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화.
가짜 교황의 행선지는 정확히 파악할 수가 없었다. 마지막으로 알려진 곳은 스페인. 하지만 거기에 확실히 있을 것이란 보장도 없었다. 그렇기에 일단 임무를 맡긴 했는데…… 걱정이 태산이었다.
“하와와와, 오딨는 고애오.”
“이렇게 무작정 찾아다니면 나 잡아 줍쇼 하고 나오겠냐고. 진짜…… 으.”
“호에에에, 언냐야, 그만두는 고애오!”
나츠키는 나를 잡아먹을 듯이 으르렁대었다. 나는 순간 지팡이의 고도를 높였다. 그에 그녀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나를 올려다봤다. 븝미 쫓던 나츠키 지붕 쳐다본다.
“내가 바보지…… 내가.”
저 말을 몇 번이나 들은 것 같은데. 나츠키는 가슴팍을 두드리며 길을 걸었다.
이곳에 오게 된 이후, 각자 조를 나눠 짜서 수색을 하고 있었는데, 제비뽑기 결과 그녀와 내가 한 조가 되었다.
“이리 안 내려와? 안 잡아먹으니까 빨리 내려와. 다 쳐다보잖아.”
“호에에에…… 스페인 사람들도 븝미쟝 조와하는 고애오…….”
“제발 헛소리 좀 그만해.”
아무래도 내가 둥둥 떠 있는 바람에 시선이 잔뜩 끌려 부끄러웠던 모양이다. 어딜 내놔도 부끄럽다나. 나야 일상인지라 이제는 둔감해졌지만 나츠키는 영 아닌 모양이었다.
“븝미쟝 배고픈 고애오…….”
“지금 배고픈 게……!”
꼬르륵.
분개하며 내게 한 소리를 하려던 나츠키는, 자신의 위장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멈칫했다. 그러고는 입을 삐죽 내밀었다.
“그래…… 뭐. 밥은 먹어야지.”
“그래여, 언냐야! 금강산도 식후븝이라고 했어여…….”
나츠키와 나는 그대로 인근 식당으로 향했다. 내가 많이 먹지는 못하지만, 그와는 별개로 배가 고프면 힘을 못 쓴다.
저번에 대장간 일을 하느라 끼니를 한두 차례 걸렀을 때, 진짜로 사나흘은 굶은 것처럼 맥아리가 없었다. 상태창으로도 신체 능력이 20% 저하(그래 봤자 겨우 1이 떨어지는 거지만)한다는 메시지가 떠올랐었다.
“그나저나 너, 스페인어는 돼?”
“호에에에, 븝미쟝은 아가야라 그런 고 모르는 고애오…….”
“도대체 뭘 할 줄 아는 게 없어. 도대체 어떻게 이론 1등이야……?”
펜타곤에 입학한 이들은 일부를 제외하면 다들 엘리트들이었다. 두뇌가 명석함은 물론이고 각자 잘하는 학문 하나씩은 있었다. 그런데 나는 뭐, 알다시피 운 원툴인지라. 이런 쪽에서 금방 능력이 드러난다.
“번역기씨를 쓰면 되는 고애오…….”
“그거 정말 대단한 해결법이네. 난 상상도 못 했다.”
핸드폰을 내밀자 나츠키는 대꾸하기도 힘들다는 듯이 손을 휘적거렸다. 뭐, 다른 나라 언어 배우고 할 필요가 있나. 자기도 못 하면서 말이 많아.
―Disculpe(저기요)!
나는 종업원을 불렀다. 물론 번역기를 통해서. 내 몸의 외양은 완벽히 서양인이지만, 나고 자란 곳이 한국인 바에야 혀 굴리는 것에 자신감이 없었다.
그는 익숙하다는 듯이 우리 테이블로 왔다 나는 번역기를 통해 설명을 시작했다.
―이거랑, 이거랑, 이거 주세요.
번역기에서 흘러나오는 딱딱한 목소리. 알겠다는 듯 끄덕거린 종업원이 사라진다. 나는 반대편에 앉아 있는 나츠키에게 으쓱거리며 말했다.
“봤져? 븝미쟝 잘하는 고애오.”
“그래…… 최고다, 정말.”
* * *
일리아와 이안조는 분위기가 싸늘했다. 원래는 이렇지 않았다. 애초에 둘은 꽤나 친분이 있는 사이였으니까. 발단은 이안이 실수로 다나에게 한 부탁의 내용을 일리아에게 말하고 나서부터다.
“애한테 이런 걸 막 입히려고 했다고? 진짜 어이가 없어서.”
