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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기븝미쟝이 되었다-103화 (103/172)

#103화.

“흰 꽃 씨, 반가운 고애오!”

“요새 뜸하더니 왔구나?”

흰 꽃은 되려 나를 반겼다.

이전에, 그러니까 나를 처음 봤을때랑은 완전히 다른 태도였다.

사실 그럴만도 한게, 처음에야 그저 꽃이나 따러 온 것이었지만 후일 점차 나도 진지하게 꽃밭을 가꾸기 시작했으니까.

“오, 오늘도 가져왔어?”

“당연한고애오.”

물론 그 가꾼다는게 육체적인것을 말하는게 아니었다.

나는 기대감에 찬 모습으로 나를 바라보는 흰 꽃에게 싱긋 웃어주었다. 그리고 이내 마석을 꺼내었다.

“요기 있는 고애오…….”

“고마워!”

흰 꽃은 이내 머리를 쑥 내밀어 마석을 덥썩 물어갔다. 처음에는 그 모습이 상당히 기괴했지만, 몇번이나 본 광경이라 이제는 익숙했다.

이내 녀석의 몸에 감도는 마력. 나는 그것을 보며 씨익 웃었다.

꽃밭에 피어나는 꽃들의 질이 한층 더 좋아질 것이었으니까.

“하와와와, 안으로 들어가도 대져?”

“음, 음. 그럼. 당연하지.”

아직까지 마석의 맛에 취해있는 흰꽃을 뒤로하고, 나는 꽃밭 안으로 들어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펼쳐지는 수많은 꽃들이 피어있는 들판. 나는 그곳에 서서 바람에 날려오는 꽃향기를 맡았다.

“헤으으응…….”

물론 이내 꽃가루 알레르기 때문에 코를 부들부들 떨 수 밖엔 없었다. 엄청 간지럽네.

시뻘게진 코를 간신히 진정시킨 나는, 저번에 봐뒀던 꽃들중 하나를 확인했다. 제초화(除草花). 이 놈은 꽃 주제에 다른 초목을 죽이는 성질을 가지고 있는 녀석이었다. 물론 무르익은 후에야 그 성질이 주변으로 뻗치지만, 혹시 몰라 구석에 따로 옮겨심은 녀석.

과연 드라이어드에도 그 영향을 끼칠 수 있을까?

솔직히 말해서 그다지 긍정적인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애초에 이런 잡기들은 상위 등급 몬스터쯤 되면 아무리 상극이라도 잘 통하지 않으니까. 그래도 일단 없는것보다는 낫겠지.

이어 내다 팔 꽃들 몇 뿌리와 영약으로 조제할 꽃들을 챙겼다. 저번에 연금술의 집에 쓸 약초들은 이미 잔뜩 챙겨다줬고, 지금 금전적으로는 전혀 쪼달리지 않으니까. 급전이 필요하면 그때 챙겨다 팔면 그만이었다. 어차피 공급이 부족하지 수요는 항상 차고 넘친다.

“많이먹고 쑥쑥 자라는고애오…….”

나는 이후 꽃들을 뽑아간 자리 위에 포션을 뿌렸다. 연금술의 집에서 만들어낸 성장 촉진제. 실제로 이것들은 꽤나 효과가 좋았다. 시중에 나와있는 물건들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물건. 아마 입소문이 퍼지기 시작하면 대형 길드들이 가지고 있는 삼밭이라던가 약초밭에도 널리 사용되겠지.

꽃밭의 질이 점차 좋아지고 있는 이유 또한 이것 덕분이었다. 흰 꽃에게 마석을 먹인 덕분도 있었고. 녀석에게 마석을 먹이면, 꽃밭에도 영향이 간다. 어느 한 쪽이 상태가 좋아지면 반대쪽도 자연히 좋아지는 구조니까.

나는 이내 가벼운 발걸음으로 꽃밭을 나섰다. 그러자 아직도 헤롱헤롱한 표정으로 반쯤 취해있는 흰 꽃이 눈에 들어왔다.

“나왔어? 헤헤…… 저기 막 벌들이 날아다닌다…… 히히히…….”

“호에에, 정신차리는고애오…….”

무슨 약에 취한 사람마냥, 헛소리를 지껄이는 흰 꽃을 보니 내가 나쁜짓이라도 한 것 같았다. 아까 마석을 집어먹었을때보다 더 상태가 심해진 것 같은데.

“…… 너무 많이 너은건가여. 흰 꽃씨가 이상해진고애오…….”

꽃밭에 성장촉진제를 평소보다 2배 이상 뿌린 탓일까. 환각을 보며 헤벌레 웃음짓고 있는 녀석의 모습이 조금 섬뜩했다. 나는 다급하게 인사를 하며, 빗자루를 타고 사라졌다.

“자, 잘있는고애오!”

