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4화.
히어로판타지의 거래 시스템은 상당히 개 같았다. 여러 가지 시스템상 사기를 칠 수 있을 법한 구석이 한두 개가 아니었던지라, 많은 유저들이 사기꾼들에게 당했고, 나 또한 당했었다.
애기븝미쟝: 호에에, 사기친 ag991 옵바야! 안나오면 찢어죽이는고애오!
물론 그만큼이나 PVP 시스템도 적극적으로 활용이 가능한 게임인지라, 웬만한 놈들은 잘못했다고 사기 친 금액을 다시 내놓을 때까지 죽여 버렸지만…….
아무튼, 나는 그런 사기를 치는 이들을 굉장히 혐오했다. 그 신념은 게임이 현실이 되었다고 바뀌는 것이 아니었다.
“사기는 안 되는 고시애오…….”
검선에게 한 거래. 내가 요구한 것은 미래에 재앙으로서 발전할 한 던전의 클리어였다. 애초에 그에게 무리한 것은 시킬 생각이 없었다. 아직까지 그는 자신의 정의관과 여동생 사이에서 고민을 하고 있는 단계였기에, 명백히 배신했다고 말하기도 뭐한 상태였다. 함부로 내가 단죄할 만한 대상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그냥 그가 속죄할 만한 기회도 만들어 주고, 나는 그 던전에서 나온 보상을 꿀꺽하고, 일석이조의 방법을 택한 것이었다.
물론 나도 날로 먹는 건 아니다. 그 여동생의 치료를 해 줘야만 했으니까.
“하와와와…….”
사실 그 여동생은 어떤 묘약이나 비책으로 병을 낫게 할 수 없다.
여동생이 앓고 있는 병의 이름은 데아트릭의 저주. 감염 경로가 어떻게 되는지, 게임에서조차 나오지 않기 때문에 어째서 게임 후반부에나 퍼지는 역병에 걸렸는지 알 수 없는 일이지만…… 나는 치료법을 알고 있다.
“따꼼하는 고애오…….”
그 치료법은 어이없게, 마력이었다. 그중에서도 전격을 환부에 지지는 것이었다. 정말로 딱, 이거 하나뿐이다. 이 발견은 게임 내에서도 정말 어이없는 방법으로 발견되었는데, 역병에 걸린 전격 마법사가 마법을 사용하다가 발견하게 된 것이었다. 그러니까 정식적인 치료법이 따로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공개적으로 알려진 방법은 그거 하나뿐이란 것이다.
내가 치료 약이 있다고 거짓말을 한 게 바로 이것 때문이었다.
치료해 주겠다고, 대뜸 전격 마법을 갈겨 버리면 검선에게 내 머리가 깨질 것이 분명했다.
그러므로, 그가 가짜 치료 약을 자신의 여동생에게 구해다가 먹인 뒤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났을 시점에, 빈틈을 보다가 직접 그녀를 치료하러 가야 하는 것이었다.
그에게 알려 준 치료 약은, 기력을 대폭 증진시켜 주는 약이다.
그러니까 일시 호전된 것처럼 보이기에는 충분할 것이고, 약발이 떨어지기 이전에 진짜 치료를 행하면 그녀는 완벽하게 낫게 된다.
완벽한 계획. 스스로 이런 발상을 떠올린 내게 뿌듯함이 샘솟았다.
“븝갈통 아니애오! 아가야는 똑똑한 고애오…….”
나는 어깨를 으쓱거리면서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잠시간 그렇게 우쭐거리고 있던 내게, 한 통의 메시지가 날아왔다.
[일은 잘됐는데, 그…… 혹시 조금 전에 나왔던 남자가 누군지 물어봐도 될까요?]
그건 이수정에게 온 메시지였다.
그녀는 내 변심폼의 정체가 궁금한 모양이었다.
[혹시 애인?]
“……머라는 고애오.”
뭔, 갑자기 급발진이야.
[아니면…… 저 같은 노예……?]
“주제 파악은 잘하는 고애오.”
나는 그녀의 메시지에서, 무언가 불만이 가득 차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요즘에 거의 노예 수준으로 많이 부려 먹긴 했지. 내가 일을 부탁하는 다른 이들과는 달리, 이수정에게는 무언가 보수도 없었다.
[노예라고 알아두던가.]
나는 곧바로 그녀에게 답신했다.
이렇게 본래 말투로 메시지를 보낼 때면, 뭔가 인지 부조화가 온다.
그럼 이제 그냥 집으로 돌아갈까.
하품하며, 지팡이에 올라탄 내게 이수정의 메시지가 다시금 날아왔다.
