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화.
당연하지만 빨리 오라고 했다고 곧바로 펜타곤을 뛰쳐나갈 수는 없었다. 적어도 직계가족에게 무슨 일이 생겼다거나 하는 사유가 아닌 이상에야 펜타곤은 학교 밖으로 내보내 주지 않는다. 그렇기에 하루 뒤, 토요일이 되고 나서야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급한 일이라면 뭐지?
이따금 라이카와 공방에서 같이 대화를 나눠 보면, 그녀는 발랑 까진 것 같아도 그렇지가 않았다. 그 사회성 없고 퉁명스러운(내가 직접 본 적은 없지만 게임에서 언급하길) 김수혁과 친해지는 걸 넘어서, 의지하는 대상이 된 사람이니 그럴 만도 했다.
그러니까 시시콜콜한 이유로 이런 메시지를 보내지는 않았을 터다.
나는 곧바로 원래 김수혁의 공방으로 향했다. 정작 그 주인이 몇 달째 오지 않고 있는 곳으로.
“븝하.”
문을 열고 들어간 공방. 그 안에는 잡기들이 널려 있었다. 평소에 정리 정돈을 잘한 채로 작업을 하는 그녀인지라 의아함이 들었다. 나는 공방 중앙에서 머리를 푹 숙인 채로 앉아 있는 라이카를 볼 수 있었다.
“언냐야……?”
나는 그녀에게 조심스럽게 다가가 어깨를 건드렸다. 그러자 그녀의 몸이 일순 가볍게 경련하더니 고개를 들었다.
“왔구나.”
“언냐야가 불러서여. 무슨 일이애오……?”
“……말하자면 길어.”
평소처럼 쾌활한 그녀의 어투가 아니었기에 나는 사뭇 긴장했다. 정말로 좀 심각한 일인 것 같은데. 나는 슬쩍 그녀의 옆에 앉았다.
“이걸, 어디서부터 말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라이카는 한숨을 내쉬었다. 처연하기도, 허망하기도 한 그 소리에 나는 숨을 잠시 멈추었다.
“너도 알겠지만, 난 수인이야. 그중에서도 라이칸스로프고.”
“알고 있는 고애오!”
라이카는 라이칸스로프, 그러니까 흔히 늑대인간이라고 부르는 종족이다. 평상시에 그들이 인간과 다른 수인임을 나타내는 증거는 해 봤자 꼬리와 푸른 동공 정도.
벽안이야 물론 인간 중에서도 많이 있지만, 그들의 푸른 눈은 일반적이지 않았다. 밤중에서도 서늘하게 빛나는 진한 푸른색 눈동자를 지니고 있다.
“우리 종족은 엘프들이랑 마찬가지로 선대 때 지구로 이주했어. 이것도…… 알고 있겠지만. 그들은 우리 종족과도 친했으니까, 함께 위그드라실을 통해 이주했지.”
엘프도, 라이칸스로프도 모두 타 종족과 잘 어울리지 않았지만 그 둘은 서로 사이가 좋았다고 한다. 둘 다 가진바 특성이 비슷해서일까. 숲과 같은 자연환경에서 고립된 채 생활하는 모습도 영락없이 판박이였다.
“엘프들의 경우에는 수호목인 위그드라실이, 다른 곳에서도 자신들을 지켜 주리란 자신감이 있었어. 우리도 마찬가지로 그런 존재가 있어. 바로 달이야.”
“호에에에, 하지만…….”
달이라면, 지구의 달을 말하는 게 아닌가?
그런데 다른 행성에서 이주해 왔다는 이들이 무슨 달 타령을 하는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그런 내 의문을 느낀 듯, 라이카는 부연 설명을 덧붙였다.
“정확히는 달의 여신이지. 생명이 있는 곳에는 어디건 ‘달’이 있기 마련이야.”
“하와와와와.”
그러니까, 그쪽 달이건 이쪽 달이건 상관이 없단 말이었다.
이쪽 이야기는 거의 나오지 않아서 잘 몰랐다. 멀티에서는 굉장히 힘든 업적들을 달성하면 수인으로 플레이할 수 있다고 했는데…… 주변에 그런 플레이어도 없었던 데다 그들 또한 굉장히 소수였기에 알려지지 않은 모양이었다.
“아무튼, 선조들은 그걸 믿고 이주했어. 실제로 그 덕분에 이곳에 안전하게 정착할 수도 있었고. 여러 가지 제약이 있긴 하지만…… 달은 우리 힘의 원천이니까.”
