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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기븝미쟝이 되었다-98화 (98/172)

#98화. AV 플랜이 있어여!

라이카와 칼스라는 남자는 서로 심각하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대화 대부분이 라이칸스로프 일족에 관련된 이야기였기에, 자연스레 나는 붕 뜰 수밖에 없었다.

멋쩍게 잠시간 서 있자니, 그제야 칼스는 내가 이곳에 함께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곤 라이카에게 물었다.

“그런데…… 이…… 인간은?”

‘이 인간’이라는 말이 무례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그 나름대로는 최대한 정중한 표현일 것이다. 애초에 여기에 타 종족이 출입하는 것 자체가 상당히 이례적인 일일 테니까.

“아, 이번 일 때문에 불러온 아이예요.”

“이번 일이라니…… 외부인을 일족의 문제에 끌어들이는 걸 네 아비가 잘도 받아들이겠구나.”

“그걸 걱정했다면 아예 오지도 않았겠죠.”

“그건 그렇네.”

거참, 수긍도 빠르셔라.

나는 일부러 입을 다물고 있었다. 입만 다물고 있으면 그냥 정상적으로 보일 테니까. 어차피 조금 더 있으면 실체를 드러내야 하겠지만…….

“일단 마을로 가지. 그 이후에…… 처분을 기다리건 뭐건 해야 할 테니까.”

칼스는 걱정된다는 듯이 우리를 바라봤다.

하기야 돌아가는 꼴을 보아하니, 그 부족장의 성정이 매우 보수적이고, 또 막가파적인 기질까지 있는 것 같으니 마을에 들어가자마자 발작을 일으키며 목을 쳐 버리겠다고 난리를 칠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래도 내 한 몸 빼낼 자신도 있고,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한 대비책도 준비해 왔으니 가는 것이지.

“부족장은 아마 집에 있을 거니까 거기로 가 봐. 어차피 용건은 그쪽에만 있겠지?”

“고마워요, 아저씨.”

“제기랄. 난 모르겠다.”

얼마 지나지 않아 마을에 도착하게 된 우리는, 곧바로 부족장이 있는 자택으로 향하게 되었다.

칼스는 심려스러운 표정을 하면서도 다른 곳으로 향했는데, 이해할 수 있을 법한 일이었다. 괜히 같이 끼여서 화를 입을 필요는 없으니까.

나는 두근대는 가슴을 진정시켰다. 부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었다.

라이칸스로프들이 자연과 친화적이라고는 하나, 엘프처럼 그 형태까지 온전히 보존하는 것을 가치로 여기지는 않는다. 이곳에는 엄연히 건물이라고 부를 만한 것들이 세워져 있었다.

개중 하나인 족장의 자택, 그러니까 본래 라이카도 함께 살았을 집. 그곳의 나무문을 조심스레 열었다.

“……왔느냐.”

안에서 담담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언뜻 듣기에는 굉장히 젠틀해 보이는 목소리. 내가 생각했던 이미지와는 사뭇 다른지라 의아해졌다. 하지만 라이카의 표정을 보고는 생각이 바뀐다.

그녀는 명백하게 두려워하고 있었다.

“분명히, 마을 안으로 들어오지 말라고 했을 텐데……. 거기다가 인간까지 끌고 들어오다니. 네가 이렇게 마음대로 행동한 적이 있었던지 모르겠구나.”

“……죄송해요. 하지만 이건 아닌 것 같았어요.”

“뭐가 말이냐?”

“그저 선의에서 일족의 일을 도와준 그를 이렇게 죽이는 게…… 옳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옳지 않다라…….”

부족장은 방 안쪽에서 나왔다.

그리고 모습을 드러냈다.

“호에에에…….”

아까 전의 칼스 또한 인간들 중에서는 거의 볼 수 없는 거구였지만, 부족장은 더했다. 수인화가 진행되기 이전에도 2m는 훌쩍 넘는 장신에 거대한 덩치를 지니고 있었다.

그 위압적인 기세에 나는 잠시간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단지 이것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나는 왜 라이카가 두려움에 떨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시발, 그냥 야리고만 있어도 존나 무섭네.

“그럼, 네가 대신 하거라. 원래 그러할 계획이었으니.”

“호에……?”

잠시간 서서 나와 라이카를 바라보던 부족장은, 냉정하게 한마디를 내뱉고는 뒤돌아 거실에 있는 의자에 앉았다. 그러고는 이쪽은 보이지도 않는다는 듯이 기대어 벽면을 쳐다볼 뿐이었다.

어이가 없네.

지금 자기 딸보고, 아니면 니가 희생하든가 같은 소리를 지껄인 건가.

