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화. 나무 언냐야!
펜타곤에서는 주기적으로 현장실습이란걸 나간다. 1학년 1학기때는 아직 미숙하다고 여겨 나가지 않지만, 2학기에 접어든 이후 벌써 3번째 현장실습이 시작되었다.
현장실습에서 하는 일은…… 대체로 공무원들의 뒤치다꺼리를 하는 일이다. 필드나 던전의 등급을 책정하는것을 도와준다거나, 아니면 출동대기조에서 함께 필드현장지원을 나간다거나 하는 일들…… 사실상 무급으로 부려먹는 행위다.
대부분의 생도들은 현장지원을 싫어했다.
괜히 몸만 고생이고 일은 딱히 보람이랄것도 없었으니까.
능력도 없으면서 자기 분수에 맞지 않는 필드나 던전을 찾아간 히어로들의 뒷수습을 하는것이 대부분이었다. 일반인들을 구하고 빌런으로부터의 위협을 막는…… 그런 이상적인 ‘히어로’의 모습은 온데없었다.
“하와와와, 븝미쟝도 시른고애오…….”
나도 싫었다. 다만 다른 사람 뒤치다꺼리를 해야한다거나 하는 이유에서가 아니었다. 어디 파견지를 가건 나는 그런 입장에 놓여있지 않았으니까. 기본적으로 육체 능력도 약한데다가 내 외형 때문이라도 함부로 대하지 않았다.
다만…… 문제는.
“사진찍어주세요!”
“싸인해줘요!”
“악수라도 한 번…….”
“호에에에에에!”
……이렇게 된다는거.
나는 지금 순찰 업무를 국가소속 공무 히어로들과 함께 돌고 있었다.
사실 이들도 처음에는 지금 나를 둘러싸고 있는 이들과 다름이없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이제는 자기들도 질린 모양이었다.
아니, 무슨 히어로가 연예인이냐고.
실상 유명한 이들 같은 경우에는 그 이상의 인지도와 인기를 가지고 있기는 하다. 정말로 현실에서 히어로 영화에 나오는 히어로가 튀어나온것이나 다름없는 인상을 주었으니까. 나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무슨 이건 강강수월래도 아니고.
나는 겨우겨우 손을 파닥거리면서, 그 사이로 빠져나올수 있었다.
수많은 악수의 요청들을 거절한 채로 뛰어간 나는, 이내 지팡이를 꺼내어 올라탔다.
“빨리 타는고애오!”
“네!”
“저, 저도.”
마찬가지로 인파 속에서 겨우 빠져나온 히어로들이 지팡이 뒤쪽에 올라탄다. 그리고 이내 날아오르는 우리를 보고 뒤에서 들려오는 아아, 하는 탄식. 시발 그 탄식은 내가 흘려야 할 것 같은데.
“하와와와…… 언냐야, 이제 어디로 갈까여…….”
“어…… 저도 잘.”
나는 뒷자석에 타고 있는 히어로에게 물었다.
그러자 돌아오는 대답이란게 이따위였다.
당신이 모르면 누가 아는데. 황당한 표정으로 쳐다보자, 이내 그 뒤에 타고있는 남자가 대신 대답했다.
“원래는 저쪽 돌고 옆동까지 저희 관할인데. 그냥…… 여기서 마치셔도 될 것 같네요. 제대로 된 순찰이랄게 될리도 만무하고…….”
“미안한고애오…….”
“아뇨! 생도님 잘못은 아니니까 그러실필요 없죠. 저희도…… 처음엔 똑같았는데요.”
머쓱하게 말하는 그를 보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국내에서, 외부활동을 할 때 웬만하면 사람들에게 노출되지 않으려고 한다.
내가 막 애기븝미쟝이애오, 하면서 뛰어다닌다고 명성도가 막 오른다거나 하면 그렇게 할 법도 한데, 요즘들어선 딱히 그렇지도 않았다. 오르는 기준이 좀 바뀐 느낌이라고 해야하나. 당장 졸업때까지 채워야하는 50000의 명성도를 22000밖에 채우지 못한것만 봐도 그러했다.
“많은걸수도 있지만여…….”
물론 22000정도만 해도 말도 안 되는 수치였지만. 웬만한 A급 연예인의 4배 가까이 되는 수준이었으니까. 아무튼 이전보다 쉬이 오르지 않는다는 사실 하나는 명확했다.
아무튼 그랬던지라 이정도일줄은 몰랐다. 이전에도 몇 번 실감한적은 있었지만, 그때는 길가는 사람들이나 몇몇 알아보는 수준이었지. 저건 거의 집단광기의 현장이었다.
