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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기븝미쟝이 되었다-115화 (115/172)

#115화. 븝미쟝이 길드를 만드러여!

길드를 설립하는 데에는 별다른 절차랄 것이 필요 없었다. 한국에 세워진 길드만 하더라도 천 개가 넘어갔다. 그중에서는 사람들에게 거의 알려지지 않은 길드들이 대부분이었다. 실상 제대로 된 형태를 갖추고 있는 것들은 몇 개 되지 않았으니 그럴 수밖에.

아무튼, 길드라는 형태로서 사업을 등록하는 것은 매달 협회에 납부하는 돈과 활동 시 던전을 입찰할 때 내는 수수료 정도면 충분한 것이었다.

“하와와와…….”

그러고 보니 나는 지금까지 입찰을 해 본 적이 없었나…….

본래 발견되는 던전은 모두 국가, 그러니까 히어로 협회에서 관리하게 되지만, 나는 그쪽에서 발견하지 못한 던전에만 들어갔으니…….

물론, 내가 특별히 잘못한 게 아니라, 대부분의 길드나 개인 히어로들이 그런 식으로 미확인 던전을 관리하고는 한다. 자기들이 발견한 던전을 굳이 협회에다가 내다 바칠 이유가 없었으니까.

“븝미쟝, 길드 개설하고 시픈 고애오!”

“아, 네…… 그러니까…….”

결국엔 돈만 있으면 개설이 가능한 길드다 보니, 자격 심사랄 것도 그리 거세지 않았다. 4만 등대 히어로도 길드장이 되는 마당에 내가 하지 못할 것은 없었다. 조기 졸업 후에 곧바로 스카우트하겠다는 길드들도 넘치고 있었고.

“뒤에, 저분들이 다 초기 길드원인가요?”

“그런 고애오!”

하지만 상담원은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무언가 서류를 열심히 작성하고, 상부에 전화를 돌려 가며, 힘겨워했다. 그것은 내 자격 심사 때문이 아니라 초기 길드원으로 채택된 이들 때문이었다.

내가 지금 데리고 온 사람들은, 연금술사 세 명의 자매와 김수혁, 라이카 그리고 일리아였다. 총 6명의 길드원과 1명의 길드장. 이 정도 인원이 한꺼번에 길드를 세우겠다고 찾아오는 건 흔한 일이 아니었지만, 물론 아예 없는 일도 아니었다.

하지만 문제는 모든 인원이 길드 사무소에 등록되지 않은 사람들이라는 것. 일리아와 나는 생도 신분이었고, 나머지 이들은 전부 ‘장인’이었다. 보통 길드에 장인들이 소속된다고 해도 두세 명 정도였고, 그 또한 설립 이후에 영입하는 게 대부분이었으니, 상당히 이례적인 일인 것이다.

“이건…… 아, 어떻게 해야 하지…… 하으…….”

입술을 파르르 떨며 고통스러워하는 상담원. 그녀의 얼굴이 짙게 수심이 차 있었다.

“미아내여, 언냐야…….”

“아, 아니요. 미안하실 일은 아니죠. 그런데…… 이게 절차가 조금 복잡해서. 조금만 더 기다려 주세요.”

“천천히 하는 고애오!”

나는 뒤에 있는 예비 길드원들을 돌아봤다. 그리고는 이내 손을 흔들었다. 조금 기다려도 괜찮겠냐는 뜻을 담아서.

얼마 지나지 않아 모두의 화답이 돌아왔다. 모두들 느긋한 성격인지라 이정도 기다림에는 싫증조차 내지 않았다.

되레 자기들끼리 서로 이야기를 나누느라 바빴는데, 나는 눈으로는 분주하게 움직이는 상담원을 바라보고, 귀로는 그들의 말을 엿들었다.

“아, 그러면 동생들은 연금술 협회, 그쪽에서 그냥 나와 버린 거야?”

“내, 별로 도움도 안 되고…… 방식도 마음에 안 들어서요.”

“그 마음 잘 알지. 나랑 수혁이도 그래서 대장장이 협회에 안 들어갔거든. 무슨 단조도 엉성하게 한 검을 재룟값의 20배는 넘게 처받아 먹는지…… 그런 식으로 하니까 검팔이니 하면서 욕을 들어먹는 거야.”

“네, 네! 맞아요. 저희도 그게 너무 싫었어요.”

장인들 마음은 장인들이 잘 아는 건지, 라이카와 강 씨 자매들은 열변을 토해 내며 서로의 가치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반면 김수혁과 일리아의 대화 주제는 완전히 달랐다.

“네, 그거 마음에 들더라고요. 그러니까 다음에는 좀 더 허리 쪽을 파서…….”

