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화. 븝미쟝 괴롭히면 아야하는 고애오!
[최근에 흑사회에서 등록된 히어로 목록이 없다고요?]
[적어도 한 달 이내엔. 뭘 착각한 건지 모르겠는데.]
[설마 흑사회랑 짜고 속이는 건 아니겠죠?]
[헛소리하지 말고. 이번 조사에 대한 대가나 지급해.]
마지막 메시지를 끝으로 답신은 돌아오지 않았다.
뭐야, 진짜로?
왜 척살령이 안 떨어진 건데?
나는 검선과 연락을 취해 흑사회 내부에 척살령이 떨어져 있는지 확인했다.
물론 구체적으로 ‘다나 크리스틴’이 있는지 물어본 게 아니었다. 그냥 최근에 척살령이 떨어진 히어로가 있는지 물어봤다. 애초에 그 척살령이라는 게 흑사회가 대외적으로 활동을 하고 있지 않은 지금에서는 잘 내려지지 않는 것이었으니까.
그게 대략 일주일 전의 이야기.
그 오랜 기다림 끝에 드디어 오늘 돌아온 답이 바로 이것이었다.
“하와와와…….”
뭐야, 그럼 여태껏 무슨 짓을 한 거야?
쓸데없이 혼자 겁먹어서 숨어 지냈다고?
사실 흑사회의 움직임이 없다는 보고는 옛적에 이수정으로부터 받은 적이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걸 그녀의 정보력 부족이라고 단언했다.
이수정 또한 흑사회 관련 정보에 대해서는 상당히 자신 없어 하기도 했고.
그런데 그게 진짜였을 줄이야…… 시발.
“다나, 오늘도 방에 있……어? 왜 울어? 누가 그랬어?”
“언냐야…….”
그때 길드 내부로 들어온 일리아가 나를 발견하고는 곧장 달려온다. 도대체 누가 그런 거냐며 펄펄 뛰기 시작하는데, 나는 뭐라고 답할 수가 없었다.
이걸 누구 탓을 해야 하는데.”
척살령을 안 내린 흑사회 탓을 할 수도 없지 않은가.
“억울한 고애오…….”
* * *
“헤으으응…….”
“어휴, 거봐. 일 좀 적당히 하라니까.”
“어쩔 수 없던 고애오…….”
“교관 온다, 빨리 일어나 봐. 잠시 앉아 있다가 다시 엎드리던가 해.”
나는 흐느적거리면서, 일리아의 도움을 받아 겨우 자리에 똑바로 앉았다.
밖에 나가도 된다는 것을 확인한 것이 딱 나흘 전.
그 나흘간 수많은 격무에 시달렸다. 한 달간 외부에서 처리해야 할 길드 업무들이 지천에 널려 있었으니까.
그 덕분에 지금 몸이 부서질 것만 같았다. 손끝은 바들바들 떨리고, 척추는 몸을 지탱하지 못한 채 갈대처럼 이리저리 쓰러졌으며, 눈꺼풀은 자꾸만 아래로 꺼져 갔다.
“후에에에…….”
“아니, 정신 차리라니까. 이러다가 교관 오면 한 소리…….”
“언냐야, 하지만 다른 옵바 언냐야들도 다 저러고 있는데여…….”
“……그런가?”
일리아는 주변을 슬쩍 훑어보더니, 잠시 뭐가 맞는지 헷갈린다는 듯 뒷머리를 긁적였다.
개학 후 첫 수업인 마법 이론.
몇몇 성실한 생도들과 마법사가 되길 지망하는 생도들을 제외하고는 모두 책상 위에 엎어져 주꾸미처럼 흐물거리고 있었다.
“그러니까 븝미쟝도 좀 잘래여…… 그냥…… 므헤에엥…….”
“아무리 그래도 그냥 자는 게 어딨어. 다나? 다나?”
“코오…….”
의식이 흐려지기 시작하고, 이내 나는 그대로 수마에 빠져들었다.
그게…… 체감상 대략 10분 정도였을까.
“다나!”
“으음…… 후와아앙…….”
나는 일리아의 목소리에 잠에서 깨어났다. 수업 시간일 텐데 이렇게 깨워도 되나 싶었는데, 주변은 텅텅 비어 있었다. 아마도 수업이 끝난 모양이었다.
시계를 보니 10시 26분. 9시에 시작해서 10시 20분에 끝나는 마법 이론이니, 끝나고도 6분이 더 지났다는 소리였다. 분명 얼마 잔 것도 아닌 거 같은데 시간이…….
“일어났네. 으이구, 잘 잤어?”
“벌써 끝나써여?”
“그래. 근데 교관도 웃긴다. 니가 잔다니까 그냥 피곤해서 그랬을 거라고 내버려 두라더라고. 나는 어쩌다가 졸거나 하면 난리를 치면서…….”
“언냐야는 거의 수업 세 번에 한 번꼴로 졸자나여…… 븝미쟝은 첨이고여…….”