다만 라이카는 나 같은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각오했던 일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할게요. 그 친구는 풀어 주세요.”

“이야기하지.”

어, 잠깐만.

이렇게 이야기가 돌아가면 안 되는데.

이렇게 될 것 같았으면 내가 여기에 온 이유가 없었다. 나는 순간 다급해져서 소리를 질렀다.

“안 되는 고애오! 언냐야 장작씨처럼 대며는 아야 하는 고애오! 화끈해지는 고애오!”

“……그러고 보니 이 인간은 누구지?”

“어, 그게…….”

“간과할 수 없는 일을 그냥 넘어갔구나. 허락받지 않은 외부인을 들이면 어떻게 되는지 기억하고 있는 것이냐?”

부족장은 나를 향해 눈을 부라렸다. 나는 그 순간 온몸이 얼어붙는다는 것이 무슨 감각인지 느낄 수밖에 없었다. 마안(魔眼)까지는 아니더라도, 그와 거의 흡사한 수준의 위압감을 주는 그 눈. 이것도 드레스룸에 있었던가.

아침에 아무것도 안 먹고 온 게 다행이었다.

안 그랬으면 당장 오줌이라도 지렸을 텐데.

“하와와와!”

“……으흠.”

나는 마나를 이용하여 몸 전체를 감싸던 위압감에서부터 벗어났다. 물론 바짝 긴장된 육체마저 원래대로 회복된 것은 아니었기에, 나는 그대로 주저앉아 버렸다.

다만 족장은 굉장히 흥미롭다는 듯이 나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기묘하군…… 기묘해. 가진바 힘에 비해서 육체가 터무니없이 약하다. 아무리 인간이라도 이건…… 많이 심하지.”

갑자기 아픈 곳을 건드는 그의 말에 울컥하면서도, 나는 곧바로 미리 준비해 왔던 방도를 사용했다.

“대상을 지정하는 고애오…….”

지금까지 사용을 자중해 왔던, 그러나 이후에는 자동으로 사용되어 왔던 특성. 강자에게 무조건적인 호감을 얻게 되는 그 세부 특성.

신하연에게 적용되었으나, 얼마 전 호감도가 일정 수준을 넘기며 해제되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아무에게도 대상을 지정하지 않았다.

원래는 이수정에게 사용할 생각이었으나, 아무래도 효율이 떨어질 것 같아서 그만두었다. 애초에 그녀는 호감을 통한 관계보다 더 확실하게 조련할 방법도 있었고, 본신의 힘이 강한 사람도 아니었으니까. 능력이 좋을 뿐이지.

대상, ‘타이반’을 지정하시겠습니까?

타이반이 이 작자의 이름인가.

나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당연한 고애오.”

대상, ‘타이반’에게 특성이 적용되었습니다!

내 특성이 불러일으키는 것은 무조건적인 호감.

저번처럼 특성이 미적용된 상태도 아니고, 완벽하게 적용되었으니 아마 이 이후부터 저놈에게 나는 상당한 친밀감이 느껴지는 존재로 인식될 것이다. 그렇다면…….

“처벌은 없던 일로 하지.”

그렇지.

나는 족장, 타이반의 음성을 듣고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이대로면 일이 편하게 풀리겠…….

“그리고 나가 봐. 장작에 몸을 바칠 날은 이틀 뒤다.”

“호에에에?”

그냥…… 축객령이라고?

이럴 리가 없을 텐데.

잠시간 혼란스러워하던 나는, 내 옆에 있는 라이카를 보고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븝미쟝…… 모 한 고애오…….”

그러고 보니 친딸한테도 이런 식으로 구는 사람이, 특성이 적용됐다고 해서 갑자기 살갑게 굴 리가 없나.

“……가자, 다나.”

“어, 언냐야, 잠시만여!”

나는 라이카에 의해 반강제로 자택을 나서게 되었다.

질질 끌려 나가는 내 모습을 빤히 바라보는 타이반의 눈에는 일말의 호감도 느껴지지 않았기에, 작금의 상황을 직시할 수 있었다.

븝됐구나, 그냥.

*    *    *

빛 한 줄기 들어오지 않는 어두컴컴한 동굴. 마을의 외곽에 있는 그곳에 나무 창살로 된 감옥이 있었다. 탈출하려면 너무나도 쉽게 탈출할 수 있을 법한 허술한 감옥.

물론 그 창살이 문제가 아니라, 동굴 입구에서 지키고 있는 수 명의 정예 전사이자 간수들이 문제인 것이겠지만…… 이럴 거면 굳이 창살을 박아 놔야 하나 하는 의문이 들긴 했다.