“노력해 볼게. 그런데 디자인은 라이카가 손을 많이 대는 부분이라서 말이야.”

…… 뭘 허리 쪽을 파.

나는 비밀스러운 오더를 내리고 있는 일리아의 목소리를 들으며,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뭐, 어찌 되었든 다들 죽이 잘 맞으니 된 건가.

워낙 친화력이 좋은 사람들만 있으니 대충 예상하긴 했지만, 벌써부터 같은 길드에 소속된 느낌이 난다.

“흐아아, 다했습니다. 일단은요.”

“고생 많으셧던 고애오…….”

“그러게요. 최근 며칠 동안 제일 오래 걸린 업무였네요…….”

굳이 부정하지 않는 그녀의 모습에 머쓱한 웃음이 올라온다. 보통 다른 길드 개설 업무는 30분 남짓이면 충분하다는데, 우리는 거의 3시간 가까이가 걸렸다. 허리 한 번 피지 못하고 업무를 했으니 가히 그 고통이 짐작되는 부분이었다.

“이제 서류 들고 협회로 가시면 정식으로 등록 되실 거예요. 아직 예비 타당성 심사 중이라고 뜨긴 할 건데…… 어차피 그건 의미 없으니까 사흘 뒤면 이름도 올라가실 거고요.”

“고마운 고시야요!”

상담원이 챙겨 준 서류를 들고, 이어 길드원들에게 향한다.

“다 끝났어?”

“마자여! 이제 집으로 가면 되는 고애오!”

“엄청 오래 걸린다, 기다리는 데 그리 지루하진 않았지만! 다들 재밌는 친구들이네.”

라이카는 강 씨 자매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녀들은 이번에는 일리아와 조잘거리고 있었는데, 평소보다 기분이 좋아 보였다.

하기야 냄새나는 약품들이나 하루 종일 만지고 있다가, 사람들이랑 대화하니 즐거울 수밖에 없는 건가. 그렇게 생각하니 눈물이 앞을 가렸다. 이 사람들은 제발 좀 쉬어 줬으면 한다.

*    *    *

법률상 성인으로 치는 펜타곤 생도지만, 나는 어딜 가나 그런 취급을 받지 못했다. 애 취급…… 이라기보단 약간 병자 취급이라고 해야 할까. 사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예능 프로그램 펜타곤을 통해 방영된 내 신체 수치가, 생방송을 보지 않은 사람이라도 알 만큼 인터넷에 널리 퍼졌기 때문이었다.

555.

히어로에 대해 관심이 없는 사람들도, 그 스텟 수치가 일반인들보다도 현저히 떨어지는 수준이란 것은 알고 있었다. 내가 얼굴을 가리지 않고 어디 외출이라도 나가면 대부분의 이들은 내게 과한 친절을 베풀었다. 그게 마냥 싫다는 건 아닌데, 그러다 보면 뭔가 정말로 어디가 불편한 사람이 된 것 같아 기분이 묘했다.

“마망!”

그러니까 국내 어디를 가나, 심지어 인접 국가나 펜타곤이 인기 프로그램으로 방영되고 있는 국가를 가도, 나는 굉장히 어린애 취급을 받기 일쑤였다.

그렇지 않더라도 마망 같은 소리를 들을 상황은 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딱, 이곳을 제외한다면.

“나, 밥 조, 응아아.”

어휴.

나는 낑낑대며 달라붙는 요정용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제법 떨어져 있었던 만큼 그동안 나를 좀 잊지 않았을까, 처음에는 조금 불안하기도 했는데, 지금 보니까 완전히 헛된 생각이었던 것 같다. 되레 아주 조금은 잊어도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배고팡!”

“하와와, 아가야, 저기 과일 있자나여…….”

“저거, 맘마 아니야. 맘마 조.”

“하우으…….”

“허허, 사도님을 뵈니 응석을 부리고 싶은 모양입니다.”

장로는 내게 엉겨 붙어 헛소리를 하고 있는 요정용을 보며, 그저 사람 좋은 웃음만을 흘리고 있을 뿐이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내가 오기 전까지 이곳에서 지낼 때의 요정용은 꽤나 근엄한 척을 하고 있었단다. 하루 두 번, 주는 식사나 꼬박꼬박 챙겨 먹으면서 느긋하게 잠을 자다가, 이따금 하늘을 한 번 날아 주는 게 일과의 전부였다고.

그 모습을 제발 나한테도 좀 보여 주면 안 될까. 녀석의 정수리를 쳐 버리고 싶은 충동이 샘솟았다.

한동안 그렇게 제 나름대로 애교를 부리던 녀석은, 이내 문득 무언가 생각이 났는지 날개를 한 차례 폈다.

마치 요정들의 것처럼 반투명하고 반짝거리는 날개.

