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9화. 븝스타그램!
일본 여행을 결국 무사히 마치고 온 뒤, 사흘이 지난 시점에서 한 통의 연락이 왔다. 연금술의 집과 김수혁에게 맡긴 그 메카의 개발을 절반 이상 진척시켰다는 것이다.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나는 바로 한달음에 달려갔다. 과연 어떤 모습일지 상당히 기대되었다.
“호에에에에…….”
나는 시험용으로 만들었다는 갑주를 구경하고 있다.
중심부에 밝게 빛나는 코어, 그 옆으로 확장된 갑주의 모습. 팔다리의 부품은 따로 전시되어 있지만, 실제로 입을 때는 자동으로 착용된다고 한다.
“완력 같은 경우에는 일단 켈락서스, 팔 네 개 달린 17등급 몬스터 아시죠? 걔랑 비슷한 거로 측정이 됐고…… 기동력도 대충 그 등급 몬스터랑 비슷할 거예요. 아직 미완성이라서 좀 약하긴 해요. 마력 소모도 심하고.”
“그래도 나름 쓸 만할 거야. 자동 부착기능도 있어서 입기도 쉬울 거고.”
“이쁘잖아 그리구…… 흐흐.”
옆에서 강 씨 자매들이 재잘재잘 설명을 한다. 맏이는 아직도 내게 존대를 하고는 있지만, 그래도 많이 편해진 것 같았다. 요즘 들어 그녀들은 이제 내가 진짜 후원자라는 사실을 슬슬 눈치채고 있는 모양이었다.
조만간 밝혀도 상관은 없겠지. 애초에 가상의 인물을 내세운 이유가 그녀들의 의심을 피하기 위해서였으니까. 지금에서야 줄 거 다 줬는데 의심할 게 뭐가 있겠는가.
“한 번 입어 볼래?”
“호에에에, 그래여!”
뭔가 가슴이 두근거린다.
나는 입는 형식인, 코어가 매달린 흉갑을 입었다. 일부러 그렇게 한 것인지, 생각보다 무겁지는 않았다.
“헤으으윽…… 힘든 고애오…….”
물론 그게 ‘생각보다’ 무겁지 않다는 뜻이지, 아예 무겁지 않다는 뜻은 아니었다. 조금 무거운 책가방 수준의 무게였지만, 내게는 너무나 버거웠다.
하지만 이어 코어가 활성화되고, 파츠들이 모두 장착되자 이내 그 무게감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호에에에! 븝미쟝 커진 고애오!”
쑥 솟아오르는 시야에, 나는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거의 슈트 형식이라 커져봤자, 성인 남성 수준의 크기였지만.
그럼에도 뭔가 가슴이 벅차올랐다. 이걸로 그래도 내 몸을 지킬 만한 수단이 하나 더 생긴 것이었다.
조금 아쉬운 건 탑승한 채로는 마법을 사용할 수 없다는 것. 하지만 애초에 이걸 장착한 채로 마법을 쓰고 다닐 생각 따위는 없었다. 그냥 어디까지나 이건 보조 수준이지.
촤르르륵.
내가 코어를 비활성화시키자, 주변에 가지런히 파츠들이 압축되어 놓인다. 흉갑을 벗어 내고 만족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너모 잘 만들어 준 고애오…….”
“그래? 마음에 들면 다행이고.”
“우리 이거 만드느라 꽤 고생했어. 언니가 제일 고생했거든.”
“……받은 만큼 일한 거예요.”
부끄러운지 얼굴을 붉히는 첫째, 강지연.
세 자매 중에서 제일 숫기가 없는 게 그녀가 아닐까 싶었다. 매사 항상 당당하고 똑 부러지는 척은 다 하면서 제일 허당이기도 했고.
나는 프로토타입으로 나온 이 갑주를 가져가기로 했다. 그러면서, 아직 책정되지 않은 시장가를 미리 불렀다.
“일단은 25억만 낼 게여 언나야들…….”
“이십…… 뭐?”
“너무 적은 고애오?”
“아니, 아…… 적어? 어…… 하하…….”
할 말을 잃은 듯 나를 바라보는 자매들의 시선에, 나는 배시시 웃었다.
“언냐야들 좀 쉬기도 하고 그러라구여. 여비 겸. 그러케 자꾸 일하며는 쓰러지는 고애오!”
대강 저 갑주의 가치는 20억가량. 나중에 저것보다 훨씬 개선된 성능으로 나올 완성형의 경우에는 얼마가 될지 모르겠지만, 아마 서너 배는 더 쳐줘야겠지.
하지만 지금 당장에야 같은 물건이 하나도 없으니, 만약에 경매장에라도 내놓으면 40억~50억은 훌쩍 넘을 것이었다. 그러니 하나도 아깝지 않은 돈이다.