탈칵.

“……그냥 열어 놔도 똑같겠는데.”

아무래도 그 생각을 떠올린 건 나뿐만이 아닌 모양이었다. 라이카 또한 열리는 감옥의 문을 보며 허탈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언냐야는 예전에 본 적 없는 고애오?”

“당연히 없지. 애초에 마을 내에서 이런 감옥에 갇히는 사람이 없었어. 그렇다고 외부인? 애초에 마을에 외부인이 온 걸 본 게 너를 제외하면 서너 명 정도밖엔 없어.”

“그게…… 수혁 옵바야인 고애오?”

“……그래.”

라이카는 한숨을 쉬며 감옥의 문틈 사이로 들어갔다. 그 안의 어두컴컴하고 좁은 자리 위에서, 한 남자가 쪽잠을 자고 있었다.

“옵바야 일어나는 고애오!”

왠지 모르게 태평한 그 모습을 보니 뭔가 화가 난다. 사실 생각해 보면 김수혁도 꽤나 고생이었을 텐데도.

나는 스태프로 그의 다리를 쿡쿡 찔렀다.

그러자 한 차례 움찔거리던 그가 상체를 일으켰다.

“으, 으음…….”

눈을 비비적거리며 일어선 그는, 잠시간 이게 무슨 상황인지 모르겠다는 듯 어리둥절한 표정을 했다. 그러고는 곧바로 손을 부들부들 떨면서 라이카와 나를 번갈아 가리켰다.

“어……? 여기…… 왜?”

라이카는 그렇다 치더라도, 나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했다.

“물아가…… 나오는 고애오.”

촤악!

“으읍?”

나는 물의 정령을 불러 김수혁의 얼굴에 끼얹었다.

물론 말이 그렇다는 것이지, 실상 세수나 한번 시켜 준 셈이었다.

물세례를 한 번 맞자 정신이 번쩍 든 듯, 김수혁은 원래의 모습을 되찾았다. 물론 그 원래의 모습이란, 내가 평소에 보아 왔던 모습이 아닌 게임 속에서 알고 있던 그의 이미지대로였다.

“……왜 온 거야?”

“왜 왔냐니. 그게 지금 할 소리…….”

“또 보나 마나 대신 자기가 제물이 되겠다는 그런 헛소리나 하면서 왔겠지.”

“헛소리?”

김수혁은 얼굴을 굳혔다. 그러고는 고개를 돌려 감옥 안으로 들어갔다.

“내 대장간이나 잘 지켜 줘. 그거면 됐으니까.”

“이런 미친…… 야, 지금 누구 때문에 내가…….”

“죽어도 내가 죽어. 내가 니 애비…… 아니, 그 양반 좆같아서라도 내가 죽을 테니까, 넌 돌아가.”

“그게 도대체 무슨 논리야? 그러면 내가 죽어야 맞는 거지.”

“호에에에에.”

나는 김수혁과 라이카의 대화를 들으며, 잠시간 머리가 멍해지는 듯한 느낌이었다. 서로 죽겠다고 난리인 이 광경을 어이없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감동적이라고 해야 할지……. 확실한 건 내 감정은 후자보다는 전자에 더 공감이 간다는 것이었다.

“언냐야 옵바야 그만하는 고애오! 지금 모하는 고애오…… 왜 서로 죽는대얌!”

“그것밖에 답이 없으니까 그렇지.”

“그것밖에 답이 없으니까요.”

라이카와 김수혁의 대답에, 나는 잠시간 할 말을 잃었다. 이 사람들은 도대체 머리가 잘 돌아가는 건지, 아니면 멍청한 건지 모르겠다.

“둘 다 안 죽어도 댄다구여!”

아니면 내가 왜 왔겠냐고.

심지어 라이카한테는 자세하게 말하진 않았어도, 대강 귀띔을 해 줬는데도 저런다.

“븝미쟝한테 AV 플랜이 있는 고애오! 그러니까 그냥 조용히 하고 따라오는 고애오…….”

“플랜? 그게 무슨…… 아니, 그리고 A다음에는 B지 무슨 V 플랜이 있어?”

“A, V 플랜이 아니라 AV 플랜이애오…… 애기븝미플랜인 고애오!”

순간 어이없다는 듯이 피식, 웃음을 터뜨리는 라이카와 김수혁. 그들은 아무래도 내 말을 그냥 장난식으로 여기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의외로, 나에겐 아주 확실한 계획이 있다.

애초에 전제부터가 이상한 이 상황을, 완벽하게 뒤엎을 확실한 계획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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