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화. 검선 옵바야!
검선이 흑사회의 건물에서 나온다.
그것도 들어갈때는 가지고 있던 서류철을 나올때는 가지지 않은 채로. 분명 히어로 협회의 것이 분명한데…….
“딱걸린고시애오…….”
만약에 저 광경을 나 말고 다른사람이 봤다면 기함을 토했겠지. 한국에서 제일검이라고 불리는 검선이 빌런과 내통하고 있는 모습이었으니까. 만약에 그를 동경하고 있는 일리아가 이 사실을 알았다면 당장에 칼을 쥐고 뛰쳐나가 저놈을 베어버리려 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물론 베어지는건 일리아쪽이겠지만…….
나는 저놈이 내통할거란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꽤나 중요한 에피소드인지라 잊을래야 잊을수가 없었으니까. 오늘 이렇게 외부에는 알려지지 않은 흑사회의 한국지부 건물에서, 그를 본 것도 우연이 아니라는 이야기였다.
쯧.
나는 속으로 혀를 찼다.
실상 뒷사정을 알고보면 저 검선이라는 녀석도 나름의 이유가 있어 저런 행동을 하는 것이었다. 빼내는 기밀이란것도 실상 1급에서 특급에 준하는것들은 제외하고, 최대한 곁가지 정보들만을 갖다주고 있었고.
물론 사정이고 뭐고, 비교적 낮은 보안등급의 기밀만 빼낸다고 하더라도 배신자임은 확실했다. 다만 내가 매몰차게 대하기에는 마음 한 구석이 찔릴 뿐이지.
“하와와와…….”
그렇기에 나는 검선의 행동을 뒤바꿔놓을 것이다. 이 놈의 행각이 밝혀지는건 대략 지금으로부터 3년정도 뒤. 그때 아마 전국이 발칵 뒤집어졌다고 했었나. 검선도 그런 결과를 예상하지 못한건 아니었을터다. 다만 그 ‘어쩔 수 없는 사정’ 때문에 지속적으로 이런 행동을 해왔던것일 테고.
그렇다면 그 어쩔 수 없는 사정이란걸, 내가 해결해주면 그만이거든.
나는 웃으면서, 이수정에게 문자를 보냈다. 확인한 정보와 찍어놓은 사진들을 전송하기 위함이었다.
[이거 혹시라도 흑영문에 처 올리면 그날로 니 제삿날이니까 알아서 해. 뒤지기 싫으면 처신 잘하라고.]
물론 약간의 협박을 곁들였다. 이수정, 이 미친년은 자기 이득이 달린 일이라면 눈이 까뒤집어진다. 계속해서 부려먹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협박과 공갈, 그리고 약간의 보상들이 필요했다. 그러고보니까 이수정이 뭘 좋아하더라? 가학당하는 취미가 있었다……그런 이야기가 나왔던 것 같은데.
“하와와…….”
그렇다면 사실 이렇게 대하는 것 자체가 포상이 아닐까.
나는 잠시간 혼란에 빠져야만 했다. 그러면 벌을 주려면 되려 잘해줘야 하는건가? 어느쪽이 맞는거야?
* * *
“참 다 좋은데 마리에여…….”
나는 머리를 싸매고 있었다.
그건 바로 연구소장 때문이었다.
그녀가 J를 내버려두라는 내 말을 듣지 않아서? 그런 이유가 아니었다. 되려 그녀는 굉장히 내 말을 잘 들었다.
“왜 제멋대로 그러나여 특성씨…….”
이전번에, 라이카의 아빠. 그러니까 라이칸스로프의 족장에게 특성이 적용된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특성이 해제되었다. 호감도가 최대가 되었다고 하는데, 솔직히 나로서는 그 체감을 전혀 하지 못했다. 라이카와 김수혁이 마을에서 쫓겨나가며 덩달아 나도 쫓겨나왔으니까.
사실 그러지 않았더라도 크게 체감하지는 못 했을 것 같긴 하지만.
그 성격 이상한 족장이 아무리 호감도가 올라봤자 얼마나 잘 대해주겠는가. 사실 그러니까 그렇게 금방 최대치에 도달한것일테고.
어쨌든 당시에는 특성이 꽤나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번에는 아무래도 좀 골머리를 싸매야만 할 것 같았다.
연구소장에게 적용된 특성. 그 쓸데없이 커다래서 사람의 눈을 현혹시키는 그 여자에게, 내 특성이 적용된 것이었다. 일전에도 알아챈것이지만 사람마다 ‘호감’을 느끼는 대상이 다르기에 그 각각의 이들이 내게 대하는 태도 또한 다르다.