예쁘긴 예쁘네.

“마망, 요기 타!”

“호에에에?”

“같이 날고 시퍼.”

녀석은 등허리를 살랑거리며 내게 말했다. 안 그래도 비행 시험은 해 봐야 하지 않을까 싶었던 참인데, 자기가 먼저 이렇게 원한다면, 나야 좋긴 했다.

이어 나는 요정용의 등에 올라탔다. 녀석은 곧바로 상공을 향해 떠올랐고, 그 때문에 마법을 펼쳐야만 했다.

“호에에! 마나 씨!”

내가 사용한 마법은 홀드.

갑작스러운 비상에 순간 중심을 잃고, 지상으로 떨어져 내릴 뻔한 것이었다. 반응하지 못했다면 그대로 땅바닥으로 추락했을 일. 물론 아래에 있는 엘프들이 어련히 구해 줬겠지만, 그럼에도 심장이 벌렁거리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너, 이, 씹새끼.

일부러 이런 거지?

나는 요정용을 노려봤지만, 녀석은 내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천진한 눈망울로 비행을 이어 갔다.

……그래도 비행 능력은 좋네.

지팡이와 비교를 한다면…… 이쪽이 좀 더 나으려나.

물론 지팡이 같은 경우에는 몸체가 작은지라 은신 마법을 사용하면 스텔스가 가능하고, 이쪽은 불가능했지만 그래도 순수 비행 능력만 보자면 이쪽이 훨씬 좋았다.

승차감도 더 좋고. 지팡이는 오래 타면 좀 뻐근하다.

요정용은 대략 10분 정도 하늘을 날아다니다가, 이내 지상으로 내려왔다. 모두들 녀석을 향해 동경 어린 시선을 보내 오고, 그걸 또 좋다고 즐긴다.

얘가 평소에 근엄하게 있는다는 이유를 좀 알 것 같은데. 내가 느끼기에 근엄한 것보다는 좀 거만해진 것 같다.

하기야 종족의 영물에게 함부로 대하는 엘프가 있기나 했겠는가.

데려가면 정신 교육 좀 해야겠는데.

나는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며 요정용을 바라봤다.

내가 엘프 마을에 와서 이 녀석을 보고 있는 이유는, 이놈을 데려가기 위해서였다.

히어로 판타지에서는 요정용이 살아 있지 않다. 던전에 들어간 장선우가 이 녀석을 죽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와 J는 함께 이 녀석을 살렸다. 그럼으로 얻을 수 있는 이득은 상당히 많았다. 요정용은 여러모로 쓸데가 꽤 있었으니까.

당장, 이번에 처리할 일만 해도 그러하다.

나는 검선과의 거래에서 그에게 흑사회에 대한 몇 가지 정보 또한 후에 받아 왔는데, 그 내용 중에는 요정용이 있다면 상당히 도움될 만한 주요 에피소드에 관한 것도 있었다.

“그전까지 말 잘 듣는 아이가 되는 고애오…….”

나는 녀석을 어루만지며 말했다. 요정용은 무슨 말인지 딱히 영문을 모르겠다는듯 대답했다.

“응애, 마망, 나 원래 말 잘들어.”

어, 아니야. 너 존나 말 안들어.

*    *    *

애기븝미길드, 이니셜로는 AV길드.

그 이름이 선택되는 것을 극렬하게 반대한 일리아의 의견에 따라, 결국 길드 이름은 ‘패스파인더(pathfinder)’로 결정되었다.

하지만 그게 딱히 의미가 없는 일이었던 것이, 길드 설립 이후 다나의 SNS에 올라온 ‘븝미쟝, 애(A)기븝(V)미 길드를 만든 고애오!’라는 게시글 때문에 결국 세간에서는 ‘AV 길드’라는 별명으로 불리고 있었다.

그게 못내 불만인 일리아였지만, 어쨌건 번듯한 길드 사무실까지 새로 지어, 이제 와서 뭐라고 해 봐야 의미가 없는 일이었다.

‘와 있으려나.’

오늘은 길드 사무실 개업을 축하한다는 명목으로, 길드원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날이었다. 새로 가입할 길드원까지 하나 구했다는 이야기가 들려, 꽤나 기대가 되기도 했다.

아읏!

“어?”

그때, 몸을 움찔하게 만드는 누군가의 교성이 들려왔다.

그건 분명 길드 건물 안에서 들려온 소리였기에, 문을 열고 들어가려던 그녀는 잠시 발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으흐응…… 거기……

“어머, 미친.”

이게 무슨 소리래.

일리아는 얼굴을 붉히면서도, 그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도대체 안에서 뭘 하길래……

“언냐야, 요기서 귀 대고 모 해여?”

“흐아아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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