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6화. 일본 여행인 고시야요!
폴란드 정부의 반인륜적인 행위에 대한 수사가 세계 영웅 위원회 (World Hero Committee)에 의해 이뤄지는 가운데, 한편 2등급 드라이어드의 보상에 대한 향방은 어디인지 저희 취재기자가…….
뉴스에서 흘러나오는 이야기. 나는 그것을 들으며 식빵을 오물거렸다. 옆에서는 일리아가 마치 아저씨처럼 앉아서 푸념을 하고 있었다.
“으휴, 저런 놈들 때문에 자꾸 히어로 인식이 안 좋아지는거라니까. 안 그래 다나?”
“우으음. 맞는거가타여…….”
나는 대강 그녀의 말에 동조했다. 일리아는 그 뒤로도 해당 사건에 대해 열불을 터뜨렸으나, 나는 적극적으로 그 말이 맞다 하며 동조할수가 없었다. 특히 폴란드가 드라이어드에게서 얻은 보상을 고의로 숨기고 있다는 대목에서는 더더욱.
그거, 여기 있는데.
나는 당장 집에 보관해둔 드라이어드의 가지, 잎사귀를 비롯한 결정이나 마석따위를 떠올렸다. 각각 물품별로 환산하면 수천억원의 가치, 김수혁-라이카의 공방이나 연금술의 집에서 가공해서 판매하면 그 이상의 가치를 지닌 것들.
“아무튼, 에휴. 욕심만 뒤룩뒤룩 붙어서는 아주. 결국엔 지들 혼자 먹겠다고 그 난리친거잖아. 돼지같은놈들 진짜…….”
“브, 븝미쟝 대지 아니애오! 살도 안 찐 고애오…….”
“아니, 다나. 너한테 한 얘기 아닌데…….”
배까지 까 보이며 발끈하는 내게, 일리아의 당황스러운 목소리가 돌아온다.
“흐흠.”
나는 머쓱해져서는 이내 옷을 바로 했다. 괜히 찔려서는.
일리아는 그렇게 한동안 티비를 보며 늘어져 있었다. 마치 친누나 같은 모습. 학창시절 친구들 내지는 고아원에서의 기억을 떠올려봤을 때는 그 이미지 자체가 별로 좋지 않았지만, 일리아 같은 사람이라면 누구든 환영이지 않을까.
“아, 그런데 얘는 왜 이렇게 안 와. 제때 오는 법이 없어.”
“그러게여…… 마니 늦는 고애오…….”
“그러니까 그냥 먼저 갔어야 했어. 그럼 알아서 빨리 올 텐데.”
“그랬어야 했을까여…….”
일리아가 말하는 ‘얘’란 나츠키를 말하는 것이었다. 지금 나와 그녀는 함께 나츠키를 기다리고 있었다.
펜타곤에서는 학기 중에 ‘자유 체험’이라는 것을 할 수 있도록 한다. 그게 말이 자유 체험이지, 사실상 그냥 휴가나 한번 갔다 오라고 배려해주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요즘들어서 외부활동이 잦아진지라, 생도들의 불만도 쌓였으니 한 번 풀어주는 거겠지.
물론 나는 그 외부활동도 오지게 빼먹었지만.
슬슬 약발이 떨어질때가 되긴 했는데, 태양여명단 이름으로 외부활동같은 귀찮은 일이 생기면 매번 수업을 빠졌다.
그런다고 해서 내 순위가 떨어지지도 않을테고. 현 2위인 장선우와 나 사이에는 큰 간극이 존재했다. 학기중에 보니 녀석도 많이 강해진 것 같았는데, 그래봤자 스토리에서 상정하는 내의 파워업이었고…….
“어, 이제왔네. 지금 1위랑 3위님이 기다리시는데 5위가 그렇게 늦게 오게 되어있나?”
“개소리야 미친년아. 너 좆빡대가리라 9위잖아.”
“실전만 따지면 3위고. 히어로가 몬스터나 잘 잡으면 그만이지…….”
“그래, 뇌도 근육이라 좋겠다.”
달칵거리는 소리와 함께, 나츠키가 이내 집 안으로 들어온다. 흐뭇하게 웃으면서 나츠키를 놀리는 일리아와 빈정대는 나츠키. 참 더럽게 많이 본 광경이다.
나츠키는 원래 수순대로, 주연 등장인물중에는 가장 그 힘이 약해졌다. 장선우>신하연=일리아>나츠키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그에는 이제 영약들에 내성이 생긴 바람에 더 이상 무언가 섭취함으로 인해 성장하지 못하게 된 탓도 있을 것이었다.
반면에 일리아는 내게 이따금 영약들을 받아 먹고는 했다. 비싸거나 귀한거라면 부담스러워하길래, 홍삼 같은 거라고 속이니 넙죽넙죽 잘 받아먹었다.
