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화.
결속 대상이 위기에 처했습니다!
“호에에에?”
한가롭게 식당에서 밥을 먹고 있던 나는, 뜬금없이 떠오른 시스템창에 당황했다. 결속 대상이 위기에 처했다는 것. 결속 대상이라면…… J와 일리아 둘. 애초에 나츠키는 눈앞에 있는 데다 결속 대상도 아니니…….
나는 곧바로 상태창을 열어 확인했다. 역시나 일리아였다.
“빨리 나가야 하는 고애오…….”
J는 애초에 위험할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교단 측에서 파견된 이들 중 제일 강한 이와 페어를 맺기도 했고, 그녀 자체도 상당히 강하니까. 단적으로 아직 나보다 강하다.
다만 일리아는 이안과 페어를 맺었으니.
“옵바야가 지켜 줘야져!”
“무슨 소리야, 갑자기?”
“언냐야, 지금 빨리 가 봐야 할 거 가타여…… 일리아 언냐야가 위험한 거에얌!”
“그걸…… 어떻게 아는데? 난 호출 안 왔는데.”
“다 아는 수가 있어여! 따라와여!”
“어, 어…….”
나는 괜히 이안을 욕하며 식당을 나섰다. 애초에 일리아가 이안보다 강한 마당에 누가 누구를 챙겨 주겠냐만…… 나츠키는 당황해하면서도 내게 이끌려 왔다.
결속이라는 특성에 이런 효과가 있는 줄은 처음 알았는데, 상황이 이렇게 되자 위치까지 자동으로 파악해서 안내를 해 줬다. 이 둘은 쉬지도 않고 조사를 했는지 처음 흩어진 장소에서 십수 킬로미터는 족히 떨어진 곳에 있었다.
“여기가 어디애오?”
특성이 가리키는 곳은 한 허름한 건물. 지팡이를 타고 건물의 외벽을 가만히 쳐다보고 있자니 이상한 장막 같은 것이 펼쳐져 있는 게 보였다.
“저기 안에 있다는 거야?”
“맞는 거 가타여……. 그런데 못 들어가게 막혀 있는 고애오!”
“뭐로 막혀 있다는 거야? 야, 내려 봐. 정문으로 들어가면 되지.”
나츠키는 지팡이에서 뛰어내리더니, 건물 외벽에 나 있는 계단을 타고 올라가 문을 열려고 했다. 물론 될 리가 만무했다.
“어, 왜 안 돼? 이거 뭐야?”
덜컥거리는 문을 열려고 하던 나츠키는, 뜻대로 잘 되지 않자 잠시 고심하더니, 일본도를 꺼내 문을 절삭하려고 했다.
땡강!
“꺄악!”
하지만 강하게 진동하며 그에 반발하는 문. 뒤로 튕겨져 나간 나츠키는 몸을 추스르더니, 화가 났는지 씩씩대며 문을 걷어찼다.
“야! 이 새끼가. 안 열어? 빨리 열어!”
……도대체 누구랑 대화를 하는 건지. 나는 그 모습을 보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게 나츠키가 때아닌 철문과의 전쟁을 하고 있는 사이, 나는 마법을 준비했다. 내가 지금 알고 있는 마법 중에 가장 화력이 강한 마법을.
“하와와와와!”
손에 모여드는 마나. 나는 그것을 불의 속성으로 바꿔 낸다. 머리 위에 작은 태양처럼 모여드는 커다란 화염구. 4대 속성 중에 가장 흉포하고 파괴적인 성질을 가지고 있는 것은 역시 화 속성이었다.
나는 바람과 불의 정령을 불러내었다. 녀석들은 이제 자기들이 뭘 해야 하는지 알고 있는 듯, 곧바로 화염구의 화력과 크기를 한층 더 불려 내며 사라졌다.
“아가야들 고마오요!”
나는 그 거대한 화염구를 작은 손짓 하나로 던져 내었다. 이 근방 사람들은 모두 볼 수 있을 정도로 거대한 화염구. 그것이 장막과 부딪치더니, 그를 종잇장처럼 찢고 들어가 건물 외벽에 부딪혔다.
콰앙!
그을음과 함께 조금 붕괴되는 외벽. 아무래도 그 또한 알지 못할 마법(?) 혹은 주술 따위에 보호되고 있는 모양이었다.
나는 한 차례 화염구를 더 던져 내었다. 물론 이전보다는 위력이 약한 것으로. 자칫 잘못했다가는 건물 전체가 무너질 위험성도 있었으니까. 그렇게 되면 되레 내가 일리아와 이안을 다치게 할 수도 있었다.
