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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기븝미쟝이 되었다-113화 (113/172)

#113화.

검선은 어느 날 한 통의 메일을 받게 되었다.

일반적인 메일 주소가 아닌 숫자 열로 이루어진 개인 메일이었다. 원래라면 스팸이라고 생각해 열어 보지 않았을, 아니 그의 개인 비서가 알아서 확인 후 처리했을 메일. 하지만 검선은 그것을 열어 볼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한 거야?”

그 메일은 검선의 스마트워치에 직접 보내졌기 때문이었다. 몇몇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모르는 그의 진짜 개인 메일 주소로. 하지만 그 몇몇 사람들의 경우에는 이런 식으로 메일을 보내지 않을 것이었다.

그렇다면 흑사회인가? 검선이 가장 먼저 떠올린 생각은 그것이었다.

그가 거래를 하며 만난 흑사회 빌런들 중에서는 어떻게든 한 번 골려 먹으려고 꾀를 짜내는 이들이 꽤나 많았다. 원래라면 그 떨거지들의 머리를 모두 깨 버렸을 테지만…… 지금의 그는 그럴 입장이 아니었기에 그저 참아야만 했다.

하지만 계속 메일 내용을 확인한 검선은 자신의 예상이 틀렸다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이내 침음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허어…….”

[저희는 당신이 흑사회와 잘못된 거래를 하고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이번에 일어난 킬락스 필드 난동 사건 또한 그 거래의 결과라는 것도 이미 파악했습니다. 또한, 당신이 흑사회와 거래를 이어 나갈 수 없는 이유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이유에 대한 해결책도 가지고 있으니, 만약 우리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으시다면 이 메일 주소로 회신해 주시기 바랍니다.]

검선은 정말 오랜만에 등골이 서늘해지는 듯한 감각을 느꼈다.

6년 전, 그가 검선이라는 칭호를 가지게 된 전투. 1등급 이상의 강함을 지녔으며, 그 객체가 유일함이 밝혀졌을 때 붙는 등급. ‘재앙 등급’의 몬스터와 검을 맞대던 때. 그때와 같은 감각이었다. 흑사회와의 거래가 영원히 비밀로 남을 것이라고는 애초에 생각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웬만해서는 밝혀지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적어도 지금 시점에서는.

하지만 이 정체를 알 수 없는 누군가가 ‘우리’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으로 보아, 최소한 단체에 속했고 비밀을 알아챘다.

혹시 흑사회 관계자의 장난은 아닐까? 잠시 그런 생각을 한 검선은 입가에서 웃음이 나오는 걸 참을 수가 없었다. 아무리 부정하고 싶더라도 그런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하다니…… 스스로도 어이가 없었다.

“후우…….”

잠시간 머리를 굴리던 그는, 빠져나갈 구멍이 없음을 깨달았다. 이쪽은 상대의 정체를 모르는데 상대는 이쪽의 모든 것을 알고 있다. 최악의 상황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었다.

메일에 적힌 내용은 매우 정중했다. 하지만 그 정중함이 언제건 사라질 수 있음을 검선은 알고 있었다.

[직접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그렇기에 검선은 곧바로 회신했다. 만약에 모든 사실이 세간에 알려진다면, 자신과 자신의 여동생까지 끝이었다.

메일을 보낸 후, 초조하게 주변을 서성거리던 검선은 돌아온 메일에 눈을 빛내었다.

[내일 오전 10시, 7번 폐허 광산 입구 동쪽, 코볼트 출몰 지역에서 기다리겠습니다.]

7번 폐허 광산이라면 그리 멀지 않은 곳이었다. 검선은 안도의 한숨을 흘리면서도, 동시에 자괴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어쩌다 이렇게 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단지 조금만 행복해지고 싶었을 뿐인데.

삐익.