그 덕분에 벌써 2학기가 다 지나지 않았는데도, 힘의 상하가 역전된 모습.
나츠키는 눈물까지 그렁거리며 분해했다. 쟤도, 약이나 한 첩 지어줘야하나. 기존 영약과는 정제과정이 다르니 아마 먹힐 것 같은데.
“아, 왜 또 삐졌어.”
“안삐졌거든!”
“아구, 그러지말고 일로와바. 응?”
“이익…… 저리 가라고!”
애다루듯이 나츠키에게 달려들어 보듬는 일리아를, 팔꿈치로 후려쳐버리는 나츠키. 그에 다시 육탄전이 벌어진다.
콰직-!
그 과정에서, 이내 탁자가 박살나버리고. 둘은 핏기가 가신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저거, 7천주고 산 명품인데. 시발.
“하와와…….”
나는 그녀들을 향해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언냐야들…… 나갈래여?”
그에 둘 모두, 여행지로 떠나기 전까지 기가 팍 죽은채로 고개를 떨군 채 조용하게 있었다. 물론 그것도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금 원래 상태로 돌아왔지만…….
* * *
자유여행지는 정말 단순하게 정해졌다. 일단 일리아와, 나, 그리고 나츠키까지. 이렇게 세 명이 모여서 가는것은 거의 확정이나 다름이 없었다. 내 바램 같아서는 J도 끼고 싶었는데, 아무래도 불편한 모양이었다. 나중에 따로 같이 놀자나.
신하연 같은 경우에는…… 말하면 좋아는 하겠지만 아직 일리아를 너무 거북해했다. 막상 이쪽에서는 앙금을 다 풀었는데, 저쪽에서 제발저린 상황이라고 해야할까.
아무튼 그렇게 정해진 멤버는 각자 여행지를 꼽았다. 물론, 실상 나를 제외한 나츠키와 일리아 둘이 설전을 벌인것이나 같았다.
“너 또, 길드원들 잡아족쳐다가 이거 뽑아온거지. 그러다가 나중에 뒤통수맞는다?”
“아니라니까! 정리는 내가 했다고.”
“정리‘만’ 니가 한 거겠지. 미친련…….”
또 저번처럼 잔뜩 목록을 뽑아가지고 온 일리아. 나츠키는 고개를 저으며, 자신의 계획을 말했다.
“그냥 우리 본가 근처에나 가면 될 것 같은데.”
“너희…… 본가? 일본?”
“그래. 우리 가족은 다 한국에 살긴하지만…….”
“호에에에, 그러며는 온천도 있는고애오?”
“웬만한건 다 있지. 그래도 못 사는 형편은 아니라서.”
못 사는 형편은 개뿔이고, 되려 잘 산다는 표현으로도 부족하지. 나는 본가 저택 근처의 설비를 설명하는 나츠키를 보며 잠시 어이가 없어졌다.
“하와와와…….”
내가 뭐, 요즘들어서 돈을 벌고. 드라이어드에게서 얻은 수확으로 벼락부자가 됐니 해도 이쪽에는 비빌수가 없었다. 일리아와 다르게 나츠키네 가족 같은 경우에는 본가 직계이기도 하고.
“뭐…… 그래서. 갈래? 니가 불편하면…… 말고.”
나츠키는 내게 선택권을 넘겼다. 어차피 내 대답은 명확했지만서도.
“그러며는 그러케 해여!”
“그래, 뭐. 괜찮을 것 같네.”
일리아도 순순히 동의했다. 애시당초 나야 아예 해외로 나가본적이 없었지만, 일리아 같은 경우에도 일본에 가본적이 없다고 한다. 당장 사는곳의 바로 옆나라인데도.
그 때문에 지금 일행은 모두 일본행 비행기에 몸을 싣고 날아가고 있었다.
“븜븜븜.”
나는 발을 동동거리면서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그냥 기분이 좋으니, 몸이 절로 그렇게 움직였다.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을까…… 생각하기에는 내부에 나츠키와 일리아를 제외하고는 한 명 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사람은 헤드폰을 끼고 있었고.
“으음…… 어디서 본거가튼대여…….”
“누가? 저기 저 사람?”
“아니에여, 언냐야. 잘못본거가타여…….”
나는 일리아에게 대충 둘러대었다. 어디서 봤냐고 하면, 할 말이 없었으니까.
당연히 내가 이곳 세계에 와서 직접 본 인물은 아닐 것이었다. 그렇다면 바로 기억을 해냈겠지. 분명 히어로 판타지를 하면서 본 인물일 것이다.
누구지? 얼굴 정면을 바로 본 것도 아니니 판별하기가 힘들었다. 그렇다고 일어나서 직접 보기에는 여러모로 실례일수도 있고, 솔직히 귀찮기도 하고…….