“하와와.”
나는 이어 지팡이를 지면 가까이까지 하강시켰고, 이내 두 히어로를 내려주었다.
“그러며는 븝미쟝은 그냥 가도 되는건가여?”
“네, 생도님은 이제 복귀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수고하셨어요.”
퀭한 얼굴로 인사를 하는 둘을 보니, 한숨이 새어나온다. 이게 무슨 민폐냐.
나는 그대로 다시금 날아올라 펜타곤을 향해 갔다. 걸어가면 한세월이겠지만 지팡이를 타고 가면 얼마 걸리지 않았다. 이렇게 편한 교통수단이 또 없다. 뭐 교통사고 같은게 날 일도 없고. 가끔 지나가던 새가 치여죽는다거나 하는 일은 있다지만.
“호에에에. 안되는고애오…….”
나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랬다간 진짜 트라우마라도 생길 것 같았다.
곧바로 고도를 낮추고, 저속으로 날았다.
그렇게 꾸물꾸물 날아가던 때, 앞섬에서 진동이 울렸다.
“누군가여…….”
폰을 꺼내면서 조금 불안한 기분이 들었다. 혹시 시간 다 안채웠다고 다시 순찰하러 복귀하라는건 아니겠지? 이어 문자를 확인했을때, 나는 입을 삐죽 내밀 수 밖에 없었다.
“왜 사실이냐구여…….”
이전번에 의심했던 일이, 현실이 되었다는 소식이었으므로.
* * *
이곳에서야 없지만, 히어로판타지에선 멀티건 싱글이건 퀘스트가 그 등급별로 나눠져 있었다. A급이니 S급이니 하는 식으로.
예를 들어 저번 가짜교황같은 경우에는 단연 S급 퀘스트였을 것이다. 물론 내 체감상 난이도는 B급수준이었지만. 워낙에 일찍 발견한데다가 내가 현재 비정상적으로 강하기 때문이었다.
아무튼 메인 퀘스트 내지는 메인 시나리오라고 부르는 틀에 있는것들은 최소 A급이었다. 그리고 그것들은 대부분 현재 내가 포함된 주연 등장인물들이 있는 세대. 현재의 1학년이 모두 졸업을 하고 난 이후에 발생한다. 하지만 내가 시나리오를 알고 있어서 미리 발견하는 것일까, 아니면 원래보다 일찍 일이 일어나는것일까……
“모르겠네여.”
저번에는 전자 같기도 했는데, 아무래도 이번에는 후자쪽이 신빙성이 높아보였다.
나는 이수정이 보내준 사진을 확인했다. 그곳에는 드라이어드의 사진이 있었다. 꽤나 끔찍한 모습이었다. 거대한 나무 줄기에 사람의 형상 몇몇이 튀어나와 있는 모습이었으니.
드라이어드. 흔히 5급 몬스터로서 알려져있지만, 인간들을 흡수하여 그 힘이 커졌을 경우에는 더 높은 등급의 대형 몬스터로 성장하기도 한다. 지금 이 크기로 봤을땐 3등급에서 2등급으로 격상되기 직전의 모습인가. 도대체 얼마나 많은 인간들을 먹어치웠는지 상상도 되지 않을 정도였다.
나는 저번의 5등급 몬스터로 조우했던 어룡을 떠올렸다. 물론 해양 몬스터 같은 경우에는 그 등급 책정이 정확하지 않다지만, 5등급만 하더라도 그렇게 강했는데 2등급(진) 이면 얼마나 강할지 상상이 되지 않았다.
알아서 잡겠지. 하고 내버려두고 싶었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저 드라이어드는 내가 미래에 꼭 잡아야할 몬스터들 중 하나였다는 것. 진짜 딱 3년…… 아니 2년 뒤에만 나왔으면 혼자서도 잡았을텐데. 왜 벌써 튀어나와서 난리인지 모르겠다.
“옵바야들 멍청한고애오…….”
나는 드라이어드에 삼켜진 희생자들을 욕했다. 이게 나빠보일수도 있겠지만, 실상 자업자득이었다.
드라이어드의 사냥수법은, 인간화한 화신체로 사람들을 꼬여와선 잡아먹어버리는 것. 대부분 여성체의 모습으로 남성들을 유혹하여 잡아먹는다. 아무리 정신이 나갔다고 해도 드라이어드가 나온다는 숲까지 헤벌레 해서 따라가는 놈들은 잡아먹혀 마땅한 지능이겠지.
“븝갈통보다 더한고애오…….”
