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화. 연구소애오!
J는 언젠가부터 ‘엄마’와 만나는것이 조금 두려워졌다. 그것은 실제 그녀의 모친을 말하는것이 아닌, 그녀가 속한 집단의 장을 이르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그녀는 지금 심호흡을 하고 있었다.
애초에 두려워할 대상이 아니잖아? 내가 왜 이러는건지, 참.
그렇게 되뇌이면서도 공포는 여전히 가시지 않았다. 그녀 스스로도 이해할 수가 없는 일이었다. 과거와 지금, ‘엄마’가 J에게 대하는 태도가 다른것도 아니었으니까.
똑똑.
“엄마…… 저 들어갈게요.”
슬쩍, 문을 밀고 들어간 J는 방 안의 기다란 책상에서 여유롭게 책을 보고있는 그녀를 바라봤다. 숨이 막히는듯한 기분이었지만 내색하지는 않았다. 여느때와 같이 행동하기위해 노력했다.
“왔니?”
책을 접고, 웃으며 일어나는 그녀. 그 어느때보다도 상냥하고 나긋한 어투, 표정, 말씨. 하지만 그에 대비하여 J의 공포심은 더욱 커져만갔다. 심장이 맥동하고 혈류의 흐름이 빨라지기 시작했다. 호흡이 가파지며 점점 서있는것조차 힘들어진다. 일종의 공황장애가 아닐까 싶을정도로 심한 증상이었다.
“어디 아픈거 아니야? 땀을 막 흘리고…….”
“아니에요. 엄마. 하아……그러니까…….”
윙.
J의 귓가에서 이명이 들려왔다. 머릿속이 하얘지는듯한 기분. 마치 그녀가 6살때, 그 어린 나이에 집을 뛰쳐나왔을때 느꼈던 그 감각과 일체 다를바가 없는…….
“자은아.”
흐읍.
한 차례 호흡이 멎고, J는 눈 앞의 그녀를 바라봤다. 과거의 광경이 겹쳐졌다. 유난히도 비가 많이 내렸던 날. 마치 기다리고 있었던것처럼, 길바닥에서 덜덜 떨고 있던 자신을 마주한 그녀. 그때와 같이 손을 뻗어온다. 그 손에서는 그때와 같은 온기가 느껴진다. 홀린듯이 그 온기에 이끌려 다가가게 된다. 그리고…….
“흐으윽…….”
J는 머릿속에서 난립하는 기억들에 고개를 저었다. 무언가 자꾸만 위화감이 들었다. 분명히 ‘엄마’에게는 고마운 기억들 뿐이었을텐데. 요즘 들어서 계속해서 떠오르는 편린들은 무엇인가 그것과는 다른…….
“하으으…….”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의심은 지워진다. 단지 의심뿐만이 아니라 현재의 J. 그녀 자신의 기억조차도 옅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안 좋은 기억들은 모두 잊어버리고.”
―안 좋은 기억들은 모두 잊어버리고
“나랑 같이 새 삶을 살자.”
―나랑 같이 새 삶을 살자.
J는 홀린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이내 그녀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마치 아이처럼 그녀에게 안기기 위하여.
“언냐야!”
하지만, 이어 들어온 누군가의 목소리에 의해 움직임이 우뚝 멎었다. 이어 J의 머릿속에서 안개가 걷히듯, 현재의 기억들이 떠올랐다. 이 목소리는. 분명 내가 여기 들어온 이유.
“븝미쟝만 빼고 머하는고애오! 끼워주는고애오…….”
“……끼워줘?”
‘엄마’의 어이없다는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당황한듯한 그녀의 얼굴이 어딘가 조금 웃겨서, J는 엷게 미소를 지었다.
자각하지 못했지만, 근 1년 이내에 그녀의 앞에서 보인 첫 웃음이었다.
* * *
“호에에에, 언냐야는 오디간곤가여?”
“그 아이도 다 컸으니 자기 알아서 하겠죠. 제가 상관할 바는 아닌 것 같네요.”
눈앞의 여성, 연구소장은 무언가 언짢은듯이 말했다. 하기야 그럴만도 하겠지. 그녀에게 나는 그저 불청객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테니까.
내가 지금까지 본 여성중에, 가장 키가 큰 사람은 라이카였다. 기본적으로 수인족이니만큼 평균 신장이 큰 라이칸스로프. 그 때문에 그녀는 웬만한 남자들 수준의 키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눈앞의 연구소장은 그녀보다도 한 뼘정도가 더 컸다. 단지 키 뿐만이 아니라 전체적으로 모두 다 컸다. 이를테면…….
“헤으응…….”
아니, 시발 이게 아니고.
나는 잠시 풀어진 얼굴 표정을 수습하고, 그녀를 노려봤다.