“헤으응…….”
잠시만 잘까? 그 생각이 머리를 침범하는 순간 나는 이내 정신을 잃었다.
“다나, 일어나.”
“호에엥.”
그리고 이어, 일리아의 목소리에 잠에서 깨어났다.
아니 뭔 방금 눈 붙인것 같은데…… 아, 이거 일본행이구나.
그럴만 했다는 사실을 깨달은 나는 이내 주변을 살폈다. 아까전의 그 남자를 찾기 위해서.
하지만 이미 그는 내린 모양이었다. 나는 아쉬움에 입맛을 다셨다. 분명 뭔가 직감이 딱 왔는데.
“쉬러온거니까여…….”
굳이 지금에서까지 조급하게 뭔가 찾아다닐 필요는 없겠지.
나는 그렇게 자위하며, 비행기에서 내렸다.
일행은 다같이 수하물을 찾고, 공항에서 빠져나왔다. 사실 수하물이랄것도 거의 없었다. 나츠키가 뭘 챙길필요가 없다고 호언하기도 했으니.
“오늘도 잘 부탁하는고애오!”
해봤자 챙겨온건, 이 지팡이정도. 사실상 이놈 없이는 어딜 못 돌아다니는 몸이 되어버렸다. 그만큼 편리한 녀석이었으니까.
지팡이를 타고 저속으로 뽈뽈거리며 날아다니자, 사람들의 시선이 모인다. 그나마 여기엔 내가 누군지 모르는 사람들밖에 없으니 다행인것일까.
일리아와 나츠키도 이젠 익숙한 모양이었다. 내 몸 상태를 아니 딱히 나무라지도 않았고. 어차피 조금 있으면 나츠키의 본가에서 차를 보내준다고 하니, 그걸 타고가면 그만이었다.
그렇게 잠시간 길을 걷고 있는데, 뒤에서 누군가 상기된 표정으로 내게 말을 걸어왔다.
아까 전부터 우물쭈물거리며 뒤를 따라오던 사람이었다.
“다나산자 나이데스카? 와타시와 혼또니 환데스!”
“호에……?”
어…… 이거.
나한테 하는 소리 맞지?
잠시간 멍을 때리고 있자니, 나츠키가 뭐라고 말을 몇마디 했다.
그러자 이내 기뻐하더니, 나츠키와 이야기를 나누던 그녀는 이내 악수를 하고 저 멀리 사라져갔다.
“언냐야, 방금…… 머였던고애오?”
“아, 니 팬이라고. 펜타곤은 일본에서도 보는사람이 꽤 있거든. 그래서 알아봤나봐. 솔직히 못 알아볼수가 없겠지만. 그래서 그냥 인사하고 보냈어.”
“맞아. 다나 너 팬카페에 일본사람들 꽤 많아.”
“호에에에?”
이야기를 들어보니, 내가 인지도가 있는 정도가 아니라 인기가 꽤 있단다.
……나는 그에 잠시 멍해졌다.
일리아가 세계로 뻗어나간다느니 뭐니 하는 농담을 할땐, 목 뒷덜미까지 화끈거렸다.
부디 그만 뻗어 나가고 싶다.
* * *
산천회(山川會). 일본 최대의 빌런집단으로 손꼽히는 곳. 그 전신이 야쿠자인지라, 실상 하는 행동도 같다고 여겨지는 집단.
“그래, 도착했지. 그런데 재밌는 년들이 보이더군.”
그곳의 간부 테츠야, 그는 조직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으며, 씨익 웃었다.
“하나는 그 길드장놈의 손녀딸이었고, 다른 둘은 친구…… 같아 보이던데. 그 둘중 하나가 뭔가 나를 알아본 눈치더라고.”
“알아봤다…… 그게 무슨 뜻입니까?”
“말 그대로지. 내가 누군지 아는 것 같지는 않았는데, 들어보니 어디서 나를 봤다는 것 같더군. 내가 한국어가 익숙치 못해서 다는 못 알아들었지만.”
“그럼…… 혹시 형님.”
“그래, 한국에서 활동하던 시절에 봤을 가능성이 있겠지.”
한국에서 활동하던 시절. 그 이야기를 들은 조직의 부하 직원은 테츠야의 과거 행적을 떠올렸다. 도살자라고 불리며 악명을 떨치던 그 시절. 그가 죽인 사람들의 수가 몇 명인지.
“그럼…… 어떻게 하실겁니까?”
“뭘 어떻게 해. 쥐방울만한 년을 잡아다 죽일수도 없고…… 일에 방해가 되지만 않는다면야 그럴필요가 있나.”
방해가 된다면, 죽이겠다는 이야기였다.
조직원은 그 뜻을 알아채고, 이내 전화를 끊었다. 테츠야가 말한 그 소녀의 신상을 파악하기 위해 움직여야 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