앞서 평상시에 라이칸스로프들이 평소 인간과 차이가 나지 않는다고 했지만, 보름달이 뜨는 밤, 혹은 그들이 자의적으로 변형(變形)을 하게 될 때가 되면 완전히 달라진다. 최소 신장 3m가 넘는 푸른 갈기의 늑대인간으로 변하게 된다.
어린아이라도 중급 히어로와 대적할 수 있을 정도의 힘을 지니게 된다고 했나. 무지막지한 종족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런데 5년 전쯤부터 점점 달이 힘을 잃어 가고 있어. 그게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지.”
“호에에에. 엘프 옵바 언냐야들도 같은 고애오…….”
“그래, 나도 들었어. 위그드라실이 병에 걸렸었댔나. 우리도 비슷한 상황인 거야.”
라이칸스로프도 이런 일이 있었다라…….
나는 잠시간 기억을 되짚어 보았다. 멀티고 싱글 플레이고 에피소드나 퀘스트를 통해, 혹은 한 줄의 문장으로라도 이 사건이 언급된 적이 있었나?
없다.
나는 그를 확실하게 단언할 수 있었다.
처음 들어 보는 이야기이다.
“우리는 신관에게 이유를 물었어. 도대체 뭐가 문제냐고. 하지만 신관은 계속 모른다고만 대답했었지…… 3년 전까진 말이야.”
“그러면 지금은 말했나여?”
라이카는 고개를 담담하게 끄덕였다.
“그래, 지금은 말했지. 공물을 바쳐야 한다는 게 그 이유였어. 조금, 어이가 없지만.”
“공물이여?”
“월석을 갈아 넣어 만든 검을 바쳐야 한다……. 그것도 그냥 검이 아니라 과거에 우리 부족이 만들었던 세리니라는 명검에 비견되는 걸. 욕심도 많으시지.”
섬기는 신에게 하기에는 상당히 불경한 말투였으나, 라이카는 그런 것은 신경을 껐다는 듯한 태도였다. 되레 분이 풀리지 않는다는 듯이 이빨을 갈고 있었다.
으드득, 하는 소리가 나며 수인화가 조금씩 진행되려 하는 그녀를 보며 나는 몸을 떨었다.
“호에에.”
“……후우, 미안.”
라이카는 그제야 진정한 듯, 축 처져서는 고개를 떨궜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의아함을 느꼈다. 왜 저러는 거지.
분명 갑자기 공물을 바치라는 이야기와 함께, 부족 제일의 명검과 같은 물건을 만들라는 답신이 왔다면 열이 받을 수야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의 성격상 이렇게 분개할 만한 일은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의욕 넘치게 자기가 만들어 보겠다고 나서면 모를까.
“그런데…… 언냐야. 머가 급한 일이에여……?”
거기다가, 이 일은 ‘급하다’라는 표현을 사용하기에는 부적절해 보였다. 3년 전에 이 이야기를 들었다면 지금까지 계속 작업을 해 왔을 터. 이제 와서 무슨 문제가 생긴다고 한들 그게 급한 일일 가능성은 낮지 않은가?
“……검을 만들었어.”
“호에에?”
“나랑 수혁이가. 만들었어. 3년 동안. 마지막 제련 과정에서 본인이 훨씬 능숙하니까, 마무리는 자기가 하겠다면서 떠난 게 딱 여기서 사라진 시점이야. 어디로 갔는지 모른다고 했지? 거짓말이었어.”
그럼, 그동안 라이칸스로프 부족 마을에 가 있었다는 건가. 나는 마음 한구석이 편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럼 뭐 변고는 없을…….
“나흘 전에 연락이 왔어. 검이 거의 완전히 완성됐다고. 끝맺음은 함께 하고 싶다고 내가 마을로 돌아가겠다고 했지. 그런데…….”
“그런데여?”
“부족장…… 그러니까 내 아버지가 마을로 복귀하지 말라고 하더라고.”
“호에……?”
도대체 왜? 나는 의문스러운 눈으로 라이카를 쳐다봤다. 라이카는 머리를 헝클어뜨리며 대장간에 널브러져 있는 흑색 장작을 집어 들었다.
“그러고는 숨겨진 신탁의 내용을 알려 주셨지. ‘그 검에는 제작자의 영혼이 담겨 있을 것.’ 왜 내가 생각을 못 했을까. 봉인목을 장작으로 써야 한다고 했을 때부터 알아챘어야 했는데.”
봉인목. 그건 일반적으로 ‘주술사’들이 사용하는 물건이었다.