검선은 곧바로 자신의 개인 비서를 호출했다. 곧바로 방으로 들어온 비서, 검선은 그에게 서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일 일정 다 비워 놔요. 꼭 참여해야 한다, 그런 거 없습니다. 누구한테 오라 가라야. 개 같은 새끼들이.”

“알겠습니다.”

“그럼 가 봐요. 무슨 핑계를 대건 무조건 다 빼놓으세요. 협회장이고 대통령이고 나발이고, 안 간다고.”

그의 몸에서 은연중에 흘러나오는 마나 때문에, 비서는 파랗게 질린 채로 방을 뛰쳐나갈 수밖에 없었다.

‘왜 저러시지? 내일 잡힌 일정 중에는 별것 없었는데…….’

그녀는 의아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평소에 젠틀하기로 유명한 검선이었고, 실제로 항상 그러했다. 조금 전과 같은 모습은 거의 보이지 않았던 터라 더욱 놀랐다.

비서는 내일 잡혀 있는 일정을 되뇌었다.

물론 그것은 쓸데없는 행동이었다.

‘개 같은 새끼들’이라는 말의 대상은 그녀가 생각하는 것과 다른 이들이었으니까.

*    *    *

크르르르, 컹!

“호에에에!”

나는 갑자기 들려오는 개소리에 비명을 질렀다. 목줄을 잡고 있던 주인이 고개를 숙이며 사과했지만, 분노가 치밀었다. 시발, 그럴 거면 목줄도 짧게 잡고 입마개도 제대로 하던가. 하지만 다시금 바라보니 그 견종은 입마개를 할 만큼 위험한 녀석이 아니었다. 정확한 이름은 모르겠지만, 실내에서 키울 법한 소형견. 그냥 내가 지레 겁먹은 것이었다.

“밖은 너모 무서운 고시애오…….”

괜히 진땀을 빼며, 나는 목적지를 향해 걸어갔다. 제 7광산. 이계의 광물이 수시로 발견되는 던전. 이곳에서 검선을 만나기로 약속했다.

조금은 의외였다. 그냥 순순히 바로 나온다고 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최소한 자기가 가지고 있는 힘을 동원해 이쪽의 정체를 밝혀내려고 할 줄 알았는데…… 이수정의 말로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단다. 이미 흑사회한테 몇 번 당해서 그런 건가 싶기도 했다.

나는 로브로 모습을 가리고 있었다. 곧 겨울인 데다가, 종종 마법사들이나 이종족들은 이렇게 다니는 경우가 많았기에 사람들의 이목을 받지는 않았다. 종종 몇몇 이들이 쳐다볼 뿐.

내가 굳이 이렇게 이동하는 이유는 당연하게도 정체를 들키지 않기 위해서였다. 내가 뜬금없이 이 근방에 왔다는 이야기가 나오면 검선에게 정체가 발각될 우려가 있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대리인을 내세우려고 했는데…… 막상 생각해 보니 사람이 없었다. 부탁하면 들어줄 사람이야 많겠지만, 그들 대부분은 이 일에 엮이게 하고 싶지 않거나, 아니면 아예 이 일을 몰랐으면 하는 사람들이었다. 저번에도 한 생각이지만, 예를 들어 일리아가 이 일을 안다면 거래고 뭐고 검선한테 칼을 들고 달려들게 분명했다.

“호에에…… 여기면 대갯져…….”

나는 7광산 인근의 인적이 드문 골목길에서, 한 차례 심호흡을 한 뒤 오래 사용하지 않은 특성을 사용했다.

그동안 딱히 쓸 일이 없기도 했고, 이제는 더욱 사용할 일이 사라진 변신 특성이지만, 이번 일에는 정말 적절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븝미쟝, 변신인 고애오! 하와와와아…….”

내 외침과 동시에, 이내 몸의 형태가 바뀌기 시작했다.

