
다 좋다. 지원도 든든하게 해 준다고 약속을 했고, 보상도 확실하다. 하지만 문제가 하나 있었다. 내가 자신이 없다는 것.
사실 백연우 같은 경우에는 내가 미리 알고 있는 대상이었고, 또 녀석이 너무 티 나게 힘을 사용했던지라 금방 간파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성력 하나만큼은 진짜와 차이가 없었다. 만약 태양여명단인 척하는 가짜 교황의 하수인과 만난다면, 나는 그를 구분할 자신이 없었다.
그에 고민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교단 측에서도 많은 것을 바라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정화’ 시즌이 아니었다면 직접 각국에 이단심판관들을 파견시켰을 테지만…… 인력이 부족한 상황인지라.”
현재 태양여명단은 실상 최소 인원들을 제외하면 모두 던전이나 필드에서 순례를 돌고 있었다. 그들은 일정한 주기로 정화 기간이란 것을 정해 그동안 몬스터들을 사냥한다. 그것은 대부분의 히어로들이 기피하는, 수확은 적지만 사냥하기는 어려운 스폿들.
그 덕분에 태양여명단은 민심이 매우 좋다. 교단 측에서도 그를 노리고 하는 것일 테고.
“확실한 증거와 그 본체의 위치만 알아내 주신다면, 일은 저희 측에서 모두 맡아서 하겠습니다.”
수녀가 간절한 눈망울로 나를 바라본다. 나는 그게 조금은 부담스러워 뒤로 한 발자국 물러섰다.
“헤으응…… 언냐야…….”
그게 될 것 같으면, 정말로 하고 싶은데 말이지. 안 될 것 같단 말이야.
저렇게까지 말하는데 거절하고 싶지는 않지만, 사람은 능력껏 일을 맡아야만 했다. 그걸 절실하게 느낀 게 저번 대장간 일이었고. 그때 과로로 죽을 뻔했던 기억이 내 정신을 바로잡아 주었다.
“아마…… 안 댈 것…….”
그렇게.
같아여, 하고 내뱉으려던 순간이었다.
돌발 퀘스트 발생! - 가짜 교황 옵바야를 잡는 고애오!
‘가짜 교황’이라고 명명된 이단의 정체와 그 위치를 밝혀내어 교단에 보고하자.
성공 시: 교단 측의 보상, 10,000BP
실패 시: 교단 측의 소정의 보상
“댈 것 같아얌!”
퀘스트는 못 참지.
* * *
“교단? 도대체 무슨 짓을 하고 다니는 거야, 너.”
나츠키는 어이없다는 듯이 나를 바라봤다. 솔직히 나도 내가 뭔 짓을 하고 다니는지 모르겠다. 이렇게까지 큰 에피소드에 단독으로 끼어들고 싶지는 않았는데.
“이번엔 스페인까지 원정 가서 하와와, 애기븝미쟝이애오…… 이러고 다니겠다?”
“오…… 나츠키 방금 엄청 귀여웠는데. 한 번만 더 해 줘.”
“아, 꺼져.”
나츠키의 내 모사를 보고 감탄을 터뜨리는 일리아. 나츠키는 그에 질색팔색을 하며 그녀를 밀어내었다.
“아무튼 그래서, 우리보고 도와 달라…… 뭐 그런 거야? 그런데 그렇게 해도 되는 건가?”
“교단 언냐 옵바야들이 미리 얘기해 둔대여! 허락받아 둔 고애오…… 3명까지!”
“나랑…… 일리아. 그리고 1명은 그 이안인가 하는 걔?”
“아니여, 이안 옵바야는 따로.”
이안은 애초에 교단 측 인물이니까, 펜타곤에 입학할 때부터 그는 교단에 일이 생기면 외부로 전출이 가능하게 되어 있었다. 아무리 펜타곤이 한국 최고의 히어로 양성기관이라고는 하나, 세계적으로 엄청난 입지를 가진 교단에는 몇 수는 접고 들어가야 했다.