“기…… 기부니…… 조아…… 헤헤…… 딸꾹!”

저거 중독오는거 아니야?

……다음에는 뭐건 적당히 해야겠다 싶었다.

*    *    *

폴란드는 세계관 내에서 그리 강국이 아니다. 애초에 딱히 언급조차 되지 않기도 하고, 그리 뛰어난 히어로들 또한 없다. 하지만 스토리상 딱 한 번 주요 배경이 되는데, 바로 그것이 이번 드라이어드 때문이었다.

그 에피소드 당시에는 너무나 공개적으로 정체가 발각되었던지라 은폐해서 혼자 먹겠다는 발상이 실현 불가능했지만, 이번에는 아무래도 좀 다른 것 같았다.

“진짜 아무도 모르는고애오…….”

폴란드의 한 지방에 있는 마을. 이곳에 있는 숲 테마의 한 필드에는 드라이어드가 나온다는 소문이 예전부터 퍼져있었다. 하지만 주민들은 그에 대해서 거의 신경을 쓰지 않는 모양이었다. 몇십년간 아무 문제가 없었다고 굳게 믿고 있었으니까.

문제가 없긴 개뿔이.

나는 태평한 사람들을 보고 속이 터질것 같은 기분이었다.

당장에 마을의 젊은 청년들이 속속들이 드라이어드에 의해 죽어가고 있는데도, 정부의 입막음 때문인지 뭔지 단 한명도 진실을 아는 이들이 없었다. 직접 돌아다니면서 물어봐도 그러했다. 번역기를 동원해가며 물어보고 다녔지만 소득이 전혀 없었다.

“하와와와…….”

이것도 할 짓이 못 되네.

저번 가짜교황 사건때도 느낀 것이지만, 사람들이 내 외모 때문인지 잘 협조를 해주지 않으려는 느낌이 강했다. 뭔가 좀 우습게 본다는 느낌이라고 해야하나. 그나마 내가 태양여명단에서 받은 훈장을 보여주면 태도가 좀 달라졌다.

이거 좆같아서 빨리 성흔이라도 받아야지.

교황이 아무때나 시간을 낼 수 있는 사람도 아니다보니, 받으려면 시간이 꽤 걸린단다. 저번에 잡았던 날짜도 캔슬되어버려 정확한 시간을 알 수가 없었다.

“너모 힘든고애오…….”

한국에서는 사용 가능하던 지팡이가, 이곳에서는 민간 지역에서 사용 불가였기에 나는 순전히 걸어다녀야만 했다. 여러모로 마음에 안 든단 말이지.

나는 한 가게 앞에서, 대강 음료 하나를 시키고 다리를 두드렸다. 이대로 가다가는 답사고 나발이고 내가 먼저 지쳐 쓰러질 것 같았다.

[언냐야, 다른 소식은 없는 고애오?]

이수정에게 문자를 보냈다. 이번 소식도 모두 그녀가 알아낸 것이었으니, 뭔가 단서를 잡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 것이었다. 드라이어드가 나오는 정확한 지점과 폴란드 길드의 공략 시기 같은것들. 하지만 이내 돌아오는 대답은 실망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없어, 안 나오네. 나도 저번에 보내준 거까지가 한계거든.]

나는 불퉁하게 입을 내밀었다. 이거 거짓말 아니야? 일단 이수정이 하는 말에는 의심부터 들었다. 워낙에 거짓말을 곧잘 하다 보니 신뢰가 가질 않았다. 지금 당장에야 믿을 수밖에 없었지만…….

“하와와와…… 븝미쟝 왜 온건가여…….”

하루만에 뭔가 될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않았지만, 지지부진하기만 한 조사에 점점 심신이 피곤해졌다. 나는 그대로 테이블에 머리를 박고 부비적거렸다.

“호에?”

그렇게 잠시간 뻘짓거리를 하고 있던 나는, 누군가의 시선을 느꼈다. 마력이 늘어날수록, 더 예민해진 내 기감은 실상 제 6감까지도 극도로 발달해있었다. 아까전부터 희미하게 느껴지던 시선이 이제는 굉장히 노골적으로 바뀌어있었다.

이내 돌아본 골목 사이에서 느껴지는 인기척.

나는 일부러, 들으라는듯 기지개를 펴며 말했다.

“잘못본건가여…….”

제놈이 한국어를 알아들을지는 둘째치고서라도, 대강 비슷한 뜻으로 알아들을것은 분명했다. 상황과 분위기라는게 있으니까.

나는 그 사이에 머리를 빠르게 굴렸다. 기척을 저 정도로 숨길 수 있다면 분명 평범한 녀석을 아닐 터였다. 혹시 내가 여기서 드라이어드에 관해 묻고다니는걸 확인한 정부 쪽 사람인가.

