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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기븝미쟝이 되었다-108화 (108/172)

#108화.

“하와와왕…….”

나는 일어나자마자 비척대며 주변을 살폈다. 혹시나 모를 사태에 대비해서, 경계 마법을 깔아 놨기 때문이었다. 다행히도 경계 마법에는 아무 이상이 없었다.

“잘 잤던 고시애오…….”

셋이서 방 하나를 쓴다는 것에 걱정했지만, 워낙 공간이 넓어 불편함이 없었다. 펜타곤에서 잘 때는 맨날 부대꼈는데.

사실 거기도 넓은 편인데 왜 항상 자고 나면 그랬는지 모르겠다. 여기 숙소가 특별히 좀 좋아서 그런가? 그럴 수도…….

옆에서는 일리아와 나츠키가 아직 자고 있었다. 제발 평생 이렇게 자고 있어 주면 안 될까. 나는 나츠키를 보며 그런 생각을 했다. 저렇게 입 다물고 눈 감고 있으면 아마 쟤가 최고 미녀일 건데.

“하우으으…… 헤으응.”

한 차례 기지개를 켠 나는, 몰래 밖으로 나섰다. 아직 어슴푸레한 새벽이었던지라, 수행원들과 직원들도 모두 자고 있는 모양이었다.

물론 그럼에도 아직 깨어 있는 이들이 있었으므로, 나는 인기척을 피해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요기인가여…….”

숙소 바깥으로 빠져나온 뒤, 곧바로 나는 희미한 마나가 남겨진 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이것은 내가 남겨 놓은 표식 때문에 생긴 것이었다.

어제, 퍼밀리어를 발견했을 당시.

나는 그 수행원, 켄타가 있던 방에 퍼밀리어가 들어가고, 이내 흔적이 사라지는 바람에 그가 퍼밀리어를 조종하던 것이 아닌가 의심했다.

하지만 그 생각은 금방 철회되었다. 그는 분명히 퍼밀리어를 사용하는 주술사가 아니었다.

주술사.

개중에서도 영(靈)을 다루는 이들은 명백하게 그 표시가 난다.

하지만 나는 그에게서 그런 것을 느끼지 못했다. 애초에 그랬다면 타나카 가문에서 몰랐을 리가 있나. 타카나 테루야. 그 사람이 자기 가까이에 있는 수행원의 정체조차 알아내지 못할 리가 없었다.

무엇보다도 이어 켄타가 먼저 선수를 쳐서 말했다.

이상한 기운이 담긴 고양이가 보이길래, 그대로 척살해 버렸다고.

물론 그 소리를 들은 일리아와 나츠키는 경약을 금치 못했지만, 고양이가 어떻게 이상한 기운을 담고 있을 수가 있냐면서. 특히 고양이를 좋아하는 일리아는 펄쩍 뛰었다.

그것도 퍼밀리어가 세간에 퍼져 있지 않은 존재라서 생긴 일이겠지.

아무튼, 나는 그 이야기를 들은 뒤에, 고양이를 죽였다는 장소로 찾아가 봤다. 하지만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이상하군요. 분명 혈흔도 튀었는데.’

‘호에에에, 징그러운 고애오!’

정말 살아있는 동물처럼 죽었다는 켄타의 증언. 나는 그를 통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눈속임을 한 번 더 쓴 것이었다. 환영 마법을 통해.

“되겠냐구여.”

어깨가 저절로 으쓱거려진다. 퍼밀리어가 펼치는 조악한 환영 마법에, 내가 속을 리 없었다. 나는 미리 남겨 둔 표식의 잔재가 아직 퍼밀리어에게 남아 있다는 것을 알아챌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 그것을 따라가고 있는 것이었다.

“요기까진가여…….”

이내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한 지점에서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숙로에서 걸어서 대략 10분 정도 거리. 나는 빗자루를 타고 날아온지라 금방 오기는 했지만, 일반인 기준으로는 그러했다.

그것은 평범한 가정 주택처럼 생긴 곳. 그 누구도 의심하지 않을 만한 비주얼이었으나, 나는 분명 마나의 흔적이 이곳으로 이어지는 것을 확인했다. 그리고 마나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실례하는 고시야요…….”

나는 슬쩍 문을 밀고 들어갔다. 원래는 잠겨 있는 문이었으나, 정령을 소환해 안의 잠금장치를 열어 버렸다.

무언가 이상한 것이 튀어나오지는 않을까? 주변을 둘러봤으나 그런 낌새는 보이지 않았다. 다만 조심했다. 어디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것이었으니까.

일례로 흑마법사와 전투를 펼치던 중, 동물로 변해 버린다든가 하는 피해를 입은 히어로의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다. 게임에서야 그냥 허허 웃고 넘어갈 만한 이야기지만, 여긴 현실이다. 시발, 아무리 이 몸이 마음에 안 들더라도 동물보다는 훨씬 낫다.