마법과는 엄연히 그 궤를 달리하는 주술. 그에는 다른 이들의 혼을 다루는 것들이 많다. 그리고 그를 사용할 때에 필요한 것이 바로 봉인목이었다.
그러니까…… 지금, 라이카가 말하는 내용은 명확했다.
인신 공양을 통해 검을 완성시켜야 한다.
나는 순간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건…… 이상해여.”
신이 직접 신탁을 내려 만들기를 지시하거나, 혹은 축복을 내려 준 검을 성검이라고 한다. 하지만…… 인신 공양이라면. 이건 그냥 마검이 아닌가.
게다가 지금 이야기를 들어 보자면, 김수혁을 그대로 장작 속에 집어넣겠다는 이야긴데.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나는 소리칠 수밖에 없었다.
“안 대여!”
“……그래, 안 될 일이지.”
“옵바야한테 받을게 너무 많은 고애오!”
“어……?”
김수혁이 죽다니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앞으로도 제작해 달라고 해야 할 게 얼마나 많은지 손으로 꼽을 수도 없었다.
“레오넬의 갑옷씨랑 대자연의 투구씨를 살리러…… 아니, 옵바야를 살리러 가는 고애오!”
* * *
“호에에에…… 여긴 도대체 어디에여……? 찾지도 못하겠는 고애오!”
“그러라고 만들어 놓은 곳이니까. 우리 종족 특유의 후각이 아니면, 찾을 수가 없어.”
나는 수많은 설득 끝에 라이카와 함께 부족 마을로 향했다. 그녀는 망설이고 있었다. 자신이 죽는 것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고 했다. 할 수만 있다면 결국 자신의 부족 일이니, 직접 장작에 몸을 던질 의향까지 있다고 했다. 물론 나는 만류했지만.
문제는 라이카의 가족들이라고 했다. 족장의 명을 어긴 죄로 그들이 피해를 입거나 처형당할지도 모른다고. 애초에 가족이라면 부족장이 아버지라고 했으니(이것도 꽤나 충격이었다) 그에게도 마찬가지로 가족이 아닌가, 하고 의문을 가지니 답변이 돌아왔다.
“처음에 그 검은 내가 먼저 만들기 시작했어. 수혁이랑은 알지도 못했을 때지.”
“호에에, 설마 그러며는…….”
“뭐, 나를 제물로 바칠 생각이셨겠지.”
딸을 그냥 제물로 바칠 생각이었다고?
그 한마디로 부족장의 성향이 어떠한지 곧바로 파악할 수 있었다. 라이카가 왜 두려워하는지도. 여차하면 자기 가족도 그냥 베어 버릴 만한 성정을 가진 인물이라는 것이다.
라이카는 그 때문에 오랜 시간 고민을 해 왔던 모양이다. 하지만 내 계속된 설득 끝에 마음을 결정했다. 적어도 자신의 친우가 억울하게 죽는 것은 볼 수 없다고 했다.
“여차하면…… 그냥. 내가 뛰어들 테니까.”
“언냐야! 끔찍한 소리 그만하는 고애오…….”
나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둘 중 누구건 그렇게 죽일 생각은 없었다. 그러기 위해서 지금 따라온 것이었고.
영혼목, 그리고 신탁.
나는 그 두 가지 단어를 계속해서 조합해 보았다. 그리고 싱글 플레이를 통해 얻은 경험까지도 떠올렸다.
그러면 답이 나온다. 아주 명확한 답이.
나는 그것을 단지 확인만 하면 되었다.
그러면, 부족원들이 알아서 해 줄 것이었다.
부스럭.
한참을 그렇게 걷던 도중, 무언가 앞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라이카 역시 기감이 민감하다 보니 나와 동시에 그 소리를 들은 모양이었다.
나는 지팡이를 들고 경계했지만, 라이카는 되레 조금 평안해진 모습으로 말했다.
“칼스 아저씨.”
“라이카, 왔구나. 제기랄, 그렇게 오지 말라고 이야기를 했는데.”
“……제가 모른 척할 수는 없잖아요.”
모습을 드러내는 남자. 그는 인상부터가 ‘늑대’ 같다는 느낌을 주는 거구의 남성이었다. 반쯤 잘려 나간 오른쪽 늑대의 귀와, 얼굴과 팔 부근에 길게 나 있는 흉터 몇 개가 그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알 수 있게 해 줬다.
나는 그를 안다.
싱글스토리에 잠깐 등장하는, 라이칸스로프 종족의 대전사. 그 모습과 판박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