콰르르르!
화염구에 재차 얻어맞고 무너지는 외벽. 나는 그 사이로 들어갔다.
그 사이로 보이는 광경은, 검은색 망령들에게 이안과 일리아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모습. 나는 그들을 보며 잠시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호에에에, 저 옵바야드른 왜 다 새카만 고애오?”
발할라의 망령들. 저게 지금 여기 있으면 안 되는데. 물론 그 무력 자체는 그리 대단하지 않지만…… 아무래도 뭔가 일이 잘못되고 있다는 느낌이 물씬 들었다.
캬아아악!
망령들은 햇빛을 받자 고통스러워하면서 비명을 질렀다. 그 소리가 내 정신을 일깨웠다. 그래, 일단 고민은 나중에 하고, 지금은 저놈들 처리가 더 급했다.
“마나씨!”
빛에 의해 약화된 망령들은 너무나도 허무하게 내 손짓 한 번으로 터져 나갔다. 그에 일리아와 이안이 내게 어이없다는 듯한 표정을 보내왔다. 방금 전까지 자기들이 고전하고 있던 상대이니만큼 작금의 상황이 잘 받아들여지지 않겠지.
하지만 방금 상태에선 본인들이 싸웠어도 똑같았을 텐데 뭐.
나는 오해를 풀려 앞으로 나섰다. 하지만 그때, 굉음과 함께 누군가가 건물 안으로 들어오는 바람에 그를 실패했다.
콰아앙!
무자비하게 튕겨져 나가는 철문. 뚫린 통로로 들어온 은발 적안의 소녀는 의기양양하게 소리쳤다.
“내가 이겼지? 개자식아!”
“……언냐야 때문에 븝갈통 아야 하는 고애오.”
아이고, 두야.
도대체 왜 저러는 건지 모르겠다.
* * *
근방 히어로들은 테러라도 벌어진 줄 알고 황급히 달려왔다. 사실 당연한 일이었다. 방금 전의 굉음은 아마 도시 전체에 퍼졌을 테고, 폭발하며 터진 섬광은 인근 주민들이 모두 목격할 수 있을 정도로 밝았으니까. 그들은 다소 강압적인 태도로 경위를 물어 왔다.
“태양여명단의 이단심판관 케이라고 합니다. 이단 심판을 위한 조사 중 부득이하게 무력 사용이 있었습니다. 당국과 시에 미리 전달을 한 내용이니 확인해 보시죠.”
“아, 아…… 태양여명단 소속이셨군요. 실례했습니다.”
하지만 어이없게도, 내 호출을 받고 달려온 성기사가 교단 명패를 하나 보여 주자 바로 물러갔다. 이래서 시발, ‘빽’이 중요하다니까.
“오…… 존나 편하네.”
나츠키도 그에 동감하는 모양이었다. 그녀는 아직까지 손목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합금 철판을 손으로 후려쳐 댔으니 무리가 갈 만했다.
그러자 사제가 눈치를 채고 그녀의 손목을 잡더니, 성력을 불어 넣어 주었다.
“오, 진짜 개꿀. 나도 믿을까, 신?”
나츠키는 순식간에 나아 버린 손목에 기분이 좋아진 듯, 웃으면서 내게 말했다. 그것보다 감사하다고 말하는 게 먼저 아닐까……. 나는 그냥 대강 고개나 끄덕거려 줬다.
“이곳에…… 이단자의 흔적이 있었단 말이죠? 발할라……라.”
“그곳의 망령들이 튀어나와 저희를 공격했습니다. 주변은 탈출할 수 없게 무언가로 막히게 되었고요.”
“확실히, 느낌이 오긴 하는군요. 저희가 쫓는 대상은 마왕이거나, 적어도 그와 크게 관련된 인물일겁니다. 이런 짓을…… 벌일 만한 인물이라면.”
성기사들은 이안과 내 증언에 따라 결론을 도출해 내었다. 드디어 진실에 어느 정도 도달하게 되자 마음이 놓였다. 그동안 말하고 싶어서 얼마나 입이 근질거렸던지.
만약에 내가 먼저 그 사실을 말하게 되면 교단 측에서 이상하게 생각할 확률이 높았다. 심지어는 내가 그들과 관련이 되어 있진 않은지 의심을 받게 될 수도 있었고.