“그…… 아니, 미안…….”
이안은 그녀에게 사죄했다. 실상은 달랐지만 누가 보더라도 이쪽이 변태 아닌가…….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그의 예상 밖이었다.
“나도 같이 보자고 미리 말을 했어야지!”
“……어?”
“자기만 보려고 지금, 수작 부리고. 좋은 건 같이 좀 봐야…….”
“…….”
이안은 조금 환멸을 느낄 것만 같은 심정이 되었다. 역시, 이상한 사람들끼리 같이 몰려다니는 거구나.
물론 그 자신이 ‘이상한 사람’의 범주에 들어간다는 것은 자각하지 못한 채였다.
한동안 그렇게 그것에 대한 토론을 나누던 그들은, 탐문을 다시 이어 갔다.
무작정 여기저기 쏘다니기만 했던 나츠키 다나조와는 다르게 꽤나 전문적이었다. 이안은 이단심판관 자격시험을 보기 위해 공부를 하고 있었고, 일리아는 길드에서 관련 교육을 받은 적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저기, 혹시 이 사람 본 적 있으신가요? 본 적 없으시다면 최근에 태양여명단 신도나 기사를 본 적은…….”
번역기의 힘을 빌려 이곳저곳의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그 발자취를 찾았다.
한 번 대대적으로 뉴스가 났던 만큼, 이곳 사람들은 교황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 하지만 굉장히 폐쇄적으로 운영했던 터라 정작 그 실체에 대해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래도 지성이면 감천일까. 한참 동안 물어물어 찾아가자, 가짜 교황이 예배당으로 쓰고 있었다는 장소를 알아낼 수 있었다.
“아무래도 여기가 맞다는 것 같은데, 빨리 호출할까?”
“아니, 그건 좀……. 혹시나 확인했는데 별거 없으면 괜히 원래 하고 있던 탐문에도 지장이 생길 거고. 안에 아무도 없다잖아.”
“그럼 그냥?”
“그래야지.”
건물 내부에는 아무도 없다고 했다. 그러니 딱히 위험할 일은 없겠지. 일리아는 그렇게 되뇌며 안으로 들어갔다.
내부는 어두침침했고 음산한 기운이 가득했다. 예배당이었다고 하기에는 분위기가 영 좋지 못했다.
하지만 이미 가짜 교황의 아바타가 있던 곳을 기억하고 있던 일리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것 같은데.”
“나도.”
이안 또한 마찬가지였다. 저번에 조우하게 된 장소 또한 이곳과 분위기가 굉장히 비슷했었다.
“이건 제단……인가? 원래 태양여명단에도 이런 거 있어?”
“제단은 있지. 가끔 공물을 바치긴 하니까. 하지만 이런 형태는 아니야.”
이안은 단호히 부정했다. 조금이라도 엮어서 생각하는 게 진절머리가 난다는 듯 몸까지 떨었다.
“우리가 바치는 공물이라고 해 봤자 별거 아니야. 해 봤자 성수 한 그릇씩 떠다 놓는 정도지. 하지만…… 이건 그런 형태는 아니잖아?”
“……그러네.”
제단의 크기는 예배당의 1/4을 차지할 정도로 매우 컸다. 그 위에 사람이 올라가도 될 법한 정도.
“혹시 모르지, 진짜 사람을 바쳤을지도.”
이안의 말에 일리아는 얼굴을 찌푸렸다. 별로 상상하고 싶지 않은 광경이었다.
어렸을 적 다큐멘터리로 본 몬스터들 중에, 고블린들이 동족을 산 제물로 바치는 영상을 본 적이 있었다. 마치 그때의 충격이 되살아나는 듯한 기분이었다.
“나가자, 그냥. 더 조사할 것도 없는 것 같은데.”
“……그러네, 기껏 왔는데. 하기야 누가 떠난 자리에 단서 같은 걸 남기겠어.”
그들은 발걸음을 돌려 밖으로 향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때, 무언가 문제가 생겼다.
쿠웅!
발할라의 시련이 시작됩니다.
“뭐?”
“발할라……?”
순간 예배당의 문이 전부 닫히며, 메시지가 떠올랐다. 발할라의 시련이라는 문구. 그 뜬금없는 문장에 그들은 잠시간 멍하니 있었다. 저게 도대체 무슨 뜻인지, 알 수가 없었으니까.
하지만 지금 당장 일어난 현상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두 글자로 나타낼 수 있었다.
함정. 둘은 동시에 그 단어를 떠올렸다.