통칭 연구소장. 그녀의 실제 이름과 나이는 원작에서도 끝까지 밝혀지지 않는다. 리에나라는 이름의 30대 박사로 스토리 중후반에 대중들의 앞에 나서지만, 그것은 실제 그녀의 신분이 아니다. 애초에 이 ‘연구소’ 자체가 설립된지 30년이 지난곳인데…….
“그래서, 여기는 무슨 일로 오신건가요. 이미 자은이한테 이야기는 들었어요.”
자은이라면, J의 본명이었다. 굳이 그렇게 부를 필요가 없는데도 본명을 이야기하는것은, 친분을 과시하려는것인가. 뭔가 되게 유치한 구석이 있다. 외견이야 20대후반 정도지만 추정나이는 60살을 훌쩍 넘어가는 할머니가…….
“그냥, 할머니한테 무러보고 시픈게 있어서여…….”
“할……머니?”
연구소장은 어이없다는듯이 말했다. 그녀가 살면서 이런 호칭으로 언제 불려보았겠는가. 어이없는것이 당연했다. 하지만 이내 연구소장은 내 말에 담긴 뜻을 알아차린 듯 했다.
“……너 누구야.”
싸늘한 눈빛을 한 채로 나를 바라보는 그녀. 나는 오싹한 한기가 덮쳐오는 감각을 느껴야만 했다. 분명 그녀 본신의 무력은 그리 강하지 않지만, 이런 환술에 관하여 그녀는 세계에서 수위를 다투는 수준일것이었다.
다만, 미안하지만 나는 환술이 통하지 않는다. 특정한 자극에 대해서는 굉장히 약하지만 그럼에도 내 정신력은 이미 일반적인 히어로들의 범주를 뛰어넘었다. 재앙급의 환수와 계약하고, 4대정령을 모두 다루다보니 자연히 그리 된 것이었다.
“글쎄여……혹시 할머니라 깜빡깜빡 하는건가여? 아까 븝미쟝이라고 했는데여.”
“말을 굉장히 예쁘게 하는구나.”
“칭찬 고마운고시애오! 븝미쟝은 착한 아가야애오…….”
뭐 이런년이 다 있나, 하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연구소장. 그녀 생애에서도 나같은 사람은 처음 봤을 것이다. 나 또한 매일매일이 새롭게 좆같은데 하물며 그녀는 어떻겠는가.
“……잔말 말고 목적이나 말해. 여기까지 다 알고 왔으면 뭔가 원하는 바가 있겠지. 육성프로젝트 관련해선 이미 DRK쪽이랑 얘기를 했고. 발할라의 집회쪽인가? 키메라 이야기라면 좀 더 기다려야 할 텐데.”
연구소장은 빨리 이 시간을 끝내고 싶다는듯이, 줄줄 이야기를 뱉었다. 물론 나도 다 알고 있는 내용이기는 했다. 그래도 이렇게 대놓고 말하는건 조금 경솔하지 않나?
‘연구소’는 말 그대로 연구를 하는 곳이었다. 그 연구라는게 매드사이언티스트에 가까운 이 여자에 의해 이루어지는게 문제일 뿐.
대표적인 연구로는 비능력자 혹은 능력자로 각성하기 이전의 어린아이들을 대상으로, 지속적인 마력의 투여와 인체개조에 가까운 시술과 단련을 통해 병기로서 키워내는 ‘육성’ 프로젝트가 있었다.
J같은 경우에도 이 프로젝트의 대상자였다. 다만 그녀는 시술 쪽은 최소화하긴 했다. 기본적으로 타고난 육체 자체가 뛰어난데다가, 거부가 너무 심했으니까. 대신 저 여자가 J에게 공들인것은 세뇌작업이었다. 그녀가 은인이라는 세뇌를 계속해서 걸어온 것이다. 실상은 그저 납치범에 불과한데도.
이 연구소의 빌런들이 모두 이 간악한 여자를 ‘엄마’라고 부르며 따르는 이유 또한 같았다. 그들은 대부분 어렸을 적에 납치되었다. 그리고 J와 같은 세뇌를 유년시절 지속적으로 받아왔다. 아직 정신이 여물지 않은 어렸을 적에 각인된 세뇌는 커서도 웬만하면 풀리지 않기에, 그 뒤로도 이 여자의 수족으로서 행동하는 것이다.
이것이 연구소장의 무서운 점이었다.
강제로 자아를 빼앗고, 그저 꼭두각시 인형으로서 사람들을 다루는것이 아닌 진심으로 믿고 따르도록 세뇌한 이들. 모든 사실이 만천하에 공개된 이후에도, 연구소의 7할 이상이 그녀의 밑에 남았다고 했었나…….
“빨리 말해. 오늘 일정도 많단 말이야. 아니면 당장 애들 불러서 쫓아낼테니까…….”