일리아의 경우에는 나를 ‘귀여운 동생’으로 여겼고, J는 ‘소유하고 싶은것’의 느낌을 가졌다. 신하연의 경우에는 ‘무조건적인 애정의 대상’으로서 나를 바라봤었다.
그렇다면 연구소장은 나를 어떻게 바라봤을까. 그 대답은 너무나도 명확한 것이었다. 시발, 보나마나 ‘연구대상’ 내지는 ‘좋은 실험 표본’ 이겠지.
그 여자는 인간으로서의 감정이라는게 일부 결여되어있는 소시오패스였다. 호감을 가지는 대상이 없지는 않겠지만, 그게 일반적인 사람들의 기준이나 시선과는 많이 다를 것이 분명했다.
갑자기 누가 와서 날 납치해가도 이상할것이 하나 없었다.
그렇기에 지금 골머리를 앓는 것이었다. 물론 J를 따라 그 연구소에 들어갈때 이 정도 각오는 분명히 했지만서도…….
“언냐야.”
“응, 왜?”
“언냐야가 저 지켜줘야하는 고시애오…….”
“푸흐, 왜? 갑자기? 당연히 지켜줘야지. 근데 다나 네가 더 쎄서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네.”
……그것도 맞는 말이네.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1학년 2학기의 끝을 바라보고 있는 시점에서, 이 정도 무력을 가졌다면 웬만해선 두려울 게 없어야 맞는건데. 왜 이렇게 무서워해야 하는 사람들이 많은건지 모르겠다. 이번에 접촉하려고 하는 검선조차도 실상 세계관 최강중의 한 명이고…….
제기랄, 인생 막 사는거지 뭐.
나는 자조적인 웃음을 지었다.
“자, 2학기의 마지막 시험이니. 다들 기쁘지 않나? 왜들 그렇게 얼굴이 죽상이야?”
그때, 앞에서 교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째 타이밍이 맞아서 그런거지 시험 때문에 표정이 나빴던건 아니지만, 내 주변의 생도들은 실제로 다들 얼굴에 수심들이 가득했다.
일리아와 나, 그리고 다른 생도들이 앉아있는곳은 펜타곤 내에 마련된 테마던전중 하나인 ‘지옥관문’. 본래는 벌레들이 나오는 던전으로 배정이 되었으나, 일리아의 극렬한 반대 끝에 한 단계 난이도가 높은 이 던전으로 선택이 결정되었다.
일리아는 벌레만 보면 힘을 쓰질 못한다. 그건 저번 던전 탐사때도 분명히 확인할 수 있었던 사실이고, 또 저번 그 던전에서 벌어진 일 때문에 트라우마가 더 깊어진 모양이었다. 나도 그걸 알고 있으니 팀장으로서 변경을 결정했다.
물론 자동으로 배정된 다른 팀원들은 반대 의사를 표했었다. 벌레테마 던전은 모두가 싫어하는 곳이긴 하나, 난이도가 한 단계 올라가는것보단 낫단 것이었다. 물론 내 ‘팀장’이라는 권력 앞에 속수무책이었지만.
“너네가 알아서 해라……제발……우리는 책임 없다…….”
뒤에서 저주걸듯이 말하는 한 생도의 목소리에 식은땀이 흘렀다. 실제로 일리아와 내 책임이 맞으니 뭐라 반박할것도 없었다.
그래, 책임지면 되지.
그럴 자신이 있으니 이런 일을 벌인거기도 하고.
“자, 그럼 시간이 다 됐으니 입장하고. 나올때 무사히 살아서 나와! 괜히 시험중에 죽으면 나 징계받는다?”
살벌한 경고를 실실 웃으면서 말하는 교관. 예전부터 생각한거지만, 펜타곤의 교관들은 죄다 싸이코패스임에 틀림이 없었다.
일행은 모두 던전 포탈에 우겨넣어졌고, 이내 눈 앞에 던전의 풍경이 펼쳐졌다.
용암이 들끓는 대지 위에 아스라히 놓여진 외길. 그 외길을 막고 서 있는것은 14등급의 대형몬스터였다.
“와, 나 시팔. 이러니까 그냥 벌레던전 가자고 했잖아.”