그그극.

집 안으로 들어가자 기분 나쁜 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석벽을 날카로운 무언가로 긁는듯한 소리, 나는 눈을 찡그리며 그 소리가 들려온 곳을 주시했다. 그리고 확인할 수 없었다.

아무도 없다.

소리가 들려온 방향에는.

하지만 여기엔 있다.

“마나 씨!”

콰드드드득!

나는 순간, 미리 소환해 놓은 바람의 정령을 마법에 융합시켰다. 그리고, 무영창으로 실행할 수 있는 마법 중 가장 강한 마법을 펼쳤다.

에어 슬래시, 일전에도 항상 애용해 온 마법. 그것은 내벽을 뚫고 날아가 내가 목표한 지점을 공격했다.

“끄으윽!”

“누구에여?”

무언가 서걱, 하고 잘리는 소리와 함께 남자의 고통에 찬 소리가 들려온다. 나는 그대로 달려가 그곳에 있는 것을 확인했다.

“아, 안 대여!”

들어간 순간, 온통 퍼져 있는 혈흔을 보고 고개를 돌렸다. 아무래도 팔 한쪽이 잘려 나간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 팔의 주인은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곧바로 도망친 것 같았다. 잘린 팔을 재생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 건가.

“므에에엙…….”

나는 빗장 문을 닫아 버렸다. 비릿한 혈향 때문에 자꾸 욕지기가 올라왔기 때문이었다.

잠시 뒤, 깔끔하게 얼마 정도의 토사물을 개워 낸(여기서도 과일 향이 올라와서 어이가 없었다) 나는 대강 그 혈흔이 튀고, 잘려 나간 팔이 있는 방을 향해 주문을 펼쳤다.

이것은 흑마법의 일종. 다크넷에서 구입한 서적을 통해 자력으로 습득한 것이었다. 물론 악마와 계약을 하지 않고 사용하는 것인지라, 진짜 흑마법사들과는 그 위력이 궤를 달리하겠지만, 이 정도는 할 수 있었다.

“옵바야…… 대가를 치르는 고시애오…… 븝미쟝을 훔쳐보다니여!”

무슨 연유에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좋은 이유 때문은 아닐 것이었다. 최소한 나 혹은 내 일행들에게 신변의 위협을 가할 생각이 있는 ‘빌런’이 한 짓일 터였다. 그렇다면 제대로 엿을 먹여 줘야겠지.

내가 펼친 것은 가벼운 저주였다. 실제로 사람에게 사용한다고 하더라도, 크게 문제가 남지 않을 만한 저주. 하지만 저 팔의 주인은 다시 팔을 사용할 수 없을 것이었다. 저 팔을 붙이지 않고 새로 팔을 재생시킨다고 하더라도. 이래서 흑마법이 무서운 것이었다. 지금쯤이면 그 본인도 알아차렸겠지. 퍼밀리어를 다룰 수 있는 주술사 내지는 흑마법사라면 모를 수가 없다.

“븝미쟝을 건들면 아주 븝되는 고애오…….”

*    *    *

“허어억…… 그 씨발련…… 으윽…….”

산천회에 소속된 흑마법사, 레이지는 분노 섞인 욕설을 마구 내뱉었다. 일본에서 20년을 거주하는 동안 거의 잊었다고 생각한 모국어가 절로 튀어나올 정도로 그의 고통은 상당했다.

“저년이 무슨 생도야! 씨발, 구라도 정도껏 쳐야지.”

레이지는 아까 전의 상황을 떠올렸다. 어떻게 안 것인지 모르겠지만, 단신으로 은신처에 찾아온 쥐방울만 한 여자애. 이번 감시의 목적이었던 그녀가 제 발로 기어 들어온 것에 대해 레이지는 웃었다. 이목을 집중시킬 필요가 없다며, 납치와 같은 행동은 하지 말라고 주의를 받았지만, 잠재의식을 심는다든가 하는 행위는 가능했다.

또 상당히 얼굴도 반반했으니, 잠시 가지고 놀아도 상관없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능력이 상상을 초월했다.

아무리 방심을 했다지만, 최소한 자신보다는 위다. 레이지는 이를 바득 갈았다. 일본 내에서 꽤나 전도유망하다고 이야기가 나오던 신입 히어로들. 갓 아카데미에서 졸업한 졸업반 히어로 13명을 동시에 상대해 몰살시켜 본 경험도 있었다. 하지만 조금 전 마주친 17살, 채 성인도 되지 않은 자그마한 소녀는 그 궤를 달리했다.