[노예도 여럿 있으시구나…… 주인님……이라고 불러도 될까요?]
아무래도 얜 정신 상태가 좀 이상한 것 같았다.
* * *
펜타곤 2학기도 거의 다 끝났다. 2학기에는 실상 1학기 때 배운 것을 복습하고, 자신의 계열을 선택하는 것에 시간을 쏟다 보니 뭘 한 것 같지도 않았다.
사실 태양 여명단 핑계로 수업을 뻔질나게 빠진 것이 큰 이유 중 하나기도 했다.
물론 그럼에도 내 성적은 1등이었다.
벌써부터 유수 길드에서 콜이 오고 있었다.
히어로 강국으로 손꼽히는 국가는, 각각 자국 내 최고 육성 기관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세계 각국은 그 타국의 최고 육성 기관에서 히어로들을 빼내어 자국 길드로 편입시키는 것에 눈이 시뻘게져 있었다.
“다나 씨, 이건 잘 생각하셔야 하는 부분입니다. 겨우 갓 아카데미를 졸업한 히어로에게 1억 위안을 지급한다는 건…….”
“븝미쟝은 돈 피료 업는 고애오…….”
“하아, 아직 어려서 잘 모르실 수도 있겠지만…….”
그리고 그것은 지금 내 눈앞에 있는 사람만 보더라도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정말로 눈이 시뻘게져선, 자신들 길드에 들어왔을 때의 이점에 대해 열변을 토하고 있는 스카우터. 나는 대강 고개나 끄덕거리다가, 잠시 뒤에 돌려보냈다.
“제안을 거절하면 아마 후회하실 수도…….”
“생각해 보는 고야요.”
쾅.
문이 닫히고, 이내 스카우터가 투덜거리면서 밖으로 나가는 소리가 들린다.
나는 지끈지끈한 머리를 부여잡았다. 황금만능주의자에게 돈에 대한 장황한 연설을 듣고 있자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아니, 내가 돈을 싫어하는 건 아닌데 말이야…….
조금 전 중국에서 온 스카우터가 내게 내민 조건은 계약 즉시 1억 위안을 지급하고, 타 길드보다 최소 5배에서 25배 정도 되는 기본 수당을 주겠다는 것이었다.
한숨이 절로 나왔다. 1억 위안이 아니라 10억 위안이라도 그리 구미가 당기지 않았다.
저놈들은 나를 그냥 걸어 다니는 광고판처럼 쓰려고 하는 거였으니까.
들어본 바로는 일본에서처럼, 중국에서도 예능 프로그램 ‘펜타곤’이 큰 인기를 끌고 있다고 했다. 그쪽 인구부터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많은 상황이니, 나를 대외 선전용으로 쓴다면 길드에 가져올 이익은 내게 지급하는 돈보다 더 크다는 계산이겠지.
그런데 나는 그런 걸 할 생각이 없다. 시발, 있었으면 이미 내가 했겠지.
그런 활동은 최근에 SNS 계정 하나 신설한 게 전부다. 실수로 올린 사진 덕인지, 팔로우 수는 벌써 10만을 목전에 두고 있었다.
“돈도 없는 옵바야들인 고애오…….”
경매장을 통해 벌어들인 수익금, 나는 그것을 주식 단타 매매와 부동산 투자를 통해 수십 배로 불렸다. 히어로판타지에서 대표적으로 언급되는 이야기들만 참고했을 뿐인데도 굉장히 쉬운 일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뭐? 1억 위안?
물론 큰돈이기는 했지만, 15년 계약이라는 말도 안 되는 조건을 달아 놓고 제시할 만한 돈은 아니었다. 다른 히어로들이라면 눈이 돌아갔을지도 모르겠지만…….
띵동.
“하와와…….”
또 왔나.
나는 다시금 울리는 벨 소리에 한숨을 내쉬며 문을 열었다.
그냥 이제는 입구에서부터 돌려보내는 게 좋지 않을까 싶었다.
애초에 나는 어디 길드건 들어갈 생각이…….
“호에에, 언냐야. 다 만난 고애오?”
“어, 어차피 1학년 생도들한테는 몇 군데 안 오잖아.”
“그러며는 혹시 언냐야는 어디 가기로 한 곳 있어여?”
“일단 2학년 되고 나서 확정할 거긴 하지만…… 그래도 지금 들은 걸로는 굳이 다른 길드로 갈 필요 없이 우리 집안 길드로 갈 것 같은데? 부모님은 다른 길드에서 생활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하시지만…….”
역시나 그런가.
