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8화.
왕국 군은 마치 진짜 드래곤처럼 보이는 저 도마뱀이랑 피 터지게 싸우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모두를 씹어 삼킬 것 같은 위협적인 구강과 힘차게 퍼덕이는 저 날개,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온몸의 근육들까지. 진짜가 아니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법한 광경이었지만…….
그래도 가짜는 가짜다.
나는 이 사실을 이미 던전에 들어오기 전부터 알고 있었다.
저 가짜 드래곤의 정체는 흑마법사다.
제국에서 죽은 드래곤의 시체를 훔쳐 연금술에 이용한 흑마법사.
원작에서 언급되기로는, 본래 그 힘이 저 왕국 군 정도는 가볍게 쓸어 버릴 정도로 강력했다고 하는데, 연금술이 어떻게 잘못된 것인지는 몰라도 저 가짜 드래곤 상태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되어 버렸다고 한다.
내가 연금술에 대해 섣불리 시도하지 않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었다.
강 씨 자매들, 개중 강미연에게 수없이 많은 개인 과외를 받은 나는 상당한 수준의 연금술을 구사할 수 있다.
거기에 정령들을 이용해 장비를 만들었더니 부가 효과가 붙었을 때처럼, 어떠한 기연이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그럼에도 연금술에는 쉽게 손을 대지 않았다.
저런 꼴이 나기 싫어서.
“YARRRRRR!”
잔뜩 화가 난 듯 포효하며 몸부림치는 드래곤.
그 모습이 상당히 위압적이면서도, 또 멀리서 보자면 굉장히 어설퍼 보였다. 애초에 수십 년을 인간으로 살았던 이였으니. 거기에 육체적인 활동이 거의 없는 마법사다보니 운동신경이랄 것도 없을 게 분명했다.
그 모습을 네 글자로 요약하자면 ‘붕쯔붕쯔(朋主朋主)’라고 해야 할까…… 어느새 공포도 잊은 채 광기에 휩싸여 개미처럼 달라붙고 있는 왕국 군에 대해, 어쩔 줄 몰라 하며 조금씩 죽어 가고 있었다.
저대로 놔두면 드래곤 쪽이 질 확률이 조금 더 높아 보이는데.
그렇다면 지금쯤 나서야만 했다.
“아가야!”
음.
“너, 말구여.”
음…….
내가 ‘아가야’라는 음성을 내자마자, 옆에서 기다리고 있던 땅의 정령이 나선다.
이내 자기가 아님을 알고 실망하며 물러서는 녀석 때문에 웃음이 터지려고 했지만, 가까스로 참아 내었다.
꾸응.
내가 부른 것은 바로 요정용.
녀석은 준비되었다는 듯, 특유의 반짝거리는 그 날개를 펼쳐 내었다.
본래 몸집보다도 더 커진 녀석은, 저 거대한 블랙 드래곤의 몸집의 절반 정도까지 거대화한 상태였다. 더 키우고 싶긴 했는데, 이게 내 마법의 한계였다.
“아가야! 출동하는 고시야요!”
꾸에엥!
번역석이 없는지라,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는 녀석의 말, 해봤자 ‘응애, 나 아가용!’ 같은 쓸모없는 말이겠지만, 조금 답답하기는 했다.
앙증맞은 울음소리와는 다르게, 꽤나 위압적인 그 몸뚱이를 순식간에 상승시키는 녀석.
그에 지상에 있던 왕국군의 비명이 들려온다.
“세상에, 한 마리가 더……?”
“조, 조준해! 석궁병!”
“제기랄, 카르메손, 라디프, 알락시인! 제발…… 살려 주세요.”
제각기 경악하거나, 새로운 적에 대비하거나, 혹은 신의 이름을 부르짖는 등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왕국 군은 이미 1/3 이상이 죽어 나간 상태. 이제야 승기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하는데, 상황이 이렇게 되었다면 절망할 만도 했다.
나는 요정용의 등 뒤에 매미처럼 바짝 메달린 채로 몸을 숨겼다.
지상에서 내 모습이 보이면 안 되었으니까. 그렇게 된다면 아무래도 효과가 조금 죽는다. 내가 이 녀석의 주체라는 것을 알고, 나를 떨어트리려고 온 힘을 쏟아붓기 시작할 테니까.
“아가야, 크게 울어 바여…….”
나는 요정용의 귓가에 속삭였다. 녀석은 입김이 간지러운지, 부르르 떨면서도 내 말에 따랐다.
꾸에웨에엥!
……확실히 큰 소리이기는 했다.
그게 위엄이라고는 하나도 없어서 문제였지.
“아가야…….”