쯧, 나는 혀를 차며 이내 이수정이 보내준 다른 사진들을 봤다.
대부분은 나무형상의 드라이어드의 사진이지만, 피해자의 가족들이 제보했다는 몇몇 사진들은 인간형상의 화신체였다.
“헤으으응…….”
그럴만…… 한가?
거기 찍혀있는 여자의 모습은 굉장히 아름다웠다. 나신에 가까운 모습으로 아스라히 천조각 하나 걸치고 있는 모습. 매끈하고 백옥같은 피부와 도드라진 굴곡들에 숨이 막혔다.
“다나?”
“호에엥.”
그때, 뒤에서 갑자기 나타난 일리아가 내 어깨에 손을 올렸다. 나는 본능적으로 휴대폰 화면을 바꿨다. 그러자 그녀가 얼굴을 슥 디민다.
“뭐 봐? 어머.”
“호에에에.”
그런데 바꾼다는게 실수로 내 다른 사진으로 바꿔버렸다. 그건 마치 수영복 같은 디자인의 방어구를 입은 내 모습. 도대체 방어라고는 하나도 될 것 같지 않은 모습의 옷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수비적인 기능은 이게 제일 높지만.
일리아는 마치 나이먹은 변태 아저씨같이 음흉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다나…… 이런 취향 있었어?”
“저, 전혀아닌고애오!”
“말을 하지. 그럼 같이 볼텐데. 혹시 지금도 이 옷 있어?”
“언냐야, 아니 지금은…… 호에에에.”
나는 그렇게 한동안 그녀에게 시달려야만 했다.
* * *
“개인주의애오.”
나는 불만에 찬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러자 주변의 생도들이 또 왜 저러냐, 하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원래라면 부끄러움에 얼굴이라도 가렸을테지만, 지금은 그럴 생각이 들지 않았다.
“개인주의인고애오. 폴란드 옵바야들…….”
이 새끼들, 지들만 먹겠다 그건가.
나는 입을 삐죽 내밀며 계속해서 중얼거렸다.
일전에 소식이 들려온 드라이어드. 하지만 그 이후로 대중매체에서는 아무런 소식도 들려오지 않았다. 이수정에게 들은 바에 따르면 드라이어드가 있는 폴란드 정부에서, 이를 은폐하고 있단다. 정확히는 폴란드 1위 길드와 함께.
드라이어드는 나도 탐낼 정도로 얻을것이 많은 몬스터였다. 물론 그들이 탐내는것과 내가 탐내는것은 분명 다르긴 하지만, 어쨌건 그들이 지금 드라이어드를 독점적으로 사냥하기 위해 은폐를 하고 있다는 것은 확실했다.
사실 자국의 이익이 외부에 새어나가지 않게 하기 위한 행위에 무작정 욕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지만, 문제는 그 과정에서 추가로 발생하는 희생자들에 대한 조치는 취해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었다. 되려 몇명 더 늘었으면 하는 것 같았다.
“너모 납븐고애오…….”
폴란드의 히어로들 수준이 뛰어나지 않다고는 해도, 개중 1위길드의 힘을 온전히 다 쏟아붓는다면 2등급 대형 몬스터 레이드는 충분히 가능할 것이었다. 그러니 몇명 더 잡아먹고 3등급에서 2등급이 되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
내가 드라이어드에게 먹힌 이들을 바보라고 욕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런건 옳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자신의 책임도 어느정도 있다는 것 뿐이지, 그들은 엄연히 피해자였으니까. 나도 나름 독하다고 생각했는데, 이놈들은 독한걸 넘어서 악하다. 이딴것들을 히어로라고 부를 수 있을까.
“어떻게 안 될까여…….”
나는 한동안 궁리했다. 어떻게 계획을 어그러뜨릴 방법이 없을까. 나도 드라이어드에게서 원하는 보상을 받고, 폴란드 정부와 길드를 엿먹일만한 방법이. 그렇게 머리를 굴린 결과, 이내 떠오르는 생각은 하나였다.
“모르겠는고애오.”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시발.
다만 해야할 일은 명확했다. 일단 직접 가서 부딪혀 보는 것. 물론 그 전에 들러야 할 곳이 있었다.
“흰 꽃씨 오랜만에 보러가는고애오…….”
요새 잘 가지 않았던 꽃밭. 그곳에 다시 가야 할 것이었다. 여러모로 준비할것도 있고, 녀석이라면 드라이어드를 처치하는데에 많은 도움을 줄 수 있을테니까. 물론 그 본인은 그 사실을 까맣게 모를테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