그렇게 치면 여기서 제일 큰 뒷배를 가지고 있는 건 이안이었나. 세세하게 따지고 들어가면 그렇지야 않겠지만, 일단 힘으로만 보자면.
“그럼 1명은 누구로 할 건데? 신하연?”
“하연 언냐야는 벽 보고 손 들고 서 있는 거에얌…….”
“벽 보고……?”
이게 뭔 소리래, 하고 중얼거리는 나츠키. 하지만 진짜인 걸 뭐 어떻게 더 설명하나.
신하연은 지금 개인 숙소에서 진짜로 그러고 있는 중이었다. 반은 농담으로 한 소리인데 진짜 그러고 있다.
“신하연도 아니면, 누구? 우리 2명만 할 거야? 아, 맞다! 장선우는?”
“무러봤는데 안 된대여…….”
당연히 장선우도 물어봤다. 하지만 그는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너무 바쁘다며, 아쉽지만 할 수 없겠다고 완곡히 거절했다.
그리고 떠올렸다. 지금쯤 장선우가 ‘그’ 수련을 하고 있겠구나. 다른 생도들보다 월등히 빠른 성장 속도를 보일 수 있는 이유였던 그 미친 수련을.
그래서 나도 지금 고민이었다. 도대체 누구를 불러올지. 최상위권 생도들 중에 지금 시간이 남는 사람이 있나?
띠링.
그때 전화기가 울렸다. 그리고 그 화면에 뜬 사람의 이름을 본 나는 본능적으로 창가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J가 싱긋 웃으며 나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었다. 얼마간 안 보인다 싶더니 멘탈을 추스른 건가.
“갑자기 거긴 왜 봐?”
“어, 아니에여, 언냐야.”
나츠키가 바라보자마자 순식간에 사라지는 J.
여기 나름 8층인데. 헛웃음이 절로 나왔다.
“그나저나 븝미쟝 방금 세 번째 언냐야 정한 고애오…….”
방금 온 메시지에는 J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그리고 그 내용은 ‘자리 비워 놔.’라는 간단한 다섯 글자. 비워 놓으라면 비워 놔야겠지.
“재스민? 아, 그 60위 암살자? 괜찮긴 해.”
J는 최근 60~70위 언저리에서 랭크되고 있었기에, 나츠키도 그 존재를 의식하고 있는 것 같았다. 말하자마자 납득한다.
반면 일리아는 조금 불만인 것 같았다. 아직 J랑 앙금이 덜 풀린 건가? 딱히 이제는 그렇지도 않을 텐데.
“더 괜찮은 애들도 많은데, 걔랑 같이 해야 돼?”
“언냐야가 싫으며는 생각해 볼게여.”
“……아니야. 고민해서 고른 걸 텐데, 그런 뜻은 아니었어. 그냥…… 조금 그래서.”
내가 조금 처지는 말투로 말하자 금방 말을 집어삼킨다. 물론 나는 그를 계산해서 그렇게 한 것이었다. 평소에도 이런 식이니 그녀와 나는 의견 충돌이란 게 없었다.
“그러며는 결정된 고애오! 교장 언냐야한테 가는 고애오…….”
“언니는…… 좀 아니지 않니?”
나츠키는 하얀 백발의 교장을 떠올리는 듯했다. 그런데 뭐, 나이로 치면 셀 수도 없을 신보고도 옵바야 어쩌고 하는데 굳이 따질 필요가 있나.
“내려와. 미리 가 있을게.”
“1층에서 보는 고애오!”
일리아와 나츠키는 계단으로 향했다. 나는 그녀들을 뒤로하고, 엘리베이터 앞으로 향했다.
부상자 내지는 거동 불편자만 사용할 수 있는 엘리베이터. 나는 펜타곤 측으로부터 거동 불편자로 지정받고, 엘리베이터를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처음엔 이걸 좋아해야 하는지 슬퍼해야 하는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지만, 지금은 그냥 만족했다. 편하면 됐지,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