“정체는 어느 정도 확신이 되긴 합니다만…… 문제는 이제 놈의 행선지를 모른다는 것이군요.”
“안을 수색해 봤는데 별게 없더라고요. 딱히 성력이 느껴진다거나 아니면 마력이 느껴지는 곳도 없고…….”
다만 또 다른 난관에 부딪친 것이 문제였다. 그것은 바로 교황을 추적할 만한 단서가 전무하다는 것. 이 건물 안에서 발견한 단서는 아직까지 하나도 없었다.
물론, 내가 나서지 않았을 때의 이야기이다.
“호에에에, 븝미쟝이 할 수 있을 것 가타여…….”
나는 앞으로 나서며, 사람들에게 말했다. 그에 반응이 갈렸다.
나를 알고 있는 이들 같은 경우에는 어느 정도 기대감이 섞인 얼굴로 바라봤고, 그렇지 않은 이들은 의심된다는 듯한 얼굴로 바라봤다. 확실히 신뢰감이 안 가는 외양에 말투기는 하지. 솔직히 나 같아도 ‘애기븝미’가 신뢰가 갈 것 같지는 않다.
“잘 보는 고애오…….”
나는 선전포고하듯 태양여명단의 사제와 성기사들에게 말했다. 그리고 지면에 손을 대고 마력을 불어 넣었다.
내가 찾는 것은 대지의 기억. 경지가 오른다면 마치 홀로그램처럼 대상의 행적을 실체화시킬 수도 있겠지만, 지금으로서는 불가능했다.
하지만 이 정도만 해도 웬만한 마법사들은 기함을 토할 것이었다. 상당한 마법적 이해가 있어야 할 수 있는 행위였으니까. 적어도 일개 탑주 수준은 되어야만 했다.
물론 나 같은 경우에는 조금 편법을 썼다. 땅의 정령. 이 녀석의 힘을 조금 빌렸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드레스룸에 있었던 ‘과거안’ 또한 땅과 관련된 인물이 가지고 있던 것일 정도로 땅이란 속성은 과거를 보는 것과 강하게 연관되어 있었다.
내 머릿속에 무언가가 보이기 시작했다. 가짜 교황. 아바타와 거의 완벽하게 똑같이 생긴 이놈은 신도들에게 무언가 세뇌를 하고 있었다. 그러더니, 시간이 지나 신도들이 모두 빠져나가자 어딘가로 들어간다. 그것은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찾아낼 수 없는 좁은 공간…….
“아라낸 고애오!”
나는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방 안의 한 외벽으로 향했다. 용케 아까 전의 마법의 영향에서 벗어난 이 외벽. 나는 그곳의 한 지점에 마력을 불어 넣었다.
그그그그긍!
“어…… 저런 공간이 있었던가?”
“오…….”
벽이 갈라지며, 숨겨진 작은 공간이 드러난다. 그것은 1평 남짓한 좁은 공간이었지만, 안에는 급하게 도망치느라 챙기지 못한 몇 가지 물건들이 있었다.
교단 관계자들은 황급히 달려와 그 물건들을 살폈으나, 역시 별다른 단서를 찾지 못했다. 다만 나는 그에 동요하지 않았다. 어차피 여기에 뭔가 있을 거라는 생각은 버렸으니까.
대신 한 번 더 대지의 기억을 읽었다. 이곳에서, 그놈이 했던 일들. 그 시간이 짧은지라 꽤나 과거까지 올라갈 수 있었다. 그리고 귓전에 들리는 소리.
“3681 27926 1996.”
“네?”
“이거, 적어 두는 고애오.”
“3681…… 잠시만요.”
내 뜬금없는 말에도, 성기사들 중 1명. 아까 스페인 소속 히어로와 한국어로 대화하던 남자가 눈치를 챈 모양이었다. 그는 숫자를 받아 적기 시작했다.
그리고 잇달아 대강 상황을 파악한 교단 사람들이 나를 의외라는 눈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나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그들을 바라봤다. 뭐, 이 정도? 이래서 사람을 겉으로만 판단하면 안 되는…….
“그게 뭔데? 너 새 전화번호야?”
그렇게 진지한 분위기 속, 나츠키가 내게 물어 왔다. 나는 뻐기다 말고 힘 빠진 목소리로 답해 줄 수밖에 없었다.
“전화번호겠냐고여…….”
아까도 그렇고, 이거 일부러 그러는 거지?
분위기 깨는 데는 아무래도 얘가 1인자가 아닐까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