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화. 옵바야들 바 주새여……
나는 겨울방학 동안 그야말로 잠수를 탔다.
그래도 저번 여름방학 때는 여기저기 많이 싸돌아다녔던 터라, 내가 굳이 소식을 알리지 않더라도 여러 곳에서 목격담이 나왔다. 그 행적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몰라도 어쨌건 사람들이 알 수는 있었다는 말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정말로 목격담이랄게 올라오지 않았다. 사실 올라오면 그게 더 이상한 거겠지. 하루 종일 길드에 박혀 있기만 했으니까.
“하와와와…….”
내가 이렇게 길드에 박혀 있었던 이유는, 대략 한 달 전에 있었던 일 때문이었다.
“너모 답답한 고애오…….”
어떻게 단 한 번의 실수로 이렇게 되냐.
겜창 전성기 시절에야 몇 달 동안 햇빛 한 번 안 봤던 때도 있었지만, 지금에서는 너무나 답답했다. 어차피 겨울인데 실내에 며칠 있는다고 문제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내 자신이 너무나 한심스러웠다.
인터넷에서도 내 이야기가 많았다.
내가 설립한 이 길드, 패스파인더는 지금 사람들에게 화제가 되고 있었다.
강 씨 자매들의 포션과 아티펙트, 김수혁-라이카 공방의 무기와 방어구. 그리고 그 둘이 협업해서 나오는 여러 가지 제품들은 지금 국내외를 떠들썩하게 하고 있었다. 거기에 새로 들어온 신하연까지 더해 펜타곤 1,3, 4, 5위가 함께 속한 길드라는 점에서 공략 조에 대한 관심도 더해졌고.
실제로 얼마 전에는 중상위권 FA 신분 히어로들의 문의가 오기도 했었다.
웬만한 대형 길드에는 충분히 들어가고도 남을 법한 베테랑들이 먼저 전화를 걸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길드 사업이 잘되어 가고 있는 와중에 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으니 사람들이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이 시점에서 내가 대외적으로 활동해야 할 것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으니까.
그런데 어떡해.
지금 얼굴을 비췄다간 진짜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질 수도 있었다.
“이제 용서해 주는 고애오…….”
그 한 달 전의 사고, 그건 굉장히 우연히 벌어진 일이었다.
나는 그때의 기억을 떠올렸다.
* * *
“응악, 이거 놓는 거야요, 아가야!”
“마망, 가지 마…… 나랑 노라조.”
이 새끼가.
나는 옷자락을 물고 잡아당기는 요정용과 사투를 벌였다.
녀석은 지금 거의 내 팔뚝만 한 상태로 줄어든 상태. 그러니까 다른 이들 기준으로는 조막만 한 크기로 변해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런 녀석도 제대로 이기지 못했다. 되려 질질 끌려서 길드 건물 안쪽으로 끌려 들어가고 있을 뿐이었다.
“금방 돌아온다고 했자나여! 아휴!”
몇 분간의 사투 끝에 겨우 녀석을 떼어 낸 나는, 헐렁하게 늘어난 옷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도대체 저번에 한 번 푸닥거리했는데도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얘는 기억력이 금붕어 수준인가? 도대체 요정용이 인간 이상으로 높은 지능을 가지고 있다고 서술한 놈은 뭘 보고 그랬는지 모르겠다. 그냥 그 새끼가 요정용보다 지능이 낮았던 게 아닐까…….
나는 그대로 건물 밖으로 달려 나갔다.
뒤에서 응애, 하며 우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귀를 막아 버렸다. 아무나 와서 달래 주겠지. 예쁜 외형 때문인지 길드 내에서는 녀석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나는 영 아니었지만.
“하와와와…….”
내가 쟤랑 투덕거리면서 빈둥거리는 게, 딱히 싫다는 건 아니다. 요정용은 자기 종족에 대한 위신 따위랑은 별개로 진짜 개나 고양이처럼 굴었으니까.
그냥 장난감 몇 개 들고 놀아 주면 그게 끝이었다. 그리고 길드장 집무실에서 그냥 빈둥거리면서 폰이나 만지작거리면 얼마나 좋아. 이 추운 겨울에 나도 굳이 밖에 나가고 싶지 않았다.
내가 지금 밖에 나온 이유는, 새로 얻은 무구의 위력을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너모 조은 고애오…….”
나는 지금껏 수많은 물건을 꿍쳐 왔다.
던전이고 필드고 할 것 없이. 심지어 사람에게서 빼돌리기도 했다.
이쯤 되면 괴도라고 해도 될 정도가 아닐까.