물론 그런 계산이 이들 머릿속에 있을 리가 없었고, 그녀들은 내가 무슨 돈이 솟아나는 화수분이라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어이없어하는 중이었다.
사실, 그 비슷한 거 몇 개는 가지고 있긴 한데…… 나는 웃으면서 갑주들을 지팡이 위에 얹었다.
“그러며는 븝미쟝 가 볼게여! 언냐야들 꼭 쉬는 고애오! 안 쉬며는 븝미쟝 화나여!”
내 말에 강재연과 강미연, 두 동생의 얼굴이 환해졌다. 아무리 연구가 좋다지만 몇 달 째 연구실에서 폐인처럼 일만 하는 게 사람 사는 것처럼 느껴질 리가 없었다.
다만 첫째는 불만이 가득한 얼굴이었다. 아무래도 연구를 더 하고 싶은 모양.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막상 휴식을 취하면, 그녀가 제일 좋아할 것이란걸.
* * *
매일같이 일하고, 수련하고, 무언가를 만들고 하는 일상.
그 사이의 꿀맛 같은 잠깐의 휴식시간에 나는 휴대폰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그래, 이게 극락이지. 인터넷을 뒤적거리며 음침하게 호에에, 하며 웃고 있던 나는 이내 눈에 띄는 무언가를 볼 수 있었다.
“이게 몬가여?”
펜타곤의 한 생도. 나도 지나가다가 몇 번쯤 본 것 같은 생도 한 명이 sns를 통해 생방송을 하고 있는 광경이었다.
본래 나도 비교적 나이가 많지는 않았으나, 이런 여타 문물에 대해서는 상당히 문외한이었다. 디지털 세대치고는 상당히 아날로그적이었단 말이다.
그런고로 이런 라이브 방송이 상당히 신기했다.
내 머릿속의 개인 방송이란 이런 게 아닌데 말이지.
“아, 여러분. 필드 내부 촬영은 금지되어 있거든요? 여기는 등급 낮은 필드라 허가받으면 해 주긴 할 건데…… 너무 오래 걸리니까. 공략 마치고 나면 다시 켤게요. 오늘은 여기까지 봐요.”
생도의 인사와 함께, ‘아쉽다’ ‘무사히 다녀와라’ 하는 등의 채팅이 올라온다.
뭔가 재밌어 보이는데. 내 기억에 이 생도는 그리 실력이 뛰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반반한 외모와 선해 보이는 인상 덕분인지, 인기는 펜타곤 내에서도 상당히 좋은 편인 것 같았다.
나중에 그냥 반 연예인처럼 되려나, 얘도.
히어로 중에서는 연예 활동을 주 업으로 삼는 이들도 꽤나 많았다.
왜인지는 알 수 없지만, 대체로 히어로 중에는 선남선녀가 많기도 했고, 이능을 사용하는 사람이라는 게 일반인들에게는 신기함과 동경의 대상이 되는 것이었으니까.
물론 본분에 충실하지 않다고 욕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대체로 중장년층이었고 젊은 세대는 그런 문화를 즐겁게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
나도 별로 나쁘게 생각하지는 않았다. 뭐, 그럴 수도 있는 거겠지. 다만 가끔 그런 연예계 쪽에서 활동하는 히어로 중에서, 자기가 마치 상위 히어로가 된 것처럼 인기를 업고 거드럭대는 이들이 있다는 이야기에 눈살을 찌푸리기는 했다.
이쪽 세계에서 제대로 된 히어로들은 굉장히 숭고하다. 그 의지만으로도 칭찬할 여지가 너무나 넘쳐난다. 나 같은 평범한 이들은 가지지 못할법한 사상을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듯이 가진 채 살아가는 이들. 그들을 무시하는 건 사람이 덜된 거겠지.
“심심하긴 한 고애오…….”
잠시간 뒹굴뒹굴하던 나는, 나도 저런 거나 한번 해 볼까 하는 생각에 잠시간 고민했다. 하지만 생각을 접었다.
“아가야는 너모 부끄러운고애오…….”
핸드폰을 바라보고 하와와, 하면서 예의 그 귀엽다느니 하는 채팅을 보고 있으라고? 그럴 바에는 차라리 죽고 말지. 다만 관심이 가는 것은 sns 쪽이었다. 이건 사진 위주로 일상을 공유하는 건가. 이 정도는 해도 되지 않을까 싶었다.
나는 곧바로 계정을 만들었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꾸물거려도 금방 만들 수 있었다. 그리고 만들자마자 올라오는 익숙한 사람들의 계정. 일리아와 나츠키, 신하연의 것이었다. 그 외에도 장선우나 이안, 강연우 같은 이들도 있었고 심지어는 교관들도 있었다.