질린다는듯이 말하는 한 생도. 14등급 대형 몬스터라면, 웬만한 중위권 생도 서넛이 모여야만 겨우 제압할 수 있을법한 녀석이었다. 그게 초입부터 있다면 더 들어갔을때 펼쳐질 광경은 명확한 것이었다.
“그만 투덜거리는고애오.”
“뭐?”
“아이 차암. 옵바야. 그냥 두고보라니까여.”
물론 나는 그에 겁을 먹지 않았다. 되려 한심한 눈으로 뒤의 생도를 바라봤다. 이 녀석, 내가 기억하기로는 중위권 생도 주제에 놀러다니느라 포인트를 다 써서 이곳저곳 빌리러 다니던 놈이었다. 도대체 저런놈이 어떻게 중위권에서나마 버틸 수 있는지 신기하다고 생각했던 녀석.
나는 미래의 정보들을 모두 알고 있음으로 인해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다.
가진 바 특성들, 그것이 굉장히 뛰어난 것 또한 인정한다. 만약 이 두가지가 없었다면 내가 지금 규격 외의 힘을 가지게 되는 일은 없었을 것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부던히 노력했다. 노력 또한 재능이라는 표어를 가지고 있는 일리아. 어쩌면 그녀만큼 노력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단지 육체를 혹사시키고 극한까지 몰아가는것만이 노력이 아니란 것이다.
아니, 육체도 혹사시키기는 했지. 이 몸의 한계점은 다른 이들보다 현저히 낮으니까…….
“마나씨!”
나는 손 위에 자연스레 마력을 응집했다. 그것은 찬연히 빛나는 푸른색의 물방울로 변모했다.
이어 그 물방울은 점점 크기를 키워나가 용의 형태로 변하기 시작했다. 드래곤(dragon)이 아닌 동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그 용(龍)의 형태로.
주술과 마법, 그 어딘가 경계에 있는 절기. 나는 이것을 단 한 권의 마법서로 익혀내었다. 입에서 ‘호에에, 아가야는 책 오래 못 읽는 고애오……’ 하는 헛소리가 터져나와도 읽고 또 읽었다. 닳아 떨어지도록 수십번을 거듭해 읽고 숙련한 뒤에 익힐 수 있었다.
콰아아아악!
쇄도해나간 수룡. 그것은 거대한 덩치의 불타는 곰 형태의 몬스터를 덮였다. 가슴팍에 정통으로 들어간 마법은 녀석에게 큰 충격을 주었고, 이내 허무하게 그 큰 덩치가 무릎을 꿇는다.
꾸어엉!
쿵!
마지막 단말마와 함께 바닥에 엎드린 채 쓰러진 몬스터를 보며, 다들 경악스러운 눈길로 나를 쳐다본다. 실기시험의 1/3 정도를 태양 여명단 핑계로 빼먹고, 나머지 2/3은 그리 내가 진심으로 임할 필요가 없는 것이었다보니 펜타곤에서는 내 순위가 거품이 아니냐는 이야기가 돌았다.
그럴 리가 있나.
1학기때는 진짜 거품이 끼여있었을지 몰라도, 지금은 아니었다.
나는 아까전까지 내게 뭐라고 떠들어대던 생도를 바라봤다.
시기, 분노, 질투, 경악.
온갖 감정들이 뒤섞인채로 얼굴을 일그러뜨린 그를 보며, 나는 한숨을 내쉴 수 밖에는 없었다. 한심하기가 그지없는 일이었다. 내가 저 녀석의 재능을 가졌다면, 물론 지금의 내게는 비할수가 없겠지만 저 놈보다는 분명히 훨씬 강해졌을 터였다.
나는 그에게 한 마디를 해주려했다.
실상 조언을 듣고 변할리가 없는 놈이었지만, 그래도 내 가슴이 답답해서 한 마디를 해야만 할 것 같았다.
그런식으로 온갖것들에 불만을 가져봤자, 달라지는건 없으니까 본인이 가진 것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갈고닦으라고.
물론 이 말은 온전히 내가 생각해낸것이 아닌, 언젠가 일리아가 다른 생도에게 작중에서 했던 대사를 인용한 것이었다.
나는 그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븝미쟝의 귀여움은……아무리 시기해봤자 따라올 수 없는고애오…….”
그러나 내 입에서 튀어나오는 말은 조언이 아니라, 좆언(奀言)이었고.
그 생도의 표정은 썩어들어갔다. 아무래도 본인을 놀리려는 것으로 착각한 모양이었는데, 굳이 그에 대한 해명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사실 할 수가 없었다는 말이 더 정확할지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