그렇게 빼돌린 물건들을 어디에 썼냐고 묻는다면…… 딱히 할 말이 없었다.
그냥 내 창고에다가 박아 두고 있었으니까.
개중에는 즉시 써먹을 만한 것이 얼마 없었다.
그 가치가 상당히 높아서, 조금 더 아끼다가 써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물건들이 대부분이었다.
“븝미쟝, 쓸 때는 쓰는 고애오…….”
하지만 최근에 얻은 것들은 달랐다.
가짜 드래곤에게서 얻은 부산물 같은 경우는 물론이고, 드래곤 하트 또한 바로 길드 공방에다가 맡겨 버렸다.
내가 드래곤 하트라고 말하며 주니까, 라이카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했던 말도 아직까지 기억에 생생했다.
‘야, 내가 바보도 아니고. 이게 드래곤 하트라고? 이게 진짜 드래곤 하트면 내가 니 방어구 원하는 대로 하나 깔끔하게 뽑아 준다. 노출 없이.’
“그래서 이거 입었지여.”
그 발언 덕에, 멀쩡한 코트와 바지를 한 벌 얻을 수 있었다. 평상복이라고 해도 믿을 수 있을 정도로 평범한 외형의 방어구를.
사실 라이카가 드래곤 하트를 곧바로 알아보지 못한 데에는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흔히 ‘드래곤 하트’라고 불리는 것은, 진짜로 용의 심장이 아닌 그 내부에서 맺어지는 마력의 결정체였다.
그것이 와전되어 기사나 마법사들이 심장 근처에 마력을 쌓기 시작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데, 그것까지는 모르겠고. 아무튼, 드래곤 하트는 누가 봐도 심장보다는 보석에 가까웠다.
“사냥을 가는 고애오.”
새 방어구 그리고 공방에서 드래곤의 가죽으로 만들어 준 마력을 증폭하는 이 장갑까지.
스펙이 또 한 번 올라갔는데, 그걸 확인하지 않을 수가 없는 일이었다. 득템을 했으면 스펙을 체크하는 건 게이머의 기본이었다. 또한 히어로의 기본이기도 했다.
나는 곧바로 점찍어 둔 필드를 향해 갔다.
블랙 드레이크, 9~10등급 몬스터가 나오는 곳으로.
“하와와, 사람들이 없는 고애오…….”
지팡이를 타고 대략 이십여 분, 경기도 인근에 있는 필드에 금방 도착할 수 있었다.
저등급 필드에는 그렇게 사람이 많았는데, 이곳에는 사람들이 하나도 없었다.
텅텅 비어 있는 입구에는 혹여 일어날지 모르는 필드 브레이크 사태를 대비하여 단단하게 세워진 벽들과 그 옆에 붙어 있는 사무소 하나만 세워져 있었다.
나는 지상으로 착륙했고, 그곳에서 이미 나를 보고 있던 협회 직원이 직접 나를 맞이했다.
“단독 사냥하시기로 하신 거 맞죠? 다나 히어로님.”
“마자여, 옵바야!”
출입 확인 명부를 보고, 내게 질문하는 협회 직원.
한 자릿수 몬스터가 등장하는 곳부터는 이렇게 미리 협회에 연락해야만 했다.
더럽게 까다롭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웬만한 히어로 십수 명이 달라붙어서 레이드를 하는 게 9등급 블랙 드레이크였다. 그걸 솔로잉을 하겠다는데 아무한테나 허가를 내줄 수는 없는 일이었다.
“네, 확인되셨고요. 정문 개방해 드릴 테니 단말기 챙겨서 들어가세요. 무슨 일이 생기면 곧바로 단말기 체크 버튼 누르시고요. 그러면 협회 측에서 미리 배정된 배정현 히어로님께서 직접 호출받으실 겁니다.”
속사포처럼 말을 쏟아 내는 직원의 모습에서, 군 말년 병장의 모습이 겹쳐 보인다. 이런 고등급 필드 같은 경우에는 인수인계가 잘되지 않으니 장기간 근무를 하는 경우가 많았다. 광대까지 축 처진 다크서클을 보니 애잔하기가 그지없었다.
“고마오요, 옵바야…….”
“……조심하시고요.”
단말기를 받으며 경의를 담아 감사하니, 얼굴에 희미하게 미소가 번진다. 적어도 내가 아는 대부분의 상위권 히어로들은 다 개차반이었으니, 작은 친절에도 그리 친숙하지 못할 터다.
“옵바야, 혹시 안에 들어가 있는 다른 옵바, 언냐야 들이 있나여?”