내가 가만히있자, 되려 저쪽에서 조급해진듯이 신경지를 부리기 시작했다. 히스테릭한 그 모습에 나는 어깨를 한 차례 으쓱했다.
“그러던져.”
“……알렉스. 지금 당장 6층으로…….”
“할머니, 븝미쟝이 말하고 시픈건 하나에여.”
나는 당장에라도 J를 이곳에서 빼오고 싶은 마음이었다. 하지만 그에는 몇 가지 장애가 있었다. 지금 이 여자의 반대를 제외하고서라도 여러 문제가 얽힌, 복잡한 사정들이 있었다. 육성 프로젝트는 연구소장의 개인 권한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었으니까.
“J언냐야, 건들지 마라여.”
그러니까 지금은 간단히 경고만 한다. 아무래도 최근 들어서 세뇌가 점점 풀리는 바람에 정신적으로 고통을 주는 방법을 사용하는것 같은데, 그 꼴을 내가 가만히 보고있을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녀에게는 이것저것 도움을 받았다. 그리고 꽤나 의지가 되는 아군이기도 했고. 이쪽에 뺏기는건 말도 안 되지.
“건들지 말라니 뭘……!”
“알자나여. 시치미떼지 마는고애오……마나씨!”
나는 짐짓, 위압적인 모습을 보이려 마력을 끌어올렸다. 내 마력의 총량은 익히 말했지만 동급은 물론이고 그 상위의 히어로들마저 뛰어넘는다. 거기에 더해 몸에 둘둘 두르고있는 고급 아티펙트와 장비들까지. 순간적으로 폭발시켜보일 수 있는 마력은 굉장히 거대했다.
콰앙!
순간적인 폭발음과 함께, 주변으로 튕겨나가는 가구들. 마력이 내부에서 외부로 사출되는 과정에서 일어난 반동만 하더라도 강한 물리력을 지니고 있었다.
사르륵, 흩날리는 머리칼. 나는 얼빠진 모습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연구소장을 바라보며, 내 위협이 제대로 먹힌줄로 알고 뿌듯해했다. 하지만 그것이 착각이라는걸 알기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대상 ‘???’에게 특성이 적용되었습니다!
“호에?”
눈 앞에 떠오르는 문구와, 반짝거리는 연구소장의 눈동자. 그리고 상기된 양 볼까지.
나는 무언가 잘못되었다는것을 깨달았다.
“너……내꺼하자.”
안 해 시발.
* * *
흑사회.
일반인들에게는 의외로 그리 잘 알려지지 않은 집단이나, 고위 히어로들 사이에서는 제 1순위 척살 대상인 빌런 집단. 그곳의 본부 건물에 한 사람이 걸어들어가고 있었다.
검은색 로브를 입고 있는 그는, 꽤나 경비가 삼엄한 흑사회 본부 건물 입구에서부터 상층에 들어서기까지 아무런 제제를 받지 않았다. 그 어떠한 신분의 확인도 없었는데, 그것은 그를 기다리는 한 간부의 명령 때문이었다.
“어, 왔나?”
“……항상 예의라고는 없군.”
로브의 남자를, 반갑다는듯이 손을 들어 맞이하는 흑사회의 간부. 아무래도 이 관계가 꽤나 오래 지속된듯이 익숙한 모습이었다.
“너네들 말대로면 우리들은 인간이길 포기한 말종들인데, 예의를 굳이 차려야 할 필요가 있나?”
“그도 그렇군.”
“그리고 너는 그 말종들이랑 뒷거래를 하는 더한 말종이고 말이지.”
“풋, 그것도 그렇지.”
남자는 웃음을 흘리며, 이내 안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었다. 그것은 두꺼운 서류철이었는데, 그것을 본 간부는 눈 한쪽을 찡그렸다.
“씨발, 왜 이렇게 많아? 하여간 존나 단순한 얘기도 늘려쓰길 좋아한다니까.”
“하루면 족히 읽을테니까 봐둬. 그럼 약속된 물건은 다음주에 수령받을수 있는건가?”
“그래, 직접 오기 뭣 하면 사람 보내라고. 검선(劍仙).”
“……쯧.”
굳이 자신의 이명을 부르는 간부의 목소리에, 검선은 고개를 저었다.
꼭 저 새끼는 항상 민감한 곳을 건드린다. 이래서 거래하기가 싫었던건데.
“그러지.”
하지만 관계를 당장에 끊을수도 없는 노릇. 그는 그저 담담히 말하며 흑사회 건물을 나섰다. 한국 히어로 랭킹 4위 검선. 그는 흑사회와 내통하고 있었다. 그것은 세상에 알려져선 안될 거대한 비밀을 밝히는 첫 단추.
“납븐옵바야애오…….”
그것은, 단 한 사람에 의해 포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