“뭐라고 해 놨을까여…….”
나는 개중 궁금한 교관의 계정을 들어가 봤다. 아마…… 이 사람이 미술 담당이었지? 특성이 그림을 매개로 해서 마법을 사용 가능한 사람인지라, 미술 담당 교관으로 배치되었다. 기억상 되게 수수한 이미지였던 것 같은데…….
“호에에에에!”
계정에 들어가자마자, 가장 먼저 눈에 띄는 비키니 사진. 몸매가 착 드러나는 여러 섹시 컨셉 의상의 사진들이 널려 있었다. 나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뒤로 가기를 눌렀다.
“헤으응…….”
맨날 정복만 입고 다니니까 저런 모습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나는 침을 꿀꺽 삼키며, 다른 계정들도 둘러봤다. 아쉽게도(?) 대부분은 평범한 일상 사진들이 대부분이었다. 생도들의 경우에는 펜타곤에서의 생활을 찍어 올린 것이 많은 관심을 받고 있었다.
“언냐야…… 이건 왜 올린 고애오…….”
특히, 일리아의 경우에는 내 사진들이 꽤 많았다. 개중에는 곯아떨어진 내 모습을 찍어 올린 것도 있었는데 얼굴이 화끈거렸다. 몇 번 내 동의를 구하고 올리는데 기억이 나긴 하는데, 사진 내용도 제대로 보지 않은데 실수였던 것 같다.
펜타곤 돌아가면, 한 소리 해야지.
입을 삐쭉 내민 채 탐방을 하던 나는 이어 시간을 보고 화들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호에에…… 시간 씨…… 어디……?”
잠시 봤다고 생각했는데, 거의 1시간이 넘게 지나가 있다. 이게 sns의 무서움인가. 나는 새삼 두려움에 떨며, 내가 올릴 첫 게시글을 선택했다. 이건 좀 그렇고, 이것도 좀 그렇고…….
“하와와와…….”
그리고, 간단한 문장 하나를 썼다. 원래 내 말투로 하면 이질감이 들 테니, ‘븝미쟝이애오, 모두 븝하!’ 하고 이미지에 맞게 썼다. 원래 텍스트로 이렇게 쓰던 건 익숙하다.
“잠이나 자야겠어여…….”
나는 이내 침대에 벌렁 드러눕고 잠을 잤다.
코오, 하는 소리와 함께 세상에 멀어져 간다.
띠리리리.
“호에?”
얼마나 지났을까. 단조로운 벨 소리에 잠이 깬 나는 눈을 비비적거리며 일어났다. 누가 전화를 한 거지? 확인한 결과 전화기에 떠 있는 사람의 정체는 일리아였다.
“언냐야…… 으음…… 무슨 일인 고시야요?”
“다나, 너 sns 시작했어?”
“호에에, 벌써 본 고애오?”
벌써 그게 퍼졌나. 나는 해 봤자 몇 명 보고 말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꽤나 관심이 몰린 것 같았다. 아니면 일리아가 매일같이 내가 계정을 만들었나 확인했거나.
“아니, 그런데…… 너 사진 제대로 올린 거 맞아?”
“왜여? 그냥 밥 먹는 사진 올렸는대여…….”
“그냥 밥 먹는 사진……은 아니던데.”
이게 무슨 소리야.
나는 저번에, 일리아와 나츠키랑 함께 찍었던 저녁 식사 때의 사진을 올렸다. 그게 제일 무난하기도 하고 뭔가 팔로우를 올리려면 그렇게 해야 할 것 같아서.
하지만 일리아의 반응을 보니 무언가 불안감이 엄습한다. 나는 곧바로 폰을 확인했다. 그리고 올라온 사진을 보고 기함할 수밖에 없었다.
“호에에에엑!”
그것은, 저번에 김수혁과 라이카에게 받은 장비를 착용한 사진. 기존보다 훨씬 노출도가 떨어지는 것이었으나, 그 커플에게 있어 수위는 일반적인 기준과 궤를 달리하는 것이었다.
벌써 조회 수가 만 자리를 넘어갔고, 팔로우 수도 3,000명이 넘은 상태였다. 지금에 와서 사진을 내려 봤자, 아무 의미가 없다는 걸 깨달은 나는 그냥, 만사가 귀찮아졌다.
“아, 몰라여…….”
씨발.
나는 그냥 그대로 다시 머리를 뉘었다.
다음 날 인터넷 기사로 올라온 내 사진들을 보고 조금 후회하긴 했지만, 뭐 어쩌겠는가. 그냥 명성도나 좀 올렸다고 생각해야지.
그나저나 어룡 잡았을 때보다 더 많이 올랐네.
이건 좀 어이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