하기야 일리아처럼 자기 집안에서 길드 사업을 하고 있는 이들은 딱히 고민을 하지 않아도 될 것이었다.
“그러면 다나 너는? 아까 보니까 거의 대기 줄이 엄청 많던데…… 다른 애들은 너보고 부럽다고 난리야.”
“머가 부러운 고애오…….”
“아니, 왜, 그 유명한 사람들도 많이 오고…… 조건을 안 들어 봐서 그렇지 나도 구미가 당기는 곳이 몇몇 있던데. 예를 들면 라이온하트 기사단이라든가……”
참고로, 일리아가 말하는 라이온하트 기사단 같은 경우에는 검에 미친 놈들이 가는 곳으로 유명했다. 도대체 나를 왜 찾아온 건지 이해가 가지 않을 정도로 마법사의 비율이 적은 길드였다.
“안 가여.”
“……조건이 별로였어?”
“아녀, 븝미쟝, 아무 데도 안 가는 고애오. 조건이 어떻든.”
“어…… 그래?”
일리아는 머쓱한 표정을 짓더니, 슬쩍 등 뒤에 들고 있던 무언가를 감춘다. 나는 피식하고 실소를 터뜨렸다. 아마 저건 자기네 메이슨 길드에서 가져온 영입 제안서일 것이었다. 아까부터 꼼지락거리면서 줄까 말까 고민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와 웃음을 참고 있었는데.
나도 사실 그녀와 같은 길드를 가게 되면 좋을 것 같았다.
내가 처음 이곳에 와서 겪은 위기에서 구해 주고, 지금까지 여러모로 나를 많이 도와준 일리아였기에 다른 이들보다 특별한 감정이 있었다.
하지만 메이슨 길드에는 갈 수 없다. 마음에 들고 들지 않고를 떠나서, 내 계획에 어긋나는 선택이기 때문이었다.
“언냐야, 부모님이 다른 길드에 들어가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했져……?”
“어, 그랬지. 경험론을 항상 설파하시는 분들이라…… 뭐든 경험을 직접 해봐야 아는 것도, 할 수 있는 것도 늘어난다고 입이 닳도록 말씀하시거든. 뭐, 틀린 말은 아닌데…….”
그 거대한 본가의 반대를 무시하고, 자국에서 뛰쳐나와 개쌍마이웨이로 맨땅에 길드를 세운 채 살아온 사람들이니 알만했다.
나는 회심의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렇다면 어떻게 잘 설득하면 꾀어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러며는 언냐야, 븝미쟝 길드에 들어오는 고애오…….”
“어……? 다나, 너, 근데 방금은 길드 다 거절했다면서. 혹시 미리 정해 둔 곳이라도…….”
“아니여, 언냐야, 븝미쟝 길드라구여.”
“니…… 길드?”
내가 모든 길드에 가입을 거절한 이유.
그것은 내 길드를 세우겠다는 계획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실 길드 사업을 시작하는 데 중요한 요소는 이미 다 갖추고 있었다.
사실 요소라고 해도 별거 없고, 그냥 돈과 사람이었다.
돈은 이미 차고 넘칠 만큼 있고, 사람 같은 경우에는 아직 전투 요원으로 분류될 길드원은 없지만, 라이카와 김수혁, 연금술사 자매들과 이수정을 넣기로 결정했다.
“가지고 있는 길드가 있어? 아니면 세울 거야?”
“다음 주에, 방학 시작되면 바로 세울 거애오!”
“……다른 사람들이 들으면 까무러치겠네.”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겨우 1학년 생도가 자력으로 자기만의 길드를 세우고, 사람들을 모집한다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에.
하지만 나는 가능했다. 이미 계획도 모두 세워 놨고, 그를 위한 준비도 마친 상태였다.
이 길드에 모이는 사람들로, 앞으로 다가올 재앙들도 모두 막아 낼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다 할 것이었다.
“그러면 근데 그 길드 이름은 뭐로 할 건데?”
일리아는 이미 내 확신에 찬 얼굴을 보고, 농담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는지 질문을 해 왔다.
이름이라…….
꽤나 날카로운 질문이었다. 딱히 생각해 둔 적이 없긴 한데…….
“애기븝미길드는 어떨까여?”
“……그건 좀.”
“줄여서 AV 길드예여, 언냐야!”
“제발 안 줄이면 안 될까?”
그런 이름이면 들어가기가 망설여진다는 일리아의 강력한 주장에 따라, 작명은 잠시 뒤로 미루기로 했다.
이미 AV 대장간도 있는데, 흐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