이어 암전된 시야, 일리아와 이안은 동시에 마력을 활성화시켰다.
“홀리 라이트(holy light).”
이어 이안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성광. 그에 눈앞에 수많은 존재들이 나타난다.
그어어어!
그분에게 가까워진다! 그분에게 가까워진다! 그분에게 가까워진다!
“맙소사…… 주신이시여.”
“이게 다 뭐야?”
검은 형체를 한 채로 각자 창칼을 들고 있는 망령들. 이안은 그들을 향해 검을 겨누었다. 일리아 또한 마찬가지였지만, 그녀는 상당히 움츠러든 상태였다.
‘이런 거, 진짜 질색인데.’
대부분의 것에 대해서 두려움이란 감정을 거의 품지 않는 일리아였지만, 절지류 벌레들 내지는 귀신은 상당히 무서워했다. 지금도 그러했다. 백안을 희번덕거리며 다가오는 검은 형체는 공포심을 유발하기에 적절한 것이었다.
끼기기기기긱!
물론 그런 사정을 봐줄 리가 없었고, 첫 망령의 공격 이후로 싸움이 시작되었다. 창칼이 부딪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망령들은 일순 허상과 실체를 오가며 싸웠다. 저들이 공격을 받을 때는 허상으로, 공격을 할 때는 물리력을 가진 형상으로 변했다.
그에 이안과 일리아는 고전을 면치 못했다. 그나마 이안 같은 경우에는 성력을 사용하면 허상이 된 망령 또한 공격하기가 용이했으나, 일리아는 그렇지도 못했다.
캉!
3대1. 일리아는 날아드는 창칼을 막아 내며 분전했으나, 계속해서 이어지는 전투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공포심은 그녀를 더 얼어붙게 만들었다. 한 발 한 발 내디딜 때마다 서늘한 추위가 몸을 감싸 왔다. 여기서 멈추면 죽는다. 목을 노리며 날아드는 검들에 일리아는 경각심을 느꼈다.
“어?”
그때, 일리아의 정수리를 향해 검이 내려쳐진다. 그녀는 미처 방해할 새도 없이, 마치 슬로모션처럼 날아오는 검의 궤적을 멍하니 쳐다봤다. 그때, 누군가가 그 검을 걷어 내었다.
“정신 차려!”
“어, 어.”
그건 성광을 두른 이안이었다. 일리아는 다시금 검을 다잡았다. 정말, 방금은 위기였다. 다시는 이런 상황이 오지 않도록 해야 했다.
“야!”
하지만 이번에는 이안의 목을 노리고 검이 휘둘러졌다. 이안도, 일리아도 그에 제때 반응하지 못했다. 일리아는 순간 무력감을 느꼈다. 지금까지 꽤나 많이 강해졌다고, 나름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생각해 보면 이곳에 경솔하게 단둘이 들어온 것도 자신의 판단이었다. 도대체, 왜 이렇게 된 거지.
콰아아앙!
그때, 예배당의 한쪽 벽면에서 커다란 굉음이 들리며, 건물 전체에 충격파가 퍼졌다. 실체로 형상화하고 있던 망령들이 전부 반대쪽으로 날아가 처박혔다. 그에는 방금 전까지 이안에게 검을 휘두르던 망령들 또한 포함되어 있었다.
콰아아앙!
그것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상당한 물리력을 가진 포격. 그것이 벽면에 연달아 적중하고 있었다. 일리아는 본능적으로 그것을 행하고 있는 존재가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다나?”
콰르르르!
연속된 포격에, 버티지 못하고 건물 내벽까지 무너진다. 그리고 바깥의 햇빛이 내부를 비추기 시작했다.
캬아아악!
싫어!
그에 마치 햇빛으로부터 도망가려는 듯 몸부림치는 망령들. 그들의 몸 또한 본래의 절반 수준으로 줄어 가며 약화되고 있었다. 그리고 그 햇빛 사이로 한 소녀가 날아 들어왔다.
“호에에에, 저 옵바야드른 왜 다 새카만 고애오?”
지팡이를 타고 들어온 다나. 그녀는 놀라고 있는 이안과 일리아를 뒤로한 채, 너무나도 간단한 몸짓으로 손을 휘저었다.
“마나씨!”
그에, 허무하게도 모든 망령들이 일제히 터져 사라졌다.
“허……?”
“이게 말이…….”
방금까지 고전하고 있었던 것이 바보같이 느껴지는 광경. 다만 그 일을 일으킨 장본인은 알 수 없는 소리를 했다.
“빠에야 다 못 먹었잖아여! 책임지는 고애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