에어 슬래시. 방금 자신이 맞은 것이 공격성이 거세되었다고 이야기된 풍계 마법이 맞는가?

반사적으로 펼쳐낸 실드를 종잇장처럼 갈라 버린 그 바람의 칼날은, 단번에 그의 오른쪽 팔을 앗아가 버렸다.

“그년, 죽여 버리겠어…….”

레이지는 붉은 안광을 빛내며 그렇게 다짐했다. 그러면서 자신에게 이 의뢰를 맡긴 산천회의 상부에게 전화를 걸었다.

―무슨 일인가.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태평한 목소리에 울분이 치밀었다. 그는 곧바로 소리를 빽 질렀다.

“무슨 일? 씨발. 나한테 이런 좆같은 일을 시키고 무슨 일이냐는 말이 나오나?”

―……무언가 잘못되었던가. 하지만 그렇다면 이렇게 내게 화를 낼 일이 아니지. 되려 문책을 당해야 할 사안인데.

“문책? 염병을 떨고 있네. 일개 생도 감시라면서 이빨을 털었던 게 누구였지? 6위계급 마법을 무영창으로 발사해 버리는 괴물이 무슨 생도…….”

―불만이 있으면 직접 찾아와서 이야기하도록. 임무에서 지원 이외의 다른 일에 대해서는 유선으로 할 필요가 없으니까. 실패 보고를 정식으로 하고 나서 이야기해.

뚜, 뚜, 뚜.

이내 끊겨 버리는 전화에, 레이지는 허탈한 웃음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이놈들은 항상 이런 식이지.

그러면서 자신의 잘려 나간 팔을 바라봤다.

당장에 팔을 회수하고 뭐고, 도망치지 않으면 죽는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팔을 가지고 도망치지 못했는데 아무래도 그게 큰 실책이었던 것 같다.

무참하게 뼈와 살을 짓이겨 버린 바람의 칼날. 이걸 생으로 재생하려면 적어도 1년 반 이상은 소요될 것이었다. 그동안 산천회가 기다려 줄까? 레이지는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 없었다.

젠장, 이번 한 번으로 바로 은퇴인가…… 뒷맛이 씁쓸했다. 레이지는 이내 한쪽 팔로 연초를 물고, 이내 불을 붙였다. 폐부를 향해 연기가 들어오며 머리가 개운해지던 그 순간이었다.

“어억?”

등허리를 타고 흐르는 찌릿한 느낌. 그는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설마, 이 느낌은.

“장난쳐? 흑마법?”

잘려 나간 팔의 단면이 시커멓게 죽어 가고 있었다. 이것은 저주가 걸렸다는 증거. 레이지는 오싹함에 주변을 둘러봤다. 혹시나 쫓아오고 있는 것은 아닌지.

“…….”

파각!

그는 아무 말 없이 그대로 전화기를 땅에 던져 버렸다.

그러고는 자신이 낼 수 있는 최대한의 속도로 도망쳤다.

당장에 이번 목표물이었던 그 여자애가, 자신을 죽여 버릴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앞으로 한쪽 팔을 쓰지 못하게 되었다는 사실 따위는 중요한 게 아니었다.

‘인생 교훈 제대로 얻고 가는군.’

그는 씁쓸하게 웃으며 이내 산천회의 부름도 무시한 채 잠적해 버렸다.

이 뒤로, 레이지는 이따금 어린 여학생들을 보면 공포감이 들게 되었다.

*    *    *

“밥이 너모 마싯는 고애오!”

“뭘 새삼스럽게. 어제도 똑같이 먹었으면서.”

“더 맛있을 수도 있지. 왜 먹는데 뭐라고 그래. 평소에 뭐 잘 먹지도 않는 애한테.”

“누가 보면 니가 엄마인 줄 알겠다.”

“그래? 별말을 다…….”

“칭찬 아니니까, 닥쳐.”

아침 밥상머리에서부터 싸우는 일리아와 나츠키. 하지만 나는 그 모습을 보고서도 그저 흐뭇할 뿐이었다. 앓던 이가 하나 빠진 기분이었으니까.

이후에 무언가 추가로 위협이 가해질 가능성에 대해서는 회의적이었다. 애초에 타나카 가문에서 이 일을 직접 알았다면 그 빌런 집단이 당장에 멸해지지 않았을까. 이 정도 경고만으로도 앞으로 일본에서 더 이상 위협이 가해지지는 않을 것이었다.

그럼, 이제 여행만 즐기면 되겠지.

거기에 든든한 수확까지 얻기도 했으니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었다.

메인 스토리의 빌런에게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2600BP.

거의 오르지 않던 BP가 단번에 오른 걸 보면, 꽤나 중요한 인물이었던 것 같다.

이제는 알 바 아니지만.

“밥이 달아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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