“세 번에 한 번까지는…… 아닐걸?”
“두 번에 한 번이라고 하려다가 줄여 준 고애오, 언냐야…….”
일리아는 얼굴을 붉히며 크흠, 헛기침을 터뜨렸다.
이론 위주의 수업에서 그녀의 악명은 꽤나 높았다. 그나마 요즘에는 많이 나아진 편이지만, 수업 내용이 조금만 지루하다 싶으면 제일 먼저 책상에 머리를 박는 게 그녀였다.
“그러며는…… 다음 수업이 머였져 언냐야?”
“11시 10분에 고대 유물과 마석에 대한 이해와 관리…… 아, 진짜 싫어. 무슨 하루 종일 이론이야, 오늘은?”
“실전보다는 낫져…… 하와와왕…….”
나는 하품을 하며 무의식적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몸이 찌뿌드드한 게 오늘은 실전 수업을 하고 싶지가 않았다. 이론을 내가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이번 고대 유물과 마석 어쩌구…… 같은 경우에는 게임 설정을 새로이 듣는 느낌이라 꽤 흥미 있는 수업이었다. 물론 일리아를 포함한 대부분의 생도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지만.
“언냐야는 왜 실전을 좋아하는 고애오?”
“어?”
“그렇자나여…… 언냐야만 그런게 아니라 다른 옵바 언냐야 들도 다.”
“직접 몸 쓰는게 정신적으로 고문받는 거보단 나으니까 그렇지. 몇몇 수업은 듣고 있다 보면 뇌가 녹을 것 같은데. 던전 오라 분석 그래프 이번 시험에 나온다는데…… 벌써 시험장 박차고 나가는 상상만 10번 넘게 했거든?”
아, 시험에 대한 부담감도 있겠구나.
물론 나는 공감되지 않는 이야기였다. 어차피 대충 아는 것만 풀고 다 찍으면 항상 90점 이상이었으니까…….
“언냐야, 혹시…… 업어 줄 수 있어여?”
“업어 줘?”
“아니에여, 아니. 댔어여…….”
“아 왜, 업어 줄게.”
너무 힘들어서, 농담 삼아 던져 본 말인데 일리아가 눈을 반짝거린다.
힘만 들고 이득되는 일은 하나도 없는 행동을 뭐가 그리 하고 싶은 건지 이해가 안 가는데, 그녀는 이따금 예전에 있었던 수업에서처럼 날 업고 다니고 싶어 했다. 무슨 도착증이 있는 것도 아니고.
꾸물꾸물.
달팽이가 기어가듯, 나는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일리아는 그 앞까지 같이 따라왔다가, 다시 계단으로 향했다.
엘리베이터는 생도중에선 유일하게 나만 탈 수 있었으니까. 그에 대해 불만을 가지는 생도들에게는 한 가지 답변만이 돌아갔다.
[신체 스탯 총합 20 이하로 맞추고 오세요.]
……어딜 몸 멀쩡한 놈이 타려고.
내가 사람 많은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않아서 그렇지, 나 정도면 실상 합법적으로 노약자석에 앉아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띵.
펜타곤의 엘리베이터는 굉장히 빨랐다.
2층에서부터 6층까지 눈 깜짝할 사이에 도착한 엘리베이터.
그에 천천히 걸어 나가려는데, 평소와는 다르게 엘리베이터에 누군가 기다리고 있었다.
일리아인가?
잠시 그렇게 생각했지만, 조금 전에 헤어진 그녀가 벌써 와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물론 그녀의 민첩 스탯을 생각해 보면 물리적으로 불가능하지는 않았으나, 그녀가 교내에서 전속력으로 뛰어다닐 리가 없었다. 그럼 미친년 소리나 듣겠지.
“어, 왔다.”
“왔네.”
“야, 니가 먼저 해. 그러기로 했잖아.”
……다시 보니 한 명이 아니라 한 무리다.
다섯 명의 생도가 한데 모여서는, 긴장된 얼굴을 한 채 서로 뭐라고 속삭이고 있었다.
이건 무슨 상황이야? 무슨 고백하는 것도 아니고…….
“저기, 혹시 말이야. 나랑 대련할래?”
“호에?”
대련? 지금 그 포인트 놓고 한쪽이 줘 터질 때까지 싸우는 그거 말하는 거 아니지?
나는 어이가 없어 처음 말을 꺼낸 생도를 째려봤다. 물론 전혀 위협적이지 않은지, 그는 그저 약간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어 갔다.
“나, 나랑 하자. 어차피 뒤에…… 얘네 다 대기 중인 애들이거든? 나랑 하는 게 제일 나을걸? 마법 내성도 거의 없으니까…….”
“야, 씹. 그런 식으로 어필하는 건 반칙이지. 장난치냐?”
“자기 PR의 시대거든? 닥쳐 봐.”
“호에에……?”
나는 잠시간, 머리를 부여잡아야만 했다. 얘네들 왜 이래?