에휴, 내가 뭘 바라냐.
나는 괜히 녀석의 등판에 주먹을 날렸다.
물론 내 손만 아플 뿐이었지만.
“마나 씨!”
어쨌든, 표효를 한 것은 확실했으니 그에 따른 효과를 줘야만 했다.
아직은 마법조차 제대로 사용할 줄 모르는 요정용. 이 녀석을 대신해 마치 브레스처럼 보일 만한 마법을 펼쳤다.
콰아아아악!
지점은 요정용의 입 근처, 목표는 왕국 군.
이내 요정용의 입 부근에서, 거대한 화염의 덩어리가 사출된다.
그것은 단지 술식을 고급화시켰을뿐인 파이어볼.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왕국 군은 기함을 한다. 저들에게는 대마법용 장비가 턱없이 부족하다.
사실 그것도 조금은 어이가 없는 일이었다.
아무리 헤츨링이라고 해도, 드래곤을 잡는다는데, 마법 방어구도 제대로 안 챙겨 와?
“으아아아악!”
“씨발, 떨어져! 꺼지라고!”
“사, 살려…… 끄윽…….”
나는 연달아 딱 세 번을 날렸다.
일부러 마력양을 조절하기 위해서 적당한 위력으로 날렸는데, 그럼에도 왕국군의 피해는 막심했다. 실제 죽은 이들보다도, 그 모습을 보는 생존자들의 사기가 완전히 꺾여 버린것이 가장 큰 피해였다.
쿠오오오오!
뒤에서 그 광경을 망연히 지켜보던 가짜 블랙드래곤은, 내가 자신을 도와주는 것을 눈치채고는 그 틈을 타 자신도 공격하기 시작했다.
아까와는 다르게 녀석에게도 제대로 공격을 가하지 못하는 왕국 군.
얼마 지나지 않아, 지상의 왕국 군 장교에게서 새로운 명령이 떨어졌다.
“쯧, 퇴각해!”
“하지만…… 이대로 퇴각하면…….”
“퇴각하면, 뭐? 다 같이 죽을 바에야 나만 죽으면 돼. 그게 옳다.”
“호에에에…….”
좀 멋있는데.
나는 지상의 장교를 보며 휘파람을 불었다.
물론 입이 제멋대로 뒤틀리는지라 프흡, 하는 소리밖에 나지 않았지만.
저 장교가 초전부터 이를 악물고 저 드래곤과 대적했던 이유가 바로 자신의 목숨이 달려 있기 때문이었다. 원작에서는 저 사람과도 대화하는데, 왕명으로 직접 헤츨링을 잡아 오는 데 실패하면 목을 잘라 버리겠다고 공표했단다.
여러모로 아주 개판인 나라 아닌가.
던전 시나리오 속 가상 인물, 가상의 국가이기는 하지만 조금은 애잔했다.
KRRRRRR!
후퇴하는 왕국군, 그 모습을 보며 자기가 진짜 드래곤이라도 된 것처럼 포효하는 블랙드래곤. 나는 그 모습에 조금 웃을 수밖에 없었다. 속내가 너무 뻔히 보이는 거 아니야?
아마도 지금 저 가짜드래곤, 그러니까 흑마법사는 진짜 드래곤이 자기 동족인줄 알고 구해 줬다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었다. 그러니까 저렇게 열심히 드래곤인 척 연기를 하는 것이고.
그게 정말로 멍청한 생각인게, 드래곤은 헤츨링이 아니라면 성룡끼리 서로 도와주지 않는다. 단지 설정집 몇 개 뒤적거린 나보다, 실제로 드래곤에 대해 연구한 저 흑마법사가 더 잘 알고 있는 사실일 텐데도 저런 행동을 하는 것을 보니 어이가 없을 수밖에.
진짜 뇌까지 파충류로 변해 버린 건가.
“그만해여, 옵바야.”
흠칫.
놈이 움직임을 멈췄다.
그리고는 목소리의 진원지를 찾아 눈알을 굴렸다.
“그쯤하면 됐고, 그만 쉬는 고애오.”
나는 손 위에, 빙글빙글 회전하고 있는 마력의 창을 선명하게 만들었다.
아까 저 녀석이 뻘짓을 하고 있을 때부터 미리 영창해 둔 마법.
가짜 드래곤은 본래 마법사였던 자답게, 이 마법에 격중당하면 자신이 죽는다는 걸 잘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어떻게든 피해 보려고 발버둥을 치기 시작했다.
물론, 이미 늦었지만.
쐐애애액! 푹!
바람 정령의 힘을 받아, 선풍을 타고 날아간 마력의 창.