상위권 히어로들, 그들에 대한 생각을 떠올리다 보니 혹시나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블랙 드레이크 정도는 조연급도 안 되는 히어로라도, 삼사천 위 이상이면 파티를 이뤄 잡기도 하지, 혹여 나처럼 솔로잉을 하는 상위권 히어로가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안에 들어가신 히어로분들은…… 지금 딱 두 분 계시네요. 같이 들어가셨고요, 켈빈 브라이너 히어로님이랑 이상수 히어로님입니다.”
“호에에……?”
그래도 워낙 비인기 필드니 아마 없겠지.
그렇게 생각했던 내 뒤통수를 제대로 때려 버리는 답변이 돌아왔다.
켈빈 브라이너 그리고 이상수? 나는 곧바로 얼굴을 굳힐 수밖에 없었다.
그 둘은 흑사회 소속 말단 간부이자, 현재 위장 신분으로 천 위 중반에 있는 히어로였다.
* * *
“아, 좆같아. 돈이나 되면 몰라, 이런 거나 잡으려고 여기까지 와서 생지랄을 해야 해?”
“그냥 참고 해, 켈빈. 이 새끼야. 사람 많은 필드 가서 특성 발현하다 걸리면? 그땐 이 신분도 버려야 하는데.”
이상수는 짜증을 내며, 검은색 촉수를 사출해 내고 있는 켈빈에게 핀잔을 줬다.
둘은 지금 히어로 협회의 기준에 따라 의무적으로 사냥을 해야 하는 주간에 필드를 돌고 있었다.
이 상황에 대해 켈빈은 불만이 많았다.
원래대로라면 이런 필드는 브레이크를 시켜서 인근 도시를 뒤집어 버리거나 해야 할 것이었다. 하지만 대략 15년 전에 일어난 협회와 흑사회의 충돌로 인해, 흑사회는 큰 피해를 입었고 현재 그런 일들을 수습할 만한 여력이 남아있지 않았다.
“하여간, 시팔. 윗사람들이 좆도 무능하니까…….”
“입조심해.”
“넌, 시발, 가끔 보면 너무 과잉 충성이야. 병신 쓰레기들만 모아 놓은 곳에서 누구한테 충성하고 신의를 지키고…… 그딴 게 말이나 되냐? 나는 최소한 내가 좆같은 새끼라는 자각이라도 있지…….”
“입.”
켈빈은 이상수의 몸에서 끌어 올려지는 마력을 보며, 고개를 팩 돌렸다. 혹시나 진짜 시비라도 붙어서 싸우게 되면 좋을 일이 없었으니까. 전력 차가 없는 상대와의 싸움은 피할 수 있으면 피해야 했다.
쿠에에에.
“아, 다 뒤져라, 그냥.”
대신 그는 그 분풀이를 드레이크들에게 했다.
켈빈의 특성은 마력을 자유자재로 조형하는 것.
언뜻 들으면 굉장히 좋지 않아 보이는 특성이지만, 세세히 뜯어보면 달랐다.
마력을 조형하는 데에 자유로운 것은 보통 마법의 형태. 그에 반해 검기와 같이 물체를 통해 증폭과 사출해 내는 마력은 조형이 쉽지 않았다. 그 밀도가 다르기 때문에.
하지만 켈빈은 마치 검기와 같이 밀도가 빽빽한 마력을, 자유로운 형태로 사출해 낼 수 있었다. 그러니까 지금 사방으로 뻗어 나가는 촉수들은 온전히 그의 취향이라는 것이었다.
뿌드드득!
드레이크의 목뼈를 촉수로 감싸 쥐어 부러뜨린다.
한 녀석은 후려치기도 하고, 다른 한 녀석은 등에 촉수를 처박아 생기를 그대로 빨아 먹어 버린다.
그런 촉수를 통한 감각들이, 생생히 몸을 타고 흘러 들어왔다.
켈빈은 그에 만족하며 광기 어린 웃음을 지었다.
“돈도 안 되는 놈들이지만, 죽이는 맛은 있네.”
“변태 새끼.”
“나는 내가 변태 쓰레기인 걸 인정한다니까 그러네…… 저기도 있나?”
켈빈은 킬킬거리면서 마력이 느껴지는 한 지점을 확인하고는, 곧바로 촉수를 사출했다. 곧바로 파육음과 함께 짜릿한 감각을 맛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그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흙……?”
촉수의 끝에서, 흙의 질감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이윽고…….
“으어억?!”
그는 그 흙의 감촉을 가지고 있는 무언가에게, 촉수째로 잡혀 지상으로 추락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