전체적인 몸의 크기가 순식간에 커지고, 시야가 높아졌다. 동시에 항상 흐물거렸던 몸에 힘이 들어차는 것이 느껴졌다. 근골이 커지며 생기가 돌았다. 하지만 그와 반대로 몸을 가득 채우고 있던 충만한 마력이 서서히 사라지는 게 느껴졌다. 내가 이루었던 마법적 경지가 모래알처럼 사라져 갔다.

“쒸불…….”

딱히 불만이 있는 것도 아닌데, 입에서 저절로 감탄사가 튀어나온다. 이건 뭐, 원래 몸이고 이쪽이고 마찬가지구만.

나는 몸 상태를 체크했다. 물론 더 말할 것 없이 최상이었다. 마력이 사라지는 페널티를 받고, 얻어 낸 신체 스텟은 이미 웬만한 대형 몬스터를 뛰어넘는 수준. 지금의 나라면 트윈 헤드 오우거와 육박전을 벌여도 지지 않을 것이었다. 정말 무식하기가 그지없다.

원래의 모습과 같은 것은 붉은색의 머리 하나뿐. 이걸 보고 ‘다나 크리스틴’과 연관 점을 찾아내는 사람은 없을 것이었다. 붉은 머리가 이 나라에 한둘도 아니고. 물론 흔하지도 않지만, 그걸 공통점으로 삼아 연관 짓기에는 너무나 동떨어진 게 많았다. 완전 반대의 캐릭터니까, 이쪽은…….

“어린……노무 새끼가…… 왜…… 이리…… 안 와……! 으른이…… 말을…… 하면…… 거시기, 머여……. 빨리…… 텨 와야제!”

나는 미리 제 7광산, 약속 장소에 도착해 그를 기다렸다. 따지고 보면 검선의 나이가 이 육체의 나이보다 많았고, 내 원래 나이보다 많았지만, 뭐……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말도 아니고.

그나저나 장소 하나는 참 잘 잡았다 싶었다. 교통이 불편하지 않으면서도 으슥한 곳으로 잡아 달라고 했더니 진짜로 그렇게 잡아 줬다.

약속 시간 15분 전에 도착해서, 5분이 더 초과한 지금까지. 던전 관계자인지 히어로인지 모를 여자 두 명이 지나간 게 전부였다.

그녀들은 입을 다물고 있는 나를 보고 ‘와, 저 사람 되게 잘생겼다’ 하며 저희끼리 이야기를 나눴다. 본래 몸도 마찬가지지만, 입만 다물고 있으면 더할 나위 없이 괜찮아 보이는 모양이다.

약속 시간이 10분 정도 지났을 때, 드디어 검선이 나타났다.

그는 늦은 사람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평온한 걸음걸이로 걸어왔다. 그에 입에서 꼰대질이 불쑥 튀어나가려고 했지만, 나는 초인적인 정신력으로 참아 낼 수 있었다. 물론, 좆같기는 했다. 차곡차곡 모아 온 변신 시간 중에 30분가량을 그냥 생으로 날려야만 했으니까. 하지만 이번 협상에서, 나는 말을 하지 않을 것이었다.

우웅.

서 있는 나를 보고, 말을 걸려고 하던 검선은 스마트워치의 진동에 그를 바라봤다.

이 근방에서 대기하고 있는 이수정. 그는 지금 검선과 내 모습을 확인하며 실시간으로 메일을 보내는 것이었다.

“하.”

그 메일을 확인한 검선은 헛웃음을 지었다. 그러고는 자조적인 어투로 중얼거렸다.

“말도 안 섞겠다, 이런 건가? 보니까 빌런들은 아닌 것 같고…… 원하는 것이 도대체 뭐지?”

“…….”

입이 근질거렸다. 당장에라도 쒸뿔로 시작하는 장황한 말이 터져 나오려고 했지만, 나는 몰래 허벅지를 꼬집어 가며 버텼다. 어차피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모두 이수정이 대신해 줄 것이었다.

검선은 메일을 계속해서 확인했다.