그러니까 지금 나랑 대련하려고 다섯 명이 우르르 몰려왔다, 이건가?
거부 권한 3개를 다 사용해도 무조건 대련하게 만들려고?
이거 씨발 기분이 아주 좆같은데?
“븝미쟝, 오늘 몸이 안 조은데…… 내일 해 주면 안 댈까여?”
“뭘, 오늘 안 좋아. 항상 안 좋잖아.”
“야, 말을 그런 식으로…….”
“해여.”
순간 귓가에 들려오는 신경을 긁는 한마디. 머리에 열이 팍 오른다.”
원하는 게 대련이라고? 해 주고 만다 내가. 대신 다시는 못 덤비게 아주 박살을 내겠지만.
“방금 말한 옵바야, 그 옵바야랑 할 게여.”
“정말? 나랑 한다고? 아싸!”
아싸는 무슨 아싸.
펄쩍 뛰며 좋아하는 그를 보고, 나는 잠시 어이가 없어졌다.
겨울 방학 동안 쉬고 왔더니 감을 잃은 건가.
9전 9승 0무 0패. 모든 경기 30초 이내 종료.
그것이 지금 펜타곤에서 내가 보유한 대련의 기록이었다.
* * *
“헤으으응…….”
모든 일정이 끝나고, 대련하게 된 나는 대기실로 향했다.
원래는 대기실에서 시간을 보내지 않았다. 앞선 대련들 모두 별생각 없이 임했었으니까. 하지만 이번만큼은 진짜로 개박살을 내 줄 생각이었다.
대기실의 존재 이유는 대련 이전 컨디션을 최상으로 끌어 올리고, 상대에 대해 분석을 하기 위함. 실제로 대기실 천장에 붙어 있는 스크린에서는 상대 생도에 대한 분석이 나오고 있었다.
“넘흐 조은 고애오…….”
하지만 나는 그것보다 당장 사용하고 있는 마사지기가 더 좋았다.
길드 내에도 존재하지만, 아무래도 그것보다 더 고급 모델인지 기능이 더 많고 편안했다. 나름 그것도 억 단위로 주고 산 물건인데 이건 도대체 얼마를 준 거야.
어쨌든 덕분에 피로는 많이 가셨다.
최상의 컨디션은 아니지만, 최악에서는 벗어난 상태. 제대로 된 상대와 싸우기에는 조금 아쉬울 수 있으나, 펜타곤 랭킹 100등대의 생도한테는 지려야 질 수가 없다.
“븝미쟝을 만만하게 본 고애오…… 아가야라도 쉽지 않은 고애오!”
갑자기 개학 첫날부터 내게 별 똥파리들이 달라붙는 이유. 그것은 명확했다.
최근 들어, 내 주가는 급속도로 상승 중이었다. 길드 사업 또한 빠르게 진척되고 있었고, 개인으로서도 대외적으로 활동을 해둔 덕에 사람들로부터 인지도와 명성이 굉장히 높았으니까.
명성도 5만이라는 답도 없는 목표까지 벌써 얼마 남지 않은 것을 보면 알 수 있었다.
진짜로 국내에선 나를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을 것이다.
“옵바야 바보인 고애오…….”
그 때문에 내게 지금 한 번 비벼 보려는 것이다, 지금 저 생도들은.
나를 이길 심산이 아니라, 어떻게든 접전을 벌이는 듯한 연출이라도 한다면 뭇 대형 길드들로부터 러브콜을 받기에 유리하지 않을까 하는 얄팍한 계산을 한 것이겠지.
실제로 나와 자웅을 겨룬다면 길드에서 모셔가야 할 인재인 것은 맞다.
외부에서 모든 장비와 수단을 사용하는 나와, 펜타곤의 나 사이에는 거의 두 배 이상의 전력 차이가 나긴 했지만…… 그럼에도 규격 외인 것은 같았으니까.
문제는 그럴 일이 없다는 거지.
[양 선수 대련 준비해 주십시오.]
“갈까여…….”
나는 천천히, 대련장으로 나섰다.
대련장을 둘러싼 수많은 생도, 그들 앞에서 오늘 한 가지 생각을 명확하게 심어 줄 것이다.
“븝미쟝 괴롭히면 아야하는 고애오…….”
나한테 함부로 덤비면 뒤진다는 걸.
“와아아아아아!”
함성이 들려온다. 오랜만에 내 대련이라고 잔뜩 몰려온 것 같았다. 2학년, 심지어 졸업 준비하느라 바쁠 3학년 생도들까지 몰려와 있었다. 저쪽 한구석에는 교관들까지 옹기종기 모여 있다.
이렇게까지 올 만한 경기가 아닐 텐데.
나는 상대 생도를 향해 잠시 묵념의 시간을 가졌다.
녀석은 밝게 웃고 있었다.
천 명 가까이 되는 사람들 앞에서, 무참하게 피떡이 될 미래를 그는 모르는 것 같았다.