그것은 그대로 가짜 드래곤의 몸통을 꿰뚫어 버렸다.
이어 피 끓는 소리와 함께, 그 거대한 몸이 뒤로 천천히 넘어가기 시작했다.
쿠웅!
대지에 울리는 거대한 소리. 정자세로 뉘어진 가짜 드래곤의 육신이 지면에 커다란 흔적을 만들었다.
“연금술은 함부로 하면 안 되는 고애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한 번 더 교훈을 되새겼다.
약은 이쪽 세계건, 원래 내가 살던 세계건 전문가한테 맡기는 게 최선이었다.
돌아가면 강 씨 자매들한테 좀 더 잘해 줘야겠다며, 다짐한 나는 그 시체로 가까이 다가갔다.
획득 가능: 이상한 드래곤의 뼈, 이상한 드래곤의 피, 이상한 드래곤의 심장
이어 떠오르는 메시지. 여기서 선택한 것들은 모두 던전을 빠져나갈 때 획득이 가능하다.
그 시체에서는, 실제 드래곤에게서 얻을 수 있는 부산물을 모두 가질 수 있었다. 물론 같은 효능을 내는 건 아니었지만…….
나는 그것들을 모두 선택했다.
“하와와와…….”
나는 하품을 했다. 마치 하루를 꼬박 새운 듯한 피곤함이 몰려왔다. 여러모로 활동량만 보자면, 평상시에 내 일주일 활동량과 비슷했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당장에라도 침대가 있다면 바로 누워 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여기서 끝난 게 아니니, 쉬는 것은 조금 미뤄야만 했다.
드래곤 가드.
이 던전의 이름이었다.
많은 플레이어들이, 이 던전의 이름만 보고 섣불리 판단했다가 낭패를 보는 경우가 많았다.
앞서 던전의 ‘숨겨진 목표’에 대한 떡밥을 계속해서 흘리던 히어로판타지였기에, 싱글 모드를 초회차로 플레이하는 이들은 모두 여기에도 그 숨겨진 목표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거기까지는 틀린 게 아니다.
다만 함정에 빠진 것은 바로 그 던전의 이름.
드래곤 가드라고 해서, 이 가짜 드래곤을 지켜 내는 데에 열중하고 이어 보상을 받으면 매우 실망할 수밖에 없다.
그저 약간의 경험치와 왕국 군의 시체에서 루팅을 할 수 있는 무기와 방어구 정도가 전부였으니까.
도리어 꼬아서 생각하다가 낭패를 본 유저들보다, 되레 정직하게 던전의 메시지를 따르는 유저들이 더 큰 보상을 얻는다. 이 가짜 드래곤의 신체의 일부를 왕국 군에게 사례로 획득할 수 있기 때문에.
내가 주저 없이 이 가짜 드래곤을 죽여 버린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
나처럼 이렇게 둘 다 쫓아내고 죽여 버리면 신체의 전부를 가질 수 있으니까.
거기에다가 여기서 더한 이득을 보는 방법이 또 한 가지 있었다.
“아가야, 나오는 고애오.”
꾸으응?
“너 말고여…….”
꾸으응…….
얘네는 아가라고 하면 다 지네인 줄 알아.
나는 요정용을 제쳐 두고, 앞으로 나섰다.
꾸물꾸물.
이내 어딘가 풀숲에서, 진짜로 조그만 녀석이 튀어나온다. 물론 조그맣다고는 해도 내 몸과 비슷한 크기기는 했지만, 처음에 봤던 요정용도 저것보단 훨씬 컸던 걸 생각하면 정말 세상에 나온 지 얼마 안 된 녀석임을 알 수 있었다.
드래곤 가드.
던전의 이름은 두 가지 중의적인 의미를 품고 있다.
하나는 이 드래곤을 지키는 드래곤 가드, 즉 가짜 블랙 드래곤을 의심해 보라는 이야기.
두 번째는 진짜로 이 헤츨링을 지키라는 이야기였다.
케윽, 헤윽!
녀석은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나를 쳐다보다, 마치 사레라도 들린 듯이 캑캑거렸다.
물론 드래곤이 사레 따위 들릴 리가 없다. 그러니 저건 자의적으로 무언가 행하는 중이라는 뜻이었다.
케헤욱!
이어, 그 조그마한 입에서 무언가 튀어나온다.
그것은 마치 자수정의 빛깔과 비슷하면서도, 조금 더 투명한 형태의 보석.
“고마오요.”
나는 녀석을 한 차례 쓰다듬고, 이내 그것을 주워 주머니에 넣었다.
이것이, 바로 ‘진짜’ 드래곤 하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