그 내용은, 검선의 사정과 관련된 내용.

그는 현재 남은 유일한 혈육인 여동생의 병을 고치기 위해서, 흑사회의 말을 듣고 있다. 흑사회에서 주는 치료제만이 현재 그녀의 병에 대한 유일한 해법이었으니까.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그 치료제는 언젠간 여동생의 몸을 좀먹고, 파멸로 이끌 물건이었다. 검선은 그 사실을 모르고 있다.

“……이게, 사실인가.”

하지만, 지금 알게 되었다.

흑사회가 거짓으로 숨겨 온 그 약의 비밀이 무엇인지.

정확한 근거와 내용을 상세히 설명했으니, 검선은 믿고 싶지 않아도 믿을 수밖에 없을 것이었다.

“그래서, 원하는 게 뭐지?”

이어 우리는 흑사회의 가짜 치료제가 아닌, 진짜 치료제를 구할 방법을 알고 있다고 말한다. 그 치료제를 구하는 방법을 알고 싶다면, 이쪽의 부탁을 들어줘야 할 것이라는 말과 함께.

“원하는 게 뭐냐고.”

검선은 당장에라도 내 목을 졸라 죽일 것 같은 기세로 분노했다. 만약 이 앞에 정상적인 히어로가 있었다면 당장에 실금을 하며 무릎을 꿇은 채 벌벌 떨었을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렇지 않았다.

왜냐하면, 마나가 없으니까.

그에게서 강대한 기운이 느껴지건 말건, 체내의 마나가 공명하고, 진동하지 않는다면 내 몸에는 아무런 무리가 오지 않는다. 애초에 육체 자체도 인간의 범주를 뛰어넘은 수준으로 강건하기도 하고.

그에 검선은 조금 당황한 눈치였다. 그러고는 나를 천천히 훑어본다. 아마 자신이 아는 사람 중에 나와 같은 모습을 한 이가 있는지 기억을 떠올려 보는 것이겠지.

물론 있을 리가 없었고,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조금 화가 누그러뜨린 채로 내게 말했다.

“전달할 물건이나 빨리 줘.”

우리 측의 부탁을 들어주는 대가로 약을 구할 방법 중 일부와 그 단서를 전달하기로 했다.

나는 미리 가지고 온 자그마한 케이스를 그에게 건네었다. 그는 즉시 확인하지도 않고 가방 속에 케이스를 넣었다.

“……확인 후에 다시 연락하도록 하지. 그리고…… 흑사회 놈들에 대한 건 굳이 말하지 않아도 돼. 놈들은, 내가 끝낸다.”

이를 바드득 가는 검선의 모습에서 진짜로 흑사회를 부숴 버릴 것 같은 의지가 느껴진다.

아마 그라면 완벽히 해체시키는 것은 불가능해도, 거대한 타격을 입히는 것은 가능할 것이었다. 무력만 보자면 한국에서 그를 따라올 수 있는 히어로는 없었으니까. 이런저런 이유로 순위는 4위지만.

물론 그렇게 하고 난 이후에, 검선은 몰락의 길을 걷게 될 것이었다. 흑사회에서 같이 죽자는 생각으로 모든 진실을 퍼뜨릴 것이니.

하지만 아마 그것을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그가 이를 악물고 지켜 낸 모든 명예와 지위는, 그의 여동생을 위한 것이었으니까.

“쒸뿔…… 갔나?”

나는 검선의 거대한 기운이 사라지고 난 뒤, 이수정의 시야가 닿지 않는 곳으로 되돌아갔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쟤한테 내 비밀 하나가 밝혀지는 건 막아야 했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사람인지라.

“하와와와와, 븝하! 븝미쟝 재등장인 고애오!”

변신을 풀고, 원래 몸으로 되돌아왔을 때.

편안하다는 감각이 느껴져서…….

뭔가 기분이 이상했다.

……아무래도 너무 적응해 버린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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