족쳐볼까?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이거였다. 결국에 내 목적은 길드와 폴란드 정부의 동향을 알아내면 그만인 것이었으니까.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쪽에서 내게 먼저 다가왔다.

“조기…….”

한국어?

나는 모습을 드러낸 사람을 슬쩍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 했다. 갈색 포니테일을 하고 있는 여성. 그녀의 입에서 나온것은 분명 한국어였다.

물론 세계관 내에서 한국어 사용자들이 꽤나 많기는 하지만, 일단 이곳 마을에 오고 나서는 이 여자가 처음이었다.

“호에에, 왜 그러는고애오?”

“혹시, 당신도 드라이어드. 알아? 나, 안다. 도움 되어요.”

어눌하게나마 말을 이어가는 여자의 말에서, 나는 눈빛을 빛내었다. 확실히 내가 이 마을에서 하고 다닌 행동을 보고 접근한 게 맞는 것 같은데.

나는 혹시나 싶어 정부 쪽 사람인척을 슬쩍 해봤다.

“언냐야는 길드 소속이 아닌거가튼대여…… 누구에여?”

“당신, 길드?”

이내 그녀는 인상을 찌푸리더니, 나를 세세히 뜯어봤다. 그리고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다. 거짓말 하지말아.”

뭔가, 확실히 알고 있는게 맞는 것 같은데.

나는 미소를 띈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

“언냐야, 다른데로 가져.”

“…… zgoda. 따라와.”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이내 나를 이끌고 마을 내부의 한 건물로 인도했다. 나는 혹여 함정이 아닐까, 내부를 살펴봤지만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 너무 없는게 문제같은데여…… 더러운고애오…….”

“미안, 양해.”

사람 사는 곳 같지 않은 썰렁함. 다 벗겨져있는 콘크리트 바닥에 가구 몇 개만 덜렁 놓여있었는데, 죄다 먼지가 잔뜩 쌓여있었다.

그녀는 머쓱하다는듯이 말하고는, 이내 내게 그나마 깨끗한 자리를 권했다.

“앉아.”

“…… 호에에. 몬가 강아지가 된 고 같은고애오…….”

기분이 묘하다. 물론 언어사용에 익숙치 않아서 그런거겠지만, 집에서 기르는 강아지보고 앉으라고 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다만 그녀는 내가 그렇게 느끼는줄 전혀 모르는듯한 모습이었다. 마찬가지로 자리에 앉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나는, 봤어. 드라이어드 이야기하는거. 한국에서 여기까지? 그건 잘 몰라. 그래도 도움 줄 수 있다.”

그녀는 띄엄띄엄 말을 이어나갔다. 어눌했지만 그래도 대충 알아들을만은 했다.

도움을 준다라. 나는 잠시간 그녀의 정체가 무엇일지 생각해봤다. 길드나 정부측 사람이면 확실히 이런식으로 할 필요가 없었다. 그냥 뭔가 죄목을 씌워서 날 구류시켜버리면 그만이었으니까. 드라이어드를 잡은 이후에 석방시키면 내가 뭐라고 항의 하겠는가.

그녀는 이어 자신에 대한 소개를 했다.

나는 그것을 들은 이후에야 그녀가 왜 이런 행동을 하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오빠, 사라졌어. 그거 드라이어드 때문. 그런데 아무것도 안 해줘.”

그녀와 같이 히어로였던 자신의 오빠가, 드라이어드에 의해 실종된 피해자라고 했다. 솔직히 내심 히어로면서, 몬스터한테 꼬이는 사람이 다 있나. 어이가 없기도 했지만 동시에 조금 안타깝기도 했다.

당연히 정부에서는 도움을 주지 않았을 것이다. 희생자가 발생하건 말건, 레이드 성공시에 드라이어드가 내놓을 수천억 가량의 이익에만 눈이 멀어있는 상태일테니까. 3급 이상 대형 몬스터의 경제적 가치란 그런것이었다.

그 때문에 이곳저곳, 방금 전의 나처럼 발품을 팔고 다녔다고 한다. 그걸 거의 한달째 하다보니 꽤나 많은것을 알아냈지만 힘이 없어서 고민하고 있던 상태란다.

“오빠, 구해야해. 도와.”

간절한 목소리로 말하는 그녀를 보며, 나는 기분이 불쾌해졌다. 물론 그건 그녀때문이 아니었다.

어차피 이미 죽었을텐데.

실종된지 한달이 넘게 지났다면, 드라이어드에 완전히 동화된 상태일 것이었다. 형체조차 알아보지 못하게 흡수된 상태겠지.

다만 나는 그런 이야기를 할 수 없었다. 단지 거짓말 아닌 거짓말을 할 수밖에는 없었다.

“븝미쟝이…… 도와주는고애오!”

그 얼굴도 모르는 남자를 구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길드와 폴란드 정부에 엿은 먹일 수 있을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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